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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언제까지 피해자로만 남아있을 것인가"

[시론] '성화 폭력'으로 불거진 중국 민족주의에 대한 충고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 행사에서 유학생 등 중국인들에 의한 폭력 사태가 벌어지면서 중국 민족주의에 대한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폭력 행사에 대한 비판과는 별개로 중국의 민족주의, 티베트 사태에 대한 국제사회와 중국 정부의 대응에서 나타난 문제점 등에 관해 냉정한 진단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이남주 성공회대 중국학과 교수는 29일 "자신을 피해자로 인식하는 과거의 틀에서 여전히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중국 민족주의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남주 교수는 이날 다산연구소 홈페이지 '다산포럼'란에 실린 '중국 민족주의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라는 글에서 이같이 말하고 "중국 민족주의에 내재하는 피해자의식과 국제사회에서는 초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현실 사이의 불균형은 이제 중국과 국제사회의 소통과 이해를 가로막는 가장 커다란 장벽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중국의 민족주의에 대해 중국의 근대사와 인권 문제에 대한 서구의 이중 기준 등으로 볼 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면서도 "한족중심주의가 내부 이민족에 대해 보였던, 그리고 중국이 주변 국가들에 대해 취했던 지배자적 가해자적 성격에 대한 반성적 고찰과 배려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사태가 계속되면 중국과 국제사회가 충돌하고 반목하는 상황으로 발전할 수도 있으며, 이는 21세기의 변화를 규정짓는 균열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하면서도 "국제사회에서 중국 민족주의를 열린 자세로 토론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프레시안>은 다산연구소의 동의를 얻어 이남주 교수의 칼럼을 전재한다. <편집자>

▲ 27일 서울시청 앞 성화봉송 행사에서 열광하고 있는 중국인들 ⓒ뉴시스

중국 민족주의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

먼저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은 '민족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논의의 출발점이 아니라는 점이다. 중국의 근대사가 서구열강의 침략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상당 기간 국제무대로의 진출이 가로막혔으며, 서구로부터 여러 편견, 특히 인권 등의 보편적 가치도 정치적 의도에 따라 다르게 이용되는 이중기준에 중국이 오랫동안 시달려 왔음을 고려하면, 중국인들 사이의 강한 민족주의적 경향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최근 성황봉송 과정에서 나타난 충돌에 대해 중국인들이 반발하는 반응을 보여준 것도 이해할 수 있다. 티베트에 대한 중국정부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는 중국인들조차도 7년 전에 개최가 결정되고 지금껏 준비해온 베이징올림픽에 대해 국제 사회가 비판적 태도를 보이는 것을 평온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는 힘들 것이다. 필자 역시 표현의 자유를 넘어서 성화봉송을 저지하는 식의 직접적인 공격은 문제해결의 출발점인 중국인들과 국제사회의 신뢰의 기초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걱정스럽게 생각한다.

중국인의 피해의식과 민족주의 경향을 이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성화봉송을 둘러싼 충돌을 계기로 표출되는 중국의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가장 큰 이유는 그 논리가 자신을 피해자로 인식하는 과거의 틀에서 여전히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국제사회에서 티베트를 둘러싼 논란은 단순히 독립을 지지하느냐 반대하느냐의 문제는 아니다. 국제사회는 '약자'인 티베트인들이 왜 그처럼 격렬하게 저항하는가에 대해 중국이 좀더 진지하게 설명해 주기를 원한다. 중국 정부가 오랫동안 내놓고 있는 "티베트의 문제는 주권 문제"라는 주장은 너무 단순하여 설득력이 없다. 그리고 앞으로 티베트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지금 중국이 공식적으로 취하고 있는 이른바 "달라이라마를 대표로 하는 소수의 분열주의자들"을 진압하는 방법 외에 좀더 종합적인 해결방법을 기대하고 있다. 국제사회가 중국 정부의 티베트에 대한 태도를 주시하는 것은 이를 이후 중국이 국제사회에 대해 취하는 태도를 예측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보는 심리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티베트 사태를 전후로 보인 중국정부의 대응은 지금까지의 틀에 박힌 방식을 넘어서지 못했으며, 전혀 새로운 면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친중국적인 시위와 주장들은 성화봉송을 계기로 표출되는 국제사회의 중국정부에 대한 비판을 근대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중국인들에 대한 모욕으로만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중국 내에서는 프랑스의 유통업체인 까르프, CNN 등에 대한 비판여론이 비등하고 일부 중국인들은 행동에 나서고 있으며 국제적으로 성황봉송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에 중국정부를 비판하는 시위에 역시 조직적 시위로 대응하고 있다. 가히 중국 민족주의의 전방위 출격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주장에서 한족중심주의가 내부 이민족에 대해 보였던, 그리고 중국이 주변 국가들에 대해 취했던 지배자적 가해자적 성격에 대한 반성적 고찰과 배려는 찾아보기 힘들다. 중국의 민족주의에는 영원한 피해자로서의 중국인(혹은 한족)과 가해자로서의 서구(혹은 국제사회)로 구성되는 단일서사뿐이다. 중국 민족주의에 내재하는 피해자의식과 국제사회에서는 초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현실 사이의 불균형은 이제 중국과 국제사회의 소통과 이해를 가로막는 가장 커다란 장벽이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서구의 이중기준 등에 대한 중국인들의 이유 있는 비판도 설득력을 갖기 어렵게 될 것이다.

국제사회 위상에 걸맞게 피해자 아닌 책임 있는 모습을

더욱 심각한 것은 중국인들의 이러한 감정이 이제 중국 영토를 벗어나 세계 곳곳에서 공공연하게 표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중국 내에서 몇 차례 등장한 민족주의적 움직임보다 국제사회에 더욱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다. 중국 내에서 벌어지는 민족주의적 행동들에 대해 중국정부는 시기에 따라 용인하기도 하였지만 동시에 일정한 수준을 넘어서지는 못하도록 통제하였기 때문에 그 국제적 영향력 역시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세계 곳곳에서 중국인들과 현지인들이 충돌하는 양상을 띠고 있으며 그 파장은 심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중국정부의 통제를 넘어서게 될 것이다. 당연히 국제사회에서는 이러한 반응을 피해자들의 항변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중국의 국력이 커지면서 중국인들이 자행하는 행포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러한 사태가 계속되면 중국과 국제사회가 충돌하고 반목하는 상황으로 발전할 수도 있으며, 이는 21세기의 변화를 규정짓는 균열요인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여기에는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국제사회에서 중국 민족주의를 열린 자세로 토론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화의 주체들이 이러한 기회를 활용할 수 있는 성숙한 자세를 가지고 있는가의 문제이다. "싸우지 않으면 친구가 될 수 없다(不打不成交)"는 중국말이 있다. 이번 성화봉송을 둘러싼 시비가 앞으로 갈등을 심화시키는 출발점이 아니라 진정한 신뢰의 기초를 다지는 계기가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잃게 될 것은 단순히 친구 하나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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