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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벚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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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벚나무

[도종환이 보내는 '시인의 엽서'] <6>




아직 산벚나무 꽃은 피지 않았지만
개울물 흘러내리는 소리 들으며
가지마다 살갗에 화색이 도는 게 보인다
나무는 희망에 대하여 과장하지 않았지만
절망을 만나서도 작아지지 않았다
묵묵히 그것들의 한복판을 지나왔을 뿐이다
겨울에 대하여
또는 봄이 오는 소리에 대하여
호들갑떨지 않았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경박해지지 않고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요란하지 않았다
묵묵히 묵묵히 걸어갈 줄 알았다
절망을 하찮게 여기지 않았듯
희망도 무서워할 줄 알면서*


제 시 「산벚나무」입니다. 제가 있는 산방 뒤뜰에는 산벚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봄이면 연분홍 산벚꽃을 흐드러지게 피워내는 그 산벚나무가 얼마나 대견한지 모릅니다. 눈 내리고 찬바람 몰아치는 겨울을 묵묵히 견뎌 준 게 고마워 나는 산벚나무를 양팔로 꼭 껴안아주고 얼굴을 부빕니다.

산벚나무는 봄이 온다고 호들갑떨지 않습니다. 겨울을 견디기가 너무 힘들다고 엄살을 부리지도 않습니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비굴하거나 경박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많고, 길이 조금만 보이면 요란을 떨거나 거만해지는 사람은 얼마나 많습니까.

절망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 용감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어떤 어려움이든 하찮게 여기지 말고 정확하게 응시하며 헤쳐 나가는 일이 중요하지요. 희망을 만났을 때도 원하던 것을 다 이룬 것처럼 들뜨지 말고 과욕을 경계하고 그것이 덫이 되지 않도록 삼갈 줄 아는 것도 필요합니다. 묵묵히 겨울을 견디고 아름답게 꽃피운 뒤에도 소박한 자세를 잃지 않는 산벚나무의 모습에서 나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를 배웁니다.
▲ 산벚나무

(매주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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