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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비게이션에 없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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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비게이션에 없는 길

[도종환이 보내는 '시인의 엽서'] <4>


네비게이션에 제가 있는 산방 주소를 찍고 오다보면 쌍암재 아래에서 방향을 가리키는 화살표가 움직임을 멈춥니다. 목표지점을 찾을 수 없어서 노란색 화살표로 바뀐 채 움직이지 않습니다. 산방은 해발 350m 정도의 산비탈 경사면에 지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동네를 끼고 산방 뒷길로 돌아 들어올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음지말을 지나면 네비게이션에서 길 표시가 사라집니다. 지도만으로 보면 허공을 달리거나 길 없는 길을 가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길이 없는 건 아닙니다. 다만 네비게이션에 나타나지 않을 뿐입니다. 본래 는 없던 길이었지만 스님 한 분이 토굴을 짓고 기거하시면서 만들어진 길입니다. 지금 스님은 떠나셨지만 산방이 지어지면서 조금씩 모양을 갖춰온 산길입니다. 우리는 만들어진 지도를 신뢰하고 과학을 신뢰합니다. 기존에 나와 있는 자료와 과학에 근거하여 길을 찾아갑니다. 이미 근거가 있고 앞선 사례가 있는 것만을 믿으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가서 길이 만들어지고 그 다음에 지도가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루신은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희망도 길이 만들어지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희망은 본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마치 땅 위에 있는 길과도 같은 것이다. 실상 땅 위에는 원래부터 길이 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위에 살고 있는 사람이 많다보니 저절로 길이 생긴 것일 뿐이다." 희망이 막연한 것, 만들어 낸 우상과 같은 것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가 절실히 필요한 이유가 있어 수없이 그 길을 걸어가서 만들어 내는 것이어야 합니다.

(매주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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