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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아직 저의 전성기는 오지 않았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04/03] 데뷔 33년째 신곡 낸 낭만가객 최백호씨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 '영일만 친구', '낭만에 대하여' 등의 노래로 유명한 '낭만가객' 최백호씨가 최근 인생의 의미를 담은 신곡을 발표했습니다. 최백호씨는 중년 남성들의 감성을 담아 그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노래로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데요 데뷔 30여년을 맞은 그는 노래에도 인생의 무게가 실린다며 나이를 먹을수록 곡을 만들고 노래를 부르는 일이 더욱 좋아진다고 합니다.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가수 최백호씨를 초대해..
그의 가수생활 30년을 되돌아보고 우리 시대 진정한 낭만의 의미에 대해 얘기 나눠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가수 최백호씨입니다. 최백호씨는 1976년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로 데뷔해 이후 32년간 싱어송 라이터로 활동을 계속했습니다. 이후 17장의 앨범을 통해 '고독', '영일만 친구', '남자에게', '낭만에 대하여' 등의 히트곡을 발표하며 꾸준한 음악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싱글앨범인 '우울한 날을 위한 준비'를 발표했습니다.

박인규 : 바쁘신데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백호 : 아닙니다.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인규 : 이번에 나온 앨범이 '우울한 날을 위한 준비'에요. 근데 5년 만에 나왔다고 하더라구요.

최백호 : 네. 한 4,5년 만에 낸 것 같습니다.

박인규 : 상당히 오랜만에 곡을 발표하셨는데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 ⓒ프레시안

최백호 :
제 나이 또래의 가수들에 비하면 오랜만은 아닙니다. 요즘엔 앨범 만들기가 힘들어서, 전 자주 만드는 편입니다 그래도. 좀 손해를 보더라도. 항상 손해보죠 잘 안 팔리니까.

박인규 : 잘 안 나가는 모양이죠? 요즘 이른바 디지털음원 때문에 고생하시는 모양이죠?

최백호 : 예.. 그런 것도 있고

박인규 : 데뷔하신 게 1976년이에요

최백호 : 네. 76년에 첫 앨범을 냈습니다 아마. 그 전에도 노래를 했습니다.

박인규 : 공식적으로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건 76년인데 많은 분들이 대개 30주년 20주년 하면 기념공연 이런 걸 하는데 최백호씨께서는 2006년도를 조용히 지나보내셨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까?

최백호 : 제가 1977년에 데뷔한 줄 알고 있었어요. 저는 옛날 앨범이 집에 없거든요. 지나간 걸 별로 잘 간수한다든지 이런 성격이 아니라서. 77년쯤, 2007년에 한 번 할까 30주년... 남들 다 하니까, 하려고 했는데 어떤 신문기자를 잘 아는 분을 만났는데, 당신 76년에 데뷔했는데 왜 77년에 30주년을 하냐 이러는 거죠. 아, 그래서 내가 76년에 했냐고 하니까, 그 분이 제 앨범을 갖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또 1년 지난 걸 뭐 하냐

박인규 : 데뷔년도를 정확히 아셨으면 2006년도에 공연을 하시는 건데 잘 모르셔서 못하셨군요

최백호 : 네. 그래서 올해는 그냥 한번 하자. 꼭 30주년이냐

박인규 : 대충 30주년으로 하시면 되죠 뭐

최백호 : 30년 즈음

박인규 : 말 되네요. 혹시 언제쯤 하실 건지 계획이 잡히셨어요?

최백호 : 확실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습니다. 기획하시는 분하고 하자고 약속만 해놨습니다.

박인규 : 일단 아직 봄이니까, 가을에... 최백호씨 하면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영일만 친구, 입영전야, 이런 노래가 많이 알려졌습니다만 특히 중년 남성들에게는 낭만에 대하여... 남성뿐만 아니죠 중년 여러분들이 좋아하시는데, 이번에 나온 노래는 '우울한 날을 위한 준비'에요. 요즘 심경이 좀 우울하신 건지?

최백호 : 아닙니다. 제가 딸을 하나 키우고 있는데 23살입니다. 딸이 지금 굉장히 예민한 때니까 하는 일도 잘 안 되고 공부도 잘 안 되고, 굉장히 뭐랄까 예민한 것 같아요.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아서, 사람이 살아가면서 항상 즐거운 날만 있는 건 아니다. 우울한 날도 항상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된다는 그런 의미의 노래에요

박인규 : 우울한 날을 싫어하거나 미워하지 말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갖는 게 중요하다

최백호 : 네. 담담하게 받아들여라, 그런 의미의 노랩니다.

박인규 : 제가 어디 TV프로에선가 '애비'라는 노래를 부르신 걸 들었는데 딸내미를 시집보내는 아버지의 마음... 실례지만 따님이 시집을 가신 겁니까?

최백호 : 아닙니다. 아주 어릴 때 만들었어요. 어릴 때 키우면서 느끼는 거 있잖아요. 딸이란 건 항상, 보낸다는 의미가 있으니까

박인규 : 아직 시집은 안 갔고. 나이를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최백호 : 23살입니다.

박인규 : 하긴, 아직 예민한 나이긴 하겠군요. '우울한 날을 위한 준비'에 대해서 딸의 평가는 어떻습니까?

최백호 : 별 반응이 없습니다. 하하하

박인규 : 딸을 위해서 만들었지만 딸보다도 4,50대 중년이 좋아하는 노래가 될지 모르겠네요.

최백호 : 그건 모릅니다. 아무도 모릅니다.

박인규 : 최백호씨에 대해서 낭만가객이다, 이런 말들을 하시는데요. 그게 아무래도 '낭만에 대하여'라는 노래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제가 알기로는 '낭만에 대하여'를 발표하신 건 95년인데, 이른바 뜬 건 다음 해. 1년 반이 지나서 떴고 밤 9시 TV뉴스에도 보도가 됐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서 갑자기 뜨게 된 겁니까?

최백호 : 제가 앨범을 내고 한 1년 반쯤 동안 한 달에 한 20장,

박인규 : 하루에 한 장이 안 나갔네요?

최백호 : 네. 그 정도로 팔렸어요. 그 전 앨범들이 항상 많이 있었으니까 그런가보다, 적극적으로 PR을 한다든지 이러지 않았어요. 뭐 항상 그래왔으니까 그렇겠지... 하고 있는데 어느날 레코드사의 판매하는 직원이 전화를 했어요. 선생님, 이상하다, 갑자기 주문이 천몇백장이 들어왔대요 하루에. "이상하다, 어떻게 된 얘긴지... 무슨 이유로 이럽니까" 하고 전화를 해요. 제가 어디 가서 이야기 참 많이 했는데, 제가 대답한 게... "야 인마 그게 뭐 이상하냐. 이게 정상으로 돌아가는 거지" 그랬는데 저도 굉장히 이상해서 알아봤죠. 무슨 TV드라마에 제 노래가 나왔대요. 그런데 그 드라마를 한동안 못 봤습니다. 왜냐면 저는 저녁에 노래를 하니까 그 드라마를 볼 시간이 없거든요. 그러다가 앨범이 많이 팔렸어요. 그러다 어느 날 TV에서 우연히 보게 됐는데 장용 선생님께서 제 노래를 부르시더라구요 노골적으로

박인규 : 거의 뭐 간접광고를 세게 해주셨군요

최백호 : 네. 아마 김수현 선생님 작품이었을 거예요.

박인규 : 그 드라마라 KBS에서 한 '목욕탕집 사람들'이라던데요

최백호 : 목욕탕집 남자들인가 사람들인가

박인규 : 김수현 선생님이 막 띄워주신 거군요. 제가 알기론 김국환씨의 타타타라는 노래도 김수현씨 드라마로 떴다고 들었는데 덕을 톡톡히 보셨네요.

▲ ⓒ프레시안

최백호 :
덕을 본 노래들이 꽤 있다고 들었습니다.

박인규 : 덕을 봤지만 그래도 그 노래 자체가 호소력이 있으니까 그렇게 뜬 거 아닐까요?

최백호 : 제 노래지만 그런 요소가 없었다고는 할 수 없겠죠.

박인규 : 저희도 뭐 사실 최백호씨보다 연배가 조금 밑이긴 하지만 노래방 가면 친구들이 이 노래 거의 매번 부릅니다.

최백호 : 감사합니다. 안부 전해주십시오.

박인규 : 그 당시가 IMF 직전이고 해서 한동안 이 노래가 많이 나갔는데 중년들이 이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는 어디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세요?

최백호 : 글쎄, 제가 생각하기엔 제가 20대 30대 때는 이런 노랠 못 만들었겠죠. 제가 40대 중반에 만들었던 노래고 40대 중반이 아니면 만들 수도 없는 노래고. 그랬기 때문에 아마 제가 어떤 생각이나 이런 게 모든 중년 분들이 다 공감하는, 공감대가 딱 형성됐지 않느냐.

박인규 : '낭만에 대하여'라는 가사를 쓸 때는 본인의 느낌을 다 그대로 담았다. 그 나이의 느낌을 담았다고 말할 수 있군요

최백호 : 네. 제가 그걸 알기까지 굉장히 힘들었는데 대부분의 가수들이 좀 그런 것 같아요. 20대 30대 가면 굉장히 어려워집니다. 그러다 어느 날 제가 아, 이거 40대 접어들어서 가만 생각해 보니까 제 노래를 듣는 분들이 저와 같이 늙어가는구나 하는 걸 깨우친 거죠.

박인규 : 가사 첫 부분 보면, 첫사랑 그녀는 어디서 나처럼 늙어갈까...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마는... 이런 부분을 굉장히 좋아하신다고 해요. 가사를 직접 다 쓰십니까?

최백호 : 네. 제가 씁니다.

박인규 : '낭만에 대하여'라는 노래가 유행하는 건 역설적으로 지금 우리 사회가 낭만이 없기 때문이 아니냐. 이런 말씀도 하시는 분이 있는 것 같아요.

최백호 : 그런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낭만이라는 건 특별한 세대만의 것은 아니고 요즘 젊은 사람들도 자기 나름대로의 낭만이 있겠죠.

박인규 : 그렇다면 요즘 4,50대가 느끼는 낭만과 요즘 10대 20대가 느끼는 낭만은 물론 내용이 다르겠죠?

최백호 : 저희는 요즘 4,50대들은 상당히, 평탄하게 살지는 못했잖아요. 참 힘든 시기를 많이 겪었죠. 제 경우만 해도 동란 때 태어났고 그 이후로 4.19니 5.16이니 그 힘든 시대를 지나왔기 때문에 아마도 조금 더 그런 게 강하지 않나. 지나간 것에 대한 기억이나 추억들이, 과거에 대한 향수가

박인규 : 따님이 20대 초반이시라니까, 우울한 날을 위한 준비에서 별로 반응이 없다고 하셨는데, 따님 세대들의 낭만은 어떤 거라고, 옆에서 보시니 어떤 것 같아요?

최백호 : 인터넷인 것 같아요. 거의 인터넷에 매달려 있고. 얼굴도 모르는 어떤 대상과의 대화, 저희들은 없었잖아요. 그런데 그게 아마 또 어떤 형태의 낭만으로 그 사람들한테는 남지 않을까

박인규 : 따님과는 자주 대화를 하시는 모양이죠?

최백호 : 얘기를 많이 합니다.

박인규 : 좋은 아버지시네요.
이쯤에서 최백호씨의 히트작도 한 번 봐야 될 것 같은데요. 데뷔곡이 '내 마음 갈 곳을 잃어'인데, 이게 어떻게 보면 사실 음반판매량을 보면 '낭만에 대하여'보다도 많았다고도 하고

최백호 : 비율로 따진다면 그땐 음반시장이 굉장히... LP였는데 그때만 해도 그게 전축이라고 그런 건 보통 잘 사는 집에나 있지 보통집에 없었거든요. 그런데 그 해 8만 장이 팔렸으니까 굉장히 많이 팔린 셈이죠.

박인규 :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그런 노래죠?

최백호 : 예. 그 노래

박인규 : 이게 아마 실연을 하시고 부른 노래 아니냐... 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어머니와 관련이 있다면서요?

최백호 : 제가 20살 나던 해 가을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는데,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만 모시고 살았습니다. 어머니가 저를 모셨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신 즈음 해서, 그때만 해도 가수가 되리란 생각 안 했습니다. 그냥 이렇게 노트에 끄적거려 놨던, 가을에 떠나지 말아요... 뭐 그렇게 써놨던 건데 그게 우연히 노래가 됐죠

박인규 : 최백호씨가 붙인 가사에 곡을 붙여서

최백호 : 최종혁씨가 작곡하시고

박인규 : 또 하나 '영일만 친구'도 굉장히 히트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거의 같은 즈음에. 많은 분들이 그래서 최백호씨 고향은 포항이다, 영일만인다 그러는데 실제 고향은 아니시라면서요?

최백호 : 제 고향은 좌천이라는 뎁니다. 지금은 부산시로 돼 있는데 그때만 해도 부산시가 아니고 동래군이라고 해서 동해남부선 타고 올라가는 아주

박인규 : 부산에서 약간 북쪽으로 올라가는 곳이군요

최백호 : 네. 북쪽으로 올라갑니다 울산 쪽으로. 울산과 부산 사이 중간쯤에 있습니다.

박인규 : 근데 '영일만 친구'는 왜 만드셨어요?

최백호 : 영일만에 친구가 있어서

박인규 : 최백호씨가 아니고? 굉장히 사연이 있었던 친구신가 보죠?

최백호 : 아주 친했던 친구고, 그 친구는 그림을 참 잘 그렸어요. 시도 쓰고 했던 친구인데 일찍 세상을 떴습니다. 48에. 그 친구에 대한 얘기에요.

박인규 : 그 친구... 노래를 만들 정도면 두 분 간의 관계가 보통관계는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최백호 : 예. 아주 친했던 사이인데 죽고 나니 관계가 정리됐어요.

박인규 : 또 하나 최백호씨 노래 중에 많이 알려진 게 '입영전야' 아닙니까? 그 노랜 어떻게 만드시게 된 거예요?

▲ ⓒ프레시안

최백호 :
'입영전야'는 그야 말로 군대 입대하기 전날 밤 기억을 더듬어서 만든 건데, 제가 입영전야는 어머니 돌아가시고 얼마 안 돼서 그냥 생활이나 모든 게 어려워서, 저는 부선망독자기 때문에 군대를 안 가도 되는 경우였습니다.

박인규 : 부선망독자면 아버님 먼저 돌아가시고, 외아들이면 안 가도 되는

최백호 : 신고만 하면 안 갔죠. 그런데 그냥 군대를 갔어요. 어머니 돌아가시고 굉장히 힘들어서

박인규 : 아, 어머님이 안 계시니까 가신 거군요. 안 가셨을지도 몰랐는데

최백호 : 아마 어머니 살아 계셨으면 군대를 안 갔을 거예요. 그래서 '입영전야'가 특별히 깊게 남아있습니다 저한테

박인규 : 그럼 어머님 돌아가시고 얼마 안 돼서 군대 가신 거군요.

최백호 : 20살에 돌아가시고 제가 21살 1월에 입대했습니다.

박인규 : 그럼 여러 가지로 마음이 착잡하고 우울하고 그러셨을 때 내신 거네요

최백호 : 네. 그럴 때였습니다.

박인규 : 이번에 입영전야에 관한 노래들이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만

최백호 : 입영전야 두 번째 얘기라고, 만들어 놨어요. 음악도 다 녹음이 돼 있습니다. 아직 발표는 안 했는데 1년쯤 있다가 발표하려고 합니다. 그건 아들을 군대에 보낸 아버지 얘기에요

박인규 : 저도 사실 작년 봄에 아들을 군대에 보냈는데 내년에 나오면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심정이 맞는지 안 맞는지.
그럼 이쯤에서 오늘 초대손님으로 모신 최백호씨의 히트곡인 낭만에 대하여. 한 번 같이 들어보시겠습니다.
낭만가객 최백호씨의 '낭만에 대하여'라는 노래 들어봤습니다. 역시 아무리 들어봐도 좋군요.

최백호 : 감사합니다.

박인규 : '낭만에 대하여'라는 노래를 만들게 된 뒷얘기나, 어떻게....

최백호 : 특별한 건 없습니다. 저희들은 노래를 항상 만들어야 되니까요. 거의 어떤 의식을 하고 앨범을 만든다 준비한다 이런 건 없이 그냥

박인규 : 항상 노래의 꺼리를 찾으시는군요

최백호 : 네. 그러다 보니 그냥 만들어졌는데, 제가 뚜렷하게 기억하는 게.. 이 노래를 만들 때 살던 아파트 중간에 부엌하고 제가 있던 거실 사이에 유리로 된 문이 있습니다. 그 유리창에서 제 와이프가 음식을 하고 있는 걸 보고 있다가, 기타를 치면서, 보고 있다가 그때쯤 만들었어요. 그 상황과 노래하고는 연관이 없는데. 그때 우선 옛날 다방, 젊었던 시절에 아마 제 기억으론 그때 '로우라'라는 색소폰 연주곡이 있습니다. 에이스캐논인가 하는 악단의. 그 노래를 아마 들었을 거예요. 그 다방 뭐 이런 생각을 하다가 우연히 만들었습니다.

박인규 : 집에서 부인이 식사 만드시는 걸 보시다가 예전 다방 생각이 떠오르고 가사가 떠오르고

최백호 : 예. 그 상황과 노래는 관련이 없습니다.

박인규 : 바로 만드신 겁니까?

최백호 : 예. 굉장히 빨리 만들었습니다. 중간에 도라지위스키라는 게 나오는데, 도라지위스키가 요즘도 있는가?

박인규 : 그건 사실 40대 후반 이후는 잘 모를 걸요?

최백호 : 예. 요즘도 팔고 있으면 못 만드니까

박인규 : 아, 간접광고가 되니까

최백호 : 네. 그래서 주류협회에 전화해 보니까 그런 거 없다고 하더라구요.

박인규 : 요즘 젊은 사람들 말로 하면 그야 말로 필이 팍 꽂히셔서 금방 만드신 거군요

최백호 : 그렇습니다.

박인규 : 요즘 20대들은 사실 다방도 잘 모를 겁니다 아마. 다방이란 게 요즘 없으니까

최백호 : 그래도 아직 시골에 가면, 시골이나 어촌 같은 데 가면 아직도 다방이 있습니다.

박인규 : 32년 전에 데뷔하셨는데요. 20대에 어머님 돌아가시고 군대 가시고, 그 이후에 데뷔하신 것 같은데 어떻게 가수로 데뷔하시게 됐는지 궁금해요.

최백호 : 기타를 우선 고등학교 다닐 때 배웠습니다.

박인규 : 그 당시는 다 통기타를 쳤으니까

최백호 : 네. 기타를 배우고 친구들과 노래도 하고 했는데 어머니 돌아가시고 군대에서 1년 만에 제대했습니다. 결핵을 앓아서 의병제대를 했습니다. 그래서 꼭 1년 만에 제대를 하고 딱히 할 일도 없고 공부를 계속 할 수도, 돈이 없으니까 생활이 어려워지니까 뭔가를 해야겠는데 굉장히 한 2년간 굉장히 나름대로 고생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제 친구의 매형 되시는 분이 부산에 조그만 생맥주... 기타 치고 노래하는 그런 곳을 차렸어요. 거기서 노래 한 번... 제 친구도 노래 아주 잘했거든요. 그래서 거기서 같이 노랠 했죠. 부산에서. 처음 시작하고 기타는 대충 치는데 노래는 신통치 않았기 때문에, 노래는 기타를 치는 김에 하자고 했는데 어떻게 가수가 됐어요.

박인규 : 부산에서 이른바 라이브 가수를 하시다가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를 발표하시게 된 건데 그건 어떻게 해서 발표하시게 된 거예요?

최백호 : 제가 써놨던, 가사라고 써놓은 건 아니고. 노래를, 앨범을 만들어야 되는데... 노래할 때 하수영씨라고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를 부르신 선배가 부산에서 같은 클럽에서 노래했어요. 하수영씨가 서울에 와서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가 알려지면서 저를 레코드사에 연결시켜 준 거죠

박인규 : 말하자면 가요계로 이끈 분은 하수영씨군요.
32년간 직업이 가수... 가수활동을 하셨는데 만족하십니까?

최백호 : 32년... 저는 아직 만족, 그런 것보다 직업이니까 항상 노래를 하고, 직업으로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다른 건 없는데 제가 생각하기엔 아직 제 전성기는 멀었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전성기는 오지 않았다. 요즘 어디 언론보도를 보니까 해방 직후 나왔던 전통가요에 관심이 있다. 이건 요즘 말하는 트로트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최백호 : 요즘 막 흔하게 나오는 그런 트로트가 아니고 해방 이후의 트로트들이 굉장히 뭐랄까

박인규 : '가거라 삼팔선아'라든가 예를 들면 그런 노래 말씀하시는 겁니까?

최백호 : 굉장히 격이 높았어요. 짝사랑 같은 노래들, 가사들이나 이런 게 박시춘 선생님 이런 분들이 곡을 쓰신 건데,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 그런 노래들은 음악적으로도 굉장히 수준이 있는 노래들인데 지금 가요들이 그때 가요보다

박인규 : 그 당시의 시대적 감성이나 진실을 전달하는 데 좀 떨어진다.

최백호 : 네. 그런 옛날 신파적인 그런 거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어릴 때 보던 이수일과 심순애, 그런 형태의 가요를 한 번 만들어 볼까. 어떤 면에선 낭만에 대하여도 그런 음악입니다.

▲ ⓒ프레시안

박인규 :
말하자면 40대에 낭만에 대하여라는 40대의 감성을 보여주는 노래를 만드셨는데, 지금 50대가 되셨는데 해방 직후의 시대적 감성을 담은, 그 정신을 담은 새로운 노래를 만드실 계획이시군요.

최백호 : 어떤 특별한 의미는 없고 우린 항상 그야 말로 꺼리를 찾아야 되니까, 찾아야 되니까. 그림 그리는 분들이 소재를 찾듯이, 특별한 건 아닙니다.

박인규 : 아직 전성기가 오지 않았다고 하시는 걸 보니 아직 50대를 대표하는 곡은 나온 게 아니군요.

최백호 : 네. 제가 20대 때보다 훨씬 40대에 좋은 노래를 만들었거든요. 50대나 60대 가면 훨씬 더 좋은 노래를 만들지 않겠나

박인규 : 하긴 약간 다른 얘기긴 합니다만 최인훈이라는 '광장'을 쓰신 작가... 그 분의 '회색인'이라는 책을 보면 그 당시 이른바 고급예술들이 해방 직후의 유행가보다도 못하다. 오히려 그 당시 유행가가 더 사람들의 느낌을 훨씬 더 전해준다, 그런 말씀을 하신 게 기억이 나요.

최백호 : 현실적으로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면 그 시대에는 시인들이 많이 참여했어요. 가사나 이런걸 쓸 때는, 그 이후로는 그게 일본사람들은 그게 죽 지금도, 시인들이 많이 가사를 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상한, 양반 어떤

박인규 : 대중문화와 고급문화가 갈린 거군요. 요즘 와서는

최백호 : 예. 고급이라고 별로 할 수 없는데도 자신이 고급화시켜서 참여를 안 하는 것 때문에 그러는데 요즘은 많이 참여하시는 것 같아요.

박인규 : 문제는 이렇게 대중들의 느낌이나 한을 전달하는 노래가 요즘 경제적으로 사실은 좀 대가를 못 받고 있어서. 어떻습니까? 디지털음원, 해적판 같은 걸로 굉장히 고생들이 많으시다는데 이 부분에 대해선 어떻게 보세요?

최백호 : 저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노래들은 틀림없이 팔립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CD를 통해서든 온라인을 통해서든 팔리니까 좋은 노래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안 팔린다고 자꾸 울고 앉아있는 것보다는 더 열심히 해서 좋은 노래를 만들면. 제가 제 자랑입니다만 '낭만에 대하여'라는 노래가 30만 장이 넘게 팔렸어요. 그 시대에 중년 가수들의 시장은 다 죽었다 했어요. 그런데 시장이 틀림없이 살아 있습니다. 지금도 저는 살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대중들의 마음을 사면 음반도 팔린다, 걱정하지 말아라.
최백호씨께서는 노래뿐만 아니라 화가에도 관심이 있으시다던데요

최백호 : 화가는 아니고 원래는 그림을 그렸어요 어릴 때부터. 그래서 그림을 지금도 그리고 있는데, 제가 와이프한테 항상 얘기해요. 화실이 없어서 그림을 적극적으로 못 그린다. 하하하

박인규 : 아직 전성기가 오지 않으셨다고 하니까, 앞으로 계획이 많으실 것 같아요. 앞으로의 계획을 마지막으로

최백호 : 별 다른 계획은 없습니다. 열심히 노래하고 좋은 노래를 항상 만들어야겠다는 의식을 딱 가지고 가수활동을 하고 있으니까 별 흔들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박인규 : 하여튼 50대의 감성을 잘 보여줄 수 있는 노래를 부탁드리고요, 계속 전성기가 올 때까지 노력해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최백호 :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낭만가객 최백호씨를 초대해, 그의 가수생활 30여년을 되돌아보고 우리 시대 진정한 낭만의 의미에 대해 얘기 나눴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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