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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3구 '묻지마 지지' 준비 끝, "누가 땅값 올려주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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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강남3구 '묻지마 지지' 준비 끝, "누가 땅값 올려주겠나?"

[르포] "文, 집값-안보 우려" VS "朴, 국격 수준 걱정"

지난 2010년 6.2 지방선거, 당시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였던 한명숙 전 총리는 웃다 울었다. 자정 무렵까지 앞서가다 막판에 역전을 당해 0.6%포인트 차이로 눈물의 패배를 맛봤다. '강남 3구'인 서울 강남, 서초, 송파구 개표기가 결함으로 새벽녘에서야 정상 가동된 탓이다. '자고 일어나니' 당선자가 바뀐 상황을 보며 국민들은 강남 3구의 위력을 실감했다. 한동안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선 '한명숙'과 '강남 3구'가 연관검색어에 지정될 정도였다.

나경원 전 의원도 강남 3구 때문에 쓴맛을 봤다. 지난해 10.26 보궐선거 당시, 나 전 의원은 박원순 현 서울시장에 대해 패배를 인정하며 "강남 3구 투표율이 예상보다 낮았다"며 패인을 분석했다. 투표율이 6.2 지방선거에 비해 6~10%포인트 가량 낮았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을 웃고 울린 강남 3구. 하루 앞으로 다가온 18대 대선에서 강남 3구는 여전히 '핫스팟'이 될 전망이다. 이번 대선은 근래 들어 처음으로 보수-진보의 일 대 일 구도가 펼쳐지는 만큼, 각 세력의 결집력이야말로 중요 변수다. 전형적인 여당 강세 지역인 강남 3구의 결집력은 보수 결집력의 한 징표이기도 하다.

강남 3구 표심의 향방을 가늠하기 위해 17일 강남 3구, 그 안에서도 '금싸라기'로 꼽히는 아파트 단지 네 곳을 찾아 일대를 돌며 여론을 수집했다. 기자가 찾은 곳은 강남구 압구정동, 서초구 서초동, 서초구 반포동, 송파구 잠실동에 위치한 아파트다.

조사 결과, 40대 이상에서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몰표'를 받았다. 반면 20~30대에서는 답이 갈렸다. 오히려 문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힌 응답자가 많았다. 또 박 후보 지지자가 대부분인 50대 이상 유권자들은 '적극적 투표' 의지를 밝힌 반면, 문 후보 지지자가 상대적으로 다수인 20~30대 유권자들은 투표 참여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편집자주.

▲ 강남구 일대 전경 ⓒ연합뉴스

"왜 박근혜 지지하냐고? 다 알면서…"

이날 만난 40대 이상 유권자 17명 가운데 문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힌 이는 단 두 명. 나머지는 박 후보 지지자였다. 작은 표본임을 고려해도 몰표에 가까운 수치. 박 후보 지지자들에게 지지 이유를 묻자 재밌는 답변이 나온다. "에이 다 알면서 뭘 물어봐?" 입을 맞춘 듯 첫 마디가 똑같다.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고 부탁했지만 이들은 하나같이 "새삼스럽다", "'이쪽'은 이미 다 정해져 있다"고만 말할 뿐, 명쾌한 답변을 피했다. 기자로선 답답할 노릇. 한 40대 남성이 답답해하는 기자가 불쌍했는지 말을 걸었다. "왜긴 왜겠어요, 집값이잖아요"

압구정의 한 아파트 인근에서 커피숍을 운영하는 이 남성은 "나이 있으신 손님들은 대부분 박근혜를 지지한다. 민주당 후보가 되면 집값 떨어질까 봐 조마조마해한다. 다들 무슨 일이 있더라도 투표할 것 같은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날 만난 50대 이상 유권자 가운데 유일하게 문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힌 한 여성은 "다른 것도 그렇지만 부동산 문제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는 식"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번에 보면 두 후보 다 부동산 공약은 별 다를 바가 없는데도 논리적으로 따져 보지도 않고, 새누리당이 땅값을 올려줄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잠실에 사는데, 여기 주민들 부동산 집착이 장난이 아니다. 강남 못지 않다"고 밝혔다.

잠실에 위치한 한 부동산업체 매니저 박모 씨는 "(강남 3구 주민들이) 땅값에 예민한 이유는 참여정부 시기에 강남 3구에 투기과열지구 지정된 게 컸다"며 "작년에 해제 발표나고 다시 오름세를 기대하는데 그나마도 요새 주춤이다. 이런 판국에 민주당 정권이 집권하면 다시 떨어질 지도 모르니 반대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난해 국토부에서 (투기과열지구) 해제하려는 것을 민주당이 반대하니 주민들 눈이 도끼눈이 됐었다"고 덧붙였다.

▲ 8일 오후 3시 경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유세하는 박근혜 후보 ⓒ연합뉴스

"이북 출신의 손자 문재인, 결국 '빨갱이'"

강남 3구 주민들이 땅값에만 열을 올리는 건 아니었다. 박 후보 지지자들은, 특히 20~30대 젊은 층에선 안보 문제를 주 선호 이유로 들었다.

압구정의 아파트에서 만난 20대 후반의 한 남성은 자신을 '유학파'라고 소개했다. 이 남성은 "제가 유학파다 보니 주변에 유학생 출신이 많은데, 대부분 박근혜 지지"라면서 "문 후보는 할아버지가 이북 출신이니까 빨갱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동네 사람들은 '종북 좌파'를 싫어한다"고 덧붙였다.

이 아파트 단지에서 또 만난 20대 남매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이들은 "여기 아파트 주민들은 다 민주당을 싫어한다"고 말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바로 "종북 좌파 아닌가. 안보를 어떻게 맡기겠는가"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종북 좌파'에 대한 우려감은 중장년층에서도 빠지지 않았다. 잠실의 아파트에서 만난 60대 남성과 40대 여성은 '전교조' 문제도 거론했다. 60대 남성은 "어제 토론(3차 TV토론) 보니 결국 문재인 후보도 빨갛더라"며 "전교조랑 친한 걸 부인하지 않았는데, 그렇다면 빨갱이 교육을 시키겠다는 건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부동산, 종북 문제 등을 제외하고, '대외적 위기 대응'의 필요성을 들며 새누리당 집권을 주장하는 이도 있었다. 잠실에서 만난 30대 초반 남성은 "정권 교체가 되면 아무래도 실무진 교체가 되면서 정책적으로 혼선이 많을 것"이라며 "당장 내년 세계 경제 위기가 심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데, 정권이 교체되면 우리나라가 이에 대응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문 후보는 개인적으로는 TV 토론을 봤을 때 식견도 상당한 수준이고, 변호사 출신이라 언변도 훌륭하지만 지금은 후보 개인이 아니라 당을 봐야할 때"라고 덧붙였다.

▲ 문재인 민주통합당후보가 12일 충북 청주시 성안길에서 열린 유세에서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2030 "나보다 멍청한 朴, 절대 안 돼"

기자가 만난 20~30대 유권자 18명 중 문 후보 지지 의사를 밝힌 이는 11명, 박 후보 지지를 밝힌 이가 7명이었다. 문 후보가 조금 앞서는 수치지만, 두 후보가 강남 3구 젊은 층의 표심을 사이좋게 나눠 갖는 형국으로 보아도 무방한 차이다.

사이좋게 지지를 나눠 갖듯, 조사에 응한 강남 3구의 2030 세대 각 지지자들은 서로 사이좋게 '돌직구'도 던졌다. 박 후보 지지자들은 문 후보에게 '빨갱이', '종북 좌파'라며 거친 언사를 퍼부었고, 문 후보 지지자들도 박 후보에게 "멍청하다"며 비난을 쏟아냈다.

'강남권 랜드마크'로 꼽히는 반포 모 아파트 단지 안. 오후 산책을 즐기던 30대 부부에게 선호 후보를 물어보니 "박근혜"라고 답했다가 이내 웃으면서 "농담"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박근혜가 되면 큰일 난다"고 말했다. 이유를 묻자 "저보다 멍청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어떻게 하느냐"며 "토론 보는데 개그맨보다 더 웃기더라"고 맹비난했다.

20~30대 유권자 중 문 후보 지지자들은 '박근혜 불가' 이유로 '지식, 식견 부족'을 드는 경우가 많았다. 교대역 근처 서초 모 아파트 앞에서 만난 21살 여대생 두 명도 "어린 우리가 봐도 박 후보는 너무 아는 게 없더라"며 "(토론을 보니) 주변에서 다 알려주는 내용만 말하는 게 보였다"고 지적했다. 근방에서 만난 30대 남성 역시 "아무리 대통령이 혼자 하는 건 아니라지만, 국민이 답답해할 정도면 어떻게 (대통령을) 맡길 수 있겠느냐"며 "외국 정상들과 외교 대담은 어떻게 할 지 벌써 얼굴이 화끈거린다"고 말했다.

이들의 주장에는 거침이 없었다.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다시 '부모님의 후보 선호 경향'을 물었다. 대부분 "부모님은 박근혜 지지자"라고 밝혔다. 반포에서 만난 30대 부부는 "집안 대대로 보수 쪽 지지자고, 부모님도 같은 동네서 살지만 의견은 다르다"고 말했다. 같은 아파트에서 만난 또 다른 30대 부부는 "부모님 덕에 지금은 좋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지만, 아이들이 학교 다닐 즈음이면 제 돈으로 집을 장만할 것"이라며 "서민에 공감할 수 있는 후보가 돼야한다"고 말했다.

부모님도 모두 문 후보 지지자라고 밝힌 이들은 극소수로, 서초 아파트에서 만난 20대 자매는 "부모님이 (전라도) 광주 출신이라 그런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따지자면, 우리 아파트에서는 '왕따'나 다름없다. 부모님도 밖에서는 절대 정치 관련 얘기는 안 하시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 지난 16일 박근혜-문재인 두 후보는 대통령 선거 전 마지막 TV토론을 했다. ⓒ연합뉴스

文, 강남 3구에서 마(魔)의 40% 벽 넘으려면…

문 후보 측 한 관계자는 강남 3구 지지율 관련해 "박원순 시장 지지율 정도만 나와도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밝혔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강남 3구의 총 투표인단 수는 약 69만 명, 그 중 박 시장이 얻은 표는 총 29만 3883표로 42% 지지를 받았다. 강남 3구 주민 10명 중 4명은 박 시장을 뽑은 것이다. 한 전 총리가 오세훈 전 서울시장에게 패했던 6.2 지방 선거 당시 강남 3구 득표율은 38%이었다. 문 후보 측 관계자의 말과 박 시장, 한 전 총리의 경우를 종합했을 때, 이번 대선에서 문 후보의 승리 가능성을 가를 강남 3구 득표율은 40%로 볼 수 있다.

이날 기자가 자체 조사한 결과로는 40대 이상 17명, 20~30대 18명 총 35명 중 14명으로, 문 후보 지지율은 우연하게도 정확히 40%였다. 물론 주먹구구식 조사라 표본 수와 구성에 허점이 있지만 20~30대에서 문 후보 지지층이 얕지 않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문제는 투표율이다. 박 후보에 '몰표'를 던질 것으로 예상되는 50대 이상 유권자들은 투표 참여 여부에 "당연히", "무조건"이라며 참여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20~30대 유권자 가운데는 지지 후보가 있다 하더라도 투표 참여에 대해선 "그때 봐서 결정하겠다"고 밝힌 이들이 많았다. '보수대결집'은 있어도 '진보대결집'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

이제 딱 하루 남았다. 문 후보는 이 하루 사이에 강남 3구의 젊은 유권자들을 투표장으로 이끌 유인 기제를 던질 수 있을까. 문 후보가 마의 40% 벽을 뚫고 웃을 수 있는 마지막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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