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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쉬모어와 크레이지호스 메모리얼을 지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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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쉬모어와 크레이지호스 메모리얼을 지나며

[최창남의 '흐르는 강물처럼'] <3> 신성한 땅, 블랙 힐스(Black Hills)

배드랜즈(Badlands)를 벗어나자 하늘에 구름 몇 조각 흩어져 한가롭다. 끝이 없을 것 같이 깊게 푸르고 맑기만 한 하늘이다. 메마르고 황량한 땅이었기 때문일까. 배드랜즈의 하늘에는 구름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그곳을 찾는 이들에게 희망을 준 마른 풀들이고 소나무들이라 할지라도 그들만으로는 구름을 만들고 비를 만들기는 어려웠겠지. 증산작용을 활발히 하기는 어려웠겠지. 메마른 땅에서 살아가는 풀과 나무들이니 대기 중으로 토해낼 물도 변변치 않았겠지.

멀리 신성한 땅, 검은 언덕 블랙 힐스(Black Hills)가 있는 곳으로 보이는 하늘에 구름 가득하다. 신성한 땅에서 자라고 있는 수많은 나무들이 토해낸 수분들이 하늘에 올라 구름이 되었겠지.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다시 신성한 땅을 적시며 넓고 깊은 호수를 만들었겠지. 수많은 생명이 몸 기대어 살아갈 수 있는 깊고 아름다운 숲을 만들었겠지. 아주 오래 전 이 땅의 주인이었던 수(Sioux)족의 언어를 굳이 빌지 않더라도 블랙 힐스는 메마르고 황량한 이 땅에서 신성한 땅일 수밖에 없었으리라. 오직 이 땅만이 높은 산봉우리와 깊은 계곡과 울창한 숲, 맑은 물을 지니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수많은 야생동물들과 생명들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 되었으니 말이다.
▲ Blackhills로 가는 길도 황량하다.ⓒ최창남

지금은 관광 명소로만 알려진 신성한 땅, 그 땅의 관문인 래피드 시티(Rapid City)로 향한다. 아니 래피드 시티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향해 오른다. 자동차는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버팔로(Buffalo)들과 말들을 뒤로 남기며 하늘로 오른다. 길은 하늘을 향해 나 있다. 길은 하늘에 닿아 있는데도 나는 땅에 머물러 있다. 땅에 머물러 하늘을 향해 나아간다.

간간이 보이는 나무들이 외롭다. 그 나무들 사이로 작은 내들이 흐른다. 소나무들 온 몸 비틀어 꿈틀거리며 자라 있다. 나무들 제법 들어선 곳에는 작은 마을들이 형성되어 있다. 하늘로만 치달리던 길이 땅으로 내려오고 있다. 그 길의 끝에 신성한 땅 블랙 힐스 국립공원(Black Hills National Forest)이 있었다. 15세기 콜롬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후로 약 400여 년간 계속된 백인들과 인디언들과의 전쟁에서도 인디언들이 마지막까지 목숨처럼 지켜왔던 신성한 땅이 거기 그림처럼 놓여 있었다. 수(Sioux)족 등 용맹한 부족들의 굳센 저항으로 오랜 전쟁에도 불구하고 백인들이 빼앗지 못하였던 땅이 거기 있었다.
▲ Blackhills에는 숲이 있었다(사진:Grand Teton으로 가는 길)ⓒ최창남

1868년 백인들과 인디언들은 조약을 맺었다. 서부로 가는 백인들의 안전을 인디언들이 보장하는 대신 블랙 힐스를 온전한 인디언의 땅으로 인정하고 침범하지 않는 것이었다. 물론 이 조약은 애석하게도 지켜지지 않았다. 블랙 힐스에서 금이 발견되었다는 소문은 그 조약을 순식간에 휴지 조각으로 만들었다. 처음부터 지켜지기 어려운 조약이었다. 수많은 인디언들의 피와 백인들의 피가 함께 묻혀 있는 땅이 거기 있었다.

블랙 힐스의 숲길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무더운 여름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숲은 서늘하고 고요하고 깊었다. 숲을 지나는 바람은 부드러웠다. 피 흘렸던, 불과 100여 년 전의 이야기들을 모두 잊은 듯 말이 없었다. 리틀 빅혼(Little Bighorn)의 전투에서 전멸 당한 커스터(Custer) 장군의 부대가 흘린 피를 모두 잊은 듯 말없이 지나는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백인들과의 전쟁에서 단 한 차례도 패한 적이 없는 인디언들의 영웅이었던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가 흘린 피도 잊은 듯 숲을 지나는 바람은 그저 흘린 땀을 씻어줄 뿐이다. 부족민의 배신으로 휴전 중 백인군인에 의해 암살당한 크레이지 호스의 가슴 아픈 죽음도 잊은 듯 흐르는 냇물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올 뿐이다. 나무들은 곧게 하늘을 향해 나란히 뻗었고 길은 그 사이를 지나고 있다. 고요한 숲이다. 100여 년 전의 이야기들이 들려오는 듯하다.

바람 서성이며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채 듣기도 전에 자동차는 러쉬모어(Rushmore National Memorial Park)에 도착하였다. 미국의 역사가 담겨 있는 곳이다. 미국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미국의 정신이 담겨 있는 곳이다.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남북전쟁를 승리로 이끌고 흑인 노예제를 혁파한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파나마 운하 구축 등으로 미국의 지위를 세계적으로 올려놓은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velt) 등 4명의 대통령 초상이 산정의 거대한 바위에 새겨져있는 곳이다.
▲ Rushmore National Memorial Parkⓒ최창남

장관이다. 얼굴 하나의 크기만 해도 60피트나 되고 파낸 암석 조각만 해도 총 50만 톤이 넘는다니 얼마나 대단한 작업이었는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런 거대한 얼굴 조각이 바위산 꼭대기에 나란히 네 개가 새겨져 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나도 다른 관광객들에 묻혀 보란 듯이 사진을 찍었다.

왜 이 곳에 미국 대통령들의 얼굴을 새겼을까.
왜 인디언들의 신성한 땅 블랙 힐스에 굳이 미국의 정신을 새겨 넣었을까.
왜 인디언 한 사람의 목에 수백 달러의 포상금을 내걸었던 에이브러햄 링컨의 얼굴을 굳이 이곳에 새겨 넣었을까.

한 때 400만-500만에 달하던 인디언(Native American)들이 30만-40만 밖에 남지 않을 정도로 자신들을 학살한 백인 대통령의 모습을 보며 인디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만일 우리나라를 지배하던 일본의 무력이 지속되어 나라는 결국 없어지고 땅은 빼앗겨 북한산 인수봉에서 일본 천황들의 얼굴이 새겨진 것을 보게 되었다면 내 기분은 어떠했을까.

이런 저런 생각들에 쫒기며 크레이지 호스 메모리얼(Crazy Horse Memorial)로 향했다. 244번 도로에서 16번 도로로 접어들었다. 그 길의 끝 산 정산에 크레이지 호스의 거대한 얼굴상이 있었다. 1947년부터 조각이 시작되었으나 아직 얼굴부분만이 완성된 이 조형물의 크기는 상상을 불허한다.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의 이 조형물은 높이는 563피트이고, 길이는 641피트이며 내어 뻗은 팔 길이만 263피트이다. 말의 얼굴 크기만 해도 22층 높이의 빌딩크기이라니 상상하기 어려운 크기이다.

블랙 힐스에 인디언 한 사람의 목에 수 백 달러의 포상금을 걸어 인디언 몰살정책을 폈던 링컨 대통령과 위대한 추장 크레이지 호스의 상이 나란히 새겨지는 것을 보면서 짓궂은 역사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 크레이지 호스 메모리얼(Crazy Horse Memorial)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 폴란드 출신의 조각가 Korczak과 그의 가족이 조각하고 있는 Crazy Horse의 조형물ⓒ최창남

그러나 이 메모리얼은 크레이지 호스 메모리얼이라기보다는 폴란드 출신의 조각가인 Korczak의 메모리얼에 가까웠다. Korczak의 작업일지와 작업실, 작업 도구 등만이 요란하게 전시되어 있을 뿐이었다. 인디언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것은 약간의 유물과 그림들, 그리고 관광객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파는 물건들과 책 몇 권뿐이었다.

더구나 크레이지 호스의 정신을 만나고 느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백인들이 신성한 땅 블랙 힐스를 팔라고 했을 때 '땅은 우리의 어머니인데 어찌 어머니를 팔 수 있느냐'고 말했다는 그의 정신은 찾을 길이 없었다. 자연을 파괴하는 백인들을 향해 자연을 정복하려 하지 말고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라고 충고했다는 크레이지 호스의 정신을 만날 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자신의 메모리얼 한 쪽에 서 있는 크레이지 호스 조각 모형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나는 위대한 추장에게 다가섰다. 조각 모형의 아래에는 '네 땅이 어디 있느냐'는 백인 군인의 질문에 대답한 크레이지 호스의 대답이 새겨져 있었다.

"Where is my land?
My land are where my dead lies buried."

걷기도 힘들 정도로 무더운 날이었다.
크레이지 호스가 장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산정을 바라보며 나는 쓸쓸했다.
바람이 불어 왔다.
▲ Crazy Horse memorial 안에 있는 Crazy Horse의 조형물ⓒ최창남

* 블랙 힐스 내셔널 파크 *

블랙 힐스에는 가 볼 만한 관광지가 많다. 이렇게 한 곳에 몰려 있는 곳도 드물 것이다.
미국의 정신이 새겨져 있는 러쉬모어 국립공원(Mount Rushmore National Park), 세계에서 가장 큰 기념비가 서 있는 크레이지 호스 기념관(Crazy Horse Memorial), 동굴 벽을 따라 방해석이 마치 보석처럼 매달려 있는 주얼 케이브 내셔널 모뉴먼트(Jewel Cave National Monument), 미국에서 가장 많은 들소를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커스터 주립공원(Custer State Park), 끝없이 동굴이 이어지는 윈드 케이브 국립공원(Wind Cave National Park), 협곡과 봉우리로 이루어진 배드랜즈 국립공원 (Badlands National Park) 등이 그것이다. 이 외에도 리틀 빅혼(Little Bighron) 전적지나 금광의 중심지였던 리드(Lead)나 데드우드(Dead Wood) 등을 들리는 것도 흥미롭다.

그러나, 블랙 힐스의 깊은 숲을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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