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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가 보낸 트로이 목마?

[기자의 눈] '경계인' 김하중이 주목되는 까닭

한나라당은 김하중 통일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 김대중 전 대통령이 보낸 '트로이 목마'가 아닐까 의심하는 모양이다. 10일 국회에서 열린 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는 한나라당의 그런 우려가 짙게 깔려 있었다.

김용갑 의원은 "김하중 후보자는 우리와 여러 부분에서 생각이 다르다"라고 규정하고, 햇볕정책, 인도적 지원, 남북간 합의 이행 등에 대한 김 후보자의 소신을 집요하게 캐물었다. 한나라당의 다른 의원들도 과거 10년의 대북정책이 '문제가 있었다'라는 답변이 나왔으면 하는 질문을 던지며 그를 몰아세웠다.
▲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답변하는 김하중 통일부 장관 후보자 ⓒ연합뉴스

DJ적인 소신

김하중 후보자의 이력을 보면 한나라당이 그런 의심을 품는 데에도 일리가 있다. 그는 주중 공사 시절이던 1994년 김대중 당시 아태평화재단 이사장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의전을 맡은 것이 인연이 되어 김대중 정부 초대 의전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으로 유명하다.

그 후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에도 직접 관여해 평양에 간 DJ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했고, 그 해 8월부터 1년여 동안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냈다. 그리고 불과 열흘 전까지 6년 반 동안 중국 대사를 역임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을 가장 가깝게 지켜보고, 입안하고, 시행했던 인물인 것이다.

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발언에도 그런 이력에서 나온 소신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햇볕정책은 남북관계를 촉진시키고 교류를 확대한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라거나 "인도적 대북 지원과 국군포로·납북자 및 북한 인권문제를 연계하긴 어렵다"라는 게 대표적인 사례였다.

김하중 후보자는 "한미동맹 강화가 남북관계에 도움이 되고, 남북관계가 잘 되는 게 한미동맹에도 좋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다분히 DJ적인 논법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미동맹 강화를 모든 문제의 출발로 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작년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베이징 올림픽 공동응원단 파견 문제에 대해 "합의가 된 것이기 때문에 가능한 빨리 이뤄지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공동응원단은 경의선을 타고 중국으로 가게 되어 있다. 따라서 김 후보자의 말대로라면 경의선 개보수도 빠른 시일 내에 추진하겠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역시 돈이 많이 드는 남북 합의는 재검토하겠다는 현 정부의 정책과 결이 다르다.

35년 직업 외교관의 관록

여기까지만 보자면 DJ가 보낸 트로이 목마가 맞을 수 있다. 그렇다면 한나라당 의원들은 김 후보자를 '부적격'으로 판정해야 자신들의 이념에 부합한다.

하지만 김하중 후보자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한나라당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포용정책의 긍정성을 평가하는 동시에,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적극적으로 해석·평가함으로써 사상 최초로 여당이 장관 후보자를 거부하는 사태를 막은 것이다.

"비핵·개방·3000 구상은 앞으로 남북관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 핵심 전략이며 민족의 여망인 통일의 과정을 앞당기기 위한 정책이다."

"햇볕정책이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남북관계를 추진하는 방법이나, 속도, 폭, 국민들의 공감을 얻는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인도적 지원이라는 것이 규모가 적당하면 인도적 측면에서 고려해서 할 수 있겠지만 규모가 크면 북핵 상황, 남북관계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결정해야 한다."


다른 건 몰라도 비핵·개방·3000에 관한 평가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그 구상은 북한의 비핵화를 전제하고 있는데 이명박 정부 5년 안에 비핵화가 이뤄질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또한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을 10년 안에 3000달러로 만든다는 건 매우 비현실적이다. 골드만삭스는 북한 비핵화 뒤 이 구상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남한 GDP의 절반 정도를 북한에 퍼부어야 한다고 평가한 적이 있다. 퍼주기도 이런 퍼주기가 없다.

그런 현실을 모를 리 없는 김하중 후보자가 비핵·개방·3000에 대해 '남북관계의 새 지평을 열고 통일을 앞당기는 정책'이라고 평가하는 것을 보니 그는 과연 35년 경력의 베테랑 외교관이었다. 아니면 대단히 긍정적인 사고의 소유자이거나.

그처럼 능란한 논리 전개를 통해 김하중 후보자는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여야 의원들의 마음을 두루 어루만질 수 있었다. 통외통위가 인사청문회 사상 처음으로 의원들의 질의 도중에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채택키로 한 걸 보면 그 만족감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다.

'경계인' 김하중

하지만 인사청문회에서 보여준 그의 모습에 대해 '이중적'이라거나 '장관 자리가 좋긴 좋은 모양이다'라는 냉소를 보내기에는 조금 이르다. 취임 후 실제로 어떤 정책을 펴는지를 지켜본 뒤에 평가를 하는 게 상식이기 때문이다.

주목되는 점은 김하중 후보자가 오랜 중국 대사 경험을 바탕으로 한반도 문제에 대한 균형적인 관점과 해법을 갖고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대북정책을 추진하는데 있어 중국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괜찮은 자산이다. 또한 대사 시절 탈북자 문제를 비교적 매끄럽게 처리하는 수완을 보이기도 했는데 그 역시도 나쁘지 않은 노하우가 될 것이다.

특히 김 후보자가 대북 포용정책을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의 특수한 정책으로 해석하지 않는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그는 청문회에서 "역대 정부는 정권을 창출하면 한반도 평화통일 구현을 최대 목표로 삼았다"라며 "그 과정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햇볕정책, 노무현 대통령은 평화번영정책을 말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그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가지고 있는 비현실성을 어느 정도 교정하고, 노태우 정부 이후의 대북정책을 관통하는 보편성을 추구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하지만 김 후보자는 장관 내정자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이 대통령이 통일부를 과연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과거 정부에서 대북정책의 핵심이었던 인물이, 외교부 전성시대에 외교부 출신의 통일부 장관으로, 통일부를 없애려 했던 이명박 대통령 밑에서 일해야 하는 '경계인' 김하중. 그의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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