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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사태 해결의 숨은 주역 스페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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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사태 해결의 숨은 주역 스페인어

김영길의 '남미리포트' <305> 미주대륙서 힘 못쓰는 영어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언어는 무엇일까. 대다수가 얼핏 영어라고 생각할 것이다. 천만의 말씀이다. 현재 아메리카 대륙에서 통용되는 대표적인 10여 가지 이상의 언어 중 가장 많이 쓰는 언어는 단연 스페인어다.

아메리카 대륙 34개국 국가 중 30여 개국이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미주대륙에서 스페인어의 위상을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

다소 장황하게 미주대륙에서 스페인어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것은 지난 주말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콜롬비아 사태을 해결했던 열쇠는 다름아닌 스페인어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서다.

20개국의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여 7시간이 넘게 주고받은 설전에서 영어와 포르투갈어(룰라 브라질 대통령은 이 정상회담에 참석하지도 않았다)는 비집고 들어갈 틈조차 없었다.

이런 분위기는 지난주 초 워싱턴에서 열린 미주기구 긴급 총회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의 안방인 워싱턴인데도 불구하고 회의장 분위기상 영어가 스페인어에 밀려 찬밥신세를 면치 못했던 것이다. 그것은 미국의 전폭적인 콜롬비아 지지선언에도 불구하고 에콰도르와 베네수엘라는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

자칫 전쟁의 소용돌이가 몰아 칠 뻔했던 콜롬비아 사태의 해결은 분쟁의 이해 당사국들이 모두 한 언어인 스페인어를 사용한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결과였다는 얘기다. 서로 의사소통이 자유로운 이들은 각 국가별로 통역없이 할 말은 똑 부러지게 한 후 상호 요구사항을 제시함으로써 쉽게 합의를 도출해냈다. 리우그룹의 모든 정상들이 같은 언어인 스페인어를 사용한다는 장점이 이번에도 빛을 발한 것이다.
▲ 스페인어의 위력을 다시 한번 보여준 리우그룹 정상들 ⓒ아르헨티나 대통령궁

스페인어의 잔치가 된 리우그룹 정상회담

지난 7일 도미니카공화국의 수도 산토도밍고에서 개최된 리우그룹 정상회담에서는 테러와의 전쟁이 화두로 등장했다. 콜롬비아의 알바로 우리베 대통령은 테러조직 제거를 위한 작전의 불가피성을 집중적으로 설파, 자국 지상군의 에콰도르 국경 침범을 정당화시키려고 노력했다.

이에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은 "당신들이 테러리스트들이라고 정의한 좌파정부의 정상들이 여기에 모두 모여있다. 당신들의 논리대로라면 콜롬비아 정부군은 이곳(산토도밍고)을 폭격해야 될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도 "미국 정부와 언론들은 나를 향해 코카인 밀매자라고 몰아세웠다. 그러다 9.11사태가 터지자 그들은 나를 향해 테러리스트라고 하더라. 하지만 나는 지금 볼리비아를 대표한 대통령으로 이 자리에 와있다. 당신들이 테러리스트라고 규정하는 정확한 기준이 뭐냐"고 가세했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우리베 콜롬비아 대통령을 향해 "콜롬비아 무장혁명군을 테러리스트라고 일방적으로 몰아세울 것이 아니라 이들을 협상테이블로 이끌어내는 아량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차베스는 콜롬비아 정부가 무장 혁명군을 재정적으로 지원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나는 그들을 지원한 사실이 전혀 없으며 앞으로 지원할 생각도 없다"고 잘라 말하기도 했다.

차베스는 이어 콜롬비아 무장혁명군이 인질을 잡고 있는 최종적인 목적은 콜롬비아 정부와 미국에 포로로 잡혀있는 무장혁명군들과의 맞교환이라는 사실을 상기 시키며 인도적인 차원에서 인질들과 포로들의 맞교환을 추진하라고 압력을 가했다.

우리베 콜롬비아 대통령은 "당신들이 사회주의의 향수에 젖어 나에게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지난 40여 년간 좌익세력인 테러리스트들에게 당한 콜롬비아 국민들을 생각한다면 어떻게 나를 이렇게 일방적으로 몰아붙일 수 있느냐"며 언성을 높였다.

우리베 대통령의 이 발언은 중남미 좌파정부 정상들을 자극했다. 미국을 비롯한 우파정부가 세계 각 곳에서 자행하는 테러는 정당한 것이냐고 따진 것이다.

회담장 분위기가 경직되자 아르헨티나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츠네르 대통령이 마이크를 잡고 "여자들은 조그마한 사건에도 아주 쉽게 뚜껑이 열려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인다. 그런데 오늘 보니 남자들도 별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는 농담을 건 낸 후 "당신들이 진정한 정치인들이고 신사들이라면 여자들과 다른 면을 보여주라"고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

순간 회담장은 사방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고 우레와 같은 박수의 물결이 일었다. 분위기가 확 바뀐 것이다.

크리스티나 아르헨티나 대통령의 농담성 발언에 만면에 미소를 띤 차베스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이번 사태를 결말짓자. 만일 우리베 대통령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에콰도르 국경에서 취득한 습득물들을 우리에게 인계 한다면 화해할 용의가 있다"고 한발 물러섰다.

이때 리우그룹 정상회담의 의장이자 도미니카공화국의 레오넬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우리베 대통령을 향해 긴급제안을 하기에 이른다. "우리베 대통령이 형제 국가들인 에콰도르와 베네수엘라와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지금 자리에서 일어나 차베스 대통령이 제안한 요구를 받아들이고 서로 악수를 나눔으로써 분쟁에 맞춤 표를 찍자"고 한 것이다.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과 다니엘 오르테가 니콰라과 대통령도 "우리베 대통령이 화해의 제스처를 보여준다면 우리가 취한 모든 조치를 기꺼이 백지화시킬 용의가 있다"고 선언한다.

리우 정상회담 참석자들은 뜨거운 박수로 우리베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했다. 일그러진 표정으로 한참 동안 고민에 싸여있던 우리베 대통령은 벌떡 일어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하며 화해의 포옹을 나누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중남미를 뜨겁게 달구었던 군사적인 분쟁이 종지부를 찍은 순간이었다.

중남미 정상들의 리우그룹 정상회담을 지켜보면서 영어에만 올인하고 있는 것 같은 한국의 이명박 정부도 자원외교를 고려한다면 한번쯤은 천연자원의 보고 중남미의 공식언어인 스페인어의 중요성도 깊이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필자만의 바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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