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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치사한 훈이 아빠"

[TV와 수다] "훈이 아빠, 그러면 안 돼요"

훈이가 학교에서 돌아왔네요. 무슨 일인지 골이 잔뜩 나 있습니다. "훈아, 왜 그러니?" 훈이 아빠가 다정하게 물었어요. "아빠, 시안이가 아빠는 부도덕한 사람이래요." 훈이 아빠는 어떻게 했을까요?

'돈 부자' 훈이 아빠의 꿍꿍이

요즘 훈이 아빠는 참 억울하다. 가난하고 헐벗은 마을 사람들을 먹여 살린게 다 누군데, 그 공은 어디 개밥에 던져버리고 잘못했다, 잘못했다 비난만 하고 있으니. 오로지 '마을 사람들의 찬란한 앞날'을 위해 이 한 몸 희생했건만, 왜 나를 비난하는가! 이런 '편리한' 사고방식 속에 회사는 순이익만 10조를 내고(그것도 전파상만) 훈이 아빠는 추정 불가능한 재산을 가지고 있으며 지금은 몇 백 억대 '용돈'을 받는 '훈이'에게 회사를 야금야금 넘겨주고 있다는 사실은 슬그머니 제쳐둔다.
▲ 삼성전자가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테마로 내보내고 있는 기업 이미지 광고. 삼성은 '훈이네 가족'이라는 설정으로 소비자들에게 '훈훈한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삼성전자

자기 '이익'을 위해 돈 버는 행위를 마을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 굳게 믿고 있는 훈이 아빠에게 시안이 아빠라는 촌 동네 선생이 계속 시비를 건다.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훈이 아빠 공화국의 그늘'이라는 가판을 마련해놓질 않나,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모를 운임 문제를 괜히 파헤치질 않나, 얼씨구, 이제는 아예 대놓고 <훈이 아빠 왕국의 게릴라들>이라는 책까지 펴내네.

뭐, 그동안은 봐줬다. 나 같이 세련된 코스모폴리탄이 촌 동네 선생과 싸운다는 건 격이 맞지 않으니까. 하지만 점점 상황이 나빠졌다. 철이 아빠의 내부고발 이후, 온 마을 사람들이 나에게 손가락질 한다. 게다가 하필 온 마을을 충격에 빠뜨린 시냇가 기름유출 사태도 내 회사에 원인이 있단다. 마을 사람들이 특별 수사대를 꾸리더니 비밀창고에 사저까지 압수수색한다. 이거 참, 이젠 나도 참을 수 없다. '감히, 누가 나를 건드려! 본때를 보여주자!' 겨레 아빠는 광고를 빼고, 시안이 아빠는 고소를 하자. 나는 시안이 아빠, 당신이 무서워서 그러는 게 아니다. 그냥 나를 건드리면 다쳐, 살고 싶으면 내 말대로 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을 뿐이다. 안 통해도 상관없다. 온 마을에 훈이 아빠는 '억울한 피해자'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만 해도 성공이니까.

삼성의 노골적 이미지 '공세'

프레시안이 삼성전자에게 고소를 당했다. 외견상으로는 게임이 안 된다. 연매출 96조에 직원 수 8만 5천 명의 삼성전자가 독자들의 십시일반 후원을 받고 있는 기자 수 15명의 프레시안을 고소했으니, '다윗과 골리앗'이라는 상투적 표현이 이만큼 잘 어울리는 모양새도 없다. '돈 부자' 삼성이 '겨우' 10억 받으려 고소했다고 생각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럼, 삼성은 왜 프레시안을 고소했을까. 그에 대한 '합리적' 분석과 비판이 많이 나오고 있으니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브랜드 가치'가 훼손되었다며 피해자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삼성의 태도는 굉장히 낯이 익다.

삼성은 항상 이런 식이다. '무지몽매한' 사람들이 자기들 말은 다 믿어줄 거라는 철석같은 믿음 속에 너무 뻔뻔한 '이미지 공세'를 선보인다. 시간을 많이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다. 최근 TV 광고 몇 개만 봐도 그 노골성에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이니.

작년 10월 29일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의혹 폭로 이후 11월 초부터 기민하게 TV에 대량으로 뿌린 '고맙습니다, 삼성' 광고 3부작을 보자. 두바이 사막에 세계 최고층 건물을 세우고, 프리미어리그 첼시 구단 유니폼에 삼성 로고를 수놓고, 뉴욕의 심장 타임스퀘어에 삼성의 이름을 걸었다고 자랑한다. 이 모든 건 다 세계인의 가슴에 한국을 심고 한국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단다. 이 모든 게 다 누구 덕?

삼성은 "고맙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라고 공손하게 말하지만, "고맙습니다"의 배치가 이상하다. "뉴욕의 심장 타임스퀘어에 이름을 걸었다. 하지만 그곳에 세운 건 우리의 자존심이었다. 고맙습니다." 사실, 삼성은 당신들이 우리에게 고맙다 말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고까운 마음이었을 테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까지 비자금도 모으고 세금도 탈루한 건, 이 모든 '애국적이고 민족적 행위를 위한 희생'이었음을 보여주고 싶었을 거다. 그래서일까. "여러분의 믿음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는 '우리가 이렇게 된 건 다 당신들을 위해섭니다'라는 정중한 물귀신 작전으로도 보인다.

11월 초부터 전파를 탄 삼성중공업 광고도 마찬가지다. "어부에게 바다는 생활. 연인에겐 낭만. 아이들에겐 놀이터. 삼성중공업에게 바다는 가능성. 기회의 땅, 바다를 가져라." 이거야 원, 우리가 이렇게 '기회의 땅'을 열심히 '개척'하다 보니 돈도 좀 숨겨두고 그런 거 아니겠냐며 너스레를 떠는 기분이다. (하지만 이 광고는 예상치 못한 '사태'와 맞물려 최악의 결과를 초래했다. 하필 광고가 나가고 있을 때 태안 기름유출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낯 뜨거움은 삼성전자의 '애니밴드' 광고에서 절정에 이른다. 이 광고는 '말하고 놀고 사랑할(talk play love)' 자유가 없는 '회색도시'를 해방하는 음악'전사'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삼성만큼 'talk'의 자유를 빼앗는 능력이 뛰어난 곳도 없다. 시사저널 사태부터 한겨레신문, 경향신문에 대한 광고 압박, 프레시안에 대한 고소 등등,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말하면 끝도 없을 것이다. 이런 삼성이 '말하고 놀고 사랑할' 자유가 없는 세상의 해방을 천연덕스럽게 주장한다. 이건 뭐, 웃으라는 건지.

삼성의 자충수

삼성의 이런 이미지 '조작'이 통하던 때도 있었다. 아직도 괜히 삼성을 건드리면 한국이 망할 거라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그동안 꾸준히 삼성의 이익이 곧 국익이라는 이미지를 '은밀하게' 심어온 가열한 노력의 결실이다. 그런데 이번에 삼성은 너무 노골적이었다. 이미지 공세는 은근함을 통해 사람들 무의식 속에 신뢰를 심을 때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하지만 비자금 폭로 직후 등장한 '고맙습니다, 삼성' 캠페인 광고의 의도 따위 너무 쉽게 알아챌 수 있다. 그 결과, 삼성의 거듭된 이미지 광고에도 여론은 삼성에 동정적으로 돌아서지 않았다. 오히려 더 악화됐다. 인터넷 상에는 '고맙습니다, 삼성'과 삼성 중공업 광고의 패러디, 그리고 그 뻔뻔함에 대한 비판이 가득하다. 이 광고들은 악화된 여론에 기름을 붓는 꼴이었을 뿐이다.

삼성은 이걸 알아야 한다. 이미지 공세도 구린 데가 없어야 통하는 법이다. 백 번 양보해도, '눈에 띄게' 구린 데가 없을 때나 가능하다. 부당한 방법으로 경영권을 승계하고 비자금으로 나라 전체를 손아귀에 쥐어 '삼성공화국'을 만들려 한 행태가 만방에 공개된 상황에서 이미지 조작 따위에 속을 바보는 없다. 게다가 잘못했으면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하고 개선의 의지를 보이는 게 인간의 도리다. 이것저것 계산하며 '미안하다' 말 한 마디를 그렇게 회피하다 등 떠밀려 사과하는 모습을 보면 사람들은 그동안 있던 정과 믿음마저 떼버릴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프레시안에 대한 고소 또한 삼성이 놓은 자충수다. 돈 많은 삼성의 목적이 10억 원이 아님을 모를 사람은 없다. 언론 하나 없애는 건 일도 아닌 삼성의 강력한 힘을 보여주려는 실력행사 혹은 이미지 공세임을 누가 모르겠는가. 악화된 삼성에 대한 이미지를 반전하기 위해서는 진심어린 사과는 물론이요, "투명하고 건실한 기업경영"을 위한 비전을 제시하고 "적극적인 사회공헌 활동"을 '정말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도 꽤 오랫동안. 광고를 통한 '눈속임' 따위가 아니라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프레시안을 희생양 삼아 시도하는 힘의 과시 혹은 피해자 이미지 구축이 도대체 무슨 도움이 될까 싶다. 이대로는 영원히 조롱에서 벗어날 수 없다.
▲ 삼성 기업광고 '또하나의 가족' 시리즈에 등장하는 훈이 아빠. ⓒ삼성전자

훈이 아빠는 훈이에게 "젠장, 밟아 버려!"라고 가르칩니다. 훈이 아빠, 아이에게 꼭 그렇게 가르쳐야 속이 시원하겠어요. 훈이 보기 부끄럽지도 않으세요? 마을 사람들의 손가락질이 점점 더 거세지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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