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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복원, 기한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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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숭례문 복원, 기한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02/27] 중요무형문화재 대목장 전수교육 조교 김영성씨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 우리나라 국보 1호이자, 600년 수도 서울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숭례문이 불에 타 사라진 지 어느덧 보름이 지났습니다. 애도하는 마음으로 숭례문을 찾는 국민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고 무엇보다 소실된 문화유산을 원형대로 복원하기 위한 전문가들의 기초 조사작업과 복원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데요 이런 가운데 대목장 전수교육 조교인 김영성씨는 무엇보다 도끼와 톱 등 옛날에 사용했던 연장들로 복원공사를 해야 숭례문의 온화한 느낌을 살릴 수 있다고 강조하는데요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중요무형문화재 대목장 전수교육 조교인 김영성씨와 함께 옛 연장의 중요성을 비롯해 숭례문 복원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점들을 짚어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중요무형문화재 대목장 전수교육 조교 김영성씨입니다. 김영성씨는 1957년 곡성 출생으로 77년 우리나라 중요무형문화재 대목장이었던 고 고택영 선생의 제자로 들어가.. 전남 순천 송광사 침계루의 보수공사를 하며 본격적으로 한국 전통건축 일을 배웠습니다. 이후 전북 완주군 화암사 극락전 해체보수공사를 비롯해 전주 객사와 충남 연기군 보림사.. 경남 진주시 용암서원과 경기도 용인시 법륜사 등의 보수와 신축 공사를 했습니다. 2000년 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 대목장 전수교육조교로 지정돼 현재 송광건축문화원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고 한국문화재 기능인 협회 이사와 한국 목구조 연구포럼 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이 인터뷰는 KBS방송총국을 연결해 이원방송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박인규 : 바쁘신데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영성 선생님은 30년 이상을 한국 고건축을 복원하는 일을 해오셨는데요 숭례문이 타는 걸 보시면서 참 안타까우셨겠어요.
  
  김영성 : 그렇습니다. 사고 당일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지만 안타까움과 비통한 심정을 어찌
  말로 표현하겠습니까?
  
  박인규 : 남대문, 숭례문이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이고 자그마치 61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데, 저도 그날 밤 TV중계를 보면서 의아스러웠던 것이, 서울 한 복판에 있는 건물이고 소방대원들이 200명 가까이 출동했는데 왜 저 불을 끄지못할까,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한옥건축물의 특별한 구조 때문에 그런 겁니까?
  
  김영성 : 그렇죠. 한옥건축물은 일반 건축물의 구조와는 다르죠.
  
  박인규 : 어떤 점이 다릅니까?
  
  김영성 : 매스컴에서 많이 나왔지만 두께랄지 또 강회라는 아주 두꺼운 벽을 만듭니다. 적심도 들어가고요. 그래서 일반 소방하시는 분들이 대하기는 좀 힘들 것으로 생각합니다.
  
  박인규 : 앞으로 무엇보다도 또 이런 사고가 일어나면 안 되겠지만 또 일어날 경우에 대비해서 뭔가 한옥건축에 대한 소방법 이런 것도 만들어야 될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지금 복원에 참여하기로 했는데요, 복원을 하게 되면 600년 전의 옛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요?
  
  김영성 : 찾을 수 있습니다.
  
  박인규 : 그건 어떤 측면에서 그렇게 자신할 수 있으십니까?
  
  김영성 : 제가 2006년도에 숭례문... 정밀실측할 때 두 번이나 다녀왔거든요. 정밀실측한 자료와 남아있는 유구가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우리나라의 중요 무형문화재, 훌륭하신 대목장이 세 분이나 계십니다. 이 분들이 합심하시고, 각 분야에 무형문화재 되신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래서 이제까지의 노하우와 기술을 발휘해 훌륭하게 복원 가능할 수 있습니다.
  
  박인규 : 우리의 기술로 원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매스컴에서 일부 논란이 되긴 했는데요 불이 나고 난 다음에 유구, 불에 타고 남은 부재들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버려졌어요. 그런데 복원할 때 유구들을 활용하는 게 좋으냐 아니냐, 이런 논란들이 많은데 김선생님 보시기에는 어느 쪽이 나은 겁니까?
  
  김영성 : 최대한 유구를 사용해야 되겠죠. 3분의 1만 남아도 사용할 수 있거든요. 지금은 많이 기술이 발전돼 있고 이 시대에 유구가 남아 있어야 저희들의 후손들이 그 유구를 봄으로 해서 600년 전의, 아니면 600년 후에 1200 년 전의 유구를 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박인규 : 3분의 1만 남아도 쓸 수 있다고 하셨는데 일반인들의 생각으로는 화재를 겪었는데 안정성이라든가 튼튼할 것인가 이런 걱정이 있는데 괜찮습니까?
  
  김영성 : 독일이나 일본 같은 데서도 필름 종류를 써서 강도를 높일 수 있는 재질이 많이 있거든요. 그래서 구체적인 건 저희보다 학자들이 연구한 자료가 많이 있습니다.
  
  박인규 : 그러니까 화재에서 살아남은 유구들은 가급적 활용하는 게 좋다. 지금 복구기간에 대해서 설왕설래가 많은데요, 처음에 문화재청에서 3년이면 가능하다고 했는데 일부에서는 졸속으로 할 것이 아니라 이왕 복원할 거면 제대로 하자고 하는데, 김선생님 보시기에 어느 정도 걸릴 것 같습니까? 복원 작업이
  
  김영성 : 제 생각에는, 제가 무형문화재 신분도 아니고 사실 대목장님들이 계시고 해서 제가 이런 말씀 드리기 죄송합니다만, 제 희망사항을 말씀드리자면 복구기간을 정하고 복구하시는 것보다 첫째 정밀조사를 세세히 꼼꼼히 해야 되거든요. 그 시대의 재료와, 복원하시려면 유구를 조사해서 그 시대에 썼던 연장, 또 그 시대에 썼던 여러 가지 목재라든지 기와, 이런 걸 다 조사해서. 일본 같은 데를 외국의 예를 들어 죄송합니다만 그런 데는 하나에 10년 이상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도 좀 그런 걸 시기를 정하지 말고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박인규 : 기한을 정하지 말고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만들어 보자. 그런데 아까 정밀실측에 참여하셨다고 하셨는데요, 정밀실측도가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드는데 정밀조사해야 될 게 또 많이 있습니까 지금도?
  
  김영성 : 정밀실측을 제가 참석한 게 아니고 답사를 갔거든요. 그런데 정밀실축이라는 건 길이와 높이, 이런 실측이고 더 세밀조사에 들어가면 그 유구에 썼던 연장, 그 연장이 예를 들어 도끼질을 하면 목재가 탁탁 떨어져 나가는 날의 깊이와 넓이가 있거든요. 이런 것도 조사하셔야 되고. 또 그때는 지금 미터법이 통일돼서 미터법으로 통일하시지만 미터법으로 안 맞습니다. 그때 자를 사용하셔서 자로 조사하시고, 그 다음에 수종이라든지 이런 걸 또 조사하고 맞춤과 이음이 있거든요. 이 건물은 고려 말 때 기법이 남아 있고 조선 초가 이어져 있는 건물이거든요. 그래서 그런 세밀한 조사를 해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박인규 : 모든 걸 1398년, 숭례문 창건 당시와 똑같이 하는 게 좋겠다고 하셨는데요, 우선 많은 분들이 복원기간과 관련해서, 복원에 필요한 나무, 소나무를 확보하기도 쉽지 않다고 말씀하세요. 어떻게 보십니까?
  
  김영성 : 물론 소나무 확보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숭례문은 다른 근정전 같은 큰 부재가 적고, 그 다음 문이기 때문에 부재가 좀 적거든요.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제 생각은 금강송보다는 느티나무가 굉장히 좋거든요. 느티나무를 활용해서 쓰면 지금 국보나 보물 중에 느티나무가 굉장히 많이 쓰였습니다. 기둥도 서있고 대들보도 서있고.
  
  박인규 : 저희는 주로 소나무인 줄 알았더니 느티나무를 쓰는군요.
  
  김영성 : 느티나무를 쓰다가 후에 소나무로, 느티나무가 귀하니까 그렇게 됐던 게 지금 금강송만 쓰는 줄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느티나무를 굉장히 산에 많이 심으면 나중에 우리가 쓰고 후손한테 물려주면 후손들하넽 외화벌이도 됩니다.
  
  박인규 : 숭례문이 근정전보다는 큰 나무가 많이 필요하지 않다고 하시지만, 그래도 대들보 같은 경우는 적어도 지름이 1미터 돼야 한다고 하던데요. 국내에 그런 느티나무가 있을까요?
  
  김영성 : 그렇긴 합니다. 대밭 같은 데 속에서 하나 둘 모아야겠죠. 그러다 보면 가능합니다.
  
  박인규 : 느티나무를 고려해볼 수도 있겠다.
  김영성 선생님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숭례문을 복원할 때 옛날에 쓰던 도끼나 톱이라든가 옛날 연장을 가급적 썼으면 좋겠다고 주장하고 계신데 이유는 뭡니까?
  
  김영성 : 문화재 보수는 원형보존이 원칙입니다. 원형을 보존해야 되는데 저희가 어찌됐든 이 시대에 잘못해서 소실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그 원형을 보존하려면 옛 도구부터 조사해 들어가야 됩니다. 그래야 지금 담금질이 잘 된 철도구를 사용하면 이 시대 건물이 되지 않겠습니까. 옛 건물을 그대로 도구를 써야 거기의 맛과 멋, 온화한 기분 이런 모든 게 잘 되거든요. 그런데 지금의 발전된 도구를 쓰다 보면 옛 멋이 사라지지 않을까 염려스러워서 그랬습니다.
  
  박인규 : 실제로 김선생님도 옛 건물의 복원공사에 많이 참여하셨는데 그 경우에도 옛날 연장을 쓴 경우가 많습니까?
  
  김영성 : 그렇죠. 지금 움집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옛날 원시인들 살던 집이요. 그 움집에서도 저희가 하나 복원해 놨습니다만 도끼만 사용합니다. 그때는 톱이 없었거든요 그 시대에는. 도끼만 가지고 마무리든 뭐든 도끼로 모든 걸 끝내죠.
  
  박인규 : 그런데 조선 초기에 쓰던 연장들이 지금도 다 남아 있습니까?
  
  김영성 : 현재 학자님들이 충북대 계신 분하고 목원대 교수님들이 계신데 그 분들은 목재 수종을 연대측정을 합니다. 그걸 하면 600년 전에 있었던 목재하고 그 후에 중수했던 목재가 구분됩니다. 그러면 그때 했던 600년 전의 목재 유구를 조사하면 그때 연장의 날과 두께와 떨어져나가는 부분이 다 조사되거든요. 그렇게 하고, 후에 중수했던 부재는 또 그 부재를 조사하면 되거든요. 이제 600년 전의 걸로 할 거나 아니면 중수했던 나중 걸 할 거냐, 그건 학자님들이 연구할 문제겠죠.
  
  박인규 : 600년 전의 부재를 잘 조사해 보면 그 당시 연장의 모양이나 크기를 알아낼 수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김선생님의 주장에 대해서 대목장 선생님들은 혹시 어떤 반응을 보이십니까?
  
  김영성 : 지금 그렇게 하시려고 연구를 하고 계시겠죠.
  
  박인규 : 이번에 느낀 것이, 숭례문 같은 경우는 말하자면 화재 예방, 화재 방지를 위한 하다못해 스프링클러도 없었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복원을 하면서 불이 날 경우를 대비해서 화재 방지술 같은 걸 하는 방법은 고려할 수 없을까요?
  
  김영성 : 그건 첫째는 조심해야 될 거고 두 번째는 인위적인 방재시설을 할 수밖에 없거든요. 이번에도 기와 위에서 물을 주는 것보다는 밑에서 위로 뿜어서 역순을 시켜야 되거든요. 안으로 들어가게. 그러면 집 지을 때 땅 속에다 집 근방에 물을 뿜어올릴 수 있게끔 그런 시설을 하면 좋을 것 같거든요.
  
  박인규 : 뿜어올린다는 건 숭례문 바깥에 스프링클러 같은 걸 설치한다는 말씀이신가요?
  
  김영성 : 그렇죠. 바깥에도 하고 숭례문 위 계단 위, 문루 위 계단에서 뿜어올리는 거죠.
  
  박인규 : 앞으로는 무엇보다도 그런 화재 방지시설을 철저히 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김영성 : 예. 그런데 문제는 1년에 한 번 정도는 실험을 가동해 봐야 되는데 보물, 국보 같은 건 목재기 때문에 물을 뿌릴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 않겠습니까.
  
  박인규 : 아까 문화재 복원을 말씀하시면서 일본 같은 경우는 시한을 안 두고 철저하게 원형복원에 애쓴다고 하셨는데 일본의 문화재 복원에 관해서 소개해 주실 만한 사례가 있습니까?
  
  김영성 : 저희가 배울 때 들어보면, 일본 쪽에는 문화재 보수를 대를 이어가면서 한답니다. 할아버지대, 아버지대, 손자까지. 미리 목재를 산에서 성장시키고요, 또 목재를 미리 좋은 목재가 있으면 베어다 놓고. 목재가 계속 살아있을 순 없거든요. 그럼 그게 기간이 되면 어느 정도는 베어서 저장해야 됩니다. 그래서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이라는 얘기가, 죽어서도 천 년을 버틸 수 있다는 얘기죠.
  
  박인규 : 우리나라에 비하면 훨씬 더 장기적인 안목으로 준비하고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네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그렇게 안 되는 건 왜 그럴까요? 아직 정부의 보조라든가 어려워서 그런가요?
  
  김영성 : 그런 점도 있지만 국민의 GNP가 한 2만 불쯤 올라가야 문화재에 눈을 뜨거든요. 최근에 많이 문화재에 대해서 관심도 많고. 이번에 숭례문을 보니까 제가 이렇게 국민들이 문화재에 대해서 뜨거운 열기가 있는 줄을 이번에 새삼 느꼈습니다. 앞으로 점점 좋아지겠지요.
  
  박인규 :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긴 합니다만. 이미 잃긴 했지만 그래도 차제에 문화재의 중요성을 좀 느끼면서 문화재 복원을 하신 분들이나 이런 데 대해서 우리가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알기로 한옥을 지으시는 분이 대목장, 소목장... 대목장은 집 짓는 분이고 소목장은 가구 만드시는 분으로 알고 있거든요. 그런데 전수교육조교라는 어떤 일을 하시는 겁니까?
  
  김영성 : 먼저 국민들이 알아야 할 지식을 약간 말씀드리면, 중요 무형문화재가 있고 무형문화재가 있습니다. 중요 무형문화재는 국가에서 지정한 겁니다. 문화재청에서. 그냥 중요가 빠진 무형문화재는 각 시,도, 지자체에서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전수교육조교가 있거든요. 전에는 중요 무형문화재를 인간문화재라고 했습니다. 인간문화재가, 인간이 어떻게 문화재가 되느냐 해서 중요 무형문화재로 바꿨거든요. 인간문화재 그 시대는 전수교육조교를 후보자...
  
  박인규 : 이수자, 그랬던 걸로 아는데요
  
  김영성 : 이수자는 그 밑에 급입니다. 후보자, 준문화재 그랬습니다. 그 명칭이 중요 무형문화재로 바뀌면서 전수교육조교가 된 겁니다.
  
  박인규 : 지금 하시는 일은 주로 후학들을 가르치시는 일입니까?
  
  김영성 : 후학도 가르치고 있고 저희들이 보수나 신축도 현장에서 가서 합니다.
  
  박인규 : 지금 고건축, 전통건축 일을 하시게 된 게 스무살 때부터인데 어떻게 일하시게 되신 거예요?
  
  김영성 : 저희 부친께서 집을 짓는 대목이셨거든요. 그 모습을 어려서 쭉 보다가 내가 이걸 한 번 해서 큰 대목이 한 번 돼야겠다는 뜻으로 입문했죠.
  
  박인규 : 아버님도 대목이신데 고 고택영 선생님 밑으로 들어가신 걸 보면, 그 분이 훨씬 훌륭하신 대목이셨나보죠?
  
  김영성 : 그렇죠. 인연이 그렇게 됐습니다.
  
  박인규 : 저희 프로그램에 신응수 선생님이 한 번 나오신 적이 있으세요. 현재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으신 대목장이 몇 분이나 되십니까?
  
  김영성 : 중요 무형문화재 대목장은 제 스승님인 고택영 선생님하고 신응수 선생님, 최기영 선생님하고 전흥수 선생님하고, 이렇게 네 분 계시다가 저희 선생님은 돌아가셨고, 현재 세 분이서 활동하고 계시죠.
  
  박인규 : 만약 숭례문을 복원한다고 하면 이 세 분이 다 참여해야 되는 겁니까, 그 중 한 분만 하시는 겁니까?
  
  김영성 : 그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서로 합심하셔서... 옛날에는 총도 편수라고 대목장이 계시고 그 밑에 편수가 있었거든요. 그런 방법도 있고 아니면 세 분이서 합심해서 하시는 방법도 있고, 그건 제자 입장에서 제가 말씀드리긴 난해합니다.
  
  박인규 : 김영성 선생님도 만일 숭례문을 복원하게 되면 참여하시게 되는 건가요? 아직 결정 안 된 거죠?
  
  김영성 : 아직 아니죠. 조사 상태에서 벌써 복원을 누가 한다 안 한다는 이야기는 빠를 것 같습니다.
  
  박인규 : 전수교육조교 분들은 말하자면 준문화재라고 말씀하셨는데 김선생님 포함해서 몇 분이나 되십니까?
  
  김영성 : 제가 있고요, 신응수 선생님 밑에 제자가 문기현씨라고 있고요. 이중구씨라고 세 분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박인규 : 많지 않으시군요. 신응수 선생님이나 최기영 선생님이나 전흥수 선생님도 연세가 많으실 것 같은데, 지금 한옥건축을 배우겠다고 오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까?
  
  김영성 : 그렇죠. 많이 있습니다. 저희 스승님도 92세에 세상을 뜨셨거든요. 2년 전에. 그런데 지금 대목장님들이 70세도 안 되신 분들이 세 분이셔서 왕성히 활동하고 계시니까 고령이라는 얘기는 당치 않죠.
  
  박인규 : 제가 약간 좀 실수했네요.
  
  김영성 : 그리고 4년제 대학을 졸업한 건축과 학생들이 저희들한테 다시 실기를 배우기 위해서 많이 옵니다. 좋은 현상이죠.
  
  박인규 : 지금 하고 계신 송광건축문화원은 송광사에 있는 겁니까?
  
  김영성 : 아닙니다.
  
  박인규 : 이건 김영성 선생님 혼자 하시는 겁니까?
  
  김영성 : 예.
  
  박인규 : 지금 제자가 몇 분이나 되세요?
  
  김영성 : 저희가 계속 꾸준히 하는 사람도 있고 중간에 어느 정도 배워서 나간 사람도 있거든요. 그래도 한 7,8명 있습니다.
  
  박인규 :
  대목장이 되려면 어떤 교육을 받아야 됩니까?
  
  김영성 : 그게 좀 어렵거든요. 도제식 교육으로서 도면 보기와 실제 체험하는 과정으로 10년 이상 꾸준히 배워야 할 장기적인 배움입니다. 10년을 배워도 눈을 뜰까말까 하겠죠.
  
  박인규 : 요즘 보면 각 지역별로 산중에 한옥건축학교 같은 것도 세우고 하던데요, 대목장이 되고 싶은 젊은이들도 꽤 있는 것 같아요. 대목장이 되려면 그래도 나름대로 재능이 있어야 될 것 같은데 어떤 사람들이 대목장에 잘 맞습니까?
  
  김영성 : 저희 스승님이 평소 저희들에게 말씀하기를 목수는 돈 벌려는 생각은 버리고 상양문에 이름 석 자 남기는 걸 명예롭게 생각하라고 항상 말씀하셨거든요. 그렇다 보면 섬세하고 재능도 있어야 되지만 심성이 고와야 됩니다. 마음, 심성이 고와야. 항상 내가 내 집을 짓는다는 생각을 갖고 지어야 되겠죠.
  
  박인규 : 아까 말씀하시면서 일본 같은 경우는 몇 대에 이어서 전통문화재를 복원하는 일을 한다는데 우리 같은 경우는 중요 무형문화재라 하더라도 국가적인 지원이나 뒷받침이 좀 약하지 않느냐는 얘기들이 많은 것 같아요. 어떻게 보세요?
  
  김영성 : 문화재를 하는 사람들은 돈과 명예를 같이 소유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어느 한쪽은 기울게 돼 있거든요. 사람으로 태어나서 발자취를 남길 수 있는 일이 문화재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굶지 않고 하루 세 끼 밥만 잘 먹으면 됐지 무슨 큰 돈이 필요하겠습니깍?
  
  박인규 : 그렇더라도 생활에 걱정이 없어야 뭔가 한 가지 일에만 전념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김영성 : 국가에서도 많이 지원해 주고 있습니다.
  
  박인규 : 사회적인 지원시스템에 대해서는 크게 부족함이 없다.
  
  김영성 : 괜찮습니다. 그 정도 가지면 되고, 명예와 돈을 다 가지려고 하면 좀 힘들겠죠.
  
  박인규 : 지금 숭례문에 관해서는 기초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앞으로 이게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을 거쳐야 될까요?
  
  김영성 : 제 생각에는 문화재 복원을 너무 성급하게 하기보다는 차분하게 연구하고 분석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서 작업에 임해야 되거든요.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공사 기간과 금액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될 수 있으면 옛 건물을 복원하는 개념으로 그렇게 해야 되겠죠.
  
  박인규 : 혹시 김영성 선생님은 불 난 뒤에 서울에 올라오셔서 숭례문 탄 모습을 보셨습니까?
  
  김영성 : 예. 가봤습니다.
  
  박인규 : 어떤 느낌이 드시던가요?
  
  김영성 : 저희가 건물 하나 지을 때 어떤 마음으로 짓느냐 하면... 차후에 이 건물이 문화재가 돼서 우리 후손들이 보수할 때, 국가에서 문화재로 지정해서 국가에서 보수해주는 방향으로, 그런 생각까지 갖고 신축하거든요. 그런데 이 시대에 우리가 잘못해서 굉장히 좋고 훌륭한 문화재를 하나 소실했다는 것은 문화재에 관계된 모든 분들이 참 비통할 일이죠.
  
  박인규 : 지금 보면 말이죠, 우리나라 전통건축이 대개 한옥 아닙니까? 숭례문뿐만 아니라 지방에 있는 많은 고찰, 사찰들도 사실 화재 위험이 크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 혹시 그 부분과 관련해서 우리가 지금이라도 화재 예방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까?
  
  김영성 : 지금 저희들이 생각할 때는 지방에 있는 곳은 길이 너무 험하고,
  
  박인규 : 하긴 소방차도 들어가기 힘들죠.
  
  김영성 : 예. 그런 여러 가지가 있어야 되는데 또 그렇게 하다 보면 자연파괴가 많이 되거든요. 이런 게 저런 게 엄청 많이 그런데, 그래서 산중에 골짜기 쪽에다 방화수조를 좀 만들어서 그걸 활용해서 쓰는 방향도 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고. 그리고 소방학교나 문화재에 관계되신 분들과 같이 손을 맞잡고 교육을 해야 됩니다 학교에서. 그래서 이제는 복원에 대해서 많이 공부하셨지만 이제는 관리하고 손질하는 방법도 많이 연구하시고 공부해야 되겠죠.
  
  박인규 : 이제는 복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어떻게 지킬 것인가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우리가 신경을 많이 써야 되겠군요. 이번 숭례문 같은 경우는 사실 숭례문을 국만에게 돌려주겠다, 개방을 해서 일어난 사건이었어요. 물론 어떤 몰지각하신 분의 방화로 타버리고 말았는데, 저희가 물론 체제가 잘 돼 있었으면 이것이 소실되지는 않았겠죠. 그런 것과 관련해서 우리나라의 문화재 관리, 복원 이런 부분 관련해서 우리나라의 국민들이나 정부에 당부하시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마지막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김영성 : 그 문제는 제가 지금 여기에서 말씀드리기는 좀 그렇고, 워낙 좋으신 유명하신 분들이 많이 연구도 하시고 했으니까, 서로 이제는 각 부서에서 따로따로 관리하는 것보다는 니꺼 내꺼 없이 전부 한 사람의 문화재라는 생각을 가족 그렇게 했으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많이 아프더라구요.
  
  박인규 : 600년 전통의 숭례문이 하룻밤 만에 타버리고 말았습니다. 3년 내 복원이다 5년 내 복원이다 그런 말이 많습니다만, 진짜 김영성 선생님 말처럼 정밀조사와 준비를 거쳐서 원형의 모습을 갖는 숭례문 복원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김영성 : 예.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KBS광주방송총국을 연결해 중요무형문화재 대목장 전수교육조교인 김영성씨와 함께 옛 연장의 중요성을 비롯해, 숭례문 복구에 있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점들을 짚어봤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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