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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뒤에도 월드컵을 무료로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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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뒤에도 월드컵을 무료로 볼 수 있을까

[TV와 수다] 지상파 독점권 인정했지만…한미FTA는?

2018년, 어딘가의 월드컵 8강. 한국은 승승장구하며 2002년 월드컵 4강을 재연할 기세다. 하지만 축구팬 A씨는 걱정이 태산이다. '오늘은 어디에서 중계를 보나.' 월드컵 중계권을 유료 스포츠 방송 코리아 스포츠에서 독점 구매하는 바람에 집에서 중계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월 29800원을 내야하는 코리아 스포츠는 A씨에게 과분하다. 새벽 경기라 술집에서 단체관람 하기도 곤란하고 예선전 내내 찾았던 친구 B 집을 다시 찾기에는 너무 미안하다. 결국, A씨는 김빠진 경기 결과 뉴스를 보기로 하고 잠을 청한다.

'보편적 접근권'

지난 19일, 정부는 국무회의를 열어 방송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번 개정안에는 월드컵, 올림픽 등의 사회 관심행사 중계 규제가 포함되어 있다. 이제 월드컵, 올림픽 중계는 일반 국민 10가구 중 9가구 이상이 시청할 수 있는 방송수단을 통해서만 송출할 수 있다. 사실상 지상파 방송사에 중계권이 제한된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A씨는 당분간 월드컵 중계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 2006 독일 월드컵 축구대회 개막 3일차인 11일 오후 서울시청 부근에 주차된 KBS 방송국 중계차량의 외형에 월드컵 방송과 관련된 광고로 디자인 되어 있다.ⓒ뉴시스

이번 개정안은 '보편적 접근권(universal access)'을 반영한 결과이다. 국민적 관심사를 계급적, 지역적, 정치적 차별 없이 누구나 무료 혹은 싼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보편적 접근권이라 한다. 추상적 개념인 '국민적 관심사'의 기준이 무엇이냐는 문제제기가 있을 수 있다. 이를 판단하는 기준은 시청률이 아니다. 여전히 추상적인 부분이 있지만, 대체로 국가 정체성과 관련 있거나 국가적, 문화적 통합을 이룰 수 있는 매개가 되는 것을 국민적 관심사라 규정한다. 월드컵, 올림픽 중계가 대표적 사례이다.

한국에서 보편적 접근권에 대한 논의가 촉발된 것은 스포츠 중계권을 둘러싼 방송사간 과열경쟁 때문이다. 특히, 2006년 2월 축구 아시안컵 예선 한국 대 시리아 경기 중계를 케이블 채널 '엑스포츠'에서 독점 중계하자(이 중계는 당시 역대 케이블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 지상파 방송 3사는 '보편적 접근권 침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곧이어 SBS에서 2010년부터 2016년까지 동하계 올림픽과 2010년, 2014년 월드컵 중계권을 막대한 금액에 독점 계약하자, 이번에는 MBC, KBS가 보편적 접근권 침해라며 SBS를 비난했다. 이번 방송법 개정안은 이런 일련의 논란을 거치며 만들어졌다.

보편적 접근권 논란

TV를 보는 입장에서야 보편적 접근권 확보는 좋은 일이지만, 지상파를 제외한 방송사업자에게 보편적 접근권은 '규제'일 뿐이다. 그래서 시장주의자들은 보편적 접근권에 기반한 중계권 제한을 자유로운 시장경쟁을 막는다며 비판한다. 특히, 뉴미디어의 활성화로 지상파를 포함한 매체 간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보편적 접근권은 지상파 방송사의 독과점 허용에 다름 아니라 주장하기도 한다.

이런 논란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영국, 독일 등 공영방송의 개념이 명확한 국가에서는 보편적 접근권을 강력하게 시행하고 있다. 특히, 영국의 경우 축구, 경마, 럭비, 윔블던 테니스 대회 결승 등은 인구 95% 이상이 시청 가능한 무료 지상파 방송 의무중계를 법적으로 명시한다. 이에 반해 미국, 일본에서는 공정한 시장경쟁에 반한다는 이유로 보편적 접근권을 제도적으로 규제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1977년 법원이 보편적 시청권 규제를 무효화한 후 철저한 시장경쟁에 기반한 스포츠 중계가 이루어지고 있다.

국민 70% 이상이 가입한 케이블 방송을 보편적 접근권 부여에서 제외하는 것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호주의 경우만 해도 인구 50% 이상이 시청 가능한 모든 방송에 보편적 접근권을 적용한다. 뉴미디어 방송이 지상파 방송사 프로그램의 '재탕'에만 그치지 않고 점점 자생력을 확보해가는 현재의 미디어 환경에서, 언제까지 지상파 방송사의 독점적 지위를 인정해야 하는가는 중요한 문제제기다.

실제로, 지상파 방송사들의 행동은 보편적 접근권을 빌미로 '시청률 잘 나오는' 스포츠 중계를 독점한다는 의심을 하게 만든다. 지상파 방송3사는 자사의 상업적 이익 확보를 위해 주요 스포츠 경기 중계권 협상 때마다 '진흙탕 싸움'을 벌여왔다. SBS의 중계권 싹쓸이를 비롯해, '중계권료 거품'의 시작이었던 MBC의 2001년 메이저리그 독점 중계권 계약이나, 2006년 WBC 4강전 독점 중계를 위해 KBS가 MBC, SBS를 상대로 방송정지 가처분 신청을 낸 것은 중계권을 둘러싼 방송사들 사이 이전투구의 대표적 사례이다. 이처럼 '국민의 볼 권리'를 수단으로 자사의 상업적 이익을 추구하는 상황에서 보편적 접근권 운운은 설득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

보편적 접근권과 함께 진짜 '공공성'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상파를 통한 보편적 접근권 확보는 시청자의 포기할 수 없는 권리이다. 유료인데다 지역 케이블 중개권자에 따라 채널이 수시로 바뀌는 케이블 방송과 무료에(수신료가 포함되지만) 안정적으로 방송되는 지상파 방송사 간에는 분명 메울 수 없는 간격이 있다. 특히, 보편적 접근권을 포기한 채 상업방송 시스템이 방송 시장을 완전히 장악한 미국을 보면 그 간격이 좀 더 분명해진다. 시청한 프로그램 수만큼 지불하는 페이 퍼뷰(pay-per-view)가 발달한 미국 스포츠 중계의 경우, 축구 한 게임을 보기 위해 2만 원 이상을 지불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보편적 접근권이 시장경쟁 논리에 밀려 제 역할을 못할 경우, 10년, 20년 뒤 월드컵을 집에서 무료로 시청하지 못하는 상황이 오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다. 그러니 보편적 접근권은 단순히 '국민적 관심사 중계여부'의 개별 사안이 아닌, 시장 논리에 맞서는 '방송의 공공성 보장'이라는 큰 틀에서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 즉, 논의의 초점을 '중계'가 아닌 방송의 '공공성'에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지상파 방송 3사는 보편적 접근권에 대한 사실상의 독점권을 부여받은 만큼, 그에 맞는 공공성 강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대규모 스포츠 중계로 얻은 수익을 공익 프로그램 강화, 방송 기반 시설 확충 등에 투자할 때만,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보편적 접근권에 대한 '의심과 논란'을 떨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정부 차원에서도 보편적 접근권을 보장한 만큼의 책임과 의무를 방송사에 강제할 필요가 있다. 공익 프로그램 편성 비율, 시청률과 무관한 사회 관심사의 공공 중계, 방송 프로그램의 다양성 확보 등을 통한 방송의 공공성 확대를 보장할 수 있는 철저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사실, 뒤늦게 마련된 보편적 접근권이 언제까지 보장될 수 있을지는 매우 불확실하다. 한미 FTA 방송분야 협상 결과는 PP(방송채널사용사업자)에 대한 외국인 간접투자 100% 허용 등을 통해 방송의 상업성 확대의 길을 열어놓은 반면, 방송 쿼터 축소를 비롯해 방송 공공성 부분에는 상당한 제약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 FTA가 비준되는 동시에 방송의 공공성에 대한 모든 논의는 시장경쟁 논리의 십자포화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1시간 방송시청에 20분을 광고 보는데 써야하고, 월드컵 생중계를 보기 위해 몇 만 원 이상을 지불해야 하는 악몽이 다가오고 있다. 그런 '암울한' 미래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방송의 공공성에 대한 좀 더 적극적이고 활발한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보편적 접근권의 법제화는 그 논의의 출발선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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