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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의 '민주화 일정'을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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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의 '민주화 일정'을 거부한다

[버마이야기] ⑪ 모순 가득한 군부의 발표

버마 군부가 최근 '민주화 일정'을 발표했다. 군부는 2010년 총선을 실시하고 그에 앞서 올해 5월 군부와 친(親) 군부 세력이 2007년 발표한 헌법의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했다.

외관상으로 보면 군부가 민주화를 하겠다고 언급한 것 같지만, 버마 민주화 세력들은 이번 발표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민주화 세력이 총선에서 이기더라도 군부가 정권을 이양하지 않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1988년 9월 18일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군부는 90년 총선거를 실시했다.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은 총선거에서 총 485개 의석 가운데 392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뒀지만 군부는 NLD에게 정권 이양을 거부하고 오히려 탄압에 나섰다.
▲ 1990년 총선 당시 NLD 단원들의 모습 ⓒwww.irrawady.org

이후 버마 시민들은 90년 총선 결과를 인정하라고 요구했으나, 군부는 아직까지도 거부하고 있다. 이번 발표 또한 90년 총선거 결과를 무시한 것이며, 2010년 선거에서 민주화 세력이 승리하더라도 군부가 정권 이양을 거부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둘째, 이번에 제안된 헌법은 90년 선출된 의원들 대부분과 야당들을 제외하고 군부가 독단적으로 제정한 헌법이며 군부가 계속 집권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조항들이 곳곳에 들어 있다.

헌법안에는 군인들이 최고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명시되어 있다. 헌법안에 따르면 군인 출신만이 대통령이 될 수 있으며, 국가 위급상황시 군대가 합법적으로 정권을 이양받을 수 있다. 또 국회 의석의 25%를 군인들이 자동으로 할당받게 되어 있다. 외국인과 결혼한 사람은 국가 권력에 개입할 수 없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아웅산 수치 여사를 제외시키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이다.

셋째, 이번 발표는 작년 9월 시위 이후 국내외 민주화 세력의 요구를 회피기 위한 수단이다.

그간 국내외 민주화 세력이 버마 군부에 요구한 것은 '민주화 세력과의 대화와 90년 총선 결과의 인정'이었다. 2010년에 총선을 새로 하겠다는 것은 민주화 세력의 요구를 거부한 것이다.

유엔을 비롯해 미국, 영국, 일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의 국가들 또한 군부의 이번 발표에 찬성하지 않고 있다. 이 나라들은 구체적인 선거 일정이 정해졌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헌법 제정 및 정치개혁 과정 전체에 모든 정당들의 참여하고, 모든 민족들의 의견 반영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버마 문제에 대해 말을 지나치게 아끼고 있는 한국 정부는 군부의 발표에 대해 지금까지 아무런 입장도 내지 않고 있다)
▲ 1990년 5월 27일 총선 날 NLD 본부 앞에 모인 시민들 ⓒwww.ncgub.net

넷째, 선거 날짜만 발표했을 뿐 선거의 참여 조건 같은 세부 사항과 일정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또한 다가오는 5월에 실시되는 국민투표에서 시민들이 군부가 제안한 헌법에 반대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민간 정부가 승리할 경우 언제 어떻게 정권을 이양할 것인지, 그리고 소수 민족들의 지방 자치권은 어떻게 인정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고 있다.
▲ 쿤툰우 의장 ⓒ<BBC> 홈페이지

다섯째, 버마 민주화 운동의 핵심적인 지도자 아웅산 수치 여사는 13년째 가택연금 중이고, 90년 선거 때 NLD에 이어 국민들의 지지를 받은 정당인 샨 민족민주동맹(SNLD, Shan Nationalities League for Democracy)의 의장 쿤툰우(Khun Tun Oo)는 2005년에 체포되어 93년형을 받고 현재 감옥에 투옥되어 있다. 작년 '샤프론 시위'에 참여한 88년 세대 대부분이 체포되어 현재 정치범의 숫자는 1800명 이상이다. 수배중인 정치가들도 많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투표를 5월에 실시하자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시민들은 생각한다. 군부가 제대로 된 선거를 실시할 생각이라면 시민들에게 투표의 자유를 보장해주고, 체포된 정치범을 풀어주어야 할 것이며, 국민들이 자유롭게 헌법에 대해 의견을 교환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할 것이다.

지금 시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5월 국민 투표와 2010년 선거가 아니다. 90년 선거 결과를 군부가 인정하고 군부와 민주화 세력 간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우선이다. 이것 없이 독단적으로 선거를 하겠다는 것은 군부 장기집권을 합법화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렇게 된다면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들의 희생은 계속될 것이다.

지난번 샤프론 혁명이 급작스런 유가 인상으로 시민들의 불만이 폭발해 시위로 이어졌듯 이번 선거 발표 역시 또 다른 샤프론 혁명으로 이어지지 않을지 조심스레 예측해 본다.

* 필자 마웅저(Maung Zaw) 씨는 버마 8888 항쟁 당시 고등학생으로 시위에 참가한 후 버마 민주화 운동에 투신해왔다. 1994년 군부의 탄압을 피해 버마를 탈출, 한국에 왔고 2000년 이후 현재까지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 위한 소송을 진행중이다. 버마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 결성에 참여했고, 현재는 한국 시민운동에 관심을 갖고 시민단체 '함께하는 시민행동'에서 인턴으로 활동 중이다. 블로그 <마웅저와 함께(http://withzaw.net)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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