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도종환 시인입니다. 도종환 시인은 1954년 충북 청주 출생으로 충북대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했고 충남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1984년 동인지 '분단시대'를 통해 등단해 그동안 『접시꽃 당신』『고두미마을에서』, 『해인으로 가는 길』 등의 시집과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등의 산문집을 출간했고 올해의 예술상과 거창평화인권문학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또,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됐다가 10년 만에 충북 진천 덕산중학교에서 교사생활을 재개해 교육문화활동에도 많은 힘을 쏟았습니다. 하지만, 2003년 '자율신경실조증'이라는 희귀병으로, 교단을 떠나게 됐고 최근.. 5년 동안의 산방생활을 정리한 산문집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를 출간했습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부이사장과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부회장을 역임했고 올해부터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습니다.
박인규 : 바쁘신데 자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도종환 : 글 쓰고 책 읽으면서 지냈습니다.
박인규 : 자율신경실조증이라는 병 때문에 산방생활에 들어가신 걸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요. 희귀병이라고도 하는데 다 나으신 겁니까?
도종환 : 예. 지금 괜찮습니다.
박인규 : 아주 좋아 보이십니다. 산방생활은 완전히 끝내신 거예요?
도종환 : 아직 집이 거기 있고요. 완전히 끝냈다기보다 집이 있으니까 글 쓸 땐 거기 가서 쓰고 일주일에 2,3일은 시골 산방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서 자율신경실조증이란 병이 어떤 병이고 어떻게 해서 그런 산속에 들어가시게 된 건지, 간단하게 좀 말씀해 주실 수 있어요?
도종환 : 실조라는 것이 영양실조 이런 것처럼 부족하고 균형이 안 맞는 건데요. 너무 한쪽 신경을 무리하게 많이 써서 교감신경, 부교감신경의 균형이 깨지고. 이렇게 의학적으론 얘기하는데요... 너무 지나치게 일을 많이 하고 신경을 많이 쓰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이럴 경우 스스로 몸을 지탱하는 신경의 균형이 깨져서 면역력이 떨어지고 잔병이 걸리면 낫지 않게 되고. 이렇게 현대인들이 지나치게 무리하게 많은 일을 하면서
박인규 : 어떻게 보면 마음의 병 같은 거네요?
도종환 : 마음의 병으로 시작하죠. 스트레스나 업무 과중으로 시작하는데 그것이 몸의 균형이 깨지는 형태로 나타나니까요. 그래서 구체적인 병으로 몸에 이상을 동반하니까 문제가 되는데, 저도 처음 이름을 들어봤던 거구요. 삶의 균형, 생활의 리듬을 다시 찾고 이렇게 하면 다시 몸의 균형도 되찾아지고 하는데, 늘 이 하는 일이 과중한 일들로 계속 이어지고 있으면 언제나 재발할 수 있는 거죠
박인규 : 어떻게 보면 쉬기 위해, 또는 병을 고치기 위해 속리산 근처의 산막으로 들어가신 건데 특별하게 치료를 안 하시고 숲속 생활로 나아진 겁니까?
도종환 : 처음엔 한약 이런 것도 먹었고요. 병원 다녀서는 낫질 않았기 때문에요. 그런데 주로 자연치유, 명상, 이런 것들을 배워서 매일 아침마다 명상을 하고. 또 아예 그동안은 아무 일을 하지 않고 아무 직업도 갖지 않고 자연치유, 자연이 주는 치유력 그 힘에 의존해서 다시 힘을 얻은 거죠.
박인규 : 처음 산방생활 시작하시면서 한글 정자체 쓰기. 저 어렸을 땐 습자라고 했는데 그거 하셨다고요. 왜 그걸 하시게 되셨어요?
도종환 : 할 일이 없으니까 했고요, 글씨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어요. 학교 다닐 땐 잘 쓴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언제부턴가 난필이 됐어요. 난필이라는 건 급하게 쓴다는 거고 빨리 막 휘갈겨 쓴다는 건데요, 마음이 쫓기니까 이렇게 되는 거죠. 어릴 때, 중학교 때까지도 글씨 잘 쓴다는 소리를 들었다가 왜 이렇게 됐을까? 그 생각을 하면서, 글 쓰는 사람이 글씨도 좀 잘 써야 된다, 이번 기회에 한 번 써보자. 이랬던 건데요, 사실 기본부터 다시 좀, 내 삶이 너무 많이 흐트러져 있어서 기본부터 되찾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있었고. 그리고 반듯하게 내려 그을 것은 내려 긋고 꺾을 것은 꺾어야 되고. 또 균형과 간격을 되찾아야 글자가 제 모양을 갖추는 건데 그걸 하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균형과 간격. 받침, 또 자음과 모음 사이의 균형과 간격을 되찾는 것이 글씨를 바르게 쓰는 일이거든요. 그런 생각, 내 삶의 균형이 깨진 이유가 이거였다는 생각과 이어지면서 그냥 아침에 앉아서 산속에서 혼자 가나다라부터 쓰기 시작했죠.
박인규 : 글씨를 바로잡으면서 몸과 마음도 바로잡게 된, 그렇게 말할 수 있겠네요.
도종환 : 그렇게 거창하게 너무 할 건 없겠지만 하여튼 그냥 쓰고 싶었어요.
박인규 : 아직도 그럼 하십니까?
도종환 : 지금은 안 합니다.
박인규 : 5년 동안 산방생활을 하시면서 책을 내셨습니다.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그 전에는 보니까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라는 책도 쓰셨는데. 많은 분들이 5년 동안 산방생활 하시면서 도종환 시인의 화두가 꽃에서 숲으로 간 것 같다는 말씀도 하세요. 숲에서 살아보시니 어떻습니까?
도종환 : 제가 이 책에서 얘기하는 숲이라는 것이요, 제가 숲에 오기 전의 삶은 나무가 하나도 없는 곳에 사는 삶. 즉 나무가 하나도 없는 곳을 사막이라고 하잖아요. 사막과 같은 목마르고 답답하고 힘들고 쫓기고 이런 도시생활이었다는 생각을 해요. 일은 많고 의지할 데가 없어서 한 손에 경전을 들었는데 이거 갖고도 의지가 안 돼서 한 손에 무기를 들어야 안심이 되는. 그래서 도처에 원수가 숨어있고 경쟁자들에게 쫓기는, 이런 사막 같은 도시 삶과 대비되는 공간으로 숲이라는 걸 생각한 거예요. 거긴 원수가 없다는 걸 처음에 발견했고요. 그리고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할 존재들로 가득하다는 것. 그것이 나무든 짐승이든, 그들도 서로 외롭지만 함께 더불어 살면서 하나의 커다란 공간을 이루고 있고, 서로가 존중해줘야 할 신성, 영성, 이런 것들을 갖고 있고 저마다 작은 우주고. 그런 것들이 모여 있는 공간. 그리고 사막에서처럼 쫓기는 삶이 아니라 느린 삶을 회복할 수 있는, 청안한 삶을 회복할 수 있는 공간이란 생각을 했어요. 청안한 삶이라는 것이 이 책의 어쩌면 주제가 되겠는데요 .
박인규 : 맑고 편안한 생활
도종환 : 네. 이 말을 우리가 인사할 때도 편안하세요라든가 안녕하세요라든가 이런 말을 쓰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것과 다르게 마음이 맑고 몸이 편안한. 그런 의미를 담은 이 청안한 삶이라는 게 청화스님이 이 말씀을 쓰시는 걸 제가 책에서 읽고, 참 좋다... 이거야 말로 숲에서 얻은 새로운 시어다, 이런 생각을 했고. 그런 삶을 회복하게 해주는 공간, 그리고 시간, 영성의 시간이 숲이라는 상징 속에 담겨 있습니다.
박인규 : 도종환 시인이 말씀하신 숲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일 뿐만 아니라 서로 공생하고 상생하는 공간의 의미도 있다고 하셨는데 그래도 현실 속에서는 숲에 들어가야 느낄 수 있을 것 같고. 5년 동안 숲에 사시면서 개인적으로 많이 변했다고 느끼십니까?
도종환 : 첫 번째 변한 것은요, 우선 평화롭고 고요한 삶을 회복할 수 있었다는 점이 제가 얻은 가장큰 것이고. 작가로서 특히 평화롭고 고요한 시간, 외롭지만 평화롭고 고요한 시간을 마음껏 가질 수 있었다는 것 참 좋았어요. 그리고 두 번째는 내게 오는 모든 것이 참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모르겠다. 그것이 질병이라 할지라도 질병을 통해 우리에게 일러주고자 하는 뜻이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내게 오는 것이 그것이 고통이든 질병이든 아픔이든 다 고마운 것이다. 그것이 아닌 다른 것은 물론 더 고맙고요. 그런 고마운 삶의 회복. 그 다음에 나누는 삶. 말하자면 나뭇잎들이, 숲에 있는 나무들이 나뭇잎을 10장 낸다면 2장은 자신의 성장에 쓰고 2장은 꽃과 열매를 키우는 데 쓰고 2장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쓰고 2장은 저장을 한 대요. 그런데 나머지 2장은 당연히 다른 벌레와 짐승들에게 줘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는 거죠. 우리는 우리 것을 지키고 가지려고 쌓아놓으려고만 하는데 나뭇잎들도 2장은 짐승들과 벌레들에게 나눠줘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는 거죠. 이런 게 숲이구나. 이것이 우리가 숲에서 배워야 할 것이구나.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됐습니다.
박인규 : 일단 저희가 말로 할 때는 숲에 사는 생활이 좋아, 하지만 대부분의... 특히 젊은 사람들은 굉장히 심심할 것이다, 가서 뭐하냐, 이런 말씀 하실 텐데 실제로 산방생활은 어떻게 보내셨어요?
도종환 : 아주 심심하게 보냈습니다. 재미없게, 심심하게. 그렇게 보내는 시간이 우리 생에 필요하다는 거죠. 심심함과 외로움이 필요하다고 저는 생각했어요. 물론 제가 하는 이런 얘기가 바쁘게 살아도 살까말까 한 지금 현대인들, 젊은이들에겐 한가한 소리거든요. 그러나 이런 한가한 이야기를 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게 작가라고 생각하거든요. 모든 사람이 바쁘게 쫓기며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사는 삶이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주는지, 그것이 몸으로 마음으로 어떤 국면에 이르게 되는지를 제가 직접 체험한 것이고요. 그 뒤에 다른 사람도 역시 이렇게 이름도 모르는 병에 덜컥 걸려 쓰러지는 삶을 향해서 전속력으로 질주할 수밖에 없을 때 작가들만이라도 우리가 되찾아야 할 것과 회복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말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거죠. 그리고 쫓기며 사는 모든 사람들이 머릿속에 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다시 돌아가야 할 곳이 있다. 내가 돌아가고 싶은 곳이 있다. 이 삶을 이렇게 치열하게 사는 것도 결국 내가 더 맑고 편안한, 청안한 여유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은 전 없다고 봐요. 말하자면 그렇게 쫓기며 사는 그 삶 자체가 의미 없다는 게 아니라 그렇게 살면서도 우리가 돌아가야 할, 잊지 말아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거죠.
박인규 : 말씀은 5년 동안 한가하게 심심하게 보내셨다고 하시지만 아무 일 없이 보내신 건 아니죠? 5년 동안의 숙성된 생각들을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라는 책으로 내셨는데요, 그 중에서 청취자들을 위해서 한 구절을 낭송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글 제목은 '지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도종환 : 지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음악이 너무 가슴에 사무쳐 볼륨을 최대한 높여 놓고 그 음악에 무릎꿇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내 영혼의 깃발 위에 백기를 달아 노래 앞에 투항하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음악에 항복을 하고 처분만 기다리고 싶은 저녁이 있습니다. 지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어떻게든 지지 않으려고 너무 발버둥치며 살아왔습니다. 너무 긴장하며 살아왔습니다.
지는 날도 있어야 합니다. 비굴하지 않게 살아야 하지만 너무 지지 않으려고만 하다 보니 사랑하는 사람, 가까운 사람, 제 피붙이한테도 지지 않으려고 하며 삽니다. 지면 좀 어떻습니까. 사람 사는 일이 이겼다 졌다 하면서 사는 건데. 절대로 지면 안 된다는 강박이 우리를 붙들고 있는지 오래되었습니다. 그 강박에서 나를 풀어주고 싶습니다. 폭력이 아니라 사랑에 지고 싶습니다. 권력이 아니라 음악에 지고 싶습니다. 돈이 아니라 눈물나게 아름다운 풍경에 무릎 꿇고 싶습니다. 선연하게 빛나는 초사흘달에게 항복하고 싶습니다.
박인규 : 지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도종환 선생께서는 시인이기도 하십니다만 전교조 운동도 하셨고 문화운동도 하셨고 해서. 사실 운동, 하면 많은 분들이 투쟁을 생각하고 투쟁하면 이겨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지고 싶다는 말씀을 숲생활을 하시면서 쓰게 되셨어요. 어떤 심경의 변화 같은 게 생기신 겁니까?
도종환 : 말하자면 제가 지고 싶다는 것은, 아름다운 음악, 사랑, 아주 감동적인... 그런 사랑. 또는 아주 정말 마음을 흔드는 풍경. 이런 것들에 지고 싶다는 거죠. 살면서 우리가 너무 감동을 잊고 잃어가면서 살거든요. 감동이 없는 삶이 지속되는 날이 많아지는 걸 보면서 정말 우리 마음을 흔드는 감동적인 그 어떤 것들에게 지고 싶다는 거죠. 모든 것들을 너무 이기려고만 하다 보니까 너무 긴장하고 살아야 되고 그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사는 것 자체가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다는 생각도 해야 된다고 보고요. 나도 그렇고 우리 아이들한테도 절대 지면 안 된다고만 이야기하면서 그 강박을 이어주려고 하지 말고, 사람 사는 것이 이기는 때도 있고 지는 때도 있다는 것. 그리고 아까 제가 했던 교육운동이나 문화운동 말씀을 하셨지만, 제가 하는 운동은 제가 지면서, 철저하게 지고 상처받고 고통받고 이러면서 저에게 상처와 고통을 주는 사람들의 부당함을 드러내는 방식이었다고 저는 생각해요. 초기에 저희들이 약자이면서 옳다고 믿어서 문화운동이나 교육운동을 할 때는 그런 방식이었어요. 저희들이 피흘려서, 저희들이 고통받아서 이것이 부당하다는 걸 드러내는 방식이었어요. 꼭 이기려고만 싸우진 않았어요 저는요.
박인규 : 무엇이 중요한가를 깨우친달까 드러내 보이는 것이 더 목적이었다.
도종환 : 제 방식이 자본주의사회 경쟁사회에서 맞는 방식은 아니겠지만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겁니다.
박인규 : 산에 들어가신 이후부텁니까? 요즘에는 하루 시작하시기 전에 한 시간씩 명상을 하신다고 들었는데요. 사실 요즘 현대인들이 한 시간씩 명상할 시간도 아마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명상은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냐, 그런 분들도 계신 것 같아요. 혹시 자신만의 명상법이랄까 있으시면 소개해 주시죠.
도종환 : 제가 잘못 얘기했다가는 도인인 것처럼, 뭐 하는 사람인 것처럼 비춰질까봐 우선 그것은 경계를 하고요. 몸이 아파서 시작했던 거고요. 그리고 호흡부터 시작해서 몸과 마음을 평안한 상태로, 이렇게 마음과 몸을 바꿔놓는 시간이 필요하고요. 그렇게 바꿔놓으면서 머릿속에서 어제 하루 내 생활에 대한 감사, 그리고 오늘 하루 생활에 대한 어떤 준비, 이런 것들을 처음엔 떠올리곤 하는데요. 그런 생각까지 다 놓게 되면서 몸의 어떤 떨림, 파동, 이런 것들을 느끼고. 그것까지도 잠잠해지는 시간이 오고, 좋게 명상이 잘 진행될 땐 이른바 무념무상하다고 할까요? 그런 경지가 이런 것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그런 상태까지 가서 다시 평상시 몸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한 한 시간 정도 겪는데요. 저는 전문적으로 명상을 지도하거나 이럴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은 아니지만 몸과 마음이 평온한 상태를 아침에 한 시간 정도 유지하고, 그리고 그 다음 바로 하는 일이 글 쓰는 일이라든가 이런 일들을 하는데요 오전 중에. 그렇게 하루생활을 시작하면 글 쓰는 사람으로선 참 더 없이 좋은 시간을 만나는 거라서 이제 안 할 수 없는 습관이 돼 있죠.
박인규 : 저희는 명상, 하면 처음부터 딱 무념무상의 경지로 들어가는 줄 알았더니 여러 단계를 거쳐서 갔다오는 거군요.
도종환 : 잡념이... 여러 가지 어지러운 생각들이 가득 차있다가 가라앉는 과정을 거쳐간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박인규 : 5년 전에는 그야 말로 심신이 피폐해서 산에 들어가셨는데 요즘은 굉장히 활동을 활발하게 하시는 것 같아요. 산방생활이 새로운 에너지를 주는 겁니까?
도종환 : 에너지는 받았고요, 활발하게 하는 건 아니고요 5년 동안 아무 것도 안 하고 놀다 보니. 봉사를 좀 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올 초부터 한국작가회의 신임 사무총장 맡으셨는데요, 좀 어깨가 무거우시겠습니다.
이게 예전에는 민족문학작가회의였죠? 작년 말에 이름을 바꾼 걸로 알고 있는데 이름을 바꾸게 된 연유랄까, 소개를 해주시죠.
도종환 : 저희 한국작가회의가 초기 70년대에는 자유실천문인협의회였고요. 그 다음에 80년대 후반에 민족문학작가회의로 이름을 바꿔서 지금까지 활동해오는 동안... 저희 단체에 소속된 문인들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인들이 대부분 소속돼 있어요. 소설에 황석영, 조정래, 박완서, 박경리, 뭐 많은 선생님들. 시인에 고은, 신경림, 중견의 김용택, 정호승, 안도현에 이르기까지요. 또 평론에 백낙청... 수많은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분들이 저희 단체에 소속된 문인들이신데 이 분들을 한쪽에서는 문학운동만 한다거나 또는 재야문인단체거나 이렇게 생각하시는 측면도 있어서, 그게 아니라 한국문학을 명실상부하게 대표하는 문인들의 단체라는 것을 다시 국민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것과. 이 분들이 지금까지 수십 년간 한국문학사를 써온 분들이죠. 작품으로 글로 한국문학사를 써온 분들이라서 이 분들이 우리나라 문학을 대표하는 분들이고, 이 분들의 단체라는 것을... 한국 문인들의 대표적 단체라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측면이 이름을 바꾸게 된 이유 중 하나고요. 또 하나는 민족문학, 세계문학, 이런 건 가치론적 개념이죠. 이런 가치론적 개념을 단체명칭 앞에 달아야 되는 시절도있었어요. 저희들이 살아온 역사가 그랬잖아요? 그런데 이젠 가치론적 개념이 아니라 보편적 명칭으로 바꿀 필요도 있겠다. 그런 측면에서 이름을 바꾼 겁니다.
박인규 : 어쨌든 이름을 바꿨다는 것은 정체성에도 어떤 중대한 변화가 있을 수도 있는 거고, 이름을 바꾼 상황에서 사무총장을 맡으셨기 때문에 앞으로 작가회의의 역할이랄까 위상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하실 거 같은데... 어떤 쪽의 활동을 생각하십니까?
도종환 : 저는 주로 작가들, 우리 내부의 활력을 되찾는 문제. 작가들이 활력을 되찾아서 좋은 작품을 써서 문학의 사회적 영향력 이런 것들을 되찾고 독자들을 되찾는 일들이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좋은 작가들을 키워내는 일. 특히 젊은 후배작가들을 교육시켜내는 일. 이런 것들을 하고 싶어요. 물론 이것 말고도 우리 문학의 문학적 영토가 넓어져서 아시아, 아프리카 문인들과의 교류 물꼬를 텄는데 그런 일들을 계속 한다든가 북한의 문인들과 남북문학교류를 한다든가 이런 일들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이지만, 제가 책임을 맡고 있는 동안에 기업이든 출판사든 아니면 정부측에건 요구를 해서 후배 문인들을 세계적인 작가로 키워내는 교육. 이런 것들을 하고 싶어요. 좀 더 세부적으로 말씀드리면 이미 대학에서 문학교육을 받고 배출된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젊은 신인들 중에 문학교육을 포함해서 역사, 철학, 경제, 과학, 환경, 생태, 이런 쪽의 세계 전문가들을 모셔서 정말 집중적인 교육을 한 2년 이상, 대학원과정처럼 한 2년 이상 공부할 수 있게 하면서 장학금제도, 펠로우십 제도를 통해서 이들의 생활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고 한 2년 정도 장학금을 줘서 공부를 시키는
박인규 : 작가들의 어떤 인문학적 깊이를 좀 깊게 해주는 작업이겠네요.
도종환 : 네. 인문학적 공부, 철학적 공부를 통해서. 왜 이런 생각을 했냐면요, 시장에서는 공개경쟁이거든요. 그런데 외국의 작가들이 예를 들어 베르나르베르베르가 개미에 대해서 소설을 썼다고 하면 과학자들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갖고 작품을 써요. 또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이야기. 역사에 대해 소설을 쓴다그러면 역사학자보다 더 많은 자료를 수집해서 더 많은 지식을 갖고 쓰지 않습니까? 그렇게, 우리도 그런 깊이와 역량을 갖춘 작가를 길러내야 된다고 저는 생각하는데, 선재 작가나 출판사나 국가에서는 그것보다는 알아서 너희들이 커라. 큰 다음에 성장하면 대우해주겠다든가, 좋은 작가가 나타났다고 하면 얼른 붙잡아서 작품이나, 원고나 뺏어올 생각을 하지 말고 제대로 키워야 한국문학의 미래가 있다고 생각해서 이런 취지의 말씀을 많은 분들에게 다니면서 드리고 좀 동의와 지원을 얻어내서 후배작가들을 키우는 이른바 가칭 한국문학원? 이런 것들을
박인규 : 혹시 조금 이르긴 합니다만 도시인의 구상에 대해서 전폭 찬성, 지지 내지는 도움을 주겠다고 나선 분이 계신가요?
도종환 : 지금은 여기서, 언론에서 공개적으로 밝힐 순 없습니다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시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이렇게 해서 후배들을 길러내는 것이 선배들의 역할이기도 하지만 한국문학의 미래를 위해서, 우리나라 전체 문학의 질적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우리 문학의 어떤 저변이랄까, 실력을 키울 수 있는 것 같은데요, 잘 되기를 빌고요. 작가회의 사무총장으로 있으십니다만 기본적으로 시인이고 작가시기 때문에 앞으로의 활동계획을 비롯해서 마무리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도종환 : 제가 우선 올해 글을 굉장히 많이 써야 하는 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단체봉사활동도 제가 맡아서 해야 될 역할 중 하나지만 개인적으로는 글 열심히 쓰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작품집을 내기로 약속해 놓은 것도 많고. 또 인터넷신문에 매일 글을 써서 문학엽서를 배달하는 일 이런 것도 계획을 갖고 있어서, 이것도 쌓이면 책으로 출간하기로 약속해 놓은 것도 있어서... 우선 글 쓰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고 게을리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 두 가지 일을 다 잘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그것이 제가 해야 될 가장 중요한 일이니까 열심히 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어느 해보다 바쁜 한해가 되실 것 같은데요. 5년간 산에서 얻은 그 기, 에너지가 활동의 바탕이 되기를 빌어보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도종환 : 고맙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5년간의 산방생활을 정리하고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라는 산문집을 펴낸 도종환 시인과 함께 산방생활을 통해 얻은 삶의 의미와 우리 문학에 대해 얘기 나눴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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