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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기무라 후카시의 회심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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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기무라 후카시의 회심의 미소"

김민웅의 세상읽기 <124>

스기무라 후카시(杉村濬)는 1875년부터 요코하마 마이니치 신문사의 기자로 활동했고, 그 뒤 조선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무명의 언론인에 불과했던 그가 그러던 중, 1880년 서기관의 직위로 서울 주재 일본공사관에 부임하게 되면서 조선정세 파악에 본격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합니다. 15년간 그의 조선에서의 생활은 스기무라 후카시를 조선 문제 전문가로 만들게 되는데, 그러나 그는 단순한 외교관이 아니었습니다.

메이지 유신의 중심인물에 속하면서 당시 외무대신이었던 무쓰 무네미쓰가 훗날 쓴 회고록 <건건록(蹇蹇錄)>에서도 드러나듯이, 스기무라 후카시는 조선의 정세와 왕실의 움직임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던 일급 정보요원이었습니다. 그는 그 시기 조선에서의 일본 외교관의 책무를 다음과 같이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조선은 형식상 일본과 대등한 독립국이지만 사실에 있어서는 일본은 조선을 보호, 유도하고 조선을 감독하는 지위에 있음은 숨길 필요 없이 명백한 사실이다."

말하자면, 그는 일본의 대 조선 침략과 지배 정복의 전위에 서서 이에 필요한 지식과 정보, 그리고 전략적 판단의 기초를 제공하는 일에 복무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당시 러시아를 끌어들이고 일본을 배제하는 정책을 취하면서 새로운 외교적 입지를 구축하려 했던 민비 세력 제거 음모에 관여하는 공작조의 책임자로 활약하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그의 움직임은 조선의 정세에 대해서 오랫동안 면밀하게 관찰하고 그 인맥과 여러 가지 인연을 축적해 오지 않았더라면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민비시해 사건과 관련해서 재판을 받았으나 이내 사면되었고 대만으로 임지를 옮겼다가, 브라질 이민을 추진하는 업무를 맡아 지내다가 그의 외교관 생애를 마감하게 됩니다.

이렇게 보자면, 스기무라 후카시는 일본의 대외 팽창을 위한 작업에 전방위적으로 전력을 다했던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그는 1894년에서 1895년, 동학 농민전쟁 시기의 조선 정세에 대해 상세히 기술한 <재한고심록(在韓苦心錄)>을 1904년 남기게 됩니다. 이 기록은 한성순보의 발행인이던 이노우에 가쿠고로(井上角五郞)가 이보다 앞서 1882년 말부터 4, 5년 간 조선체류의 경험을 토대로 쓴 <한성지잔몽(漢城之殘夢)>, 즉 '서울에 남겨둔 꿈'과 더불어 조선조 말의 형편을 기록해놓은 일종의 정보문서라고 할만 합니다.

그런데 이 기록들을 읽어나가면서 전율하게 되는 것은, 당대의 조선 정세의 세세한 파악은 물론이고 당시 조선 지배층들은 국권을 지켜내기 위해 필요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는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그들의 치밀함입니다. 조선의 보통 사람들은 알아내기도 어려운 인맥관계에 대한 해부는 기본이고, 대외관계에서 어떤 입장들을 저울질하고 있었는가, 개혁정치를 추진해나가는 과정에서 문제는 무엇이었는가를 지목하는 내용들은 우리가 그 앞에서 아무런 방비도 없이 발가벗겨진 듯한 느낌을 줍니다.

그로부터 이제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일본과의 문제에 국한해 보자면 어떤 형편이 되었습니까? 이들 일본인들이 어떻게든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그리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해서 식민지가 되었던 이 나라가 친일반민족분자들의 후예들에게 민족의 피의 대가에 해당하는 땅을 재산으로 복원시켜주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혹시 스기무라 후카시가 아직도 살아 있다면 자신이 여전히 서울에 남아 활개치고 다니고 있는 듯한 환희를 맛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게끔 우리가 만들어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을바람이 돌연 소스라치게 서늘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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