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과 4월은 세력교체의 시기다.
2월에는 대통령과 청와대 대통령실, 국무총리와 국무위원들이 바뀌고 4월에는 국회의원들의 면면이 바뀔것이다.
차관 이하 정부 관료들과 산하기관 임원들도 대거 바뀌게 될 것이고 사회단체들 중에도 정부의 입김이 작용하는 곳에는 인물의 교체가 대폭 이루어 질 것이다.
이 대대적인 세력 재편을 주도하는 MB맨들의 비상이 눈부신 중에도 젊은 MB맨들의 정치 행보가 거미알 흩어지듯 화려하다. 대통령 취임 후 불과 44일 만에 선거가 치러진다는 정치일정상의 특수성 탓에 누가 이기든 이기는 쪽에서 입법부 권력까지 장악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은 대선 전부터 있어왔지만, 그 관측이 현실로 드러나면서 MB맨들의 정치적 도약이 총선출마라는 형태로 눈부시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당선인이 직접나서 총선보다는 비서실이나 인수위 등 당면 업무에 집중하라는 경고까지 했겠는가.
MB맨들의 청와대행 기피현상은 수석비서관 인선과정에서도 되풀이되었다. 새로 신설된, 그런 의미에서 당선인이 상당한 정치적 비중을 부여한 정무수석비서관 인선 작업이 난항을 겪은 끝에 사회정책 수석으로 내정되었던 박재완 의원으로 결론이 난 것이 바로 그렇다. 당과 국회와 청와대를 연결하는 자리이니만큼 국정 현황과 당과 국회 상황을 두루 잘 아는 정치력 있는 인사의 등용이 꼭 필요했으나 거론된 사람들이 하나같이 고사하는 바람에 결국 사회정책수석에 내정됐던 박재완 의원을 정무수석으로 옮기게 됐다는 것이니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벌어지고 있는 청와대 기피현상이 젊은 실무자들뿐만 아니라 한나라당 의원들에 이르기까지 이명박 정부내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현상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케 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왜 이런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정부조직개편과 총리실의 역할 조정을 통해 '작지만 강한 대통령실'을 지향하고 있는 이명박정부에서 권력의 핵이라 할 수석비서관 자리가 이토록 인선난을 겪었다면 여기에는 필시 말못할 사정이 있을 수밖에 없겠다. 이럴 경우 말못할 사정이란 대개 지도자의 리더십과 관련된 사정일 가능성이 높다. 말하자면 이명박 당선인의 리더십이 이같은 기이한 현상을 만들어낸 주원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이 점은 향후 국정운영과정에서도 지속적으로 문제될 수 있는 사안이므로 좀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이명박 당선인의 정치 철학을 실용주의라고들 한다. 이 점은 사실 이명박 당선인 스스로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해 마지 않는 것이므로 그 내용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이 필요없을 듯하다. 문제는 이 실용주의가 사람에 대한 평가의 잣대로 적용될 때다. 실용주의는 무엇보다도 실적과 효율을 중시하는 기능중심적 사고 방식이므로 사람에 대한 평가 역시 능력과 효율과 기능을 중심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능력과 기능으로 볼 때 이 사람은 여기에 적합하고 저 사람은 저기에 적합하겠다', 이것이 이명박 당선인이 사람을 보는 척도요, 인사를 운용하는 용인술의 핵심이다. 일견 매우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인사권자의 입장일 뿐 막상 인사의 대상이 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자신의 능력이 인사권자로부터 인정받는 동안, 그리고 자신의 기능이 인사권자에게 필요한 동안만 의미있는 존재일 뿐이다.
더 나아가 일단 능력과 기능, 즉 역할이 다하면, 관계도 거기서 끝나는 것이 이 실용주의 정치 철학이 표방하는 합리적인 인사원칙이다. 처음부터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의 기능과 역할에 주목한 인사였으므로 그 사람의 기능과 역할이 다했다면 부속품 갈아끼듯 주저없이 교체하는 것이다. "best of best"가 아니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이런 인사행태야말로 막스 베버가 그토록 강조해마지 않은 근대 사회의 가장 발전된 통치 유형인 관료적 통치형태의 합리적 핵심이 아닌가. 이 점에서 이명박 당선인의 실용주의는 기술관료적 합리성을 잘 체현하고 있는 근대적 정치철학이라 하겠다.
이러한 리더십하에서는 위로는 총리, 장관, 수석비서관에서부터 아래로는 대통령 행정관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기능과 역할이 인사권자의 기대와 요구에 부합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돌아보지 않으면 안된다. 뿐만 아니라 조금이라도 힘이 있고 여유가 있을 때 자신의 다음 행보를 미리미리 예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나의 존재란 어디까지나 나의 기능과 역할이 유용한 한도 내에서만 "의미" 있으므로 언제 올지 모르는 "무의미상황"에 미리 대비하는 것만이 내 존재의 영속성을 담보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당선인은 특유의 실용주의 리더십을 통해 기능과 역할에서 동종 업종내의 "best of best"를 찾아내고, 그들의 "doing best"를 이끌어내는 데는 성공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성공은 자기 존재의 근원적 불안정성으로 인한 불안감에 강박적으로 매달릴 수 밖에 없는 "뿌리 없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불안정한 성취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의 미래에 자신의 정치 생명을 거는 열정적 일꾼들은 보이지 않고, 기회만 오면 "다음 자리"로 옮길 준비가 되어있는 "생존경쟁자들"만 득세하는 새 정부에 대해 과연 우리 국민은 얼마나 큰 믿음과 신뢰를 가질 수 있을까?
MB맨들의 화려한 정치적 비상 속에서 "주인 없는 새 정부"의 스산한 미래를 보는 것 같은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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