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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가 '성인'이라고? 천만에"

김영길의 '남미리포트' <298> 볼리비아 혁명 실패는 미-소 합의 때문

중남미 민중들의 해방을 위해 총을 잡은 혁명가 체 게바라가 체포되어 총살 당한 지 40년이 지난 지금 볼리비아를 중심으로 체에 대한 재평가 열풍이 불고 있다.

현재 볼리비아에서 강하게 불고 있는 체 게바라 열풍 뒤에는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있다. 그는 지난 2006년 1윌 대통령 취임사에서 체 게바라의 혁명을 이어가겠다고 공언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집무실에 체의 대형 초상화를 걸어놓고 매일 체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할 정도라고 한다.

체가 볼리비아 대통령의 정치적인 영웅으로 급부상하자 볼리비아인들은 한술 더 떠 체를 성인시하는 경향마저 보이고 있다. 체의 영정 옆에 촛불을 밝혀놓고 소원을 빌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택시에 체의 초상화를 붙이고 다니면 사고를 방지하고 행운이 따른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이기도 하다.
▲ 체의 볼리비아 투쟁을 다룬 기록영화의 한 장면 ⓒ김영길

하지만 체가 태어나 성장했던 아르헨티나에서는 볼리비아인들의 이런 경향들을 못마땅해 하고 있다. 체는 종교적인 의미의 성인이 아니라 중남미 서민들이 직면한 불의와 불평등에 맞서 싸운 혁명가로서 모든 이들의 가슴속에 살아 숨쉬는 저항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체가 청년시절 사귀었던 남녀 친구들과 체의 친지들, 그 후손들이 자리를 함께했던 지난달 30일 '볼리비아에서의 체'(El che en Bolivia)의 다큐멘터리 영화 시사회장의 분위기를 추가로 정리해 본다. (☞관련 기사 : 바람둥이 체의 혁명가 변신은 기차여행 때문)

체의 기록영화 시사회장에 모인 체 관련 인사들은 우선적으로 그가 볼리비아 혁명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를 외부적인 도움을 전혀 받을 수 없었다는 것을 지적했다. 당시 볼리비아에는 사회주의 운동이 정치 사회적으로 활발하게 일고 있었지만 볼리비아를 비롯한 주변국가 사회주의자들이 체의 투쟁을 철저하게 외면했다는 것이다.

중남미국가 사회주의자들의 이와 같은 태도는 구(舊) 소련 정부가 쿠바사태(1962년 10월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려다 이를 저지하려는 미국과 제3차 세계대전 일보 직전까지 갔던 위기사태) 이후 중남미 거점을 확보하는 것은 미국과의 마찰로 득보다는 실이 클 거라고 판단, 중남미 국가들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고 동구권에서의 세력확장을 노린 것과 무관치 않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들은 소련의 레오니드 브레즈네프 서기장은 1974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미국의 제럴드 포드 대통령을 만나 미국은 동구권 문제에 간여하지 않는 대신 소련은 중남미에서 미국의 활동을 묵인하겠다는 합의를 한 것을 그 예로 들었다. 따라서 중남미 사회주의자들이 소련 정부의 눈치를 살피며 체의 볼리비아 활동에 협조를 하지 않았다는 설명이었다.

또한 이 자리에서는 체가 고립무원이 됐을 때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가 지원 병력을 보내주지 않은 것도 문제로 지적이 됐다. 그러나 60년대 중반 쿠바사정에 정통한 체의 친구들은 당시 쿠바의 군사력은 특수부대를 급파할 만한 대형 수송기를 보유하지 않았으며 헬기를 통해 볼리비아까지 들어온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고 주장했다.

체의 친지들 역시 당시 중남미 전역의 국가들이 친미파 군인들이 집권을 하고 있어서 카스트로가 내륙국가인 볼리비아로 해군을 파견한다는 것 역시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카스트로가 아무리 체를 구하려고 백방으로 노력을 했다 해도 당시로서는 별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는 얘기다.

체와 관련된 인사들은 볼리비아인들이 체를 성인시하는 것에 대한 토론으로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러나 이들이 내린 결론은 체는 천주교의 성인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었다.

체는 불의와 불평등을 몰아내기 위해 무기를 잡은 혁명가이지 기적을 일으켜 서민들을 돕겠다는 종교적인 의미에서의 성인은 결코 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마지막으로 학창시절 체와 데이트를 즐겼다는 백발이 성성한 한 할머니의 절규에 가까운 체에 대한 회상이 필자의 기역에 남는다.

"체와 나는 마떼(아르헨 전통녹차)를 함께 빨며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는 언어에 격식을 따지지 않고 마구 떠들어대는 성격이었지만 동서양을 막론한 철학과 문학, 역사에 통달해 대화에 막힘이 전혀 없었다. 어떤 부류의 사람들과도 쉽게 어울릴 수 있는 활달한 성격이었다.

체는 학창시절 여학생들 사이에서 백과사전으로 통할 정도였다. 그런 그가 무기를 잡고 볼리비아의 험지에서 투쟁을 했다는 것은 지금도 믿기지가 않는다. 체는 청년시절 벌레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할 만큼 자비로운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내 마음속에 체는 무장혁명가가 아닌 가냘프고 꿈 많은 문학청년으로 지금까지 살아 숨쉬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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