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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디자인'을 제대로 알고 있는 걸까?

[지상현의 Homo designans·20] 연재를 마치며

지난해 봄 이 글을 처음 시작하며 말했던 대로 지금까지 다른 매체에서 거의 논의하지 않았던 대목만을 골라 이야기를 해왔다.

독자들 가운데에는 디자인이 이렇게 다양한 가치와 지식이 포함된 정교한 분야라는 사실을 처음 느낀 분들도 많을 것이다. 세상사가 그러하듯 디자인도 세상의 변화와 더불어 발전하고 변화해 왔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서로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분야들이 생겨나 디자인이라는 한 지붕 밑에 살게 되기도 했다. 그래서 '디자인이란 이것'이라고 한마디로 이야기하기란 쉽지만은 않다.

지금껏 19회에 걸쳐 디자인에 대해 이것저것을 들춰보았지만 개운치 않은 것도 그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디자인에 대한 사회의 기대와 진흥책을 보면 디자인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결정됐다는 생각을 자주하게 된다. 그 결과 디자인 발전에 핵심적인 부분에는 지원이 부족하고 별 효과도 없는 부분에 자원이 집중되곤 한다.

디자인의 힘? 디자이너만의 성과 아니다

예컨대 새로운 질감과 색상으로 소비자의 눈을 사로잡은 전자제품이 있다고 하자. 이를 보고 디자인의 힘이라고 칭송을 한다.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디자이너들만의 성과는 아니다. 새로운 합성소재를 개발해낸 화공학자들의 역할이 더 컸다고 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화공학자가 개발해낸 새로운 합성소재의 디자인적 가치가 큰 역할을 했고 화공학자가 디자이너인 셈이다.

선진국의 인쇄물을 보면 어딘지 모르게 우리 것보다 고급스럽고 선명한 느낌을 준다. 소위 '선수(線數)'라고 하는 단위 면적당 인쇄 망점의 밀도가 우리는 낮고 선진국은 높기 때문이다. 이 역시 디자인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디자이너의 심미적 능력보다는 인쇄공학기술에 관한 문제이고 더 크게는 인쇄단가에 민감한 우리 경제수준과 관련이 깊다. 선수가 높아지면 단가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디자인의 발전을 위해서는 소재개발과 관련된 산업, 인쇄소, 성형업체 등과 같은 디자인 관련 산업에 대한 진흥책이 강화되어야 한다.
▲ 국내 중소기업이 2006년 개발한 발광시트. 작은 어댑터와 건전지만 연결하면 좌측의 얇은 청색 시트가 우측 그림처럼 발광을 한다. 발열도 없고 전력소모도 적을 뿐만 아니라 가위로 오려 어떤 형태건 만들 수 있다. 물론 색채도 다양하다. 이런 신소재는 새로운 디자인 유행을 만들어내는 핵심동력의 하나다.

제품가격에 미치는 디자인의 효과에 대한 생각도 핵심과 먼 경우가 많다. 디자인이 좋으면 상품의 부가가치가 높아질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문제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예컨대 클린턴과의 성추문으로 유명한 르윈스키가 어느 날 갑자가 제법 잘 나가는 핸드백 디자이너가 되어 나타났다. 뒤늦게 받은 약간의 디자인 교육이 그녀의 천재성을 발현시킨 것일까? 다른 핸드백 디자이너들이 들으면 섭섭할 소리다. 그보다는 그녀가 유명하기 때문으로 보는 것이 옳다. 브랜드 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일류 디자이너들을 모아 놓고 제품들의 디자인을 평가해보라고 하면 아마 상, 중, 하로는 쉽게 나눌 것이다. 그러나 일등부터 차례로 순위를 매겨보라고 하면 여러 디자이너들의 의견이 일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크게 보아 상, 중, 하의 디자인은 구분할 수 있어도 정확한 순위라는 것은 디자인의 세계에서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명품들도 '계급장 떼고 붙어보면' 별 신통치 않은 평가를 받을 것이 뻔하다. 그조차도 들쭉날쭉할 것이다. 지난번에도 이야기했지만 일반 제품보다 서너 배씩 비싼 명품의 가격들은 이름값이다. 그리고 이 이름값은 디자인의 힘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경제 논리에 의해 만들어진다.

최근 외신을 보면 크리스티 경매에서 모네의 그림 값이 뜨고 고흐는 내리막이라고 한다. 서구사회에서 고흐가 그동안 누린 명성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저 세상의 고흐와 모네는 말이 없는데 한 사람의 가격은 올라가고 한 사람은 내려간다. 이는 두 화가의 예술적 가치가 변했기 때문일까? 아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투자처를 창출해야 하는 경제시스템의 변덕일 뿐이다.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명품이 되려면 디자인에도 신경을 써야겠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구찌나 베네통 같이 디자이너 브랜드를 유명하게 만드는 경영마인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예계에서 발달한 일종의 "스타 시스템"과 같은 방식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브랜드 가치라는 것이 애초부터 제품 속에 실재하는 것이 아닌 소비자들의 마음 속에 자리 잡은 경제적 가치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성공한 브랜드를 만들려면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마케팅이나 소비자 심리와 같은 분야에 밝아야 한다.

디자인의 바탕은 지성과 전문성

디자인적 창의력에 대한 오해도 문제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아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당면 문제에 대한 충분한 숙고를 한 후에야 찾아오는 것이 새로운 아이디어다. 충분한 숙고를 통해 해당 문제를 완전히 이해하고 자유자재로 문제를 뜯어보고 변환을 시킬 수가 있을 때 새로운 관점이나 결합방식이 떠오르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탄생한다.

이를 좀 큰 관점에서 보면 디자인적으로 해결하려는 문제에 대한 전문성이 높아져야 창의력이 높아진다는 말로 바꿀 수 있다. 예컨대 소재, 가공방식, 사용방식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많아져야 새로운 제품디자인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평균적인 소비자보다 세상사에 밝아야 그들을 설득할 수 있다. 클라이언트가 요구하는 내용의 핵심을 분석할 수 있는 지성과 방법론을 알아야 의도하는 내용의 묵시적 의미까지 이해해 의표를 찌르는 광고를 만들 수 있고 심벌마크를 창작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새로운 아이디어는 지성과 전문성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디자이너의 머리 속에서는 지성과 감성이 끊임없이 상호 교류를 해야 한다. 그러나 많은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지성에 힘입은 바를 모르고 이를 소홀히 한다.

예컨대 그림에서 보는 새로운 형태의 사다리를 보자. 이런 획기적인 사다리가 나오기 위해서는 소재의 하중 강도와 무게, 소비자의 행동특성 등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런 것이 없다면 이런 사다리는 불가능하다. 심벌마크 디자인과 같은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래픽 디자이너이지만 제품과 인테리어 디자인에서까지 성공신화를 이어가고 있는 사토 가시와는 최근 "사토의 정리술"이라는 책을 출간해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의 유명한 데이터 분석 및 정리술을 통한 디자인 방법론을 소개하고 있다. 클라이언트들은 그와 일하면 속이 시원하다고 말한다는데 요구사항의 핵심을 정확히 짚어내 도리어 클라이언트의 생각을 정리해주고 디자인으로 정확히 표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책에 소개된 그의 방법은 일종의 문헌정보학적 데이터 분석과 마케팅 분야의 방법론을 결합한 것이다. 펑크족 디자이너가 이런 지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정들이 디자인 교육이나 디자인 지원센터의 운영방식이 지식중심으로 옮겨가야 하는 까닭이다.
▲ 실내에 놓아도 환경의 아름다움을 손상시키지 않는 이 사다리는 소재에 대한 지식과 사다리를 오르는 행동의 특징을 이해했기에 탄생할 수 있었다.

▲ 일본국립신미술관의 심볼마크. 작품을 소장하지 않고 기획전만 개최하는 새로운 미술관을 표현하기 위해 사토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단순화와 직선화를 시도했다. 이는 그의 데이터 정리체계가 안내한 바로 그 방식이다.

창의력에 대한 또 다른 오해는 싱싱한 두뇌의 젊은 사람이 창의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구속하지 않아야 새로운 것이 나온다고 믿는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새로운 아이디어라는 것들의 대부분은 상관 없을 것 같은 대상이나 사건을 결합하거나 새로운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대상이나 사건, 그리고 기존의 관점 등이 머리 속에 미리 들어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들이 머리 속에서 해체되면서 원래와는 다르게 재결합하는 숙성과정을 거쳐야 한다.

자유로움과 창의성은 다르다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상상력이란 바로 이 대목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해체되고 결합될 지식과 경험이 먼저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학교와 미술학원만 오가며 입시미술만 경험한 대학 신입생들에게서 새로운 디자인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와도 같은 일이다.

이런 맥락에서 창의성을 중시한답시고 무작정 표현의 자유도를 높여주고 겉으로 드러난 복장과 태도가 자유로운 사람을 선발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다. 그보다는 폭넓은 상식과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을 선발하고 사물의 형질보다는 본질을 이해해 자유로이 형질을 변환시킬 수 있는 통찰력을 키워주는 것이 중요하다.

필자는 이런 이유로 강의시간에 절대 1:1 지도를 하지 않는다. 한 사람씩 과제를 평가해주되 그 지도과정을 기다리고 있는 나머지 학생들이 동시에 보고 들을 수 있도록 프로젝터로 벽에 투사한다. 일종의 중계방송을 하는 셈인데 이렇게 해 간접적인 창작경험이라도 늘려보자는 심산이다. 그러지 않으면 학생의 과목당 1학기 창작경험은 2~3회에 불과하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가 교육을 통해 할 수 있는 정도인 것 같다. 이것 이상의 창작경험과 상식의 폭을 넓히는 문제는 개인이 알아서 해결해야 할 대목이다.

이 정도에서 이야기를 마무리 지어야 할 것 같다. 그 동안 다소 비판적인 관점에서 디자인의 속성 혹은 우리 디자인계를 짚어 보았다. 그동안 디자인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워낙 많았기에 그런 전망 속에서 놓치고 있는 부분만을 집중적으로 다루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 디자인계가 우리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한 몫 단단히 할 것이라는 강한 믿음도 갖고 있다. 어제만 해도 그랬다. 한 선배의 전화를 받았는데 올해로 나이가 50이 된 분이다. 그 분은 연구비 한푼 없이 거의 20년째 한글꼴을 다듬고 보급하는 데 매진하고 있는 글자 디자이너다. 알파벳 수준으로 글꼴이 다듬어져야 한글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믿고 있는 그는 최근의 작은 연구 성과에 기뻐 필자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알파벳과 달리 자소 중심 글자인 한글의 조형성을 높이기 위한 중요한 실마리를 이해한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큰 부담 안 줄 테니 앞으로 지 선생도 좀 도와줘"하는 부탁의 말도 잊지 않았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2주에 한 번씩 글을 쓴다는 것이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이 글쓰기를 통해 생각이 정리된 부분도 있고 몇 가지 아이디어도 떠오르는 등 나름대로 얻은 것이 많았다. 반면 계획했던 일들의 진척이 느려졌던 것도 사실이다. 이제 그만 여기서 접고 그동안 밀린 일들을 해야 할 것 같다. 주변에도 좀 더 관심을 기울이고 선배의 요청에도 "미력이나마 보태겠습니다"하고 답해야 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부족한 생각과 서투른 글쓰기에도 불구하고 지면을 할애해준 <프레시안>과 격려와 비판을 아끼지 않은 독자들께 감사드리며, 올해에도 건승하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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