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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훈아의 '사생활'을 까발리는가"

[TV와 수다] 소문의 자가증식, 일상의 황폐화

인터넷 뉴스 검색창에 '나훈아'를 쳐보자. 페이지를 넘기다 지쳐 그만둘 정도로 최신 뉴스가 넘친다. '나훈아 괴담'으로 범위를 좁혀도 마찬가지다. 소문이 어찌나 떠들썩했는지 경찰이 수사까지 했다. 거기에 나훈아 본인이 소문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기자회견 일정까지 잡았다.

일이 이 지경이 되고 나니 '나훈아 괴담'은 정말 '괴상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출처 불명의 소문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된 소문이 당사자의 일상을 '정말로' 옥죄는 현대판 괴담 말이다. 이 과정에서 한 개인의 사생활과 자유는 철저하게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연예인과 소문의 '적대적 공생?

사실, 이런 이야기가 낯설지는 않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소문 경고형 속담이나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라는 소문 긍정형 속담은 우리가 소문이 곧 일상이고 현실인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게다가 종이, 라디오, 텔레비전, 인터넷 등 단계적 기술의 발전은 소문을 현실로 바꾸는 데 점점 더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냈다.

특히 인터넷은 소문을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한번 퍼진 소문은 끝없이 확대 재생산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소문은 '사실'이 되며 어떠한 해명도 '변명'으로 들리게 만든다. A니 B니 아무리 이니셜로 기사가 뜨더라도 어딘가에서 'A는 누구고 B는 누구'라는 댓글이 달리면 그걸로 게임 끝이다. 거기에서부터 또 다른 소문이 나오기 때문에 다 막으려면 인터넷을 통째로 갈아엎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 나훈아 씨의 공연 모습ⓒ뉴시스

연예인에 대한 소문은 누구에게나 최고의 소재다. 연예인의 잘 알려지지 않은 소문을 알고 있으면 어느 자리에서나 단번에 대접 받을 수 있다. 사적인 자리의 '뒷담화'는 언론이라는 공적인 필터링을 거쳐 인터넷에 유포된 후 다시 사적인 자리로 돌아온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소문은 소문을 낳으며 정교하게 축조되어 현실이 된다. 아무리 '아니라'고 주장한들 몇 년이 지나도 '그 때 그 일, 정말이지?'라는 소리가 나온다.

이런 시대에 연예인들도 영리하게 적응했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곳에서 소문이 시작되기 전에 알아서 '까발린다.' 온갖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해 누가 묻지도 않은 시시콜콜한 연애사까지 늘어놓는 그들의 모습이 때로는 안쓰러워 보이기도 한다. 이런 주요 무대였던 SBS <야심만만>이 종영하며 연예인들의 방파제 하나가 없어진 셈이지만, 대안은 아직도 널렸다. 아니, 소문이 퍼지는 것을 굳이 막을 필요도 없다. 악성 루머에 상처받아 괴로운 것이 있다면 <무릎팍 도사>를 찾아가 고민 상담을 하면 된다. 출연해서 제대로 한번 이야기 하면 있던 '안티'는 사라지고 없던 팬도 생긴다.

'소문'은 '생활'을 구속한다

하지만 아무리 연예인들이 소문을 '대범하게' 받아넘기고 심지어 '이용'까지 할 정도로 적응했다 하더라도 문제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소문 그 자체가 아니라 소문을 다루는 사회적 태도에 대해 생각해보자. 걷잡을 수 없는 루머의 확산 속에 연예인들은 철저하게 사생활을 간섭 받고 있으며 사생활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포기하길 강요당한다. 이번 '나훈아 괴담'은 그 모범(?)사례이다.

나훈아 씨는 지난 3월 '골치가 아파 쉬고 싶다'며 공연을 취소하고 활동을 중단하자마자 온갖 소문에 시달려야 했다. 처음 공연계에서 흘러나온 '신상문제설'은 증권가에서 확대되며 '이혼설', '중병설' 등으로 구체화되었다. 여기에 언론, 인터넷의 온갖 추측이 덧붙여지며 야쿠자와 국내 톱 여배우가 등장하는 '괴담'으로 성격이 변한다.

하지만 이 어이 없는 괴담은 점점 현실이 되었다. 의료계에서는 "일본 의료진으로부터 나훈아 씨가 수술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확인성 글이 떠돌았다. 여기에 한 스포츠 신문 기자가 개인 블로그에 나훈아 씨와 국내 여배우의 염문설에 대해 낯 뜨거운 표현과 이니셜을 사용하며 소문은 인터넷을 통해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 이니셜 때문에 거론되기 시작한 여배우들이 공식 부인에 나섰고 각종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톱뉴스로 다루자 괴담은 순식간에 온 사회의 관심을 받으며 '진짜'가 된다.

야쿠자와 신체 훼손이라는 극단적 소문은 경찰 수사까지 이끌어냈다. 경찰은 나훈아 씨의 출입국 기록 공개와 주변인 수사를 거쳐 '근거 없음'이라 밝혔지만, 때마침 나훈아 씨가 일본으로 출국한 사실이 알려지자 야쿠자 관련설은 점점 더 커졌다. 결국, 이 황당한 소문은 활동을 중지했던 나훈아 씨를 기자회견장으로 끌어내는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했다.

'골치가 아파 쉬고 싶다'면 말 그대로 골치가 아파 쉬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왜 골치가 아픈지에 대해서는 본인만이 알 것이며 그것을 만천하에 까발릴 이유는 없다. 그 이유가 나훈아 씨 자신만 알고 싶은 내밀하고 개인적인 것일 수도 있다. 쉬고 싶으면 그냥 쉬면된다. 하지만 나훈아 씨는 그런 당연한 권리를 누리지 못했다. 휴식은 1년을 채 가지 못했고, 그 마저도 이제 자신이 '쉬던' 10개월 동안 어디서 무얼 했는지 일일이 밝혀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도대체 나훈아 씨는 왜 이렇게 '심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 걸까.

연예인들은 종종 '공인' 논란에 휘말린다. 공인으로서 보편적 도덕성을 가져야 한다는 충고에 시달리고 사회의 역할 모델이 될 것을 강요당한다. 이런 이유로 그들의 시시콜콜한 일거수일투족은 감시 받고 통제 받아야 하는 것이 돼버린다.

과연 연예인이 '공인'이느냐도 의문이지만 한 개인은 누구나 개별적 욕구와 취향을 가지고 있으며 각자의 일상을 살아간다. 개개인을 철저하게 감시하고 통제하는 '빅 브라더' 사회가 아닌 이상에야, 인간이 지닌 사생활과 그 사생활을 위한 자기 결정권은 항상 존중되어야 한다. '온 국민'을 위해(그것이 '알 권리'든 '모범'이든) 누군가의 사생활은 포기되어도 좋다는 주장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결코 등장하지 말아야 할 위험한 생각이다. 게다가 그 간섭의 근거가 단지 '들리는 소문' 때문이라면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수백만 명의 '나훈아'를 만드는 사회

소문을 통한 사생활 침해는 비단 연예인에게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의 사생활을 퍼뜨리는 데도 일가견이 있다. 시시콜콜한 내 연애 이야기를 다른 사람을 통해 적나라하게 들은 적이 없는가. 자신이 한 적도 없는 행동 때문에 비난 받은 적은 또 없는가.

옆집 밥숟가락이 몇 개인지 안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이 사회는 남의 사생활에 지나치게 관심이 많다. 연예인이 악성 루머에 시달리면 CF가 끊기고 출연 제의가 줄어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사람도 나쁜 소문이 돌면 학교나 직장에서 불이익에 시달리기 일쑤이다. 연예인이 '온 국민'의 입방아에 오르는 것처럼, 평범한 사람들은 '온 주변인'의 구설수에 휘말린다. 그나마 연예인들은 텔레비전 토크 쇼에 나와 단번에 해명이라도 할 수 있지만, 일반인은 일일이 뛰어다니며 한 사람 한 사람 붙들고 해명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사생활에서의 자기 결정권, 소위 말하는 '사생활의 자유'를 얻기 위해 피나는 싸움을 했다. 포장마차에서 대통령 정책에 대해 한 마디 하다 국가 기관에 끌려가 조사받던 게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10년 전 학교 앞에서 경찰에게 불심검문을 당해 가방 안의 책에 대해 일일이 설명해야 했던 '안 좋은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어떻게 얻은 사생활의 자유인데, 이제는 사회의 배려심 없는 '입방아'에 의해 방해 받는다.

물론, 사생활의 자유에는 당연히 책임이 따른다. 개인의 자유만을 내세우며 타인에게 해를 입히거나 공익을 훼손하는 것은 정말 '개념 없는' 행동이다. 하지만 '골치가 아파' 잠시 활동을 중단하거나 회사에 휴직원을 내는 것이 그렇게 입방아에 오를 일인가. 그 누구도 이 정도의 사소한 생활의 자유까지 간섭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나훈아 괴담'이 흘러나온 뒤 몇몇 언론에서는 본인이 직접 나서 해명하라고 아우성이다. 결국, 25일 기자회견이 열리지만 나훈아 본인은 해명할 게 있을지나 모르겠다. 우리도 어쩌면 이 떠들썩한 이야기가 사실은 그냥 여행하며 쉬었다는 말이 전부라는 걸 알게 될지도 모른다. 어쨌든, 근거 없는 소문 때문에 자신의 건강 상태와 사생활을 일일이 '까놓고 증명해야 하는' 나훈아 씨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다. 그리고 소문이 한 개인의 '실제' 생활 보다 우위에 서는 모습을 지켜보며 공포에 떨 이 사회 많은 사람들(나를 포함해서)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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