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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북핵 위기'의 스산한 징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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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북핵 위기'의 스산한 징후들

한반도브리핑 <78> 위기 부르는 정치환경과 北의 선택

지금까지의 북핵문제는 일정한 패턴을 갖고 있다. 크게 보면 타협-교착-위기 국면의 반복이다. 6자회담의 구조가 어려운 쟁점을 뒤로 미루는 출구전략이기 때문에, 한 고비를 넘기면, 다음 고비가 기다리고 있다.

방코델타아시아(BDA) 금융제재 문제가 해결된 2007년 6월부터 타협국면이 시작되었다면, 신고문제를 둘러싸고 북미 양국의 입장차이가 드러나고 있는 2007년 말부터는 교착국면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한반도 정세의 객관적 상황을 고려해보면 조만간 교착국면에서 위기국면으로 전환될 것이다.
▲ 불신의 구조가 가동되기 시작한 북핵 협상 ⓒ연합뉴스

재연되는 UEP 의혹

북핵 불능화가 이루어지고는 있지만 낙관하기 어렵다. 북한의 핵 신고를 둘러싸고 불신의 구조가 가동되기 시작했다. 북핵문제는 '행동 대 행동'이라는 상응조치로 구성되어 있다. 북한은 핵 불능화가 약속대로 이행되는데, 테러지원국 해제를 비롯한 미국의 상응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의 핵 신고에 대한 불신을 갖고 있다. 신고 내역은 핵 폐기의 기준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중요하다. 신고를 계기로 북핵문제는 2단계 불능화에서 3단계 핵폐기로 전환하는 것이다.

문제는 다시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이다. 이 문제는 1994년 제네바합의 중단의 명분을 제공했고, 결국 2002년 10월 2차 핵 위기의 근거가 되었다. 2002년 '과감한 접근'(Bold Approach)을 준비하고 있었던 부시 미 행정부가 다시금 집권 초기의 강경정책으로 돌아간 계기 역시 농축우라늄 관련 의혹이었다.

그동안 우려할만한 의혹이긴 하지만 현존하는 위협으로 평가받지 못했던 이 부분이 다시금 논란이 되고 있다. 북한은 작년 알루미늄관의 수입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과는 관계없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북한이 제공한 알루미늄관 조각에서 농축우라늄 흔적이 발견되었다는 <워싱턴포스트>의 보도가 있었다. 농축 흔적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다. 애초 이를 공급한 파키스탄이나 혹은 실험실에서도 묻을 가능성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워싱턴 내부에서 협상파의 입지를 약화시키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HEU 의혹과 관련해서는 분명한 사실과 불확실한 추정이 존재한다. 분명한 사실은 파키스탄의 칸 박사가 북한에 원심분리기 12~20개 정도를 제공했고, 2002년 6월경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150톤의 원심분리기 외부용기를 수입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러시아에서 수입한 알루미늄 강관의 치수와 소재가 칸 박사가 북한에 제공했던 P2 개량형 원심분리기의 외부용기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이다. 150톤 규모는 원심분리기 2600여개를 만들 수 있는 양이다. 그 밖에 유럽의 우라늄 농축 컨소시엄인 유렌코사에서 22톤의 원심분리기 외부용기를 도입하려다 압수당한 사실도 있다.

그러나 무기급에 해당되는 우라늄 고농축을 위해서는 이 밖에 많은 설비와 부품, 자재들이 필요하다. 북한이 안정화 직류공급장치를 태국에서 수입하려다 실패한 사례는 있으나, 북한이 실제로 다른 부품을 수입한 증거는 찾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이 UEP를 시도한 정황은 있으나, 그 정도가 현존하는 위협으로 볼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미국이 요구하는 것 역시 최소한 확보된 증거에 대해서만이라도 납득할 만한 해명을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상응 조치의 이행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상호 불신은 증폭되고 있다. 지금까지의 6자회담이 쉬운 문제부터 풀어 왔다면, 이제부터는 더 이상 뒤로 미룰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결정적인 국면으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고, 그만큼 서로가 일방적으로 양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시간은 없고, 해결해야 할 현안은 쉽지 않다.

중재력 약화된 중국…아무것도 안하겠다는 한국

교착에서 위기로 전환할 가능성은 현재의 정치적인 협상 환경 때문이다. 2007년 초 BDA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부시 행정부는 연방은행을 통한 송금이라는 적극적 이니셔티브를 발휘한 바 있다. 당시와 비교해서 워싱턴 내부의 협상 동력은 현저하게 약화되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이제 임기 말로 들어서고, 미국은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우라늄 농축 의혹이 재연되면서, 협상파의 입지도 약화되고 있다. 의혹이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원하는 테러지원국 해제에 필요한 관련 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물론 그보다 더 중요한 환경변화가 있다. 바로 중재자의 역할이 제한적이라는 사실이다. 우선 중국의 대북 설득 능력이 과거보다 약화되고 있다. 북미 양자대화가 시작되면서, 북한이 중국과의 거리두기에 적극 나선 결과다. 중국 역시 2006년 핵실험 이후 느슨해지고 있는 북중관계에 대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으며, 최근에는 식량 등에 대한 수출관세를 부과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대북 식량수출을 통제하고 있다.

2003년 6자회담이 시작된 이후 결정적인 교착국면에서 중국은 북미 양국 사이를 적극적으로 중재해 협상국면을 만들어 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능력이 없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 새 정부의 외교안보 브레인이 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분과 인사들 ⓒ연합뉴스

한국의 역할도 달라졌다. 9.19공동성명 채택 과정에서, 혹은 BDA 해결 과정에서 한국은 미국과의 협의를 통해 교착을 풀 수 있는 대안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낸 바 있다. 워싱턴의 협상파들도 한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든든한 배경으로 충분히 활용했다.

그러나 새 정부가 들어서면 달라질 것이다. 북핵 해법은 병행해결론에서 선(先)핵폐기론으로 변화되었다. 새 정부는 우리가 먼저 무엇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위(無爲)가 하나의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한반도의 상황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현상유지가 가능하다는 가정은 곧 비현실로 드러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무위'라는 대책이 북핵 해결 과정에서 한국이 더 이상 독립변수가 아니라 종속변수가 되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한국 대선 이후 그동안 발언권이 약화되었던 워싱턴의 네오콘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것도 주목할 만한 현상중 하나다.

미국에서 협상동력이 약화되고 한중 양국의 중재 역할이 줄어들면, 교착국면에서 협상국면으로 전환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더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부시 행정부가 외교적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향후 몇 개월의 마지막 기회를 놓친다면, 이번 교착은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새 행정부가 구체적인 외교정책을 가다듬을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북한이 최근 보여주고 있는 행태는 이례적이다. 미국의 상응조치가 지연되고 있다고 불만을 표출하고 있지만, 불능화 과정은 계속하고 있다.

중국과의 거리두기를 노골화하면서,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올인'했던 북한의 입장에서 성급하게 판을 깨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식량 수급 사정도 어렵고, 경제전망도 밝지 않다. 베트남과의 관계 등 새로운 대외관계 확장에 나서고 있지만, 이 또한 6자회담을 비롯한 한반도 정세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에나 가능한 일이다. 북한 경제에서 남북경협의 비중과 역할이 커졌기 때문에 그만큼 대남관계에서도 신중하다.

그러나 앞으로 북한이 보여줄 행보는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악화될 경제상황, 변화하고 있는 동북아 국제정세, 그리고 불투명한 후계구도를 고려했을 때, 북한에도 시간 여유는 없다. 협상동력이 소진되는 것을 보면서, 북한은 다시금 움츠러들 가능성이 높다.

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중국의 대외환경을 제외하고는 북한에게 불리한 국제환경이다. 그렇다고 상응조치가 이루어 지지 않은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급격한 긴장조성이 협상국면을 여는 계기가 되었던 과거의 관성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그래서 높다. 이래저래 걱정되는 2008년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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