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작가 이문열씨입니다. 이문열씨는 1948년 서울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서 수학했습니다. 1979년 사람의 아들로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을 했고, 주요 작품으로는 '젊은날의 초상',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영웅시대' '호모 엑세쿠탄스'와 평역소설 '삼국지','수호지' 등이 있습니다. 또, 오늘의 작가상,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 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현재 이문열씨의 작품은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 전 세계 20여 개국 15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제가 찾아봤더니 작년에 호모엑세쿠탄스로 모신 게 1월 16일이더라고요. 거의 딱 1년 만에 모시게 됐습니다. 또 하나 놀라운 건 작년에 세 권짜리 책을 내셔서 만나게 됐는데 이제 두 권 밖에 안 나왔습니다만 10권짜리 책을 내셨다고 해서 참 대단한 생산력이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문열 : 네. 그러나 이 책은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연재했던 거라서 새로 쓴 것은 아닙니다.
박인규 : 그동안 미국에 계셨다가 최근에 귀국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지난 1년 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이문열 : 재작년에는 사실 '호모 엑세쿠탄스' 때문에 주변을 돌아볼 틈이 없었고요.
박인규 : 미국에서도 계속 쓰셨군요.
이문열 : 네. 작년은 이제 좀 돌아보면서, 또 미국에 갔으니까 미국에 왔을 때 하지 않으면 못하는 일 같은 게 있는가도 살펴보고, 그래서 조금 미국 구경을 했습니다.
박인규 : 무엇보다 이번 초한지의 작가 서문을 보니까, 초한지를 그 당시 신문에 연재하실 때의 심경이라든가 이런 것이 상당히 좀 어려웠다. 도피란 표현도 쓰셨던데 초한지를 써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이유는 어떤 거였습니까?
이문열 : 그때는 가벼운 마음이었습니다. 도피라는 말을 했는데 도피란 말보다도 어떤 문학적 긴장도 있고, 또 문학적 긴장 외에 내가 정치적 시비에 휘말리면서 어떤 사회적인 혹은 정치적인 긴장도 더해져서 조금 지치고 피곤한데 여유작작하게 중국 고전을 한 번 얘기하자. 그리고 마침 내가 안 한 것 중에 좀 시대하고 같이 볼 수 있는 것이 초한지 같아서 그렇게 초한지를 선택했습니다.
박인규 : 이문열씨가 쓰신 중국 소설은 앞에 말씀드렸지만 삼국지가 1700만 부...
역시 서문에 보니까 삼국지와 수호지는 원 소설을 번안이랄까 평역하는 정도였는데 이 초한지는 좀 달랐다. 거의 새로 쓰다시피 했다고 말씀하셨어요.
이문열 : 원래 저도 처음엔 다른 분들처럼 초한지 원본에 해당되는 서한연의를 검토했습니다. 그런데 이 서한연의가, 말하자면 속된 말로 이류급의 작가에 의해서 하나의 아류로 만들어진 것이고 또 내용도 너무 부실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걸 하기 위해서 사기를 가지고 조사한 역사하고 사이에 너무 괴리가 많아서, 또 양도 짧고. 그래서 이거 새로 한 번 정리해 봐야겠다 싶어서 이문열판 그야 말로 초한연의를 한 번 만들어 봤습니다.
박인규 : 책 표지에도 보니까 이문열의 사기를... 이런 표현도 있고 완전히 새로 쓰신 거나 다름없군요.
이문열 : 예. 거의 새로 썼습니다. 특히 어떤 소설적 구성 혹은 상상력 부분, 원전인 서한연의에 있던 것들은 거의 쓰지 않았습니다.
박인규 : 초한지라는 책은 사실 웬만한 분들은 다 아시죠. 삼국지라는 게 후한 이후 위촉오라면 초한지는 한나라 세울 때 유방과 항우의 대결.
이문열 : 바로 400년 전이죠.
박인규 : 어떻습니까. 아무래도 가장 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돋우는 게 유방과 항우. 장기에도 사실 초한이 있듯이요. 유방과 항우의 인간성? 리더로서의 인간성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이문열 : 글쎄요. 리더로서의 매력하고 개인적인 혹은 인간적 매력은 다를 수 있습니다. 사실 항우란 사람은 개인적이 능력에서는 뛰어난 데가 있고. 그게 반드시 힘뿐이 아니고 사실은 전투감각이나 전쟁에 대한 기획 같은 건 굉장히 뛰어난 사람입니다. 하나하나의 전투에 대해선. 그 다음에 인품에 있어서도 도도한 자부심이나 어떤 묘한 결벽 같은 건 이런 것들은 매력적이죠. 그런데 리더로 볼 때는 조금 무책임한 리더 같은 데가 있습니다. 특히 먹는 것. 군사들의 식량 같은 걸 보면 태도가 잘 드러나는데, 유방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백성들은 먹는 것을 하늘로 여기고 군주는 백성을 하늘로 여기니까 결국 군주에게 먹는 것은 하늘의 하늘이다. 이렇게 해서 모든 것이 곡창지대를 중심으로 작전이 벌어지고 또 항우를 괴롭히는 것도 주로 양도를 끊어가지고, 나중에는 노관과 유고도 보내고 해서 하여튼 양도를 끊어서 한군들이 늘 굶주리게 만들어 버립니다.
여기에 비해서 항우는 오히려 또, 식량 같은 하찮은 것은 이기면 나오는 것이니까. 아마 출발에서 잘못된 것 같은데, 출발에서 어떤 비장한 전투의 결의를 하는 건 좋습니다. 제일 처음에 이 사람이 성공할 때도 식량을 사흘분만 남기고 다 버려라. 솥도 깨버려라. 왜냐면 지면 죽을 것이고 이기면 그거 먹으면 되니까. 과연 이겼습니다. 이겨서 그 식량을 먹고 하는데 유방과의 싸움이 길어지면서, 또 유방이 이 식량을 무기화하면서, 지지도 않고, 져도 식량을 주지 않고. 아마 유방하고의 한 3년의 대치기간 동안 항우의 군사들은 대개 굶주림 때문에 전투력이 적어서가 아니고 굶주림 때문에 아마 고통당하고 종국적인 패배로 몰려갔을 겁니다.
박인규 : 말하자면 항우란 사람은 개인적으로는 출중한 사람이지만 백성이나 군사의 어려움을 살피는 데는 좀 게을리 했던
이문열 : 그리고 종합적 능력이랄까요? 종합적인 통치능력, 정치력 같은 건 떨어지고
박인규 : 그 말씀을 얼핏 들으니까 이번 대선에서 말이죠. 도덕성이나 경제나, 그런 식의 패러다임이었는데 그것과도 약간 대비가 되는 것 같은데요
이문열 : 글쎄요, 근데 저는 구태여 그걸 인식하고 쓰진 않았습니다. 그냥 보편적인 리더십의 유형으로. 일본 사람들이 이에야스하고 풍신수길을 가르듯이 중국사에서 저 유형이 되풀이돼서 나타나는데. 그래서 보편적인 유형으로 그렸고 우리 시대하고 붙여서 이건 누구고 뭐다라고 그렇게 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박인규 : 그렇다면 약간 좀 단순무식한 질문입니다만 유방과 항우 중에 유방이 좀 더 바람직한 리더십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이문열 : 글쎄 리더로서는, 사실 인간으로 보면 좀 부패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무능한 건 사실 무능한지 안 한지.
보통은 무능하게 그리는데 제가 보기엔 무능한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행태가 굉장히 부패하고 또 유들유들하고, 뭐랄까. 인간의 약점에 대해서 잘 파고듭니다. 인간이 뭐에 약한지를 잘 알고 근데 보통 그 역할은 보통 진평이라든가 장량이라든가 이런 사람들이 진언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진언한다고 해도 안 들으면 그만이거든요. 결국 유방한테도 그런 걸 좋아하고 그걸 채택하는 기본적인 성향이 있으니까 진평이나 장량이나 이런 사람들이 쓰는 계책이 아주 더티하고 고약한 계책이 많습니다.
박인규 : 정치라든가 이런 것이 아주 페어게임만으론 안 되는 측면이 있군요. 사실은
이문열 : 그렇죠. 특히 돈을 써서, 황금을 줘서 매수를 하는데 그 정도가 어느 정도냐 하면, 항우한테는 참 딱 하나뿐인 범증하고 항우 사이를 황금 4만금을 풀어서 이간을 시켜버립니다. 그건 참 보면 끔찍한 데가 있죠.
박인규 : 원래 신문에 연재하실 때는 항우가 자살하는 것으로 끝내셨는데 이번에 책을 내시면서는 그 이후 건국 이후의 과정도 새로 추가하셨다고요. 아직 책이 나오진 않았습니다만
이문열 : 그게 보통, 원작인 서한연의가 참고가 됐는데 보통 서한연의가 소위 이른바 제후박멸책이라고 해서 한신, 평월, 경포 같은 사람, 공을 세웠던 사람들을 다 제거하는
박인규 : 이른바 토사구팽이군요.
이문열 : 예. 토사구팽 쪽을 다 싣고 있습니다. 글쎄요, 이건 그냥 초한지로 해서 하면 초가 망할 때 끝이 나야 되는데, 그래서 원래는 그때 서한연의가 실은 것은, 초한지가 아니고 서한연의기 때문에 한나라 중에서 장안을 수도로 삼았던 한나라의 얘기기 때문에 그게 들어간 것 같습니다. 나는 그걸 빼려고 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워낙에 그 이야기는 초한지에 묻어서 널리 알려진 이야기고, 또 그대로 살펴봐도 재밌는 측면이 있어서, 어떤 또 다른 리더십의 특성을 볼 수 있는 측면이 있어서 한 권으로 해서 넣기로 했습니다.
박인규 : 유방과 항우가 활약한 시기가 이제 진나라가 처음으로 중국을 통일한 그 시기인데, 이문열씨께서 지금의 한국 사회가 말기와 비슷하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이문열 : 어떤 측면엔 그런 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진이 통일정책을 펼치는데 그때 보면 진과 나머지 6국의 관계에서 그런 유사한 측면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진은 하나고 나머지 6국은 서로 이해관계를 달리합니다. 이 여럿이, 결국 싸움을 보면 진과 나머지 6국의 싸움입니다. 그런데 이쪽은 6개가 분열돼 있는 것이고. 그래서 싸우는 방식은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여섯 개가 내부적인 통일을 해서 맞서면 이게 합종책이 됩니다. 반대로 그럴 거 없이 진나라하고 잘 지내면서 우리의 안정을 도모하자 그런 것이 연횡책이 되는데, 연횡책은 사실 이쪽 6국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진나라의 정책입니다. 이게 마치 이쪽에서 나온 것처럼 돼서 결국 그것에 의해서 6국이 다 차례로 망합니다. 연횡책을 가장 대대적으로 받아들인 나라부터 망하게 됩니다.
한나라가 제일 먼저 망하고 이런 식으로, 마지막까지 연횡책에 버틴 게 제나라였는데 결국은 제일 끝에 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 말하자면 대립하고 있는 두 족에서 화해, 이런 정책이란 것이 잘 되면 좋지만 잘못하면 연횡책이 이용되듯이 이용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연횡책을 쓰더라도 반드시 먼저 6나라의 내부적 일치, 내부의... 이것이 필요한데, 그래서 잘못 적용을 시키면 결국 우리도 내부적 통일 없이 내부적. 예를 들면 남한측이 서로 분열된 상태에서 그 중에 어느 세력 하나하고 북한하고 손을 잡는다는 것은 마치 연횡책에 말려든 것과 똑같은 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남한 내부, 우리의 어떤 일치를 회복하고 혹은 내부적 통일, 이것이 강조돼야 할 필요가 있단 생각이.
박인규 : 남북관계에서 보자면
이문열 : 지금과 같이 서로 분열돼서 어떤 세력 중 일부만 손을 잡아서는 문제가 있는 게 되죠. 햇볕정책을 뭐라고 부르든 간에, 평화정책이라고 부르든 간에 먼저 깔아야 할 것은 우리 내부이의사통일이라는
박인규 : 그 말씀은 의견일치가 안 됐다는 건 그동안 김대중 정부라든가 노무현 정부에서 했던 이른바 화해협력정책이 너무 앞서간 측면이 있다, 그렇게 볼 수 있을까요?
이문열 : 예. 그렇게 내부적 통합을 등한시하고... 그런 측면이 있습니다.
박인규 : 리더십 얘기를 하셨기 때문에 여쭤보는 건데요,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는 사실 엄청난 대중들의 기대와 열망이 있었는데 그게 절망으로 바뀌었다. 많은 분들이 그렇게 평가하고 있고. 지금도 물론 이명박 당선인에 대해서 기대가 많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두고 봐야 될 것이고. 어떻습니까. 리더십이라는 건 사실 요즘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을 두고 하는 말일 텐데 일반적으로는 정치인에 대해서 그렇게 좋게 보지는 않는 것 같아요 국민들이. 우리 시대의 정치인들, 리더를 보시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이문열 : 글쎄요, 저는 사실 잘 알 수 있는 자리에 있지 않았는데 2003년도에 공천심사를 어떻게 하게 되면서, 그러면서 한나라당 의원을 중심으로 국회라는 것, 혹은 국회의원들이라는 사람들을 가까이서 한 몇 달 동안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내 느낌은 생각보다는,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는 굉장히 똑똑한 사람들이 많다라는 느낌. 뭐 여러 가지 좋은 것도 있었고요. 그러나 한편으론 아주 걱정스러운 것도 같이 봤습니다. 봤는데 지금 같은 경우도 그렇습니다. 이번 선거 같은 것도 보고 있으면 낙관과 비관을 동시에 하게 되는데 어떤 면에서는 참 지난... 거친 대로 아마 우리 의회민주정치의 완숙을 보여줬습니다. 그러나또 한편으로는 여전히, 한편으로는 고질적인 부패 같은 것도 제거되지 않고 남아있고. 한편 낙관 쪽에서는 아까 말씀하셨다시피 비판하면서 배운다든가 그런, 권위주의도 청산되지 않았고. 이래서 비관스러운 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 경우에는, 전체적으로는 낙관 쪽에, 그리고 그들에 대한 신뢰가 더 강합니다. 그 중에는 나를 반대하는 사람도 있고 우호적인 사람도 있었지만 어느 쪽이든 그래도 많은 경우에 할 만한 사람들이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고 있습니다.
박인규 :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목표라면 남북통일, 남북화해를 얘기하는데 지금 이문열 선생님 말씀은 그 이전에 남한 사회의 사회통합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고. 사실 또 많은 분들이 사회통합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는데 예를 들면 앞으로 출범할 이명박 정부가 사회통합을 위해서 이런 걸 좀 해줬으면 좋겠다. 그런 좀, 너무 무리한 질문인가요?
이문열 : 제가 준비가 안 돼 있어서 그런데, 어쨌든 아마 사회통합의 필요성을 느꼈다면 틀림없이, 지금 현실적으로 어느 부분에 통합이 필요한 것인지, 어떻게 할 것인지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들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거기서 좋은 답이 나올 거라고 보고, 제가 구체적으론 준비한 답이 없습니다.
박인규 : 이문열씨는 알고 봤더니 건국둥이시더라구요. 1948년생이시니까 올해 건국 60주년인데요. 개인적으로 환갑이 되시기도 하고, 대한민국도 환갑이 되는데 남다른 소회가 있으실 것 같아요.
이문열 : 예. 제가 대한민국하고 거의 정동갑에 해당됩니다. 제가 난 시를 지금까지 확인을 못했는데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산고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리니까 라디오에서 대통령, 그땐 대통령 선거를 국회에서 간접선거를 했는데 그때 개표를 하고 있더랍니다. 이승만, 이승만, 이시형, 이시형... 이렇게. 그 시간인데, 아마 국회 속기록을 보면 시간이 나올 거예요. 그래서 짐작컨대 정오 부근이거나 한 여섯 시 부근이거나, 만약 투표를 오전에 했으면 개표가, 뭐 200표 밖에 안 되니까 정오쯤 했을 거고 오후 점심 먹고 시작했으면 한 대여섯시 됐을 거고. 그럴 정도로, 정확하게 새 정부가 만들어져서 대통령이 처음 만들어지던 날 태어난 것이죠. 남다른 감회가 있습니다.
박인규 :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탄생하는 순간에 개인 이문열도 탄생했군요.
이문열 : 네. 나도 났습니다.
박인규 : 많은 분들이 이번 대선을 보시면서, 민주주의로서 해볼 건 다 해봤다. 산업화도 했고 민주화도 했고 특히 정권교체도 보수세력이 갖고 있다가 민주세력에게 갔다가 다시 보수세력으러. 아무런 문제도 없었고, 말하자면 한 텀으로서 일을 다 했다고 말씀들 하시는데, 새로운 60년을 이제 시작하거든요 대한민국이. 앞으로도 과제가 많긴 합니다만, 작가로서 앞으로 대한민국의 앞으로의 과제랄까, 거창한 질문인가요?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이문열 : 사실 지난 2년 동안 의식적으로 어떤 구체적 정치적 이슈에 대해서 뭐 덤벙덤벙 자신없는 말을 함부로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어서 그런지, 거기에 대해서 특별한 준비된 답은 없습니다. 없으나, 그냥 어떤... 아주 지극히 느슨한 낙관으로 하자면, 뭐 지금까지 잘 돼왔으니까 앞으로도 잘 되지 않을까. 이런 느슨한 낙관으로
박인규 : 초한지 연재를 시작할 그 즈음에는 이문열씨의 책을 말하자면 진보세력에서 태우기도 하고. 화형식이라고 해서. 많은 분들이 아시지만 진보적인 세력과는 사이가 안 좋으신 세월을 보내오셨는데 지난 10년 동안 진보정부가 우리나라를 이끌어왔는데 진보세력에 대한 이문열씨의 생각은 어떠신 겁니까?
이문열 : 글쎄요. 지금 이렇게 멈췄으니까 오히려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순기능 내지는 그들의 기여, 이것밖엔 이야기할 게 없겠는데, 그렇게 보면 사실 기여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시행착오도 있고 또 어떤 것들은 통탄스러울 만큼 치우치기도 했지만. 특히 인권이라든가 자유와 민주화,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제가 짐작컨대 지금 우리나라의 전자산업수준으로 지난 10년 동안 올라갔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들은 아마 그들의 기여고, 또 그들의 실수도 사실은 한 반면교사로서 다음 권력이나 다음 주도세력한테 아주 유용한 교훈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건국 이후 50년을 보수세력이 우리나라를 이끌어오다가 진보세력은 딱 10년. 다시 보수로 넘어갔어요. 진보세력의 집권이랄까, 그게 10년으로 그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어떤 걸까요?
이문열 : 사실은 50년을 보수세력이 했다고 하지만 우리가 참 온전한 의미에서의, 그리고 또 우리가 인상적으로 말하는 그 보수는 아니었습니다. 왜곡돼 있고, 또 어떤 의미에서는 완전히 변형된 것이어서 내가 보기엔 사실 보수도 충분히 실험되지 않았다고 보여집니다. 이제 실험될 거라고
박인규 : 이제 제대로 된 보수가 뭔가를 해보는 거다.
이문열 : 예. 이제부터 다시 실험될 것이기 때문에. 다시, 또 내가 봐선 그래요. 이번에 아주 큰 차이로 이기고 세상이 바뀌었는데 하나도 크게 기뻐할 것이 없는 것은, 그 유권자들이 바로 5년 전에 노무현 대통령을 만들고 열린우리당을 과반수로 만들어줬던 분들이라고요. 그러니까 4년 5년 잘못해서 이렇게 뒤집어질 수 있으니까 지금 이 실험당하는 이 권력도 잘 해라 4년 5년 후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박인규 : 잘 해라.
이문열 선생님께서는 그동안 팔린 책의 양만 해도 국민작가라고 칭해도 별로 부족함이 없을 것 같은데. 일본의 시바 료타로라는... 보수작가라고는 합니다만 그 분이 '료마는 간다'랄지 '언덕 위의 구름'이라고 해서 일본의 근대 역사를 굉장히 소설로 형상화해놨다는 평가를 받고 있거든요. 물론 우리 역사는 사실 그리 성공한 역사는 아니긴 합니다만, 혹시 중국 역사가 아닌 우리 역사를 한 번 소설로 써보고 싶은 생각은 없으십니까?
이문열 : 그건 얘기가 좀 긴 얘기가 되는데, 사실은 제가 정색하고 얘기하고 싶은 주제 중 하나가 그겁니다. 말하자면 그것이 일종의 국민형성문학이랄까. 일본이 발원할 시기에, 명치유신은 했지만, 그래서 일본이라는 근대제국을 만들었지만 사실은 일본제국에 국민이 없었던 상태. 영주들의 농노 같은 신분에서 해방된 다수한 대중은 있지만. 그래서 그 황민을 만들어낸 것이 바로 그 시바 료타로의 작품 같은 것입니다. 그건 근대 와서 통일된 다른 나라에서도 그 역할을 한 작가들이 있는데, 그 역할을 하느냐 마느냐하고. 그리고 역사에서 글 쓰고 싶은 게 있나 없나하고는 조금 다른 문제가 됩니다. 짧게 말하면 역사에서 하고 싶은 건 근래 와서 하나 생겼습니다. 그건 뭐냐면 지난 2,3년 동안 어떤... 방송, 특히 드라마에서의 왜곡 때문에 아무 비판도 여과도 없이 고구려 중심사관이 완전히 그렇게 돼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특히 또 신라의 몫에 대해서 한 번
박인규 : 현실은 신라를 이어왔으니까
이문열 : 네. 그래서 한 번 생각해볼 기회가 있으면 한 번
박인규 : 알겠습니다. 시간이 너무 흘러서...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시죠?
이문열 : 네.
박인규 : 언제 다시 돌아오십니까?
이문열 : 제가 하버드대학 체류기간은 2008년 12월 말까집니다. 물론 거기 있지 않는다고 해서 벌금 물리지는 않는데, 이왕 한 거니까 기한을 채우고 올 생각입니다.
박인규 : 그동안 많은 작품을 쓰셨으니까 이번 1년 동안은 좀 많은 이런저런 사색을 하시면서 새로운 작품을 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이문열 : 고맙습니다. 저도 그럴 생각입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작가 이문열 씨를 초대해 '초한지'에 나타난 난세 영웅 호걸들의 활약상과 이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그의 메시지는 뭔지 얘기 나눴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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