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영 앞바다. 석양 녘 섬과 어선들의 모습이 더없이 평화롭다. ⓒ이상희 |
횟칼을 든 여검객들
활어시장은 마치 검투장 같다. 회를 뜨는 숙수마다 각자 나름대로의 비법이 있지만 다들 노련한 검객이다. 칼을 잡은 여 검객들. 좌판에 정좌해서 단칼에 활어의 숨통을 끊는 솜씨가 평범한 칼잡이의 그것이 아니다. 어느 여검객은 방어회를 뜬다. 퍼덕거리는 방어의 머리를 칼등으로 때려 기절 시킨 뒤 단숨에 멱을 따니 방어의 목이 댕강 잘리고 힘줄에서 피가 솟구친다. 그것을 흐르는 물에 씻으니 피가 쫙 빠져나간다. 생선회는 피를 빼는 것이 관건이다. 피를 잘 빼야 비린 맛이 없다.
포를 뜨고 껍질을 벗기고 부지런히 회를 썰고 있는 아주머니 옆에서 손님이 어떤 집은 방송 타고 나서 대박이 났더라는 소식을 들려주자 아주머니는 칼질을 멈추지 않으면서 대꾸한다.
"난 텔레비전 나왔는데 어째서 사람이 안 올까요. 여섯시 내 고향에 나왔는데. 통영 사람들은 얼굴 다 한 번씩은 나왔어요."
회를 뜨는 손님 부부는 전북 무주에서 바람 쐬러 통영까지 왔다.
"무주는 여름 계곡하고 겨울 스키 밖에 없잖에요."
대진고속도로가 뚫리면서 통영까지 금방이다. 그래서 자주 온다. 본래 계획한 것은 아니었지만 동호회원들과 연락이 닿았다. 회를 떠 가서 함께 술 한 잔 할 생각으로 20만원 어치를 주문했다. 방어, 광어, 참돔, 전어 등 모듬회가 상자 한 가득이다
생선회 좌판의 여자들은 횟감이 모자라면 그날의 손님 드는 추세를 봐가며 도매상에 추가 주문을 한다. "여기 광어 두 마리만 가 온나" 하면 배달원 사내가 금세 가져다 대야에 담아준다. 활어시장에는 관광객뿐만 아니라 통영 주민들도 회를 뜨러 온다.
"이모 잘게 썰어 주이소."
"딸내미는 중학교 다니나?"
회를 뜨는 와중에 안부를 묻고 정담이 오간다.
▲ 무주에서 놀러 온 관광객이 주문한 생선회가 상자 가득하다. ⓒ강제윤 |
삼치는 삼치가 아니다
중앙활어시장에는 선어와 조개 좌판도 있다. 조개 좌판의 여자들은 손님이 없어도 노는 법이 없다. 쪼그려 앉아 종일 홍합을 까고 바지락을 까고 딱새우 껍질을 벗긴다. 점심도 앉은 자리에서 배달시켜 먹는다. 잠시도 자리를 비울 수가 없다.
"문어 다섯 마리 2만 원."
문어 좌판 앞에서 살까 말까 궁리하던 손님이 씨알이 작아 뵈는지 그냥 지나친다. 그러자 문어 주인이 뒤통수에 대고 화살을 날린다.
"하나 바꿔주꾸마."
그러자 손님은 다시 돌아와 얼른 문어를 사간다.
올해 선어 좌판에는 병어가 많이 나왔다. 그러니 당연히 값도 싸다. 횟감용 병어 선어가 8마리 2만 원. 중간 크기니 조림을 해도 되겠다. 초장 집에서는 재료를 가져가면 매운탕이나 생선조림 등의 요리를 해주기도 한다.
이 시장의 선어들 중에 통영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생선은 볼락과 전갱이, 고등어 등이다. 하지만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삼치는 좀처럼 사가지 않는다. 관광객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대형 삼치가 터무니없이 싼 값에 거래된다. 도시에서 유통되는 작은 삼치만 먹어본 사람들은 큰 삼치가 얼마나 맛있는지 모른다. 우리가 흔히 생선구이 집에서 먹는 삼치는 사실 삼치가 아니다. 삼치 새끼다. 삼치와 구별해서 '고시'라는 이름으로 달리 부르는데 제대로 맛이 들지 않아 심심하다. 무게가 3킬로그램 이상은 돼야 비로소 삼치라 부른다. 그런 대형 삼치를 사다 구워먹어 보면 삼치의 진가를 알 수 있다. 그 진하고 깊고 고소하고 부드러운 속살 맛은 가히 일품이다. 삼치는 워낙 살이 많아 전을 부쳐 먹기에도 좋다. 이 시장에서는 옥돔도 싼값에 나온다. 제주처럼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값도 저렴한 편이다. 찬찬히 눈여겨 보면 시장은 귀물 천지다.
▲ 생선회는 쌈을 싸지 않고 먹어야 생선 고유의 맛을 즐길 수 있다. ⓒ강제윤 |
생선회 맛있게 먹는 법
활어시장에서 회를 떴다면 근처의 초장 집을 찾아가면 된다. 자릿세와 양념값을 내면 먹을 수 있다. 나그네는 개인적으로 생선회를 먹는 가장 안 좋은 습관이 초장을 찍거나 쌈을 싸먹는 것이라 생각한다. 야채에 된장, 초장, 마늘, 고추 등 자극적인 재료들을 잔뜩 올려서 쌈을 싸먹으면 생선회의 고유한 맛은 실종되고 만다. 그건 생선회가 아니라 잡탕이다. 생선회를 먹으며 야채를 곁들여 먹는 것은 좋은 일이다. 산성식품인 생선에 알칼리성 식품인 채소를 함께 먹는 것이니 영양의 균형을 이룰 수 있다. 그것이 음식의 궁합이다.
하지만 생선회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회는 고추냉이나 겨자를 곁들인 간장이나 된장 등 한 가지 소스에 찍어 먹고 나중에 야채를 곁들이는 것이 좋다. 여러 종류의 회를 함께 먹을 때는 광어나 도미 등 담백한 맛의 회를 먼저 먹은 뒤 방어나 전어 등 맛이 진한 회를 나중에 먹는 것이 좋다. 요즘 횟집엘 가면 대체로 레몬이 딸려 나온다. 그걸 생선회 위에 뿌리는 사람이 있는데 좋지 않은 습관이다. 레몬은 산성이 강하기 때문에 생선살에 묻는 순간 색이 변해버린다. 레몬은 자신이 먹을 소스에만 뿌려서 먹는 것이 옳다. 나그네는 레몬보다 청유자즙을 뿌려 먹곤 하는데 그 향이 레몬보다 덜 사납고 부드러워서 좋다. 통영은 유자가 많이 나는 고장이니 횟집들에서 수입 레몬보다 청유자를 쓰면 어떨까. 생선구이나 생굴을 먹는데도 청유자즙을 사용하면 훨씬 더 깊은 풍미를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 했지만 중앙시장에는 활어 골목이 하나 더 있다. 충무데파트 옆 라인과 그곳에서 강구안 문화마당 쪽으로 나오는 통영활어시장이 그곳이다. 이 활어시장은 좀 더 현대적이다. 지붕이 있어서 비오는 날도 영업이 가능하다. 또 개별 수족관도 있고 공간이 넓어 산뜻하다. 하지만 이 골목은 역사가 오래지 않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이 덜 붐비는 편이다. 중앙활어시장과 다를 바 없이 싱싱하고 값싼 횟감들로 가득하다.
▲ 우럭조개, 이보다 덧 맛있는 조개가 또 어디 있을까. ⓒ강제윤 |
목롯집이 그리우면
우럭조개는 이 시장에서 나그네가 맛본 최고의 조개다. 우럭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생선을 생각하지만 통영에서는 조개의 한 종류를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다. 이 특별한 조개의 참 맛을 맛볼 수 있는 기간은 아주 짧다. 겨울 시금치가 가장 맛있을 때 이 조개의 맛 또한 극점에 이른다. 다른 재료를 넣지 않고 살짝 끓이거나 데쳐 먹는 것이 좋다. 달디 달다. 자연의 단맛이란 이런 것이구나! 무릎을 치게 된다. 기교를 부리지 않아도 재료 자체로 완성되는 맛이란 이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시장에는 문어나 자연산 가리비 등을 싸게 살 수 있는 집들도 많다. 건어물 골목 입구에는 문어를 직접 잡아다 파는 집도 있다. 문어는 보양식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타우린 성분이 풍부해 해독작용도 뛰어나다. 술안주로 문어가 좋은 이유다. 사람들은 대체로 문어를 숙회로 먹지만 나그네는 꾸득꾸득 말려서 버터에 구워 먹는 것을 즐긴다. 또 문어죽도 별미다. 술 마신 다음 날 속을 달래는데 그만이다.
중앙 시장에서는 전통 죽만을 파는 죽 집도 여러 곳이 있다. 전통맛죽 집 주인은 작은 가게에서 9년째 매일같이 죽만 끓인다. 고구마 빼떼기죽, 호박죽, 녹두죽, 팥죽, 깨죽, 팥칼국수 등을 판다. 특히 녹두죽은 아프거나 쓰린 속을 달래는데 그만이다. 시장에는 또 제사나 잔치 음식만 만들어 파는 집들도 있다. 생선찜, 산적, 지짐, 각종 나물을 판매한다. 굳이 행사가 아니어도 안줏거리로 사다가 먹으면 좋다. 특히 민어나 우럭, 돔을 말려서 쪄낸 것은 안주로 최고다. '찌짐나라', '대보름' 집이 그런 집들이다. 매일 직접 만드는 여포두부집의 두부도 아주 고소하고 맛있다.
중앙시장 안에는 초장 집을 겸하는 오래된 목로주점이 여러 곳이다. 허름한 선술집 분위기에 취해보고 싶다면 중앙시장 내 송학횟집 옆 골목의 목롯집들을 찾아가면 된다. '로진실비', '만남광장', '이모식당', '부산식당', '혜화식당', '은희식당', '고성식당', '연정식당', '미성소주방' 등이 그런 집들이다. 생선구이, 매운탕, 장어구이, 장어탕, 아귀찜, 낚지 복음, 가오리무침 등의 안주를 내놓는다. 로진 실비나 미성소주방 같은 집들은 정해진 메뉴 없이 주인이 그날그날 마련한 안주를 내놓는 진짜 목로다.
▲ 충무김밥 집들은 저마다 다 원조다. ⓒ강제윤 |
많은 것은 없는 것이다
중앙시장 골목을 빠져나오면 강구안 문화마당 앞 상가에 가장 많은 것이 충무 김밥과 꿀빵집이다. 사람들은 통영에 오면 대체로 한 번쯤은 원조 충무 김밥을 맛보고 싶어 한다. 전국적인 명성 덕분에 지금은 어느 지방을 가도 먹을 수 있는 흔한 음식이 됐지만 아무래도 충무김밥은 본 고장인 통영에서 먹어야 제맛이다. 소를 넣지 않은 흰 쌀밥만을 김에 말아서 내는 김밥과 시래깃국, 오징어무침과 큼직한 나박김치 몇 조각. 어느 지방이나 유명한 음식들은 저마다 원조임을 내세우는 탓에 어떤 집이 진짜 원조인지 분간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통영 여객선터미널 앞에서 동피랑 언덕 가는 길의 중앙시장 부근까지 통영의 수많은 충무김밥 집들도 저마다 원조라는 간판을 달고 있다. 하지만 원조집을 찾아가는 일은 부질없다. 원조는 없다. 많은 것은 없는 것이다. 맨 김에 밥을 싸 장에 찍어 먹거나 김치와 함께 먹는 식습관은 바닷가 어느 집에나 있던 음식문화다. 어릴 적 나그네의 고향 섬에서도 그렇게들 먹었다. 충무김밥 집들 또한 자신의 집에서 먹던 것을 상품화해 손님들에게 팔게 된 터니 모두가 각자의 원조다.
충무김밥이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된 것은 1981년 서울에서 열린 '국풍 81'이란 관제 행사 때였다. 통영항에서 김밥을 팔던 어두리 할머니가 서울까지 올라가 '국풍 81' 현장에서 김밥을 만들어 팔았는데 한마디로 대박이 났다. 그 후 충무김밥은 전국적인 인기를 얻게 됐다. 어두리 할머니는 여객터미널 한 귀퉁이에서 김밥을 팔았다. 어 할머니는 일본에 살다 광복 후 고향 통영으로 돌아오면서 김밥장사를 했다 한다. 당시에는 대꼬챙이에 끼운 꼴뚜기와 무 깍두기가 김밥의 반찬이었다. 꼴.뚜두기는 봄 멸치젓갈 국물에 양념을 해서 무치고 깍두기는 간을 했다가 하루 뒤에 양념을 해서 담갔다고 하니 그것이 반찬의 비법이다.
충무김밥을 전국에 알린 것은 어두리 할머니다. 하지만 원조는 어 할머니가 아니다. 당시 김밥을 팔던 이들 각자가 다 원조다. 본래 충무김밥이 생겨난 것은 1930년대 부산과 여수 사이 여객선이 취항하면서부터다. 부산이든 여수든 어느 쪽에서 출발하더라도 중간 기항지인 통영에 도착하면 점심시간이었다. 여객선 승객들의 점심식사로 탄생한 것이 통영김밥이었다. 여객선은 부두에 접안하지 못하고 떠있었다. 그러면 작은 전마선에 김밥을 실은 김밥장수들이 노를 저어가 여객선에 올랐다. 여객선에서 김밥을 팔았다. 김밥 속에 소를 넣고 말아 두면 상하기 쉬운 까닭에 김밥과 반찬을 따로 만들어 팔게 된 것이 충무김밥의 기원이다.
원래 이름은 통영김밥이었지만 1955년 통영군 통영읍이 충무시로 승격하면서 이름도 충무김밥으로 바뀌었다. 1995년 충무시가 통영군과 통합되어 다시 통영시가 됐지만 여전히 충무김밥이란 이름을 갖고 있다. 이미 알려진 브랜드 가치 때문에 다시 통영김밥이란 이름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무튼 통영에서 먹는 충무김밥은 타지에서 먹는 것과는 그 맛의 깊이가 다르다. 잘 삭은 젓갈에 버무린 맛깔스런 나박김치와 싱싱한 오징어무침은 도저히 거부하기 어려운 유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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