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보편적인 것이 아름답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보편적인 것이 아름답다

[지상현의 Homo designans·18] 보편성과 일탈

"평균적인 얼굴이 아름답다"

통계학자 프란시스 골턴(galton)은 골상학에 심취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가 두상만 측정한 것은 아니다. 사람 얼굴의 각 부위를 일일이 측정해 평균적인 특징을 많이 가진 얼굴이 매력적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정작 가장 관심을 기울였던 그의 골상학은 근거 없는 우생학이라 비판을 받았지만 평균적 얼굴이 매력적이라는 주장은 나름의 타당성이 있어 후속 연구자가 이어지고 있다. 텍사스 오스틴 대학의 쥬디스 랭와 교수도 그러한 연구자의 한 명이다. 랭와는 골턴보다 더 세련된 방식으로 평균적인 얼굴을 합성해 골턴의 주장을 검증했다. 아래 그림은 랭와 교수가 합성한 얼굴들이다. 상단 좌측은 4명의 얼굴을 합성한 것이고 우측은 8명, 좌측 하단은 16명, 우측 하단은 32명의 얼굴을 합성한 것이다.
▲ 택사스 오스틴 대학의 쥬디스 랭와교수가 합성한 얼굴들. 히스패닉계 얼굴을 합성한 것이다. 16명을 합성한 것에서부터는 매력도가 그다지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

합성한 얼굴의 수가 늘어나면 매력도가 증가하지만 16명 정도부터는 그 효과가 미미해져 32명부터는 매력도가 거의 높아지지는 않았다. 32명보다 16명의 합성얼굴이 더 매력적이라는 반응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므로 16~32명 정도면 심미적 평가는 최대치에 이른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아래 사진들은 필자가 한국인의 얼굴을 골턴과 비슷한 방식으로 합성해 본 것이다. 이 경우에도 16명까지 급격하게 매력도가 높아지지만 32명을 넘어서면 거의 비슷해지거나 도리어 매력도가 조금 낮아지기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등에서도 비슷한 연구가 있었는데 결과는 마찬 가지다. 얼굴 합성은 여러 가지로 할 수 있지만 골턴의 방법이 가장 손쉽다. 먼저 비슷한 유형의 얼굴, 예컨대 얼굴이 긴 타입의 얼굴사진을 32장 정도 모은 후 포토샵에서 사진의 미간이 동일해지도록 크기를 조정한다. 그 다음 각 사진의 투명도를 1/32로 하여 미간의 위치를 일치시켜 모두 겹치면 공통적인 특징들은 진하게 그렇지 않은 특징들은 흐리게 나오게 된다. 예컨대 한 사람의 볼에 점이 있다면 그 점의 농도는 1/32이어서 매우 흐릴 것이다. 반면 32명 모두가 갖고 있는 특징이라면 매우 진하게 나오게 될 것이다.
▲ 필자가 합성한 것이다. 합성한 방식은 포토샵에서 레이어의 투명도를 이용한 것으로 골턴의 방식과 유사하다. 랭와의 결과와 마찬가지 였다.

보편적인 특징을 많이 갖고 있는 얼굴이 매력적인 것은 진화론적 유용성 때문이라고 한다. 예컨대 집단의 평균에 가까운 얼굴은 유전적 변이가 적다는 징표이므로 인간은 보편적 얼굴을 좋아하는 방식으로 유전적 변이를 피하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자리에서 하려는 이야기는 보편성이 갖고 있는 심미적 힘이기 때문이다. 자세한 작용방식을 알 수는 없지만 얼굴의 매력도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한 보편성이란 것이 다양한 인공물의 아름다움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예컨대 아래의 사진에서 보는 그림은 2007년 봄 도쿄 오다이바에서 개최된 "디자인 페스타"라는 젊은 디자이너들의 축제 현장에서 제작 중이었던 작품이다.
▲ 2007년 5월 도쿄 오다이바에서 개최된 "디자인 페스타" 현장. 참여한 디자이너들은 누구라도 원하는 만큼 이 그림제작에 참여할 수가 있었다.

이 아름다운 그림은 축제에 참가한 수많은 젊은 디자이너들이 각자 기분 내키는 대로 한 획, 한 형태씩 더해 완성되어 가는 중이었다. 먼저 그린 형태를 새로 그린 형태가 가리기도 하고 덧붙여지기도 하는 과정이 일주일의 축제기간동안 반복되었다. 여기서 보는 그림도 축제 기간이 하루 정도 남아 최종 모습은 아니다. 그러나 수많은 젊은 디자이너들의 보편적 표현욕구가 충분히 누적될 만큼의 모습은 이미 갖춘 상태다.

특정한 실용적 목적도 없고 자신의 솜씨나 스타일이 드러나기도 어려운 이런 그림에서는 대신 작가들의 심리적 욕구가 잘 드러난다. 흰 종이와 펜을 주면 누구나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어떤 욕구의 끌림에 의해 무엇인가 끄적거리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그래서 위의 그림에는 무수한 작가들의 심리적 욕구가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워낙 다양한 욕구가 표현되어 있다 보니 제각각인 감상자들의 욕구들을 충족시켜주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그림에는 많은 사람들의 심리적 욕구를 충족시켜줄 만한 어떤 보편성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민예품과 보편성, 그리고 아름다움

이런 공동창작품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의 보편성을 갖고 있는 미술품들이 있다. 바로 언젠가 이야기 한 적이 있는 민예품들이다. 한 명의 천재에 의해 만들어진 걸작과 달리 민예품에는 시선을 한눈에 잡아끄는 힘은 없다. 그러나 오래도록 음미할 수 있는 농밀한 아름다움이 있어 볼 때 마다 새로운 맛을 주는 것이 바로 민예품이다. 민예품은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다듬어진 형태를 갖고 있다. 생활용품이다 보니 사용하기에 불편함이 없어야 하고 삶의 방식과 맞아 떨어져야 한다. 그런 물건은 한 번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시대와 그 지역에 사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하나씩 보태져 완성되어 간다. 마치 도쿄 디자인 페스타의 공동창작품과 유사한 과정을 거친다.

도쿄의 작품이 7일간의 짧은 기간 동안 수 백명의 작가들이 집중적으로 참여하여 제작된 것이라면 민예품들은 수 십년, 길게는 수 백년에 걸쳐 한 두 사람씩 자신의 지혜를 보태어 만든 것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하나 더 있다면 도쿄의 작품이 보편적 심리적 욕구를 표현하고 있다면 민예품에는 보편적 심리적 욕구와 더불어 생활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실용적 보편성도 갖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아래 그림은 조선시대의 "다완"과 '편병'이다. 좌측의 다완은 도록('국보', 예경 산업사, 1986)에는 대접(분청사기철화목단문양대접)이라고 나와 있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받침이 높고 좁아 안정감이 없다. 일본사람들이 '이도다완(井戶茶碗)'이라 이름붙인 도기와 형태가 유사하고 시대가 동일해 다완이라고 간주하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 다완은 군더더기 없는 단순한 형태여서 최소한의 기능만을 생각해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굽(받침대)의 직선적인 모양이나 구를 반으로 잘라 놓은 듯한 몸통의 곡률 등은 현대의 미니멀리즘 디자인 못지않은 기하학적 단순성과 세련미를 갖고 있다.

그 옆에 있는 편병도 마찬가지다. 분청사기 귀얄무늬편병이라고 하는 이 편병도 구의 형태에 직선적인 두 개의 선이 관통한 듯한 단순한 구성이다. 그런데도 시대를 넘어서는 현대적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다.

필자 생각에 그 으뜸 원인은 대개의 미니멀 디자인이 그러하듯 보는 이가 쉽게 추측해낼 수 있는 단순한 구성 방식(두 크기의 모티브로 구성되어 있음) 그리고 이에 대비되는, 결코 우연적이라고 볼 수 없는 정교한 정원에 있다. 쉽게 말해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듯 한 단순한 구성방식에 컴퍼스로 돌린 듯한 정확한 구의 형태가 대비되어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대비가 기능만을 생각해서 만들어졌을 리는 없다.
▲ 분청사기철화목단문양대접(상단, 16세기, 국립중앙박물관), 분청사기귀얄문편병(하단, 16세기, 국립중앙박물관), 마리안느 브랜트의 주전자(1924). 우측에서 보는 단순하지만 정교한 기하학적 구성원칙이 심미적 의도 없이 나왔을 리 없다. 이러한 단순성은 20세기초 바우하우스의 디자인의 그것과 유사하다.

여기서 보는 도기 뿐만 아니라 많은 민예품들의 형태는 우린 민족 개개인의 마음속에서 조금씩 흘러나온 미감이 오랜 세월에 걸쳐 조심스럽게 다듬어 온 것이다. 때로는 조금 거슬리는 형태로 변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부분은 세월 속에서 스스로 교정되어 우리의 땅과 기후 속에 사는 누구라도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어떤 보편성을 획득하게 되었을 것이다.

보편성과 일탈

필자는 아직 얼굴에서 말한 보편성과 미술품에서의 보편성이 정확히 같은 성질의 것이라 단언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둘이 결코 무관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특히 두 보편성이 심미성에 작용하는 방식의 유사성을 생각할 때 심미적 스타일의 개발에 중요한 아이디어를 제공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예컨대 다완 가운데서도 백미라 일컫는 이도다완의 중요한 특징의 하나인 '순(입술이 닿는 부분)'의 기울어진 형태를 보자.
▲ 이도다완(16세기 추정). 16세기 중반 경상남도 해안지방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도기들은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최고의 보물로 대접받고 있다. 이도다완이라는 명칭은 1900년 이후에 붙여졌는데 그 이유는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순'부위의 형태가 비대칭하고 한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다. 앞에서 본 다완이 거의 완벽한 대칭성을 갖고 있다면 여기서 보는 이도다완은 어찌 보면 불량품처럼 보일 수도 있을 정도로 상단이 좀 일그러져 있다. 이 형태를 본 따 현대에 제작된 모사품들도 어느 한쪽으로 약간 비딱하게 기울어져 있다. 아래의 다완은 필자가 인사동에서 몇 년전 구입한 것이다. 이것 역시 한 쪽으로 기울어 있는데 절대 제작기술이 부족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요약하면 위의 이도다완은 크게 보면 보편성을 추구하지만 그러면서도 부분적으로 작은 일탈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일탈이 한국과 일본의 도자기 애호가들을 매료시키고 있는 것이다.

비슷한 일탈을 '분청사기귀얄문편병'에서도 볼 수 있는데 거칠게 휘갈긴 귀얄의 터치가 그것이다. 도자의 형태로 보아 정교하게 유약칠을 했을 법한데 그러지 않고 커다란 귀얄로 서너번 휘갈기기만 했다. 편병의 아름다움 역시 보편성과 그것으로부터의 작은 일탈이 있어 최고수준에 도달하고 있는 것이다.
▲ 좌측이 필자가 인사동에서 구입한 원래의 다완이다. 우측은 포토샵에서 좌우의 균형이 맞도록 수정한 것인데 좌측에서 보던 일탈이 사라지면서 개성없는 무색무취의 도기가 되어 버렸다.

얼굴에서도 마찬가지다. 완벽하게 보편적인 얼굴은 도리어 거기서 약간 벗어난 얼굴보다 매력도가 떨어진다. 랭와교수의 연구나 필자의 합성얼굴에서 보듯 16명이 넘어서면 매력도는 크게 증가하지 않는다. 보편성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그 다음은 보편성에서의 어느 정도의 일탈이 필요하다. 경우에 따라 우리들은 이 일탈을 개성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런 경향은 랭와 교수 등의 실험실에서 수차례 확인된 바 있다. 예컨대 평균적인 얼굴에서 코가 조금 크다거나 턱이 좀 긴 것과 같이 약간의 일탈이 있어야 가장 매력적인 얼굴이 된다는 것이다.

얼굴 매력도에서의 보편성의 역할을 미술품으로 연결시키는 것이 지나친 상상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은 이런 일탈의 효과까지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일탈을 강조하려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보편성이 전제되어야 일탈이 심미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얼굴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민예품에서도 보편성은 기능성과 심미성이 적절하게 균형을 이룰 때 생겨난다. 어찌 보면 기능성과 심미성의 균형이라는 말이 부족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민예품을 보면 기능성과 심미성이 결국은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둘이 한데 엉겨있다는 인상을 받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기능성과 심미성이 분화되기 이전의 어떤 디자인적 가치가 존재하고 이것이 호모데지그난스의 두뇌 속 깊은 곳에 숨어 보편성을 추구하도록 부추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래서 일탈은커녕 보편성을 얻는 것조차도 힘겨워하는 우리 평범한 디자이너들의 창작을 위한 또 하나의 원천으로 보편성이라는 문제를 생각해보고 싶은 것이다. 그런 후에야 새로운 디자인 스타일 개발을 위한 일탈을 꿈꾸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