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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보다는 '때묻은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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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보다는 '때묻은 능력'?

[시론] 'RIP'가 중심이 된 대선정국

이번 대통령 선거에는 별의별 명칭이 다 붙는다. 언론에서 추려보면 '엽기', '전대미문', '묘한', '최악의' 등등의 오명이 붙는데 한마디로 '감동 없는 대선'이라고 말하고 싶다.

유명한 정치학자인 최장집 교수는 학술적으로 표현하여 "'RIP'(폭로(revelation)-조사(investigation)-기소(prosecution))가 중심이 되는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라고 했는데 'RIP'는 미국 등에서 학술용어로 사용된단다. 그러고 보면 유식하게 'RIP 대선'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근래 대화문화아카데미에서 그 최 교수의 '대선과 절차적 민주주의'란 주제 발표를 듣고 이부영, 강금실 씨 등 정치인, 학자들이 토론을 가졌다.

나는 거기서 짐짓 색다른 대선정국 해석을 했다. 오해가 없도록 미리 한나라당에 투표하는 성향이 아니라는 전제를 달고서이다.

나의 관점은 이렇다. 한나라당의 이명박, 박근혜 경선이 말하자면 이번 대선의 본경기인 셈이다. 그리고 12월에 치러지는 선거는 후속으로 그 본경기 결과를 마무리 짓는 법률적인 요식행위인 것 같다.

노 정권에 대한 거부감으로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도는 압도적으로 되었다. 그 바탕 위에서 이명박, 박근혜 두 경쟁자가 가히 용호상박(龍虎相搏)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을 만한 치열한 대결을 하였다. 전국을 돌며 정견발표도 하고 투표도 하여 국민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흥행에도 성공했다. 게다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란 헌법기관이 나서서 경선의 투ㆍ개표관리를 하여 선거의 공명성을 보증해줬다. 마지막으로 박빙의 승부에서 석패한 박근혜 씨가 깨끗하게 결과에 승복해 국민에게 진한 감동을 줬다. 아름답다는 표현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실질적으로 이번 대선의 메인 이벤트는 끝났다고 국민은 느끼고 있는 것이다. 다만 "아직은..."하고 붙잡는 게 있다. 그것은 이명박 후보의 앞길에 도사리고 있을지 모를 '지뢰'를 두고서이다. 지금 BBK 문제에 관한 검찰의 수사가 한창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그 귀추는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도곡동 땅에 관한 검찰의 발표에서 보듯이 일도양단적인 명백한 검찰의 수사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검찰은 흔히들 고도의 정치적 판단을 하는 것 같다고 한다. 최소한 정치의 낌새에 둔감할 정도로 무딘 사람들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명박 후보에 대한 거대 언론의 보살핌은 너무 애틋하여 그 편애에 저항이 느껴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역사가 오랜 두 거대 언론의 논객들은 이렇게 변명을 해주고 있다.

"사건 구조는 간단하다. 김 씨가 벤처를 만들어 주가를 끌어올리려다가 잘 안 되자 돈을 끌어모아 미국으로 도망간 사건이다. .... 이명박 대선 후보는 증권을 잘 몰라 LKe 동업을 했을 때 모든 것을 김 씨가 주도했다." (<동아일보>)

"그들은 이명박 후보의 온갖 허물을 때론 그가 성공을 일궈냈던 그 시대의 탁류 탓으로 돌리고, 또 때로는 그가 몸 담았던 업종의 혼탁한 성격 때문일 것이라고 스스로를 달래가며 이명박 후보의 흉터에 애써 눈을 감았다. .... 의혹의 근원을 잘라낼 것인지, 그대로 버텨볼 것인지는 오로지 이명박 후보의 선택에 달렸다. '버리면 얻으리라'는 말뜻이 새삼 새로워지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조선일보>)

결국 눈감아주자는 이야기다. 기업가들에는 그런 말이 맞을지 모른다. 그러나 기업만 한다면 몰라도 대통령을 하겠다니 이야기가 다른 게 아닌가. 왜 그런 측면은 눈을 감는지...

그리고 이런 논법의 논객도 있다.

"역대 대선에서 보수 세력을 대표한 이들 가운데 한나라당의 이명박 씨가 가장 흠 많은 후보라면, 통합신당의 정동영 씨는 중도우파 세력을 대표했던 이들 가운데 가장 무기력한 후보다." (<한국일보>)

비슷한 해석을 가진 것으로는 <미디어오늘>의 사설이 있다. "유권자들의 심중을 헤아리는 여론조사는 차기 대통령으로 '무능'보다 '때묻은 능력'을 선호하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이야기가 난 김에 시중에서 얻어들은 재담 한가지 더.

"요즘 대선의 선택은 펀드 투자와 비슷하다. 약간 문제가 있어도 수완이 있는 이명박 펀드에 투자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 같다."

이쯤되면 대선은 증권시장 같은 투기판이 되는 건가. 이명박 캠프에서 '선의의 마키아벨리스트'론이 나온다. 물론 그 뜻을 학문적으로는 수용하지만...

그래도 아직 모를 일이다. 우리가 옛부터 해오던 말에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명박 후보의 자녀문제, 기사 문제 등 작은 비리들이 많이 밝혀져 왔고 땅소유권을 거쳐 마지막으로 BBK로 클라이막스로 가고 있으니 말이다.

이번 대선 국면에서 신문, TV, 인터넷을 포함한 매스미디어가 막강하다는 것을 더더욱 실감하게 되었다. 선거운동은 대부분 매스미디어를 통해서이고, 대중을 직접 상대하거나 동원하는 일은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언론에 의한 선거랄 것이다. 그런데 그 미디어 중 거대 미디어는 대부분 대기업편이다. 노 정권이나 여당 측에 대해 불균형하게 비판적이란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정당정치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위에 말한 대화문화아카데미 토론에서도 '정당정치의 위기'가 거론되었다. 정당이 약화된 데는 여러가지 까닭이 있다.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과 청와대를 분리한다고 하면서 당에 구심력이 생기는 것을 계속 문질러버린 데 원인이 있다는 분석이다. 그리고 정당의 원내정당화로 경비는 절약되었지만 원외조직이 현저히 약화되고, 그러기에 경선에 있어서 당내투표보다 더욱 여론조사에 의지하게 되는 현상이 생겼다. 폴(poll)에 의지한 당후보의 결정에 대해 일부에서 위헌, 위법론이 제기되기도 한다. 여하간 여론조사에 의지하게 될수록 매스미디어에 더더욱 영향을 받게 된다. 경마장의 경마경기를 보는 듯하게 되는 문제도 있다.

후보에 대한 'RIP' 선거로도 요동을 치고 있지만, 국내 제일인 삼성재벌의 갖가지 부정에 대한 국회의 특검결의까지 있어 경우에 따라 한국 정치의 바탕까지도 흔들리게 되었다. 삼성의 로비는 그만큼 문어발이고, '삼성 공화국' 또는 '삼성제국'이란 말이 상식으로 통용되게끔 막강한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이번의 특검이 잘되고 그 후속으로서의 제도정비까지 되어 재계가 합리화되고 현대화되는 계기가 마련된다면 그것은 우리 정치의 합리화와 현대화로도 직결이 될 것이다. 정치의 흑막 제거도 문제지만 그것은 재계의 흑막 제거와 병행되어야만 한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이치이다. 노 대통령도 "권력은 정부가 아닌 시장이 가지고 있다"고 어록에 남을 만한 말을 남기지 않았는가. 역시 한국정치는 누구의 표현대로 '소용돌이의 정치'이다. 삼성 특검은 하기에 따라 대선보다 중요할 수도 있다.

이회창 후보의 급부상을 보고 한나라당의 한 중진은 한나라당에는 '본래 이회창계와 박근혜계란 양대 산맥만 있었고 이명박계는 없었던 것이 경선을 거치면서 급조된 것일 뿐'이라고 분석을 했다. 그러기에 이명박계의 이재오 의원이, 본인은 나중에 부인하였지만, 이명박 후보가 승리하면 신당을 창당할 것이라고 시사한 게 아니겠는가. 일부에서는 이명박계가 영호남 화합을 명분으로 호남세력과 제휴할 것이란 관측까지 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박근혜계나 이회창계도 딴 살림을 준비할 수밖에 없고, 결국 정계는 일대개편의 계절을 맞을 것이다.

서울대의 <대학신문>에서 얼마전 학생 상대로 여론조사를 한 것을 보니 지지도가 이명박, 문국현, 권영길, 정동영(이회창 출마 선언 이전의 조사같다) 순으로 되어 있다. 보수를 자처하는 학생수도 대폭 늘었단다. 그리고 타 대학에서는 보수화가 더 현저하다는 것이다.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 대학생들도 취업에 관심을 갖게 되니 전날보다는 더욱 경제제일주의가 되는 것이고 그들 눈에 경제성장, 고용기회 확대를 가져올 것으로 보이는 후보를 선호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과 관련해 요즘 유행어가 된 '88만 원 세대' 이야기가 떠오른다. IMF 사태 후 대기업에 공적자금을 엄청나게 투입해 살렸듯이 젊은 세대의 장래를 위하여 이 '88만원 세대'에게도 융자 등 여하간 생산적 방식으로 공적자금을 얼마쯤 투입하는 길은 없을까 하는 것이다. 순조롭게 발전하지 못하고 참담한 좌절을 겪는 젊은 세대들은 그들의 인생을 위해서는 물론이고 나라를 위해서도 엄청난 손실이다.

찬반의 논의는 젖혀두고, 현실로서 신자유주의의 물결은 우리 사회에 출렁출렁 높이 파도친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이미 신자유주의는 굳건히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제 나머지 방파제가 얼마 안 남았다. 금산분리철폐, 순환출자제한 폐지 등등인데 그것마저 이명박 후보는 터버리겠단다. 대기업과 부유층에 편중된 경제살리기일 것이란 비판이 벌써 나오고 있다.

재미삼아 한번 인용해본다면 코뮤니스당 매니페토(번역이 여러가지로 된다)에 "부르조아지는 역사에 있어서 가장 혁명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나와있다.

기업이 혁명적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지금 신자유주의의 급물살에 휩쓸려서 그런 대기업의 혁명적 역할만 믿어야할 것인지.

대답은 우리나라에 있어서의 기업의 혁명적 역할을 인정하면서도 정부에 의한 조절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정경쟁은 물론이고 공공성과 사회연대를 위한 제반 조절이다. 그것이 정치의 발전이다. 지금 선진 정부들이 시행하고 있는 대부분의 정책이 그런 것이다. 털어낼 것은 관료주의적 타성이다. 또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복지정책을 위해 기업에 대한 부담은, 우리나라의 경우, 확대되어야만 한다. 그런 것을 하는 것이 국가이다. 그럴 때 "국가란 하나의 예술작품"으로까지 된다.

한나라당 세력이 집권하여도 남북관계에는 큰 변화가 없으리라 예측된다. 우선 6자회담의 틀이 순조롭게 자리잡아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언더독(underdog)의 저항이 클 것이기 때문에 서민을 위한 정책의 후퇴는 없으리라 본다.

다만 전경련적 방식의 제도개혁이 예상되는데 삼성특검 등의 여파로 각성되는 국민들 여론의 거센 저항을 받을 것으로 내다보여 일이 그리 간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삼성 특검이 전화위복이 되어 재계의 합리화, 현대화가 이뤄진다면 길게는 내각책임 개헌론자들도 힘을 얻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글은 잡지 <헌정>에도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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