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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대통령? 자이툰 철수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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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평화대통령? 자이툰 철수부터!

[기자의 눈] '평화戰線'을 말하는 정동영 후보에게

노무현 정부에서 외교안보정책을 담당했던 사람들은 2005년을 '참여정부 외교안보의 황금기'라고 말한다. 남북차관급회담(5월 16일)으로 시작된 '평화랠리'가 6.15 평양 행사에 남측 당국의 최초 참가, 김정일-정동영 면담(6월 17일), 대북 200만kW 송전 '중대제안' 공개(7월 12일), 6자회담 재개(7월 26일), 8.15 서울 행사에 참가한 김기남 북한 노동당 비서의 현충원 참배로 줄줄이 이어지던 시기였다.

그 중심에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 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이 있었다는 걸 부정할 사람은 없다. 정동영 장관은 2004년 김일성 조문 불허 사건 이후 1년 이상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녹이고 북한을 6자회담 테이블로 다시 나오게 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그 '황금기'의 결정판인 9.19공동성명이 나오기 직전 남북장관급회담을 위해 평양에 간 정 장관은 서울-평양-베이징을 실시간으로 조율하며 9.19공동성명의 산파역을 했다.
▲ 2005년 6.17면담 당시의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통일부 제공

당시 정 장관을 가까이서 지켜봤던 이들은 대북정책에 관한 정부 내 이견을 조정하고 돌파해 내던 그의 정치력을 지금도 이야기한다. 대통합민주신당의 대통령 후보가 된 정동영 전 장관이 '평화 대 반(反)평화'를 이번 대선의 주요 구도로 삼는 것은 근거가 없지 않은 것이다.

정동영 후보의 평화 이미지에는 운도 따랐다. 그의 통일부 장관 재임 시기(2004년 7월~2005년 12월)는 이라크 파병 논란(2003년~2004년 초), 미군기지 이전협상(2004년 상반기),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논란(2005년 논의 중단 후 2006년 합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논란(2006년) 등 굵직굵직한 외교안보 현안 때문에 시끄러웠던 시점에서 살짝 빗겨나 있다.

한미동맹을 흔들었다든가 안보불안을 가져왔다는 보수의 비난이나, 대미 굴종적 외교를 했다는 진보의 비난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것이다. 대신 통일부 장관 취임 한 달 뒤부터 시작된 개성공단 본단지 1차 분양은 그가 스스로 '개성 동영'이란 별칭 붙여도 딱히 시비 걸 이유를 찾지 못하게 한다.

그가 범여권의 최대 지분을 갖고 있는 당의 대통령 후보가 된 시점도 절묘하다. 2차 남북정상회담은 남측의 아이디어가 대폭 반영된 합의문을 남기고 끝이 났다. 북한 핵문제는 '전략적 결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미국과 북한의 태도 변화 때문에 순풍에 돛을 달았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그런 정세 변화에 여전히 미적거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정 후보가 그 틈을 파고들어 '평화를 원하거든 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적잖은 표를 모을 수 있을 것같다. 정치컨설턴트 박성민 씨의 말대로 평화는 아직 죽은 이슈가 아니다.

그러나 정동영 후보가 평화를 '아직 죽지 않은 이슈'가 아니라 '살아 펄펄 뛰는 이슈'로 만들어 대선판세를 흔들고자 한다면 반드시 풀고 넘어가야 할 숙제가 하나있다. 앞서 언급했던, 현 정부를 뒤흔들었던 '굵직굵직한 외교안보 현안' 중 여전히 마무리되지 않은 것 하나, 바로 이라크 파병 문제다.

북핵 해결과 자이툰 파병은 관련이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통합민주신당이 자이툰 부대 주둔 연장동의안을 국회에서 부결시키겠다는 당론을 만드는데 정 후보가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진짜 평화를 말하는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다.

자이툰 철군이 왜 '진짜 평화'인지는 무수히 많은 이유를 댈 수 있다. 파병과 평화가 과연 어울리는 것이냐는 근본적인 질문에서부터,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얼마나 부당한 것인지, 그런 전쟁에 협조하는 게 얼마나 명분없는 일인지, 수십만의 민간인이 희생된 전쟁의 폐허 속에서 '한국 기업의 진출'을 노리는 태도가 얼마나 부도덕하며 또 얼마나 비현실적인 것인지 등등.

하지만 그런 얘기를 구구하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제는 상식에 가까운 말이 됐을 뿐더러, 예컨대 한국 기업의 진출을 위해 자이툰을 더 두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명분을 만들려고 갖다 대는 허깨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정 후보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딱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면 될 것 같다. 예단해서 안 됐지만, 정 후보가 혹여 자이툰 연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면 제1번 이유로 들 만한 논리에 관한 것이다. 그에 대한 반박이다. 이 반박이 필요한 이유는 정 후보 스스로 그걸 허깨비가 아닌 진실로 믿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또 그가 강점이라고 여기는 한반도 평화 문제와 관련해서도 그럴싸한 이유로 포장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한미공조가 필요하고, 그를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미국에 협조해야 한다는 논리다. 자이툰을 그대로 두거나 일부만 철수시킴으로써 이라크 수렁에 빠진 미국을 계속 도와주면 한국이 원하는 방식으로 북핵이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에 따른 것이다.

2003~04년 첨예한 파병 논란속에서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주며 나름대로 위력을 발휘했던 이 논리는 북핵 문제가 해결의 가닥을 잡고 진전되는 현재의 분위기에서 또 다시 등장할 소지가 크다. 잘 되가는 일에 부정탈 만한 요소를 없애자는 것인데, 정 후보도 '한반도 평화를 위해!'를 명분으로 이 얘기를 할 공산이 높다.

정부가 자랑해 마지않고 정 후보가 계승을 선언하고 있는 '2007 남북정상선언'도 그 뿌리에는 이라크전 협조가 있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마침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17일 "올해 말까지 철군하겠다는 기존의 방침과 한반도 현안을 풀어나가는데 있어 한미공조의 중요성 사이에서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고 말했다.
▲ 자이툰 주둔지를 경계하고 있는 병사 ⓒ연합뉴스

그러나 지금의 국면은 북한과 미국의 전략적 결단에 의한 것이지, 자이툰 때문이 결코 아니다. 둘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북핵이 순풍을 탄 것은 실패만 거듭했던 대외정책에서 그나마 하나라도 건지고 싶어하는 조시 부시 행정부의 태도 변화와, 북한의 호응 때문이다. 남북정상회담에서의 성과도 남측의 제안이 비교적 충실했고 진정성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북한이 받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북한이 그걸 받은 것은 남북관계의 진전을 타고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로 나아가자는 전략적 고려 때문이었다.

정동영 후보가 통일부 장관에서 물러날 즈음부터 1년간 벌어졌던 일들을 돌이켜 보면 자이툰으로 북핵을 풀자는 말이 얼마나 '한국적인 희망사항'에 불과한 것인지를 정확히 보여준다. 평화랠리의 정점이었던 9.19공동성명 발표와 거의 동시에 취해진 북한에 대한 미국의 금융제재, 6자회담의 파행, 크리스토퍼 힐이 도쿄에서 6자회담 북한 수석대표와 만나도 말 한마디 걸지 못하게 했던 부시 행정부의 강경 방침, 그리고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와 핵실험.

그같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우리 정부는 어떡해든 문제를 풀어보려고 북한과 미국을 설득했겠지만 그런 노력은 양측의 강경 기류 앞에 맥을 못 췄다. 특히 미국은 금융제재를 어떻게 했으면 하는 표정이 역력한 한국 앞에서 '금융제재는 법집행의 문제'라며 외면해 버렸다. 우리 정부는 '자이툰까지 보내며 도와줬는데 이럴 수 있냐'는 말이 목구멍에서 넘어오려는 걸 겨우 참아냈을 것이다. 그랬다. 그 때도 자이툰은 이라크에 있었다.

일본과 영국의 경우를 봐도 이라크 파병이 각국이 처한 외교적 현안에서의 대미공조와 별 연관이 없다는 걸 잘 보여준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지난해 총리직에서 물러나면서 이라크에 파견된 자위대를 불러들였다고 해서 미일동맹이 흔들리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자위대 철군에 대한 괘씸죄로 미국이 일본을 따돌리고 대북 강경노선을 버렸다고 말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그건 순전히 미국 스스로의 필요에 따른 변화였다. 이라크 전쟁의 최대 협조자인 영국이 내년 말까지 전면 철군하겠다고 고든 브라운 총리가 나서서 천명했다고 해서 미영관계가 어떻게 됐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다. '기스' 정도야 날지 모르겠지만 영국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까지 저버릴 사안은 결코 아니다.

일본·영국 얘기가 나온 김에 하는 말인데, 정부가 파병 연장안을 제출하고 의회가 부결시키는 모양새를 취한다면 명분 면에서도 한국이 훨씬 낫다. 두 나라는 정부가 파병 연장안 제출 자체를 안 한 반면, 한국은 '정부는 원하는데 민의가 반대해서'라는 말을 떳떳하게 할 수 있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기본 명분 앞에 미국이 할 말은 궁색해질 것이다.

물론 정부 스스로가 연장안을 안 낸다면 뒤늦게라도 정신이 돌아왔구나 할 수 있겠지만 남북관계가 잘 되고 북핵 문제가 잘 풀려도 우리 정부에 그런 정도의 배짱이 있어 보이진 않는다. 이건 정동영 후보에게 또 한 번 절호의 기회가 된다. 정부가 연장안을 냈지만, 대통합민주신당의 최고 지도자로서 반대 당론을 주도하고 끝내 부결시킨다면 그 성과는 오롯이 정 후보의 몫이 된다.

한나라당이 '한미동맹을 파탄낸다'고 공격하면 어떻게 하냐고? 그땐 영국과 일본 얘기를 하면 된다. 약간의 기스는 날 수 있지만 파탄은 안 난다. 그리고 평화 얘기를 하는데 표계산을 해서 안 됐지만, 파병 연장안을 변호하거나 침묵하는 것보다 반대할 때 올 표가 더 많다. 거듭 인용하지만 평화 이슈는 아직 죽지 않았다. 당내 통합을 위해 친노파들을 끌어들일 논리로도 그만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어쩔 수 없이 십자가를 졌지만 내가 그걸 벗겨주겠다'고 한다면 최소한의 양심이 있는 친노파라면 공명하지 않을 수 없다.

'두 아들을 군대에 보낸 아비로서 위험한 곳에 있는 아들들을 데려오겠다'고 한다면 당파성 없는 국민들을 끌어들이기에도 손색없는 호소가 될 수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자이툰은 나날이 위험해지고 있다. 알 카에다 등 테러세력이 바그다드 부근에서 밀려나 북부 이라크로 유입되면서 자이툰이 있는 아르빌 지역은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게 됐다. 터키 의회가 17일 터키군의 이라크 월경 작전을 승인한 것도 이라크 북부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정동영 후보는 17일 개성공단을 방문한 자리에서 "12월 대선은 평화전선, 경제전선에서 치러질 것"이라고 말했다. 평화를 강조하는 데에서도 '전선(戰線)'을 말하는 형용모순처럼 그의 평화대통령론은 아직 어색한 구석이 있다. 그 어색함을 일거에 날려버리고 '평화 후보'라는 말에 누구도 토를 달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 자이툰 연장 동의안을 부결시키는 방법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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