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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주기? '정치인 학자'들, 제발 공부 좀 하라"

한반도브리핑<68> 실력 갖춘 보수적 전문가를 기다린다

정상회담의 성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성과는 적지 않다. 8개항과 2개의 이행조치들은 남북관계의 주요 내용들을 대부분 포함하고 있다.

특히 평화정착과 경제협력의 선순환은 평가할 만하다. 1차 정상회담 이후 7년의 시간을 우리가 교류협력의 시대로 부를 수 있다면, 이제는 평화경제 시대가 개막되었다. 6자회담, 북미관계, 남북관계라는 세 개의 선순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탈냉전 이후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역사적 전환기가 아닐 수 없다. 물론 합의만큼 이행이 중요하다. 이행과정에서 보완되어야 할 부분도 적지 않다. 외교적 협의가 필요한 부분도 있고, 실무회담을 통해 남북이 조정할 부분도 있으며, 우리 내부적으로 합의를 모아야 할 부분도 적지 않다.

대선을 앞둔 시기의 특성상 많은 논란이 있을 것이다. 보수적 입장은 있을 수 있고, 그것이 또한 국민여론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존중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생각과 입장들이 공존하는 것이 민주주의 아니겠는가? 그러나 보수적 관점도 중요하지만, 사실 관계를 왜곡해서는 안 된다. 몇 가지만 살펴보자.

종전선언 주체 논란, 무엇이 사실인가?

이 논란을 보면 세상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는 느낌이 든다. 얼마 전까지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를 둘러싼 대부분의 논의는 당사자 문제였다.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북한·중국 그리고 유엔이었기 때문에 한국이 과연 평화협정의 당사자가 될 수 있는지가 문제의 초점이었다. 여기에는 북한이 그동안 평화문제에 대해 북미 직접 접촉을 주장했던 냉전시대의 경험도 작용하였다.
▲ 1997년 9월 제네바에서 열린 4자회담 예비회담 장면. 한국과 중국, 미국 대표들이 김계관 북한 대표를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북한은 당시부터 한반도 평화논의의 한국 당사자성을 인정했다. ⓒ연합뉴스

그러나 당사자 문제는 더 이상 논란거리가 될 수 없다. 이미 1997년부터 1999년까지 진행된 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한 4자회담에 한국은 참여한 바 있다. 당시에도 북한은 미국과의 평화논의를 중시했지만 한국의 당사자 자격은 인정했다.

2005년 9.19공동성명에 '관련 당사국들이 별도 포럼의 형태로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를 시작한다'라는 문구는 한국이 적극적으로 삽입한 것이다.

당시 관련 당사국은 남북한과 미국, 중국을 분명히 지칭한 것이다.

일본은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에 참여하겠다고 주장했으나, 한국은 한반도의 미래가 걸린 평화체제 문제에 일본이 참여하는 것을 분명하게 거절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현재 남북간 군사 대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1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현재까지 6차례의 남북장성급회담이 이루어졌다. 서해경계선 문제로 난항을 겪은 것은 사실이지만 성과도 있었다.

비무장 지대의 선전물을 철거했고, 서해상에서 미흡하지만 충돌방지를 위한 조치를 합의했다. 심지어 북한은 장성급회담에서 남쪽에 대해 '한반도 평화체제의 당사자'로 평화정착에 적극적으로 임해달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반도 평화정착 과정에서 앞으로 시작될 4자회담보다 남북 군사대화가 더욱 중요해 질 것이다. 1990년대 후반에 열린 4자회담은 두 개의 분과를 구성했다. 평화협정을 다룰 제도분과와 군사적 긴장완화 분과이다.

앞으로 4자회담이 열리면 군사적 긴장완화 분과는 필요 없다. 남북 국방장관회담에서 실질적인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들을 합의하고 실천해 갈 것이기 때문이다. 평화협정이란 제도적 형태는 결국 남북 군사대화에서 진행될 실질적인 평화정착 수준을 반영할 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형성에서 분명한 것은 이미 남북한 주도의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협정을 비핵화를 앞당길 수 있는 중요한 상응조치로 생각하고 있다. 2006년 하노이 한미정상회담에 이어, 2007년 9월 시드니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노무현 대통령, 김정일 위원장과 함께 평화협정에 서명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고, 그런 의사를 남북정상회담에서 전달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종전선언을 3자가 할 것인지 4자가 할 것인지는 애매한 부분이 있다. 평화협정은 앞으로 열릴 4자회담에서 논의될 것이고, 서명 또한 남북미중 4자가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종전선언의 당사자는 다를 수 있다. 종전선언이란 말 그대로 한국전쟁의 종료를 정치적으로 선언하는 것이다.

평화협정은 돌이킬 수 없는 핵무기 폐기가 이루어져야 가능하기 때문에, 참여정부 임기 내에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연내 불능화가 마무리되고, 테러지원국이 해제되는 등 비롯한 북미관계가 진전된다면, 내년 1~2월에 정치적으로 한국전쟁 종료 선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종전선언의 법적 효력을 생각한다면, 최소한 미국의 적성국 교역법이 해제되어야 할 것이고, 적대관계도 어느 정도 청산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전쟁의 당사자면서 정전협정 관리의 주체인 유엔사령부의 위상과 역할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참여정부 임기 내인 내년 2월 이전에 종전선언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지, 외교 일정상 정상회동이 가능한지, 중국이 참여하는 것이 나은지, 그것은 외교적 협의를 통해 결정될 문제다.

NLL 무력화가 아니라, 서해 평화정착이다

필자는 NLL(북방한계선) 문제가 '프레임 착오'라고 주장해 왔다. NLL이라는 틀로 서해를 바라보면 답이 안 나온다. 서해 평화정착이라는 틀로 보아야 해법이 나온다. 해상경계선 문제는 분명하다. 1992년 남북한이 서명한 남북불가침 부속합의서의 정신을 따르면 된다. 해상경계선 문제는 논의의 대상이고,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남북한의 기존 관할 수역을 유지하면 된다.

그러면 현재 상황에서 어떻게 평화를 정착시킬 것인가? 직항로와 공동어로 방안은 그동안 장성급회담에서 많은 논의가 있었다. 직항로와 관련해 이미 해주 앞바다 모래나, 예성강 모래를 싣고 오는 남쪽 배들은 해주에서 인천까지의 직항로를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남쪽은 그동안 북한이 지속적으로 요구해 온 해주직항로를 거부해 왔다. 남쪽은 2005년부터 제주해협에서 북한의 민간선박 통행을 허용하고 있다. 그것도 확산방지구상(PSI)을 추진하고 있는 미국의 우려를 반영해, 북한에서 3국으로 가거나 3국에서 북한 항구로 들어가는 배들은 허용하지 않고, 오로지 동해에서 서해로, 서해에서 동해로 북한 지역내에서 이동하는 민간선박만을 허용하고 있다. 해주도 남북해운협력합의서를 준용하면 된다.

민간선박에 한해 직항로를 허용하고, 북한은 화물의 내용을 통보해야 하며, 의혹이 있으면 검색을 할 수도 있다. 직항로를 허용하면 인천 앞바다까지 북한 잠수정이 드나들 것이라는 얘기는 참으로 어이없는 주장이다.
▲ 제5차 장성급 군사회담 합의문 서명 장면 ⓒ국방일보 제공

공동어로의 방법론과 관련해서는 남북한의 입장차이가 있다.

남쪽은 NLL을 기준으로 남북 동일수역을 공동어로 수역으로 주장하고 있다. 북한이 제시한 공동어로 수역은 물론 NLL에 걸쳐있거나 NLL 남쪽 수역이다. 공동어로 수역을 정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NLL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이다.

기준수역을 정하는 게 어렵다면, 일부수역을 시범수역으로 설정해 당분간 운영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 남북한의 군사적 신뢰구축과 더불어 서해 평화정착이 증진되면 공동 어로수역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가면 될 것이다.

공동어로와 관련해 앞으로 남북국방장관회담 등을 통해 실무인 논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결론이 내려지든 어장이 늘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은 군사적 충돌의 가능성 때문에 NLL 밑에 어로한계선을 설정해 놓고 우리 어선들이 그 선을 넘지 않도록 어업지도를 하고 있다.

그 결과 중국의 불법어선만 들어와서 꽃게를 잡아가고 있다. 군사적 충돌방지 조항을 제도화하고 일부수역이라도 공동어로를 시작한다면 그것은 어로한계선 이북수역이 될 것이다. 어장이 늘어나는데 그것을 반대할 어민은 없다.

해주항이 개방되고 산업단지가 들어서면 인천~해주 항로는 활성화될 것이다. 해양평화공원을 설정해 공동으로 바다생태 환경을 관리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긴장완화에 도움을 줄 것이다.

해상경계선은 남북한이 관할하는 기존수역을 유지하면서 경제협력을 통해 서해 평화를 정착시킨다는데, 과연 상식을 가진 국민이 반대할 이유가 있을까?

퍼주기 논란, 경제협력의 ABC부터 배워라

벌써부터 비용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퍼주기'라는 이데올로기는 오랫동안 반북정서를 자극하는 전가의 보도가 되어 왔다. 벌써부터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경제협력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 것이라는 근거 없는 근거들이 난무하고 있다. 어떻게 계산했는지 모르겠으나 이미 30조원이 들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숫자도 나오고 있다.

첫째, 경제협력의 기반조성 비용은 북한이 아니라 국내 중소기업을 고려한 조치다. 국내에서도 공단을 조성하면 전력, 통신, 상하수도 시설 등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등이 지원한다. 대신 분양가격을 책정할 때 공단의 조성원가를 반영한다. 개성공단을 조성할 때 기본인프라 시설은 정부가 지원했다. 앞으로 2단계, 3단계로 확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 개성공단 노동자들 ⓒ프레시안

왜 그랬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개성공단 조성과정에서 대부분의 인프라 시설 등은 남쪽의 자재로 남쪽의 사업자가 조성했다. 만약에 국내에서 하듯 조성원가를 기준으로 분양가격을 책정한다면 중소기업 입장에서 경제적 부담이 클 것이다. 그래서 인프라 비용은 남북협력기금으로 보조한 것이고, 그것을 제외하고 중소기업들이 부담할 수 있는 수준에서 분양가격이 책정된 것이다.

'퍼주기' 비용에 개성공단 조성비용이나, 앞으로 건설될 해주공단의 조성비용을 포함한다면, 그것은 사실과 달라도 한참 다르다. 기본인프라 투자비용은 우리 중소기업에 대한 공적 보조이고, 그것을 퍼주기라고 한다면,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도대체 중소기업에 대한 정책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물론 토지공사 등 사업자가 공단조성에 드는 경비는 이후 분양을 통해 보존된다. 그 비용조차도 퍼주기 항목에 포함시키는 것은 당황을 넘어 황당이다.

둘째, 철도와 도로의 북한측 구간에 대한 개보수 비용이다. 개보수는 쉽게 말해서 리모델링이다. 집으로 치면 신축건물 정도의 리모델링이 있을 수 있고, 도배나 장판만 하는 경우도 있다.

북한의 철도와 도로는 낙후되어 있다. 개보수는 수준에 따라 천지차이다. 철도만 하더라도 중국이나 러시아에서 실태조사를 벌인 적이 있고, 이른바 북한 구간 현대화 비용으로 제시된 금액에는 차이가 많다. 어떤 수준의 개보수냐 따라 금액이 10배 이상 차이 나는 것이다.

경의선이나 경원선의 경우 국제철도 수준의 현대화는 당연히 중국, 러시아, 그리고 대륙철도 수송에 이익을 보는 유럽 국가들까지도 포함하는 국제 컨소지엄을 구성해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다만 최소비용으로 남북 철도 연결구간을 국제철도와 연결하는 사업은 우리가 우선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경의선 구간 중 개성에서 평산까지 우선적으로 개보수를 하기로 했다. 평산은 경의선과 경원선이 갈라지는 지점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평양에서 바로 이곳 평산을 거쳐 두만강을 넘어 러시아를 방문했다. 2900억원을 투자하면 실질적으로 남북횡단철도는 대륙철도와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의 철도와 도로를 보수하는 비용을 과연 퍼주기라고 할 수 있을까? 그 길로 우리 화물이 갈 것이고, 그 길로 대륙물류와 연결된다. 그것은 한국경제를 위한 투자이지 퍼주기가 아니다.

셋째, 핵문제가 해결되면 더욱 많은 경 협력 사업들이 진행될 것이다. 재원은 반드시 우리 재정으로만 충당하라는 법이 없다.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이 해제되고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가 완화되면, 국제금융기구의 공적 차관도 들어갈 것이다. 비록 그것이 소규모의 상징적인 차원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북한에 대한 국제적 신인도를 높일 것이다.

국제적인 재원조달 환경도 달라질 것이다. 상황이 나아지면 우리 재정이 부담하는 몫은 그만큼 줄어든다는 말이다. 마중물이라는 것이 있다. 초기 국면에서 북한을 중계거점으로 대륙경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마중물은 필요하다. 당연히 투자에는 편익이 있는 것이고, 그것을 일방적인 퍼주기라고 부를 수 없다.
▲ 4일 서해갑문을 참관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청와대 사진기자단

퍼주기 이데올로기는 경제협력 조차도 북한에 주는 지원이라고 우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도적 지원과 경제협력은 다르다. 개성공단에서 북한에 주는 인건비와 우리 중소기업들의 매출액, 무엇이 클까? 경제협력에 대한 투자를 퍼주기라고 매도할 수 없다. 그러한 주장이 중소기업들에게 절망이 될 수 있음은 이른바 '보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알 필요가 있다.

건강한 토론을 위하여

전문가는 없고 정치인만 난무하는 시대다. 정치를 하려면 그냥 학자라고 하지 말고 했으면 한다. 보수적 시각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토론은 최소한의 상식과 사실, 자기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현실의 변화를 알고 할 필요가 있다.

정상회담 이후 시점의 특수성 때문에 정치적인 논란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근거도 없이 증오를 부추기는 소모적인 논쟁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 보수라고 하더라도 사실왜곡을 하지 않고, 현실의 변화를 인정하면서도, 충분히 자신의 가치와 우선순위를 주장할 수 있다.

한반도의 현실이, 핵문제 해결이 남북관계의 발전이 앞으로도 어디 쉽겠는가? 많은 난관이 있을 것이고 극복해야 할 과제도 많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합의를 모아 가는 과정이 아닐까?

평화정착과 공동번영의 필요성을 인정한다면, 방법론에 관해 얼마든지 논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관점만 앞세우는 정치인 학자가 아니라, 실력을 갖춘 보수적 전문가가 논쟁에 나섰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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