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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몰라 초등학교 입학 거부당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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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몰라 초등학교 입학 거부당하다니…

김영길의 '남미리포트' <278> 16년만의 고국방문기

"하필이면 왜 아르헨티나지?"

살기 좋은 이 나라와 좋은 직장을 내팽개치고 그야말로 후진(?) 나라인 남미로 이민을 결정한 필자를 향해 주변 가족들과 친지들은 걱정스럽게 충고를 했었다.

약 22년 전의 일이다. 이민을 간다하면 조국을 등진 '배신자'라는 극단적인 표현도 없지 않는 시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필자는 고국 방문에서 만난 친지들을 통해 이민에 대한 시각이 과거와는 180도 달라졌음을 절감했다.

20여 년 만에 본 한국은 그야말로 충격을 받을 만큼 변해있었다. 필자가 살았던 집도 찾아갈 수 없을 만큼 변해버린 외형적인 발전, 이민자의 입장에서 보면 일견 호화롭게 느껴질 정도로 잘 살고 있는 한국인들의 삶. 고국은 풍요로움이 넘치는 나라로 다가왔다.

모두에게 어려웠던 시절이었던 80년대 초반 이민을 결정한 입장에선 지금의 한국인들의 삶은 주거환경이나 식생활 등 외면적인 면만 살펴보면 그야말로 선진국 수준을 훌쩍 넘어서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따라서 처음 며칠 동안은 "내가 괜히 이민을 간 건 아닐까"하는 후회가 들 정도였다.

이른바 386세대 이전 사람들에게는 이제는 한국만큼 살기 좋은 나라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자부심을 느낄 만큼 한국은 풍요로운 나라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였다.
▲ '해외 이주.이민 박람회'에 몰린 인파 ⓒ연합뉴스

학교에서 한글을 안 가르치다니!

하지만 386세대 이후에 태어난 젊은이들, 대학으로 치자면 90년대 학번 이후 세대들은 고소득이나 안정된 직장에 관계없이 대다수가 불안하고 정서적으로 빈곤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사실은 필자에게 또 다른 충격이었다.

머지않은 장래에 한국을 이끌고 갈 많은 젊은 인재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갈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들 중 상당수는 이민을 추진하고 있거나 이미 떠난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한국사회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이민을 고려하고 있는 이들 젊은이들은 소위 말하는 중산층, 연봉 6000만 원 이상의 소득자, 혹은 맞벌이 부부로서 1억 원 수준의 수입이 보장되는 여유로운 삶을 보장받은 이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이 고민하고 불안해하는 건 경제적인 문제보다는 자녀들의 교육문제였다. 필자가 만나본 30대 중반의 한 전문직 맞벌이 부부는 아이들을 건강하고 밝게 키우기 위해 남들이 으레 보내는 유치원에도 보내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연령이 되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입학직전 테스트에서 한글을 읽고 쓸 수 없다는 이유로 입학이 거부된 것이다.

다른 아이들은 초등학교 입학 전 모두 유치원에서 한글을 배워오는데 이 한 아이만을 위해 한글 교육을 기초부터 다시 시킬 수 없다는 게 입학 거부의 이유였다. 1년을 늦추어 겨우 초등학교에 아들을 입학시킨 이 부부는 그 후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열성 학부모가 되어있더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아이들의 학원 뒷바라지는 그런 대로 이해할 수 있었지만, 아이들에게 공부할 시간을 더 주기 위해 학부모들이 나서 학교 청소까지 해주어야 한다는 현실에는 분노마저 치밀더라고 흥분하기도 했다. 결국 이 부부는 이민을 결정했고. 금년 말 쯤 미국으로 떠난다고 한다.

'교육 매달려도 장래 보장 안 돼'

추석 연휴기간 동안 필자가 만나 본 40대 초반의 몇몇 부부들도 자녀들의 교육에만 매달려야하는 강요된 희생이 싫어 이민 정보를 알아보고 있었다. 돈과 시간을 다 바쳐서 자녀교육에 매달린다고 해도 자녀들이 장래가 보장된다는 확신도 없고, 무작정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의 분위기도 짜증스러워 이민을 심각하게 고려중이라고 했다.

이들은 필자에게 아주 심각하게 아르헨티나의 교육제도와 삶의 질을 문의하면서 이민정책까지 깊은 관심을 보였다.

남미의 교육정책을 듣고 난 이들은 하나같이 한국은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장기적인 투자보다는 전시행정 위주의 건물확장이나 도서관 증축 등 하드웨어 중심의 정책이 문제라며 교육정책의 획기적인 변화가 없는 한 한국의 장래는 기대하기 힘들다고 이민을 고려하게 된 동기를 설명했다.

물론 아르헨티나의 교육정책이 한국보다 앞서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학생들이 공부에만 매달리는 게 아니라 밝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학교와 학부모가 함께 노력하는 분위기가 한국과는 전혀 다르다는 말이다.

논 팔고, 소 팔아서라도 기꺼이 자식을 대학교에 보냈던 기성세대들의 교육열이 오늘의 한국을 이루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혜택을 받고 성장한 신세대들은 자신들의 전부를 강요하는 교육제도에서 벗어나고픈 모습을 분명하게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한국의 모든 젊은이들이 교육문제 때문에 이민을 고려하거나 한국을 떠날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필자를 만난 젊은이들은 필자가 이민자라서 막연한 호기심에 일시적으로 이민에 대한 관심을 가진 거라고 믿고 싶은 게 지금의 솔직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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