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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이 은행 소유해야만 세계적 금융기업 육성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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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이 은행 소유해야만 세계적 금융기업 육성되나"

이동걸, 금산분리 완화 요구에 일침..."이헌재 사단 청산돼야"

노무현 정부 초기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재직 중 돌연 낙마한 뒤 은인자중했던 이동걸(54) 한국금융연구원장이 21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금융감독위원장에서 물러난 윤증현씨 등 소위 '친재벌 관료'들의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서 주목된다.
  
  특히 재계가 줄기차게 거론해온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완화 요구를 옹호해 온 윤증현 전 금감위원장의 논리를 반박하는 그의 발언은 파장을 몰고 올 만큼 위험한 수위를 넘나들었다.
  
  "금산분리 완화 요구는 재벌이 경영권 세습에 이용하려는 것"
  
  이 원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일부 경제단체나 학자들이 우리나라처럼 금산분리 원칙이 철저한 나라가 없다고 주장하는데, 우리나라처럼 금산분리 원칙이 깨지고 있는 나라도 드물다"며 "제2 금융권은 소수의 산업자본이 사실상 지배하고 있어 금산분리는 은(행)산(업)분리라고 바꿔 불러야 할 정도"라고 지적했다.
  
  금산분리는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한 금융규제정책으로, 현행 은행법은 산업자본이 은행 지분을 4% 이상 소유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재벌의 은행 소유를 막고 있다.
  
  윤 전 금감위원장은 산업자본 이외에는 국내 은행을 인수할 자본이 없는 상황에서 금산분리는 국내 자본에 대한 역차별이며, 금산분리 때문에 국내 은행들이 외국자본에 대부분 넘어갔다고 주장해 왔다. 사실상 재벌의 은행 소유를 허용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온 셈이다.
  
  이에 대해 이 원장은 "과거에는 재벌이 금융회사를 인수해 사금고로 이용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는데, 현재 재벌의 최대 관심사는 경영권 세습이며, 여기에 금융회사를 활용하려는 것이 근본적으로 이해 상충을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산분리가 완화되면 재벌에 소유된 금융회사가 재벌의 경영권 세습에 악용될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한 것이다.
  
  이 원장은 또 세계적으로 금산분리 원칙은 그 정당성을 인정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글로벌 100대 은행과 100대 보험사 중 산업자본이 경영권을 행사하는 금융사는 3~4개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거대 산업자본(재벌)의 금융사 경영은 극히 예외적인 현상이라는 설명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육성은 비은행 금융회사로도 가능 "
  
  나아가 이 원장은 "꼭 은행을 통해야만 '금융의 삼성전자'를 만들 수 있다는 주장도 어불성설"이라며 "산업자본이 금융산업을 발전시키려면 이미 규제가 풀려 있는 증권이나 보험을 통해 글로벌 투자은행을 육성해 그 진정성과 실력을 보여준 뒤 산업자본의 은행진출을 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행 소유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재벌에 대한 비판인 셈이다.
  
  그는 장차 삼성이 전자그룹과 금융그룹으로 나뉜 뒤 삼성금융그룹이 은행을 소유하는 것이 이상적인 구도라면서 "은행을 인수하는 증권사나 보험사가 나왔으면 하는 게 내 희망사항"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는 '한국판 골드만삭스'가 만들어지기 위한 국내 자본시장의 빅뱅은 가까운 시일 내에 일어나기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삼성전자만 글로벌 기업이 되기까지 50년이 걸렸는데, 한국판 골드만삭스가 나오려면 20년 이상 걸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투자은행(IB)이 국제적 경쟁력을 갖추려면 자본 규모만 키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면서 "국제 금융시장에서 메이저가 되기 전에 국내에서 소외된 곳이 어디인지 찾아보고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IB 경험을 축적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편, 재벌이 장악하고 있는 비은행 금융회사에 대한 감독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해온 그는 생명보험사를 하나의 예로 들었다. 그는 삼성생명 등의 생보사 상장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대가를 내놓고 하라는 주장을 한 것이라면서 지난 4월 금감위가 승인한 상장안을 비판했다.
  
  "국내 3대 생보사, 회사별로 매년 1조 원대 사업비 차익 거둬"
  
  그는 "상장차익 배분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구분계리(사업별로 구분한 회계처리 방식)였는데 이번 상장안을 보면 보험계약자 이익 보호에 미진한 것 같다"면서 "생보사들은 역마진 상황에도 끄떡없이 버티고 있는 이유가 막대한 사업비 차익과 중도해약 수수료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3대 생보사만 매년 각 회사별로 1조 원대의 사업비 차익(보험료 중 보험사 영업비로 받는 돈에서 실제 영업에 들어간 비용을 뺀 것)을 거두면서 고객들에게 보험료 바가지를 씌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 원장이 이날 쏟아낸 발언들은 재벌과 맺은 그의 악연과 연결돼 여러 가지 해석을 낳았다. 지난 2004년 금감위 부위원장에서 석연치 않은 이유로 낙마한 이유가 삼성생명 상장 등에 반대해 삼성에 미운털이 박혔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금융권에 무성했을 만큼 그는 재계와 각을 세워온 인물이기 떄문이다. 특히 그는 '금산분리 원칙 사수파'로 재계의 심기를 건드려 왔다.
  
  그는 금융연구원장이 된 후에는 특정 기업의 이름을 공개석상에서 직접 거론하는 것을 꺼리고 있지만, 사석에서는 자본시장 육성을 명분으로 제정된 자본시장통합법이 현 정부가 삼성의 소원수리를 들어주는 성격으로 추진돼 오히려 금융 선진화를 방해하고 있으며, 재벌 계열 비은행 금융회사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등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그는 재경부 출신 관료들로 금융권 인사를 흔들고 있는 소위 '이헌재 사단'이 금융산업 발전을 위해서 청산되어야 한다며 직설적으로 성토하기도 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금융연구원은 민간은행들의 싱크탱크로 설립됐지만, 정부 용역 연구를 많이 해 관변단체로 인식된 면이 있다"면서 "진정한 시장주의자, 자본주의자를 자부하며 소신을 밀어붙여 온 이 원장이 금융연구원에 새로운 위상을 정립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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