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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위해 싸우자는 미국 양당은 한통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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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위해 싸우자는 미국 양당은 한통속"

[존 필저의 언론비평ㆍ②] 美 제국주의와 언론이 맺은 '침묵의 카르텔'

다음은 지난 8일 DemocracyNow.org(원문보기)에 실린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제작자이자 탐사보도 기자인 존 필저의 연설 '다음 시대의 자유: 필름메이커 & 저널리스트 존 필저가 말하는 선전, 언론, 검열, 그리고 미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Freedom Next Time: Filmmaker & Journalist John Pilger on Propaganda, the Press, Censorship and Resisting the American Empire)의 후반부다.

앞서 소개한 전반부("
세계 주요언론, 5대 미디어 그룹에 장악됐다")에서 존 필저는 오늘날 세계적인 주요 언론들이 '프로페셔널 저널리즘'을 표방하며 어떻게 언론을 가장한 거짓말과 선전을 늘어놓는지 고발했다.

이어 후반부에서 그는 미국이 관여한 캄보디아 대학살의 참상을 담은 자신의 다큐멘터리가 세계 60개국에서 방영됐지만, 정작 미국에서는 방영되지 못하는 내막을 사례로 들면서 미 제국주의와 미국의 주요언론들이 맺고 있는 '침묵의 카르텔'을 폭로했다.

또한 그는 팔레스타인에서 민주적으로 집권한 하마스에 대한 보도 사례를 통해 미국 주류언론의 진실왜곡이 어느 정도인지 충격적인 폭로를 하기도 했다.

필저에 따르면,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파괴할 것을 맹세하는 것으로 반복해서 보도되고 있지만 정작 하마스는 최근 10년간 휴전을 요구했으며,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는 등 큰 변화가 있다는 사실은 거의 보도된 적이 없다. 반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파괴할 것을 맹세하고 있다는 것은 보도금지 사항이라는 것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또한 그는 미국의 민주당도 공화당과 다르지 않은 현실정치세력임을 깨우칠 것을 역설했다. 그가 "내가 살아온 기간(1939년~)에 공화당이 아니라 진보적이라는 민주당이 전쟁을 더 많이 일으켰다"면서 "이러한 진실을 무시한다는 것은 선전체제와 전쟁도발체제가 지속될 것을 보장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존 필저는 대중들의 각성을 촉구하며 참된 민주주의를 위해 직접적인 행동에 나서고, 언론들을 이러한 운동에 종속시키는 길만이 진정한 대안이라고 역설했다. <편집자>


2005년 영국의 극작가 해롤드 핀터가 노벨 문학상을 받는 자리에서 기념비적인 연설을 했다. 그는 "스탈린 치하의 러시아에서 자행된 조직적인 인권유린, 만연된 잔혹행위, 독립적인 사유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은 서방세계에 잘 알려진 반면, 미국의 국가적 범죄는 문서화는 고사하고, 피상적으로 기록됐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 미국에 미운 털 박힌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오른쪽)과 이란의 아마디네자드 대통령.ⓒ로이터

그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곤경에 처한 사태는 미국이 마구 휘두른 힘에서 초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를 수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런 사태가 일어나고 있는데도 그런 일은 일어난 게 아니며, 중요한 일도 아니고, 관심도 없다"고 말했다. 핀터의 말은 초현실 그 이상이었다. BBC는 영국의 가장 유명한 극작가의 연설을 무시했다.

"상 받을 가치는 있어도 방영될 가치가 없다는 아이러니"

나는 캄보디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몇 편 만들었다. 첫 번째가 <Year Zero: 캄보디아의 조용한 죽음>이다. 폴 포트의 집권을 지원하기 위한 미국의 폭격을 묘사한 것이다. 닉슨과 키신저가 시작하고 폴 포트가 완수한 일인데, CIA의 기록만으로도 의문은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미국의 공영방송) PBS에 이 다큐멘터리를 제시했더니, PBS 중역들은 이 필름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들끼리 속삭이더니, 나보고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그들 중 한 명이 마침내 나타나서는 "존, 당신의 필름을 높이 평가합니다만, 미국이 폴 포트의 집권을 도왔다는 대목이 마음에 걸리네요"라고 말했다.

나는 "증거를 확신할 수 없다는 겁니까?"라고 묻자 그는 "그건 아니지만, 언론재판관(journalistic adjudicator)에 이 판단을 의뢰하기로 결정했습니다"고 말했다.

'journalistic adjudicator'라는 용어는 조지 오웰에서 나온 게 아닐까 하는데, 어쨌든 그들은 폴 포트로부터 캄보디아로 초청받은 단 3명의 저널리스트 중 한 명을 섭외했다. 물론 그는 나의 필름을 상영 불가로 판정했고, PBS로부터 다시는 소식이 없었다.

하지만 이후 <Year Zero>는 60개국에서 방영되었고,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시청한 다큐멘터리가 되었다. 그래도 이 다큐멘터리가 미국에서 방영된 적은 없다.

내가 캄보디아를 주제로 만든 5편의 다큐멘터리 중 PBS 계열방송사인 뉴욕의 WNET에서 단 한 편이 방영됐을 뿐이다. 그런데 그나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든 새벽 1시쯤에 단 한 번 보여진 것으로 알고 있다. 에미상도 받은 다큐멘터리인데 말이다. 상을 받을 정도의 가치는 있어도 방영할 가치는 없다니,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 있을까.

해롤드 핀터는 제국주의와 파시즘을 연관시키고 거의 보도되지 않은 투쟁의 역사를 묘사함으로써 전복적인 진실을 전달했다. 바로 미디어 시대의 거대한 침묵, 그리고 오늘날 선전의 은밀한 속살을 드러낸 것이다. 선전이 얼마나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이뤄지는지 나는 많은 미국인들이 그 모든 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늘 충격을 받는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조지 W. 부시와 그의 일당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경험으로 볼 때 부시 일당은 그 전부터 있었던 문제들의 극단적인 사례일 뿐이다.

내가 살아온 기간(1939년~)에 공화당이 아니라 자유주의 성향의 민주당이 전쟁을 더 많이 일으켰다. 이러한 진실을 무시한다는 것은 선전체제와 전쟁도발체제가 지속될 것을 보장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영국도 지난 10년간 미국의 민주당 격인 노동당이 집권하는 동안 블레어는 진보개혁주의자로 포장했지만, 근대 영국에서 어떤 총리보다도 더 많은 전쟁을 치르게 했다.

블레어의 현재 친구는 조지 부시이지만, 첫 사랑은 빌 클린턴이었다. 클린턴은 20세기 말 가장 폭력적인 대통령이었다. 블레어의 후임인 고든 브라운도 클린턴과 부시의 추종자다. 브라운은 일전에 "대영제국에 대해 사과할 의무를 가진 영국의 시대는 지나갔다. 경축할 일이다"고 말했다.

블레어, 클린턴, 부시와 마찬가지로 브라운은 역사에 대한 투쟁에서 자유주의자들이 승리했다고 믿고 있다. 미 제국주의 아래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이 잊혀지듯, 대영제국 치하의 인도에서 영국이 초래한 대기근으로 죽어나갔던 수많은 사람들도 잊혀질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또한 브라운은 블레어처럼 프로페셔널 저널리즘이 자신의 편이라는 것을 자신하고 있다. 대다수의 언론인들은, 그들 자신은 자각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스스로 이념적인 것이 아니라고 여기는, 현대사회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이념의 수호자로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념은 짜여진 틀에 갇히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 어떤 이념보다 강력하고 위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게 바로 자유주의(liberalism)이다.

자유주의의 덕목을 부정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 모두는 자유주의의 수혜자다. 하지만 그 위험성과, 제약을 받지 않는 목표, 그리고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선전의 힘을 무시한다면, 참된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의 권리를 부정하는 것이 된다. 자유주의와 참된 민주주의는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는 19세기 엘리트들의 전유물로 시작된 것이고, 참된 민주주의는 엘리트에 의해 주어지는 게 결코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투쟁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반전단체 '평화정의연합'(UFPJ) 고위 관계자는 최근 나에게 "민주당은 현실정치를 구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가 진보적 관점에서 제시한 역사적 지점은 베트남이다. 그녀는 당시 존슨 대통령이 베트남에서 철군하기 시작한 것은 민주당이 지배한 의회가 전쟁에 반대하기 시작한 뒤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베트남에서 철수하기까지는 그 후로도 4년이나 지난 뒤였다. 그 기간에 미국은 베트남, 캄보디아 그리고 라오스에서 그 전의 기간을 모두 합한 기간보다 더 많은 사람을 폭격해 죽였다.

이라크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도 똑같다. 지난해부터 폭격은 두 배로 늘었는데도 보도조차 되지 않고 있다. 누가 이라크에 폭격하기 시작했나? 빌 클린턴이었다. 1990년대 클린턴은 '비행금지구역'으로 완곡하게 표현한 이라크 곳곳에 폭탄을 쏟아부었다.

동시에 그는 경제제재로 불리는 중세식 포위공격을 병행해, 100만 명을 죽인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그 중 어린이가 50만 명이나 된다는 것은 문서로도 기록돼 있다.

이런 집단학살의 만행이 소위 주류언론에 보도된 적은 거의 없다. 존스홉킨스 공중보건 대학원이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라크 침공 이후 65만 5000 명의 이라크 주민들이 전쟁의 직접적 피해자로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블레어 정부가 이 수치가 신뢰할 만한 것이라고 인정한 공식문서들도 있다. 지난 2월 보고서를 작성한 레스 로버츠는 그 수치가 포드햄 대학이 조사한 르완다 인종청소의 사망자와 맞먹는 것이라고 밝혔다.

로버츠의 충격적인 폭로에 대해 언론의 반응은 '침묵'이었다. 한 세대에 걸친 기간 동안 가장 대규모의 조직적 살해라고 할 수 있는 이 사건은, 해롤드 핀터의 말처럼 "일어나지 않았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었다.
▲ 팔레스타인만큼 서방언론의 왜곡보도에 시달리는 곳이 있을까. 팔레스타인들이 이스라엘 국기를 불태우고 있다.ⓒ로이터

스스로를 좌파로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부시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은 지지했다. CIA가 오사마 빈 라덴을 지원했다는 사실은 무시됐고, 클린턴 행정부가 비밀리에 탈레반을 후원하고, 심지어 CIA에서 고위급 브리핑을 제공해 주었다는 사실은 미국에서는 모르는 사실로 되어 있다.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전역에 걸쳐 송유관을 구축하는 사업에 석유메이저 유노칼의 비밀 사업파트너였다. 클린턴 행정부의 한 관료는 탈레반이 여성들을 처형하는 자들이라는 지적을 받자, "그럴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부시가 9.11 테러 때문이 아니라 그로부터 2개월 전인 2001년 7월에 이미 탈레반을 공격하기로 결정했다는 강력한 증거가 있다. 미국에서 이런 사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얼마나 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됐는지 알려지지 않은 것처럼 적어도 공개적으로는 모르는 일로 되어 있다.

내가 알기로 주류언론으로는 영국 <가디언>의 조나단 스틸 기자만이 아프가니스탄 민간인 희생자를 조사했는데, 그가 추산하기로 2만 명의 민간인이 죽었다. 그것도 3년 전 얘기다.

팔레스타인의 비극이 계속되는 것도 소위 진보적 좌파(liberal left)의 침묵과 순응에 큰 책임이 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파괴할 것을 맹세하는 것으로 반복해서 보도되고 있다. 뉴욕타임스, AP, 보스턴글로브 등 어떤 주류언론이건 그런 보도를 일삼는데, 그것은 거짓이다.

하마스가 지난 10년간 휴전을 요구했다는 사실은 거의 보도된 적이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하마스가 최근 몇 년 사이에 이념적으로 역사적인 전환을 겪었다는 사실이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현실이라고 부르는 상황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며,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파괴할 것을 맹세하고 있다는 것은 보도금지 사항이라는 것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영국 글라스고 대학이 팔레스타인에 대해 선구적인 연구를 했는데, 영국에서 TV 뉴스를 시청하는 젊은이들을 인터뷰해보니, 90% 이상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불법거주자라고 생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TV를 볼수록 그들은 진실을 더 모르게 되는 것이다.

현재 가장 위험한 침묵은 핵무기와 냉전 시대로의 회귀에 대한 것이다. 러시아는 동유럽에 미국이 구축하려는 방어시스템이 그들을 복속시키고 모욕하려는 의도로 추진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있다. 하지만 주류언론들은 푸틴이 신냉전을 획책하기 시작했다고 떠드는 기사를 헤드라인으로 내보내고 있다.

소위 '신뢰할 만한 대체핵탄두(RRW)' 프로그램으로 불리는 완전히 새로운 핵시스템 개발에 대해서도 침묵이 존재한다. 이 프로그램은 재래식 전쟁과 핵전쟁의 경계를 무너뜨리려는 미국의 오래된 의도에 따른 것이다.

"자유를 위해 싸우자는 민주당의 선동에 넘어가지 말라"

그 와중에 주류언론들은이라크 침공 전과 똑같이 이번에는 이란을 두들기며 힘을 약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민주당은 어떤가. 버락 오바마는 미국 자유주의 진영의 오래된 선전기구인 외교협회(CFR)의 대변자가 되었다.

오바마는 "해외 주둔 미군의 철수를 원하지만, 이란과 시리아처럼 숙적에 대항하는 군사력은 배제할 수 없다"고 역설했다.

이런 것이 바로 모든 미국인, 미국인이 아닌 많은 사람들의 삶 속에 스며드는 선전, 세뇌의 핵심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미 행정부가 50개의 외국 정부- 대부분이 민주정부-를 전복시켰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 과정에서 30개국이 공격을 받아 폭격당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부시 때리기'는 바람직하고 정당한 것이지만,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자유를 위해 일어서서 싸우자는 민주당(the Democrats)의 허튼 사이렌 소리를 받아들이는 순간, 역사를 위한 투쟁은 패배하고 우리 자신들의 입에도 재갈이 물리워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흥미로운 질문이기는 한데, 제3세계의 사람들은 좀처럼 묻지 않는 질문이다. 그들은 그 답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민주적 (democratic)-소문자 'd'- 좌파 진영의 많은 사람들이 대답해야 할 질문이기도 하다.

내가 저널리스트가 된 이후 요즘처럼 대중의 의식 수준이 급격히 향상된 적이 없다고 본다. 물론 그 방향과 형태는 불확실하다. 사람들이 정치적 대안이 있는지 상당히 회의를 느끼고 있고, 민주당이 좌파 유권자들을 유혹하고 분열시키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뇌, 더 나은 삶이라는 신화, 조작된 공포 조성이 만연된 현실을 고려할 때 비판적 대중의식이 성장세는 그 어느 때보다 고무적이다.

뉴욕타임스가 지난해 사설로 고백한 이유가 뭘까? 부시가 일으킨 전쟁들을 반대하기 때문이 아니다. 이란에 대한 보도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사설은 대중이 미디어의 은폐된 역할을 인식하기 시작했으며, 보도의 행간을 읽기 시작했다는 것을 인정한 드문 사례인 것이다.

이란에 대한 공격이 감행된다면, 그 후폭풍은 어떨지 예측하기 힘들다. 국가안보와 관련한 비상대권이 부시에게 부여될 것이다. 헌법이 정지될 가능성도 있다. 이미 소위 테러리스트와 적 전투원(enemy combatant)들을 색출하기 위한 법들은 이미 시행되었다.

대중도 이러한 위험을 인식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미 9.11 테러 이후의 상황과 사담 후세인과 알카에다를 연결시킨 선전 이후에 벌어진 상황들을 지겹도록 겪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유권자들이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을 찍어준 것도 그 때문인데, 배신 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대중은 진실을 필요로 하고, 언론인들은 권력의 시녀가 아니라 진실을 알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나는 기업형 언론들을 감시하고 해체하고, 맞서는 대중운동의 산물인 '제5부'가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모든 대학, 모든 언론대학, 모든 편집·보도국에서 언론을 가르치는 사람들, 언론인들 스스로 조작된 목표의 명분 속에 벌어지는 유혈사태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그런 운동이 언론계 내부에서 일어난다면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대개혁의 바람이 불어 닥칠 것이다.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며, 침묵의 카르텔도 깨뜨릴 수 있다. 영국에서는 전국언론노조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 이스라엘 상품 불매운동을 선언했다.

웹사이트 미디어렌즈는 BBC의 해명을 촉구했으며, 미국에서도 반란의 정신이 웹사이트를 휩쓸고 있다. 일일이 여기서 열거하기는 힘들지만, 톰 필리의 '국제청문회'에서부터 마이크 앨버트의 ZNet, 카운터펀치 온라인, FAIR 등에 이르기까지 활약이 눈부시다.

웹을 이용한 이라크에 대한 최고의 보도로는 다르 자마일을 비롯해, 조 윌딩 같은 시민기자들이 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그레그 윌퍼트가 우고 차베스를 겨냥한 사악한 선전들을 무력화시키는 탐사보도를 쏟아냈다. 그 선전들은 부패한 RCTV를 옹호하는 서방세계의 보도 뒤에 가려진 베네수엘라에서 언론의 자유에 대한 위협이라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할 일은 지하에 묻힌 '정복된 지식'(subjugated knowledge)을 끌어올려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리는 것이다. 서두를 필요가 있다.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는 기업형 독재의 형태로 나아간다. 언론이 그 전면에 나서도록 허용해서는 안된다. 언론을 민중의 뜨거운 의제로 끌어들이고, 직접적인 행동에 종속시켜야 한다.

진실 폭로에 앞장서온 톰 페인은 만일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진실에 대한 접근이 거부된다면, '말의 감옥'을 쳐부수러 갈 때라고 일갈했다. 바로 지금이 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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