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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봄 문익환 목사가 홀연히 떠오른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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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봄 문익환 목사가 홀연히 떠오른 어느 날

[정상회담, 할 말 있다①] 역사를 사는 두 정상에게

역사적인 두 번째 남북정상회담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프레시안>은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평화와 통일에 관한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들을 들어보고자 '정상회담, 할 말 있다'라는 연재를 마련했습니다.

이 코너에서는 일반적 의미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 틀을 뛰어 넘는 '숨은 실력자', 정부 혹은 민간 차원의 남북 교류 사업에서 잔뼈가 굵은 전·현직 관리와 시민단체 간부, 그 외에 분단 문제에 관해 할 말을 품고 살아왔던 많은 이들의 목소리를 담을 계획입니다.

연재의 첫 문을 소설가 정도상 씨가 열어주었습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통일위원장이자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상임이사인 정 씨는 그간 수많은 남북 문인 교류와 남북공동사전 편찬 사업에서 열정을 쏟아 냈습니다. 이번 정상회담은 과연 어떤 자리가 되어야 할지에 대한 정도상 씨의 말을 들어봅니다. <편집자>


통이(通異, 統二)와 여민동락(與民同樂), 의(義)의 정신으로

"난 지금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는 거야. 역사를 말하는 게 아니라, 산다는 것 말이야. 역사를 산다는 것은 말이야. 된다는 일을 순순히 하는 게 아니라 맨발로 바위를 걷어차 무너뜨리고 벽을 문이라고 지르고 나가야 하는 것이라고."

(늦봄 문익환 <잠꼬대 아닌 잠꼬대> 중에서 발췌 요약)

7년 만에 정상회담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늦봄 문익환이 대숲을 흔드는 바람처럼 내 마음 속에서 홀연히 떠올랐습니다. 신선했고 기뻤습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 정상회담은 역사를 사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역사는 논리적일 때보다 비논리적일 때 비약적으로 발전합니다. 세종대왕이 집현전 학자들과 조정대신들의 열화와 같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글을 반포했기 때문에 지금 우리는 한글을 문자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대와 미래를 읽어내는 통찰의 시선이 없으면 쉽게 비판하고 반대할 수 있지만 역사를 사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역사를 산다는 것은 비판이나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새 하늘, 새 땅을 활짝 열어젖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노무현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께서 만나서 해야 할 일은 자질구레한 실무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앞에 놓인 몇 가지의 장애물 때문에 머뭇거리는 것이 아니라, 과감하고 통 크게 그것들을 초월하여 새 역사를 위한 새롭고 유익한 가치를 생산하고 창조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의 몇 가지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첫째, 통이(通異, 統二)의 정신으로 만나야 합니다. 통이는 서로 다른 것들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며 소통하는 것을 말합니다. 서로의 처지와 조건을 배려하지 않으면 진정한 대화와 소통이 어렵습니다. 정상회담은 승부를 가려야 하는 게임이 아닙니다. 모두가 승리자가 되는 방법을 찾아내야만 합니다. 성급한 통일에는 승리자가 패배자가 있을 수 있지만 진정한 통이에는 패배자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패배 또한 두려워하지 말아야 통이를 실현할 수 있다고 봅니다.
▲ 1989년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북한 주석(오른쪽)을 만나고 있는 문익환 목사(왼쪽) ⓒ연합뉴스

통이의 정신으로 창조해낼 최고의 가치는 평화체제의 완성입니다. 평화체제의 전제조건은 한반도 비핵화라고 너도나도 떠들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6자회담에서 이미 충분히 논의하고 합의하고 실천하고 있는 사항입니다. 핵폐기의 덫에 걸려 진정한 대화를 하지 못할까 싶어 심히 우려되는 바가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기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운명공동체가 평화를 강력히 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큰 관점에서 보자면 NLL도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을 양보하고 공동어로구역이라는 평화의 바다를 얻는 것이 더 실효적이라는 생각을 해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최선의 안보는 평화입니다. 그리하여 평화가 하루하루의 생활 속에서 일상적으로 존재할 때, 우리 민족은 비로소 전쟁의 위협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겠지요. 그것을 위하여 허심탄회하게 대화해야 합니다.

최악의 평화가 최선의 전쟁보다도 언제나 위대한 법입니다.

둘째, 여민동락(與民同樂)의 정신으로 만나야 합니다. 여민동락은 백성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는 것입니다. 정상회담을 통해 신민(新民), 즉 국민(인민)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신민은 대학(大學)의 3강령 중의 하나인데, 국민을 새롭게 한다는 것은 경제발전, 복지확대, 올바른 가치와 정신의 함양을 의미합니다. 그것들이 서로 어우러져야만 국민들이 나날이 새로워진다는 것이지요. 남과 북의 7000만을 넘어서서 우리말과 글을 사용하는 1억에 가까운 모국어공동체와 기쁨을 나누는 방향에서 의제를 설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민동락의 정신으로는 무엇보다도 남북간 경제협력의 향상을 들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는 한강의 기적이 대동강의 기적을 창조해내야 합니다. 한강의 기적과 대동강의 기적이 만나야만 우리 민족 전체의 살림살이가 풍족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살림살이가 풍족해져야 국민들의 삶의 질이 나날이 새로워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협력을 통한 평화경제의 확립은 우리 기업들의 생산과 영업활동에 있어서 안보의 위협이라는 위험요소를 줄이는 확실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북측의 핵실험 당시를 돌이켜 보면, 금융과 증권시장의 안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지난 7년 동안 6.15공동선언에 의해 남북간의 신뢰가 어느 정도는 구축되었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셋째, 의(義)의 정신으로 만나야 합니다. 옳을 의(義)라는 글자는 양(羊)이라는 글자 아래 나(我)는 글자가 놓인 형상입니다. 즉, 내가 양을 받들고 있는 모양이 '옳다'라는 것이지요.

이 글자의 유래를 짧게 말씀드리자면, 중국의 어느 선비가 세상이 싫어서 양을 한 마리 데리고 산으로 갔습니다. 산에서 양을 키우며 살다가 어느 날 문득, '저 양이란 놈은 내가 없으면 곧 죽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양젖을 짜서 먹는데 문득 '이 양이란 놈이 없으면 바로 내가 죽는구나' 라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내가 양을 먹여 살리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양이 젖을 내어 나를 먹여 살렸다는 사실을 알고 그만 부끄러워지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옳다'라고 뜻은 '내가 양을 받드는' 것의 의미가 되었던 것이죠. 이는 곧 나보다 약한 사회적 소수자, 내가 아닌 타자(他者)를 나처럼 생각하고 배려해야만 비로소 '옳음'이 된다는 뜻입니다.

의(義)의 정신은 무엇보다도 대화가 난제에 부딪쳤을 때 '내(사람, 강자)가 양(약자, 사회적 소수자)을 배려하는 마음입니다. 정상회담은 실무회담이 아닙니다. 소소한 실무적 의견 차이로 인해 민족의 삶과 운명을 논하는 자리 자체가 망가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분단체제라는 바위를 맨발로 차버리는 심정으로 큰 틀의 대화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실무적 판단에 발목을 잡히면 역사를 살지 못하며 동시에 의를 실천할 수 없습니다. 물론 모든 실무적 판단을 무시하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실무적 법률과 민족공동체의 운명이 달린 역사창조 중에서 선택하라면 당연히 역사창조에 무게를 두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관용하고 양보하는 자세가 두 분 정상 모두에게 필요한 시점입니다.

정상회담에서는 '모국어공동체의 온전한 회복'이라는 문화적 관점이 어느 때보다도 중시되어야 할 것입니다. 통일은 '미래의 문화적 고향'을 만들어가는 역사의 과정입니다. 우리 민족 모두가 곧 다가올 미래에 문화적으로 다양하고 격조있는 공동체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것 때문에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과 같은 문화교류를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1989년 문익환 목사님과 김일성 주석이 그 많은 의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어'를 주제로 삼아 이야기했던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간곡히 바라건대, 정상회담은 행사가 아니라 민족의 운명을 놓고 대화하는 두 분 정상 간의 역사적 만남이라는 점을 하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과에 무리하게 집착하지 말고 마음을 툭 터놓고 대화하는 것 자체가 평화로 가는 작은 발걸음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면 좋을 듯 싶습니다. 건강하십시오.
정도상

소설가, 1960년 경남 함양 출생
단편소설 <십오방 이야기>를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작품집으로 <친구는 멀리 갔어도>, <실상사>, <모란시장 여자> 등이 있고
장편소설로 <누망> 등이 있다. <누망>으로 제17회 단재상을 수상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통일위원장,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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