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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선진화' 하자는 것인가?"

한반도브리핑 <58> '선진화 주장' 정치세력에게 묻는다

세계 15위의 개도국, 세계 12위의 중진국?

필자는 19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서 미국에서 유학을 했다. 당시 한국은 민주화를 향한 시민사회의 열망으로 권위주의 정권을 무너뜨리고 문민정부를 탄생시킨 일대 전환기였다. 80년대 한국경제는 놀라운 성장률을 보였지만(86년에서 88년까지는 10%를 상회하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했고, 그 이외의 시기도 82년부터는 분기별로 5.5% 이하로 내려가지 않았다), 아직도 미국에서 유학하던 한국 학생들은 스스로를 개발도상국에서 유학 온 학생으로 생각하던 때였다.

1991년 한국은행에서 발간한 "세계속의 한국경제"라는 책을 보면 1985년 한국의 경제규모는 18위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뒤를 이어 19위에 랭크되어 있었고, 우리 위로는 서방선진 7개국(G7)과 중국, 브라질, 인도, 멕시코 등이 있었다. 이 순위는 1989년 조금 바뀌어서 한국이 15위로 올라갔고 스위스, 스웨덴, 사우디 등이 뒤로 밀렸다. 1인당 GNP는 1985년 2194달러로 50위였고, 1989년에는 4994달러로 40위로 올라갔다. (당시 1위는 2만 8055달러의 스위스)

당시 약 70개 국가를 대상으로 순위를 정한 것이지만 전체 국가의 수가 사실 이보다 훨씬 많았기 때문에 세계 19위는 상당한 수준이 아닐 수 없었다. 다만 1인당 GNP가 40위라는 것이 좀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여하튼 당시 한국은 스스로를 개발도상국이라고 분류하던 시대였다.

그런데 2000년대에 들어와 한국의 실적을 따져보면 크게 변동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제규모는 2005년 기준으로 세계 12위이고, 1인당 명목국민총소득 (GNI라는 개념으로 바뀌었음)은 1만 5840달러로 208개국 중 49위로 오히려 내려갔다. 2000년대의 경제성장률은 분기별로 7.5%까지 성장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개 4% 수준에서 오르내렸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을 개발도상국이라고 분류하면 웃음거리가 된다. 한국 밖에서는 그 누구도 한국을 개도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약 2년 전 쯤 수업을 하다가 학생들에게 한국이 개도국이냐 아니냐를 질문한 적이 있었다. 당시 수업을 듣던 한 프랑스 유학생이 너무도 자신 있게, 그리고 질문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국은 당연히 선진국이라는 답을 한 적이 있었다. 1980년대 후반에 비해 국제 순위는 크게 나아진 것이 없는데 너무나 당연히 한국을 선진국의 대열에 놓는 것을 보고 필자는 잠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이러한 충격이 보다 객관화될 수 있었던 것은 필자가 최근 국제회의 관계로 다른 선진국을 자주 방문하면서부터이다.
▲ 대한민국, 아직 선진국 아닌가요? '5년 안에 선진국'으로 간다는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홍보물 ⓒ연합뉴스

'선진국'이 과연 한국보다 선진국인가?

필자가 미국에서 공부하던 당시에는 미국을 포함해 일본 등 소위 선진국을 보면서 '어떻게 이렇게 배울 점이 많고 잘 되어 있을까', '한국은 아직도 한참 더 발전해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반성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최근 국제회의 관계로 외국을 다녀보면 소위 선진국이라는 미국, 일본, 유럽의 국가들은 오히려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룬 한국의 역량을 확인하는 비교대상으로 다가온다. 특히 우리가 그렇게 존경해(?) 오던 미국과 비교하면 한국의 선진화를 쉽게 느낄 수 있다.

1인당 GNI가 4만 3000달러를 넘는 미국은 세계 최강대국이지만 우선 잘 모르는 길을 갈 때나 밤이 돼서 밖으로 나가면 항상 목숨을 걱정해야 하는 불안에 싸인다. 총기규제가 엄청나게 약하고, 대도시 밤의 치안 능력은 제3세계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부자들은 안전한 교외로 빠져나가서 살지만 흑인들과 같은 대부분의 서민들은 그렇지 못하다. 대도시 공공시설은 더럽고, 대학을 비롯한 많은 건물의 화장실은 문이 뜯겨 있어 불안하고 낙서와 오물로 불결하기 그지없다.

물건을 사거나 비행기를 타거나 관공서에 들릴 때에는 터무니없이 효율이 떨어지고, 불친절한 서비스에 놀라게 되고, 공공 교통수단의 불편함과 더러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엘리트 상류층을 제외하고 미국의 공공교육과 학력수준이 떨어진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고, 인종차별의 문제와 흑인 빈민의 문제는 제3세계의 수준이 아닐 수 없다. 카트리나로 잘 알려진 뉴올리언즈는 그야말로 제3세계를 방불케 했는데 인구의 28%가 극빈층이었고, 이들 중 84%가 흑인이었다. 미국은 현재 약 3700만 명이 소위 극빈계층으로 분류되고 있는데 양극화와 인종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의료보험 체계와 식생활도 상류층 외에는 어쩔 수 없이 참고 살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라는 것도 잘 알려져 있다.

일본의 경우는 아직도 감탄하고 배워야 할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지만 유럽을 가보면 경직된 관료시스템, 불편한 주거시설, 불친절한 서비스 (일본의 친절도도 과거에 비하여 상당히 떨어졌다), 비싼 물가와 좀처럼 개혁하기 어려운 구체제의 견고함 등, 선진국이긴 하지만 상당히 답답하고 불편한 것을 많이 느끼게 된다. 다만 이들 시스템이 미국보다는 훨씬 좋아 보이고 안전해 보이는데, 그 이유는 일단 미국과 달리 총기 사용에 그렇게 너그럽지 않기 때문일 것이며 잘 발달된 사회복지 시스템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할 때 필자는 과연 지금의 한국이 선진국이 아닌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따라서 많은 대선 주자와 식자들이 주장하는 "선진화"의 구호가 과연 적절하고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구호인지 검증이 필요할 것 같다.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일수록 더욱 검증의 칼을 날카롭게 해야 한다.

선진화 개념의 논리적 오류

한국이 경제규모와 1인당 국민소득 순위가 크게 변동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제는 스스로 개도국이라고 생각할 수 없게 되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경제규모로만 알 수 없는 상당한 내부적·질적·경험적 변화가 수반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변화의 핵심은 바로 민주화와 근대화의 동시 달성이다. 그리고 그러한 동시 달성이 뿜어낸 문화적 역량이 선진국적 역동성을 만들어 내고 있다.

우선 논리적으로 볼 때 선진화는 근대를 지향점으로 하는 근대화나 민주주의를 지향점으로 하는 민주화와 다르게 구체적이고 뚜렷한 지향점을 갖고 있지 못하다. 선진화는 단순히 근대화와 민주화의 "업그레이드"에 해당하는 것일 터인데 정치적 구호, 거대 담론으로서 '업그레이드'라는 말은 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실체가 없는 선진화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소위 선진화 세력의 머리속에는 선진국 닮아가기가 목표일지 모른다. 그런데 이들이 닮고자 하는 선진국의 모습이 더 큰 GDP와 국민소득 (이 개념이 갖는 많은 문제점은 학계에서 여러 차례 지적되었다), 시장경제, 법치주의, 작은 정부 등을 강조하는 것이라면(보수적 선진화 담론의 주 내용임), 이는 근대화의 머리로 선진화를 말하는 것이 된다.

직관력이 있는 독자들이라면 짐작하겠지만 국민소득 몇 만 달러, 세계 몇 위의 경제대국, 법치주의, 자유시장경제와 같은 소위 보수적 선진화 담론의 목표는 단순히 근대화와 민주화의 결과일 뿐이다.

근대화가 되면 경제규모가 커지고 국민소득이 올라가고 법체계와 경제, 사회의 제도에서 전 근대적인 요소들이 없어진다. 민주화가 되면 국가에 대한 견제가 생기고 자의적인 법의 적용과 일방적인 공권력 사용이 어렵게 된다. 소위 선진국들에서 볼 수 있는 그런 목표들은 모두 근대화와 민주화를 통해 달성된 것이다. 한국의 선진화를 주장하는 보수세력이 보지 못하는 선진국의 진짜 "선진적인" 모습은 이들 국가가 근대화와 민주화의 과정에서 생겨난 부작용을 치유해 나가고 새로운 것들을 실험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논리로 보자면 현재 선진화를 주장하는 상당수의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를 부정하는 이상한 논리에 빠진다. 즉 "한국에서 자신들에 의해 근대화와 민주화가 달성됐으니 이제 근대화와 민주화를 하자"는 이상한 논리가 되는 것이다.

진짜 선진화와 사회의 업그레이드는 근대화·민주화 이후의 부작용에 대한 사회적 치유와 새로운 실험들인데, 이들은 다시 근대화와 민주화의 상품들을 주머니에서 끄집어내 이름만 바꾸고 있다. 아마도 사회적 치유와 새로운 실험들은 정치적인 거대담론으로 만들어 대중적 관심을 끌기가 어렵거나 만들어낼 만큼 상상력이 풍부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은 80∼90년대 이후 경제규모와 국민소득의 지표상 순위변동이 크지 않았지만 근대화와 민주화를 달성했기 때문에 이미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규모에서 우리보다 순위가 높은 중국과 인도가 선진국이 아니고 경제규모에서 우리보다 순위가 낮은 스위스, 스웨덴, 벨기에가 개도국이 아닌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경제규모의 순위로 선후진국을 판단하기 어렵다. 1인당 국민소득이 선진국의 지표가 되는 중요한 근거이지만 그 지표의 계산상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사실 한국민이 선진국의 소비수준과 생활수준에 비해 떨어지는 것 같지 않다.

선진국 대한민국

세계에서 하계올림픽과 월드컵,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모두 개최한 나라는 현재 6개국뿐이다. 한국은 7번째 국가가 되는데 아시아에서는 선진국인 일본에 이어 두 번째다. 그게 무슨 선진국 지표나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경기를 개최하기 위해서는 선진적인 국가·사회시스템이 작동하고 지원해 주어야 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한국은 현재 세계 8대 분쟁지역에 평화유지군을 2500여명의 병력을 보내고 있고 군사력은 세계 9위 정도이다. 최근에는 연일 정밀무기 생산과 수출 능력을 과시하고 있으며 실제로 우리 군의 인적자원 역시 세계적인 수준이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남자 75세, 여자 82세로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 왔고, 의료수준과 의료보험 역시 세계적인 수준이다. 한국 의료진의 지적·기술적 수준은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으며, 한국 전체의 위생수준도 마찬가지다. 질병의 발생 패턴을 보면 취약한 위생 및 영양 상태에 기인하는 개도국형에서 벗어나서 오히려 잘 살기 때문에 생기는 선진국형으로 이미 옮겨왔다.

문화적으로도 한류로 대표되는 문화적 역량은 선진국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으며 대중교통 시설과 교통문화도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다. 음주운전 단속은 세계적인 모범이 되고 있으며 자동차문화도 개선되고 있다. 대중문화와 고급문화는 소비력과 삶의 질이 좋아지지 않으면 꽃피우기 어려운 부문인데 최근 수준 높은 창작능력으로 세계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문화인들이 연일 신문을 장식하고 있다. 더욱이 스포츠의 비인기 종목 활약상은 전반적인 부의 증대와 상관관계를 갖는데 펜싱, 핸드볼, 피겨 스케이팅, 테니스 등에서 세계적인 선수들이 나오고 있다. 인기 종목인 야구, 축구, 골프 등에서의 세계적인 수준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경제의 불균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를 보더라도 최근 양극화가 심화되고는 있지만 아직 미국, 영국, 캐나다 보다 좋은 수치를 보이고 있으며 일본, 호주보다는 못하다. 국민들의 해외여행도 선진국형에 도달하였으며, 인적 자원의 수준도 학력 평가 수준으로 보면 선진국의 모임인 OECD 국가 중 최상위에 위치하고 있다. 세계적인 한국 (브랜드의) 기업도 선진국의 수준으로 많고, 과학기술의 수준도 세계 10위 권 안에 들고 있다. 대학 경쟁력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한국 학자들의 평균적 수준도 세계 1위는 못 돼도 10위 권 정도에는 든다고 볼 수 있다.

공공기관과 일반 상점의 서비스 수준은 가히 세계 최고의 수준이고, 정부의 투명도와 설명책임 역시 97년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 왔다. (불필요한 규제가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외국에서 공공기관을 한 번 이용해 보시라. 속이 탄다). 부정선거 시비도 없어졌으며 쿠데타의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IT기술과 전산화의 수준 역시 세계적이며, 실제로 국민생활 방식을 바꿔 놓고 있다. 생필품은 일반적으로 너무 흔해서 오히려 낭비가 심해지고 (어려운 서민들은 다르겠지만 다른 선진국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넘쳐나는 명품과 명품족은 선진국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이 외에도 세계적인 수준의 치안과 안전 등 한국이 선진국임을 증명하는 지표들은 무수히 많다.

치유와 미세조정이 필요한 한국의 근대화와 민주화

이렇게 한국이 선진국임을 증명하는데 열을 올리다 보니 필자가 국수적인 민족주의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지만 사실 이렇게 선진국임을 강조하는 이유는 우리의 국가적 목표가 시대착오적인, 또 다른 희생을 강요하는 20세기적 선진화가 아님을 주장하기 위해서이다.

한국은 압축성장과 압축 민주화로 이미 선진국의 틀과 모양을 갖추었다. 문제는 압축적으로 근대화와 민주화가 됐기 때문에 내용적으로 그 부작용들이 많이 남아있다는 데 있다. 그런 부작용들의 대부분은 그동안 많은 희생을 강요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들이다. 환경 파괴, 소수자에 대한 무관심, 기득권 세력의 잠재적 폭력성, 사회적 양극화 현상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부문에서는 아직 다른 선진국, 특히 북유럽의 국가들과 비교할 때 선진적이지 못하다.

교통사고 발생률, 특히 보행자 사망률이 OECD국가 중 최하위, 장애인에 대한 시설과 배려 부족, 아동에 대한 보호와 배려 부족, 성차별,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 상대적으로 짧은 건강수명, 환경파괴, 학자들의 학문적 윤리 문제, 자극적인 언론, 지방의 상대적 저발전, 정치인을 포함한 일부 기득권층의 사회의식 결여와 폭력성, 아직 남아 있는 전근대적인 요소 등이 선진적이지 못한 지표들이다.

이들 모두는 희생이 강요되고 '힘 있고 잘 나가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사회가 압축적으로 발전한 결과와 부작용 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과제는 이제 이러한 부작용을 치유하고, 밑그림이 그려진 선진국의 화면을 미세조정 (fine-tuning)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실험도 가능하고, 우리만의 문명을 만들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의 정치세력은 시대착오적인 거대담론의 구호에 집착하지 말고 이렇게 정말 필요한 국가적 과제를 담아내는 새로운 구호를 찾아내 국민을 편안하고 공평하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선진화는 필요한 것이지만 정작 지금의 한국에 필요한 보다 적실한 방향은 압축적으로 선진국에 진입한 한국을 치유의 방향으로 미세조정하는 것이다. 여기에 맞는 국가적 아젠다를 개발하고, 그 비전으로 대선 후보들은 국민 앞에 나서야 한다. 시대착오적인 구호를 찾아내 국민의 희생을 강요하는 정치인들이야말로 바로 그들이 말하는 선진화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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