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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色)을 디자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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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色)을 디자인하다

[지상현의 Homo designans·5] 조화 배색과 대비 배색

아래 그림은 미국에서 물리학을 하는 동생이 메일로 보내온 것이다. 장난삼아 한반도 지도를 단순화(위상학적으로)시키고 남과 북을 청색과 적색으로 구분한 후 시계반대 방향으로 90도 회전을 시켜보았단다. 그랬더니 태극 일원(一圓)문양이 나타나더란다.

사실 이건 당연한 일이다. 어떤 형태건 회전시키면 그 궤적이 점하는 면적은 원의 형태를 갖게 된다. 국토가 상하로 긴 나라라면 그 어디라도 태극문양과 비슷한 것을 만들 수 있다.

그럼에도 동생은 분단 상황이 마치 태극무늬 속에 예견되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방정맞은 생각을 하게 되더란다. 물론 동생도 자본주의가 청색이고 공산주의가 적색이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안다. 그저 우리들이 임의로 덧씌워놓은 색일 뿐이다.

우리는 이런 색 구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왜 그런지 모르면서도 청색과 적색은 지구상에서 가장 긴장이 높은 곳의 하나라는 한반도의 상황을 쉽고 명료하게 전달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관점에 따라 두 색은 매우 조화롭고 안정된 상태를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음양오행의 관점이다.
▲ 한반도 지도를 단순화한 뒤 시계반대방향으로 회전시키자 태극 일원문양이 되었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음양오행론에 따라 색채를 사용해왔다. 음양오행의 기본이 되는 음과 양의 기운은 태극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태극은 음과 양의 두 기운을 모두 가진 완전함을 상징한다. 갈라져 나온 음과 양은 더 분화돼 오행을 이루게 되는데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의 다섯 기운이 그것이다. 이 기운을 색으로 표현한 것이 오방색으로 순서대로 청, 적, 황, 백, 흑색이 된다. 오방색의 기본이 되는 것이 태극의 청과 적이고 각기 음(陰)과 양(陽)을 뜻한다. 그래서 청색과 적색의 태극은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것이라 말해진다.

오방색(五方色)에 오간색(五間色/ 녹색, 벽색(엷은 하늘색), 홍색, 유황색, 자색)을 더한 색채들이 조상들의 팔레트를 채웠는데 각종 고미술품에서 보는 색채들이 그것이다. 오간색이라고 해서 보조적으로만 사용된 것은 아니다. 색동저고리에는 오방색에서 검정색을 빼고 오간색인 홍색이나 유황색을 더했고 단청에는 오간색인 녹색이 더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색채들의 화려한 대비가 우리 전통 배색의 특징이다.
▲ 단청에는 가칠단청, 긋기단청 모로단청, 얼금단청, 금단청 등의 종류가 있다. 여기서 보는 것은 모로단청인데 머리초만 그리고 나머지는 긋기만 했다. 긋가를 한 면의 배경은 전부 녹색이다.

▲ 추석과 같이 경사스러운 날에는 형편이 허락하는 한 유색 옷을 즐겨 입었다. 소녀들이 입은 치마와 저고리가 마치 진달래 꽃과 잎처럼 보색대비를 이루고 있다. 구한말 외국인 선교사가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바랜 사진을 컴퓨터로 색복원을 한 것이다.

우리를 백의민족이라고 하지만 여기에는 좀 생각해볼 대목이 있다. 백색옷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신분체계를 나타내기 위해 강요당한 측면이 강해 보이기 때문이다.

국민대 조형대학의 정시화교수에 따르면 조선시대에는 평민들이 물들인 옷을 입지 못하게 했다. 신분이 높을수록 자색, 검정색, 적색을 입고 무당 등 특수 신분에만 유색 옷을 허락했다고 한다. 태종 6년 황해도 관찰사를 지낸 신호(申浩)가 '무색 옷은 좀먹기 쉽고 만들기 어려우므로 청색옷을 입게 해달라고 상소까지 했다고 전한다. 선조들이 청색을 좋아했다는 것이 정시화선생의 지론이다. 보통사람들이 색동옷 등 물들인 옷을 입을 수 있었던 것은 혼례 날이나 명절이 되어서였다. 저간의 사정을 볼 때 우리가 백색을 사랑했던 민족이었던 것 같지는 않다. 도리어 강한 원색과 대비를 즐기고 싶어 했지만 신분체계 등의 이유 때문에 제대로 발현되지 못한 것 같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적 색감을 가장 잘 살린 화가를 꼽으라면 필자는 박생광 선생을 든다. 질박한 황토색의 김환기나 박수근 선생의 그림도 좋지만 두 분과는 또 다른 전통적 배색을 현대적으로 재현해냈기 때문이다. 더욱이 박생광 선생이 발굴한 전통색은 심미적으로 열등한 것으로 치부하고 무시해왔던 것이라는 점과 현대의 배색법에서도 쉽게 도달하기 어려운 고난이도의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 박생광의 무당

서구의 배색법, 아니 현대의 배색법은 심리적 효과를 기준으로 개발됐다. 크게 보아 조화(Harmony) 배색과 대비(Contrast) 배색기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유사한 색끼리 배색하면 조화배색이고 상이한 색끼리 놓으면 대비배색이다. 초등학교 때 배운 색상환을 생각하면 쉽다. 서로 인접해 있는 색들은 유사한 색이고 마주보고 있는 색은 가장 상이한 색이다. 이렇게 보면 적색과 녹색, 청색과 노랑(황색)이 대표적인 보색이다.
▲ 대비배색과 조화배색의 사례 좌측은 색상이 보색에 가까운 대비를 이루고 우측 것은 유사한 색이지만 명도와 채도에서 차이가 난다. 대비냐 아니냐의 기준은 기본적으로 색상을 기준으로 한다.

▲ 맨 왼쪽은 동일색조의 조화배색이다. 가운데는 셔츠와 슈트, 셔츠와 넥타이는 대비배색이지만 슈트와 넥타이는 조화배색이다. 맨 우측은 넥타이가 셔츠나 슈트와 대비배색이다.

유사한 색끼리 하는 조화배색은 비교적 쉽다. 색상을 유사하게 하면서 밝기나 채도에서만 차이를 주면 대충 조화가 된다. 양복을 입을 때 짙은 청색 슈트 속에 엷은 하늘색 와이셔츠를 입는 것이나 회색바지를 입는 것이 바로 조화배색에 해당한다.

그러나 조화배색만 하면 단조롭고 맥이 없어 보일 수 있다. 그래서 부분적으로 대비배색을 추가해 액센트를 줌으로써 생기를 불어넣는다. 위 그림의 ②에서처럼 짙은 청색 슈트에 엷은 핑크색 와이셔츠를 입는다면 이는 대비 배색이다. 여기에 짙은 청색 계통의 넥타이를 맨다면 슈트와 넥타이는 다시 조화배색이 돼 슈트와 셔츠 사이의 대비배색이 주는 활달하지만 튀는 느낌을 완화시킨다.

현대식 배색법의 기본이 바로 이것이다. 패션 뿐 아니라 건축, 제품, 회화, 디자인에서 기본이 되는 배색법이다. 이런 배색기법은 색채의 심리적 효과에 기반을 둔 것이다. 그래서 단청이나 색동에서 보는 배색 역시 따지면 대비배색이라 할 수는 있지만 동일한 것이라 하기는 어렵다. 우리의 배색은 색채의 상징적 의미를 중시해 다분히 관념적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경로로 서구의 배색기법을 접하기 시작한 20세기 초부터 우리도 서서히 심리적 효과를 염두에 두고 배색을 하기 시작했다. 여성의 옷이나 생활소품에서는 그동안 제한되었던 관념적 배색의 욕구가 발현되기 시작해 고채도의 색 혹은 보색대비가 주를 이루게 된다. 반면 남성정장, 자동차, 건물 등에서는 점잖고 튀지 않으려는 심리 때문인지 조화배색 일색으로 변해갔다. 우리환경에 색채가 부족하다고 하는 평가도 이런 대목을 지적하는 것이다.

예컨대 80년대 까지만 해도 승용차나 건물은 검정색과 회색 일변도였고 버스는 엷은 청회색에 짙은 청색 줄이 그어진 정도였다. 남성정장도 비슷해서 검정이나 밤색 슈트에 흰색이나 엷은 노란색 셔츠를, 짙은 청색슈트에는 흰색 혹은 하늘 색 셔츠를 입고 회색바지를 입었다. 핑크색 셔츠와 같은 대비배색은 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핑크색 셔츠를 입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승용차의 색상도 다양해지고 있다. 물론 아직도 짙은 청색슈트에 카키색 셔츠나 바지를 입는 대비배색은 보기 힘들다.
▲ 카키색이나 엷은 브라운 색에 청색 바지나 셔츠를 맞춰 입는 대비배색이 서구에서는 일반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른쪽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유사색조의 진한 셔츠나 바지를 입는다.

▲ 아직도 서울을 벗어나면 버스의 도장은 조화배색이 주를 이루고 있다. 좀 답답한 느낌이 든다. 사진은 부산 시내버스의 모습이다.

배색에서도 각 민족의 성정을 읽을 수 있는데 우리의 환경에서 대비배색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그만큼 자기표현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성품으로 바뀌고 있다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좀 더 자극적인 것을 원하는 심리적 욕구가 커진 것은 분명하다.

미술심리학에서는 '심리적 긴장'이라는 용어를 쓴다. 무거운 것을 들 때 팔, 다리의 근육이 긴장을 하고 이완을 하듯이 어떤 정신적인 작업을 할 때에 우리의 심리는 긴장을 하고 이완을 한다. 이 정신적인 작업에는 시각이나 청각을 통해 무엇을 지각하는 일도 포함된다. 객관적으로 긴장의 정도를 측정하기 쉽지 않아 학자에 따라 이 개념을 인정하지 않기도 하지만 다양한 미적 경험을 설명하는데 이처럼 유용한 개념도 없다. 그래서 미술심리학에서는 중요하게 다룬다.

근육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대뇌 역시 적당한 긴장은 정신활동에 유리하지만 지나치면 불리하다. 적당한 자극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적당한'의 기준은 민족이나 시대에 따라 변한다. 앞서 우리가 대비배색을 더 선호하게 되었다고 했는데 이는 '적당한'의 기준이 좀 높아졌다는 뜻이 된다.

시각을 통한 심리적 긴장에는 색채의 효과가 크다. 색채마다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정도가 다르지만 보다 선명한 효과는 색들이 조합되었을 때 나타난다.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배색으로 대표적인 것이 지나치게 유사하거나 다른 색채들이 조합돼 있을 때다. 예컨대 양복 슈트와 바지의 색이 매우 유사할 경우나 매우 다를 경우 촌스럽다고 느낀다. 우리 시각은 무엇을 보면 유사한 것끼리 묶는 방식으로 대상들을 서로 구분한다. 아주 중요하고 기초적인 작업이다. 그런데 동일하다고 보기도, 다르다고 보기도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이 작업이 원활해지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심리적 긴장을 느끼게 된다. 이런 긴장의 결과가 촌스럽다는 심미적 인상이다. 아래 그림을 보면 이해하기 쉽다. 반대로 너무 다를 경우에도 심리적 긴장은 커진다. 소위 "색채의 충돌"이라는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검정 양복에 흰바지나 과거의 국가대표 축구팀 유니폼처럼 채도 높은 빨간색 셔츠에 파란 바지의 조합은 매우 부담스럽다.
▲ 왼쪽에서 세 번째는 셔츠와 슈트 사이가, 네 번째는 슈트 상, 하의 사이가 애매하다. 마지막 사례에서처럼 다르려면 확실하게 달라야 한다는 것이 긴장론의 배색법이다. 이 그림에서 보듯 심리적 긴장의 정도는 심미적 평가와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태극의 배색은 매우 심리적 긴장도가 높은 배색에 해당된다. 우리 거리의 풍경이 혼잡하다는 이야기도 대비배색이 많아 행인들의 심리적 긴장도가 높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우리의 성정이 심리적 긴장도가 높은 것을 좋아해서 태극문양이나 오방색(흑, 백, 적, 청, 황)을 사용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한국인의 성정이 좀 열정적인 면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를 지배하던 관념 역시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현대로 넘어오면서 우리의 미의식을 지배하던 관념적 토대가 심리적 토대로 바뀌게 된다. 그러면서 과거의 자극적인 전통색들은 나름의 조정과정을 거쳐야 했다. 언젠가 간판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는 일제 식민지, 6.25, 급격한 산업화 등을 거치며 이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다고 말한 바 있다.

중국은 우리와 사정이 조금 다르다. 우리와 같이 음양오행의 기반 위에 색채를 사용한 중국에도 보색대비가 많았다. 우리와 달리 검정색과 금색을 많이 사용하기도 했지만 그것 이외에 보색의 충돌을 완화시킬 수 있는 기법들이 이어져 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론적으로 보색대비가 주는 심리적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한 몇 가지 방법들이 있다. 가령 상이한 두 보색 사이에 흰색이나 검정색과 같은 무채색을 연결색(bridge color)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태극기를 보면 태극 일원문양의 주위는 넓은 흰색이다. 이 흰색이 연결색으로 작용해 보색대비가 주는 심리적 긴장을 완화시킬 수가 있다. 태극기는 월드컵을 계기로 패션이 되기도 했는데 흰색이 없었다면 패션이 되기에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다른 방법은 두 보색 사이에 음영이 생기게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필자가 근무하는 대학 총장실에서 발견한 베이징 대학의 기념접시(아래)는 중국의 배색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필자의 눈에도 들었지만 함께 방문한 일행들 대부분 역시 이 접시를 멋지다고 느꼈고 한 눈에 중국 것이라는 점을 알아 챌 수 있었다.

이 접시는 중국의 전통적인 적색과 녹색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보색 충돌이 생각만큼 심하지 않았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이 접시는 녹색 접시 위에 글씨가 양각돼 있고 테두리 문양은 덧끼워서 만들었다. 그래서 녹색과 적색 사이에 작은 틈과 그림자들이 생겨나고 두 색의 충돌을 완화시킨다. 물론 녹색의 채도를 낮게 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녹색 바닥에는 잔 홈들이 나 있는데 이 홈들이 만드는 음영이 녹색의 채도를 실제보다 낮게 보이게 한다. 이렇게 채도가 낮아지면 보색의 충돌은 약해지고 심리적 긴장도 더불어 작아진다.

만약 국내 대학에 이와 유사한 한국식 전통배색의 기념품을 제안하면 어떨까. 한국의 전통배색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전위적이고 점잖지 못하다고 거절하는 곳이 많을 것이다. 이 접시는 플라스틱이어서 가격도 싸다. 아마도 우리 돈으로 만원 미만이면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반면 그 옆의 기념접시는 값비싼 주석으로 돼 있어 개당 10만원이 넘는다. 국내에서는 어설프게 서구 문양을 흉내 낸 국적 불명의 이런 접시가 대접받는다.

마찬가지로 기념접시와 같은 어설픈 흉내 내기를 우리는 자주 만난다. 예식장 건물, 대중 사우나의 욕실 벽을 장식한 부조, 신혼집 벽에 걸린 하얀 액자들에서 말이다. 문화적으로 좀 세련됐다고 하는 인사동이나 삼청동의 카페에서조차 이런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본다.

앞서 소개한 박생광 선생의 그림을 필자가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전통적인 배색을 유지하면서도 그것이 주는 심리적 부담을 줄이기 위한 기법들을 개발하고 잘 적용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박생광 선생은 청색과 적색의 경계를 흐릿하게 처리하거나 검정색 얼룩을 경계부분에 만들어 두 보색이 직접 만나지 못하게 했다. 또한 고채도의 넓은 적색면이라고 생각한 곳도 자세히 보면 농담의 변화가 있고 군데 군데 다른 짙은 색이 침투해 들어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장치들이 적색이 주는 심리적 긴장을 완화시키고 적색 면 옆에 있는 다른 색들과 서로 조화를 이루게 한다.

이 기법들은 발생단계상 조화배색에 비해 늦게 나타나는 어려운 것들이다. 단적으로 말해 박생광 선생은 전통배색의 현대화를 이룬 것이다. 선생은 전통배색의 현대화를 위해 오랜 인고의 세월을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 이 기법들은 한국적인 배색의 국제화를 위해 노력하는 많은 디자이너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 환경을 현대적이면서도 우리답게 만드는 데에도 유용할 것이다.

한국적인 소재를 이용해 디자인하려는 분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분들의 작품을 보면 서구적 관점에서 이미 한번 걸러진 소재만을 이용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박생광 선생의 그림을 처음 보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그런 유추가 터무니없는 생각은 아닌 것 같다. 과거 같으면 마을 어귀의 성황당이나 명절날 색동옷에서 수시로 만나던 색상들인데 이제는 낯설어 한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한번 놓친 전통의 맥을 다시 잇는 일이 녹녹치 않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우리 환경이 전통적 보색대비로 뒤덮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환경의 어느 한 귀퉁이엔가 이런 전통의 맥도 살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뿐이다. 분명 우리의 문화와 정신을 구성했던 그리고 지금도 구성하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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