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이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쓰려온다. 1975년 4월 9일 새벽, 독재정권은 사형이라는 도구로 내 남편의 목숨을 앗아갔다. 나는 그날 새벽 남편을 잃었고, 우리 아이들은 아버지를 잃었다. 아내와 자식들을 사랑하고 보호하며 살아가겠다던 남편의 작은 소망은 그날 새벽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남편의 죽음은 부모형제에게도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남겨주고 말았다. 부모를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나는 자식의 마음을 헤아려 본 적 있는가? 그 이유가 불치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불의의 사고를 당한 것도 아닌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해 살다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국가에 의해 목숨을 빼앗긴 것이라면 부모에게는 얼마나 더 더욱 죄송스러운 일이겠는가.
사랑하는 가족의 얼굴 한번, 목소리 한번 들어보지 못하고 죽음을 기다렸던 남편의 마음은 어땠을까. 1975년 4월 9일 사법살인 사형제도에 의해 죽어간 여덟 명의 인혁당 열사들은 다 똑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누구의 자식이 사형을 당했대, 누구의 아빠가 사형을 당했대, 누구의 남편이 사형을 당했대…." 그날 이후 우리 가족은 이웃의 수근거림 속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살아야 했다. 남편이 사형을 당하던 날, 우리 가족 모두도 함께 사형을 당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우리 가족의 호적을 보면 남편 이름에 '몇 년 몇 월 며칠 어디에서 사형'이란 글씨가 빨간 줄과 함께 적혀 있다. 이 꼬리표는 대대손손 몇 대를 내려갈 것이다. 이미 그 낙인은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게 지난 32년간 우리 가족을 따라다녔다.
사형수의 가족들은 그 날 이후로 행복하게 남은 여생을 살아갈 권리마저 박탈당한 것이다. 그 고통을 누가 알까? 세월이 흘러 '간첩의 자식'이란 누명은 이제 법원의 무죄판결로 벗어났다고 하지만, 사형수의 아들 딸이란 사실은 아직까지도 변함이 없다.
설사 돌이킬 수 없는 큰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당사자에게 참회와 반성의 시간을 허락해야 한다. 가족들과 사회에 인간으로서 마지막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감옥 안에서라도 살아만 있다면, 기회와 가능성은 충분하다.
기다리면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고 만날 수도 있다. 사형 제도를 폐지하는 것은 그 당사자만 살리는 것이 아니라, 그의 가족들까지 함께 살리는 일이다. 사형 제도를 폐지하는 것은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군사독재정권시절 이후로도, 다른 사람의 생명을 해쳤다는 이유로 사형 판결을 받은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그들에게 사형을 집행한다고 해서 죽은 사람들이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사랑하는 가족을 억울하게 잃어 본 사람들은 안다. 증오와 분노, 복수의 마음만으로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진정으로 뉘우치고 반성하는 이들을 용서해 줄 때, 내 마음에도 평화가 찾아오는 법이다.
그러나 지난 3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 인혁당 가족들은 그 누구로부터도 사과 받지 못했다. 사형수의 가족이란 고통을 이겨내며 살인자의 사죄를 기다렸지만, 그 누구도 우리에게 참회하며 사죄하지 않았다.
사형 제도를 반대한다. 잘못은 순간적으로 저질러지는 법이다. 죽을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참회와 용서의 과정을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 서로간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 글을 통해 호소한다. 사형 제도는 폐지돼야 한다. 아무리 악한 죄인이라도 새로운 인간이 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는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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