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 총리도 "철학과 신념, 국정운영 능력과 추진력, 그리고 도덕성이 검증된 사람"이라고 자평했다. DJ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을, 노무현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역임했던 화려한 전력을 곁들였다. 자연스레 DJ와 노 대통령의 정통성 있는 후계자로서의 면모가 오버랩되기를 기대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전 총리가 자랑스레 밝힌 '국정운영 능력'과 '추진력'의 사례는 번지수를 잘못 짚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DJ 정부 시절 자신이 추진한 교육정책이나 BK21 사업, 노무현 정부에서 논란을 빚은 부안 원전 방폐장 문제를 꼽은 대목이 특히 그러했다.
방폐장 선정 '말끔했다'고?
이 전 총리는 출마 선언문에서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리장(방폐장) 부지 선정 사례를 들며 "저는 거의 20년 간 어느 누구도 해결하지 못하다가 부안사태까지 초래한 원전 방폐장 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했다"고 자랑했다. 그는 "저 이해찬은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대화와 타협을 이끌어내는 민주적 리더십으로 사회 대통합을 반드시 실현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하지만 경상북도 경주가 방폐장 부지로 선정되던 지난 2005년 11월을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그 과정을 두고 '말끔하다'거나 '대화와 타협을 이끌어내는 민주적 리더십'에 의한 것이라고 표현하는 데 동의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돌이켜보면 사실 '사회적 대통합'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가 내건 △3000억 원의 특별지원금 지급 △연평균 85억 원의 반입수수료 지원 △한국수력원자력 본사이전 등의 '경품'을 두고 경주, 군산, 포항, 영덕 등 4개 지역이 달려들었다. 각 지역에서 찬반 투표를 벌여 찬성률이 가장 높게 나온 지역이 방폐장을 유치하는 식이었다.
각 지역에서 벌어진 주민투표 과정은 온갖 불법선거 시비와 지역 간 지역감정 대립, 지역 내 주민 간 반목 등으로 얼룩졌다. 군산과 경주 시가지에는 "배 터진 경상도 지금도 배 고프냐", "삼국을 통일한 것도 신라다"는 등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지역 내에서는 주민 간 반목이 극에 달해 찬반 단체 간의 폭력 사건이나 재물손괴 등도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또 관권, 금권에 의한 불법투표 논란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선관위 조사결과 800여 장의 부재자신고서가 허위로 발견되기도 했다.
어느 모로 보나 '민주적 리더십'이나 '사회대통합'보다는 오히려 정부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지자체 간의 경쟁 심리에 떠맡겨 버리고 이로 인해 지역간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는 것을 방치했다고 하는 편이 더욱 정확한 평가일 것이다.
하긴 이로써 노무현 정부와 이 전 총리는 '손에 피 안 묻히고' 19년 만에 방폐장 부지선정 문제 해결이라는 넉넉한 성과를 챙기긴 했다.
'이해찬식 교육개혁', 그 후유증은 어쩌고
이 전 총리가 DJ정부의 초대 교육부 장관 때 추진한 각종 사업을 성과를 내세운 것도 아이러니하다. 지금도 이 전 총리 시절의 교육정책을 빗대 '이해찬 세대'라는 유행어가 회자된다. 이 전 총리는 '한 가지만 잘해도 대학을 갈 수 있다'며 특례입학제 전면 확대를 시행했고 이에 보충수업, 수능 모의고사 폐지가 겹치면서 학력의 하향평준화 논란을 일으켰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의 교육 정책이 결과적으로 공교육 추락을 가속화시켰다는 점이다. 이 전 총리의 교육개혁 정책은 공교육에 대한 불신을 확대시켰고 한편으론 특기적성 부분의 고액 과외 붐으로 이어졌다. 이 전 총리 자신도 자신의 딸에게 4년간 불법과외를 시킨 것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무리한 교원정년 단축은 교사 부족의 후유증을 남겼다. 이해찬 식 교육 개혁정책 이후 정부는 그 부작용을 수습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예산을 낭비해야 했다. 정부는 교원정년 단축과 명예퇴직 등으로 교원이 모자라자 교사 충원 대책을 쏟아내 명예 퇴직한 교원을 다시 채용하는가 하면 중등교사 자격증 소지자를 초등교사로 임용하는 등 온갖 편법을 동원했다. 또 근시안적으로 교대 신입생 정원을 10% 늘렸다 5년 뒤 초등교사 임용 대란을 불러일으켰다.
BK21사업도 몇몇 수도권 대학만 혜택을 보는 등 대학 서열화를 더욱 조장시키고 정부지원이 실용학문 위주로만 이뤄져 순수학문을 도태시키며 대학의 자율권을 해치는 부작용을 낳았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해 8월 김병준 대통령 정책특보를 교육부총리 직에서 낙마시킨 논문표절 문제도 따지고 보면 BK21의 성과지상주의에 따른 폐단이었다.
대통령으로서 일을 잘한다는 것은?
이렇게 이 전 총리가 대선출마 선언과 함께 내세운 그의 '공'은 곧 따지고 보면 대부분 '인기 영합적 시장주의 정책'들이었다. 게다가 이 전 총리는 자부하는 특유의 '추진력'으로 이런 정책들을 밀어붙였지만 곧 만만치 않은 부작용이 뒤따르곤 했다. 노무현 정부에 대해 빈번히 지적하는 '일방주의', '대화부족' 등의 문제가 이들 문제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곤 했던 것이다.
이 전 총리의 이날 대선 출마선언의 골간은 DJ와 노무현 정부의 계승으로 압축된다. 그는 특히 "참여정부의 공과 과가 바로 나의 공과 과"라며 "모든 것을 책임지고 평가받겠다"고도 했다. 범여권 주자라면 이런 그의 정공법이 백번 지당하다. 그러나 '공이 무엇이고 과가 무엇인지'에 대해 전혀 엉뚱한 진단이라면 곤란하다.
대통령으로서 일을 잘 한다는 것이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식 정책 능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터이다. 그건 지난 노무현 정부 5년간 충분히 배우지 않았나? 이 전 총리가 비판한 '이명박식 일꾼 논리'도 정확히 그런 것 아니었나?
상당수의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본다니 그의 능력은 능력대로 인정하기로 하자. 그러나 그가 남긴 공과가 객관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세상이 알고 본인도 알 터인데 그런 뻔한 사실들을 자기과신과 독선으로 치장하는 대목에서는 그 자신이 몸 담았던 두 정부의 오류를 너무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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