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데브란트라는 미국의 건축가가 이 두 공간에 머무는 고객들의 성비를 조사했다. 트인 커피숍에서는 남녀 차이가 없었지만 상대적으로 막힌 공간에서는 여성이 6:4 정도로 많았다고 한다. 시애틀 호텔에 가보지 않아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대략 그림에서 보는 것과 유사한 커피숍에 여성이 더 많았다는 이야기다. 어떤 이유로 이런 차이가 생겨난 것일까?
우리는 '전망 좋은 곳'과 '아늑한 곳' 중 어디를 선호하나?
힐데브란트, 애플톤 등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환경이 주는 심리적인 효과를 연구하고 있다. 지리학자인 애플톤이 자연환경에 대한 관찰을 통해 기초개념을 개발했다면 힐데브란트는 이 이론을 인공환경에 적용해보고 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포식자의 눈에 띄지 않게 자식을 낳고 양육하기 위한 장소와 먹이감을 찾기 위해 전망을 찾던 원시조상의 습성이 아직 우리에게 남아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특징을 암시하는 환경에서 선조와 동일한 심리적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이들은 환경의 특징을 크게 둘로 구분하는데 하나는 '전망'이고 다른 하나는 '도피처'다. 전망은 포식자나 먹이감이 다가오는 것을 알아채기 쉬운 환경이고 도피처는 숨어서 자식을 양육하고 쉴 수 있는 환경을 말한다.
높이 솟은 건물, 산, 높은 나무, 창문, 탁 트인 벌판, 어둠 속에 드리운 햇살 등은 전망을 암시하는 대표적인 특징이다. 무성한 나뭇잎, 담, 그늘, 굴과 같은 것은 도피처를 암시한다. 사람에 따라 도피처 혹은 전망 중 어느 쪽을 더 좋아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두 특징이 균형을 이룬 것을 가장 좋아한다. 앞서 소개한 시애틀 호텔의 경우를 보면 상대적으로 내성적이고 방어적인 여성이 도피처 중심의 장소를 더 좋아한다는 얘기가 된다.
힐데브란트는 재미있는 조사를 한 가지 더 했다. 19~20세기 영미소설에 아늑하고 즐거운 주택의 전형으로 묘사된 사례들을 분석한 것이다. 주택들의 공통점은 숲과 들판이 만나는 경계에서 숲 쪽으로 약간 들어간 곳에 위치한다는 점이다.
숲은 도피처이고 들판은 전망의 성격을 가진다. 그 경계부분에서 숲으로 약간 들어가 있다는 것은 도피처와 전망의 성격이 균형을 이룬 상태에서 약간 도피처 쪽으로 기운 장소가 아늑하고 편안한 장소의 전형이 된다는 뜻이다. 그림을 이용한 필자의 조사에서도 유사한 경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올드 보이'의 '불안한 전망'
전망-도피이론은 자연환경이나 건축물뿐만 아니라 영화의 배경이 주는 심리적인 효과까지 설명할 수 있다. 예컨대 '올드 보이'에서 주인공 최민식을 15년 동안이나 가둘 수 있었던 막강한 권력의 소유자 유지태가 사는 집을 보자. 사방의 벽이 통유리로 처리돼 있고 고층이라 시원한 파노라마를 얻을 수 있다. 이런 완벽한 전망은 권력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지태의 전망에는 결핍이 있다. 소위 "영역전망"이 없다.
전망에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영역 전망"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야생으로 돌아가 생각해 보자. 원시 조상이 높은 산 위에서 경계를 서고 있다고 가정하자. 멀리 다른 종족이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이 종족이 그냥 옆으로 지나갈지 계속 다가올지 유심히 관찰할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이상 가까이 오면, 다시 말해 부족의 세력권 안으로 들어오면 경계병은 부족 전체에 이 사실을 알리고 공격준비를 할 것이다.
이 원시조상은 전망을 자기 부족의 세력이 미치는 영역과 그렇지 않은 파노라마에 대한 전망으로 나누어 관찰하고 있었던 셈이다. 여기서 전자가 바로 영역전망이다. 다시 말해 누가 다가오거나 침입하면 "당신 누구요?"하고 당당히 외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전망을 말하는 것이다. 안정감이 중요한 아파트와 같은 거주지에는 옹색하기는 하지만 베란다가 영역전망을 제공한다. 안정감보다 효율성이 중시되는 업무용 건물에서는 베란다와 같은 영역전망의 호사를 누리기기 쉽지 않다. 그런 곳에 유지태는 거주하고 있는 것이다.
전망만 결핍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도피처의 성격도 약하다. 도피처는 거주자를 은폐할 수 있어야 한다. 커튼이나 블라인드와 같은 것이 그런 장치다. 유지태의 공간에는 그런 것은 고사하고 창가에 라디에이터 박스조차도 없이 안이 훤하게 들여다보이게 되어 있다. 물론 실제로는 들여다보이지 않겠지만 심리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유지태의 거주지는 시원한 파노라마가 암시하듯 대단한 권력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영역전망과 도피처로서의 조건을 결핍한 위태로움을 상징한다. 비정상적으로 파노라마만 강화된 공간은 복수심에 불타 왜곡된 유지태의 성격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전망-도피 이론을 실제 생활공간에 적용해 보니…
도시 환경을 정비할 때에도 전망-도피 이론은 매우 유용하다. 인간의 심성에 맞는 환경을 꾸밀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롯본기에 있는 모리공원의 벤치 위치는 전망-도피 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100점짜리다. 벤치에 앉은 사람은 산책로를 바라볼 수 있지만 자신은 녹지 속으로 조금 들어가 있어 도피처와 같은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 그 아래에 있는 벤치의 위치도 산책로에서 3~4미터 정도 녹지 속에 파묻히듯 있다. 그러면서도 지대가 높아 전망도 확보하고 있다. 지나가는 행인과 눈을 마주치는 어색함을 피하도록 설계된 듯하지만 그 이상의 심리적 의미가 있어 시민에게 편안함을 준다.
최근 여러 지자체의 주택가와 공공건물에서 담장 허물기를 시도하고 있다. 담장 허물기는 전망과 도피처의 균형을 추구하는 인간의 심성과 만날 수 있어 우리 환경의 아름다움을 한 차원 높게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어쩌면 이런 일들이 간판정비보다 도시 환경에 더 중요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예컨대 고려대학교, 중앙대학교의 담장 허물기나 거리와 구내공간이 통합되어 있는 디자인진흥원 등을 보자. 좁은 보도를 걷던 행인들에게는 구내의 녹지를 볼 수 있는 전망을 제공하고 구내에 있는 학생이나 교직원들에게는 담장으로 가려져 있던 보도와 차도를 볼 수 있어 담장에 갇혀 있던 녹지를 영역전망으로 간주할 수 있게 해준다. 전망과 도피처가 균형을 이루게 된 것이다.
'담장 허물기'가 꼭 능사는 아냐
그러나 담장 허물기 사업에는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특히 주택의 경우 담장을 완전히 허물어서는 안된다. 담장을 완전히 없애버리면 도피처의 성격이 너무 약해져 거주자가 안정감을 잃게 되고 실제 도난에도 취약하다. 보안이 철저한 대형 건물이나 대학은 큰 문제가 없지만 개인주택은 어렵다.
많은 지자체에서 이뤄지고 있는 담장 허물기의 목적이 환경미화와 주차공간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쫒기 때문인 것으로 안다. 그러다 보니 차가 드나들 수 있도록 담장을 완전히 없애 버려야 했을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거주자가 편안함을 느끼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담장 허물기에 참여했던 주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급기야 다시 담장을 세우는 집도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환경을 개선할 소중한 기회를 날려버리게 될까 걱정스럽다.
담장 허물기가 거주자와 보행자 모두에게 안정감을 주려면 담장을 낮게 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완전히 허물었을 경우에는 영역을 확실히 구분할 수 있는 화단 등을 꾸며 영역전망을 확보하게 해야 한다. 건물이 도로에 바짝 붙어 있는 경우에는 런던의 주택에서 보듯 좁은 화단이라도 만들어 영역전망을 확보하고 누가 창문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바로 당신이 '호모 데지그난스'다"
인간의 심리에 대한 이 정도의 이해만 있어도 우리 환경은 눈에 띄게 아름답고 쾌적해질 수 있다. 그렇지 않고 무작정 담장을 허물어 단절된 이웃과 소통하라는 감상적 접근은 이웃 간에 새로운 갈등만 만들 가능성이 크다.
이제 지금까지 이야기한 관점에서 여러분의 주변 환경을 직접 디자인해보는 것은 어떨까. 디자인은 디자이너만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호모 데지그난스(디자인 하는 인간)'다. 직접 하기 어렵다면 상상이라도 해보기 바란다. 내가 사는 아파트나 학교의 담장을 꽃나무나 예쁜 측백나무로 바꾸는 상상을 해 보는 것이다. 높은 담장을 허리 높이의 담장으로 바꾸거나 잡석을 쌓아 작은 정원을 꾸며볼 수도 있다. 혹은 담장의 일부만 없애볼 수도 있다. 영역전망도 확보하고 보안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될 것이다.
차양을 설치하는 것도 권한다. 자연에서 그늘은 도피처를 만드는 중요한 수단이다. 그래서 야생의 많은 짐승들이 그늘에서 쉬고 숨는다. 차양이 만드는 그늘은 거주자나 보행자 모두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줄 것이다.
환경심리학에서는 좁은 공간일수록 작게 나누어 사용하라고 한다. 작게 나뉜 구석들은 공간을 아기자기하게 만들며 도피처의 성격을 강화시켜준다. 베란다를 없애 거실을 크게 만든 아파트가 시원한 느낌보다는 단조롭고 허전한 느낌을 주는 것과 맥이 통하는 이야기다. 베란다를 그대로 두고 그곳에 작은 화분들을 이용해 작은 화단을 꾸미는 것이 영역전망의 성격을 강화시켜 편안한 느낌이 커진다. 이왕이면 베란다 타일의 색과 유사한 화분들로 꾸며보는 것이 더 어울릴 것이다.
이런 상상들이 모이고 쌓이면 언젠가 우리의 몸도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환경은 이렇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스스로 가꿔나가는 것이 좋다. 삶이 묻어나고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전문 디자이너들이 세세한 환경에까지 간섭하기 시작하면 환경은 작위적이 되고 또 다른 획일성을 낳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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