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에서 우파로, 진보에서 보수로의 전환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사민주의의 뿌리가 탄탄한 스웨덴에서조차 그 힘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부유세 폐지로 사회보장제도 현격 축소
우파 정권이 출범한 이후 가장 먼저 손을 댄 부분은 부유세 폐지였다.
'국부의 유출을 막기 위한 정책'이라는 포장지 속엔 우파의 전통 지지층인 부유층의 요구가 들어 있었다. 이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우파로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선택이었다. 올 연말부터 실시되는 부유세 폐지와 더불어 종부세 또한 상당 부분 감면될 예정이다.
양극화는 스웨덴과는 거리가 먼 낱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젠 현실이 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듯, 스웨덴의 유력 일간지 <더겐스 뉘헤떼르>는 지난 2일 스웨덴의 빈부차 심화를 알리는 기사를 내보냈다.
한국돈으로 치면 연봉 15억 원 이상의 고소득자가 3만 6000 명에 달한 반면, 지난 20년간 소득세를 뗀 월 수입이 100만 원을 겨우 웃도는 저소득층도 59만 명이나 된다는 것이다. 우파 집권 4년이 끝날 즈음에는 빈자와 부자 사이에 되돌리기 힘들 만큼의 깊은 골이 패일 것은 너무나 분명할 것으로 전망된다.
상황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스웨덴은 부유세 폐지만으로 내년부터 6조 5000억 원에 달하는 재원을 잃게 되었다. 거기에다 종부세의 감면 등을 합치면 세금으로 인한 국가 수입은 2006년도에 비해 총 8조 5000억 원 가량 줄어들게 된다. 사상 최대의 액수다.
이를 충당하기 위한 방법으로 우파 정권은 국영 기업을 매각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또한 여의치 않다. 국회 헌법위원회로부터 더 이상의 매각은 불가능하다는 제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결국 재정 적자는 사회보장제도의 축소로 이어질 전망이다.
이미 수술은 시작됐다. 실업 보험 급여의 축소가 그 첫번째 제물이다. 최대 600일 동안 보장되었던 실업 보험 급여 기간이 300일로 줄어들 예정이며, 오는 7월부터 지급액 또한 현재 수준보다 상당히 낮아진다. 이에 많은 국민들이 농성을 시작했고 연일 현 정권의 지지율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칼자루를 쥔 우파는 행진을 멈출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부유층의 기대에 부응하는 의료기관의 민영화
전 국민들에게 동일한 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 왔던 전통 역시 조만간 깨어질 전망이다. 일반 보험회사들이 의료 보험 상품을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스웨덴은 모든 국민에게 무상 의료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90년대 초 외환 위기로 인한 의료기관과 의료진의 축소로 진료 및 수술 대기 기간이 상당히 길어지자 이에 따른 불만이 고조됐다.
부유층은 비용을 개인이 부담하는 조건하에 빠르고 질 좋은 의료 서비스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20만 명에 달하는 개인 고객을 유치한 보험회사들은 그들의 고객만을 위한 사립 의료 기관을 필요로 하고 있다.
80년대에 처음 시작된 스웨덴 의료 기관의 민영화는, 90년대 초반 우파 정권 시절에 스톡홀름주를 중심으로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지금은 전체 의료 기관의 약 10%가 민영화됐으며, 스톡홀름 같은 대도시는 그 정도가 훨씬 심각해 25%에 달한다.
아직은 민영화된 의료 기관이 환자로부터가 아닌 정부로부터 의료비를 지급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현 우파 정권은 개인이 의료 비용을 책임지는 체제를 활성화 시키겠다고 나섰다. 경쟁의 논리로 의료의 질을 높이겠다는 취지라지만, 실상은 부유층에게 특별 서비스를 제공함과 동시에 의료 행위로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꼴이다.
사민당 출신 전 사회복지부 장관 일바 요한손이 "병원을 위한 의료 시스템이 아닌 환자를 위한 의료 시스템과 일부 부유층 환자를 위한 병원이 아닌 일반 대중을 위한 병원"이라고 주장한 것은 의료 기관 민영화로 인한 사회 분열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평등을 버리고 차별을 선택한 이민정책
이민자들의 삶 또한 그리 순탄할 것 같지 않다.
통합과 인종의 다양성, 인종간의 불평등, 인종 차별 등을 내용으로 하는 2007년도 통합척도 조사에서 23.3%가 이민자들의 권리 제한을 주장하는 정당을 지지하겠다고 응답했다. 뿐만 아니라 스웨덴인 10명 중 3명이 직장과 주택, 정부 보조금과 관련하여 이민자를 제도적으로 차별하기를 원한다고 답했다. 취업의 기회가 줄어들면 이민자들을 본국으로 송환시키는 것이 좋겠다는 데에도 15% 이상이 손을 들어 환영했다.
이는 2005년도 조사와 비교하면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국민들의 의식에 상당한 변화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 수치다.
경쟁 논리를 도입한 교육
스웨덴은 90년대 초 우파 집권 당시 학교 제도의 과감한 변혁이 이뤄졌다. 그 이전까지 모든 학교는 정부에서 직접 운영하는 공립이었으나, 당시 일부분의 학교 운영권을 민간으로 이양했다. 최초의 자립형 학교가 학교제도의 재정비라는 명목하에 탄생한 것이다.
1994년도에 정권이 바뀌어 좌파가 재집권했으나 이미 민영화된 학교를 다시 정부 운영 체제로 돌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재정 문제도 있었지만 이미 사유화 되어버린 학교를 강제로 매입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지난 5월에는 학생 1500여 명이 다니는 스웨덴 최대의 공립고등학교인 티블레 윔나지움이 정부로부터 민영화 인가를 받았다. 대부분의 재직 교사와 학생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교장과 몇몇 교사들의 주도에 의해 자립 고등학교로 전환한 것이다. 지금까지 민영화된 학교는 전체 학교의 16% 가량이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늘어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초등학생들의 성적평가 시기도 2년을 앞당긴다고 한다. 현 8학년에 실시되던 국가고사(nationalla prov)를 6학년에 치르게 되며, 성적평가 시스템도 5단계에서 7단계로 늘어난다.
그간 느슨했던 학교 제도에 경쟁체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순간의 선택이 4년을 좌우한다
그 밖에도 노인 복지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 걸쳐 신자유주의 경향의 제도로 전환될 것이 예상된다. 5월에 실시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여전히 사회민주당의 지지율은 45%로(좌파 전체 지지율은 55.2%) 우파 전체 지지율인 40.8%를 능가하고 있다. 특히 현 수상이 몸담고 있는 온건당의 지지율은 23.8%로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민심은 현 정권을 떠난 지 오래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지지율의 하락이라는 극약도 정부의 정책 드라이브에 제동을 걸지 못하고 있다. 사민당보다 더 사민주의적인 정책을 구사하겠다던 온건당에 자신의 소중한 한 표를 준 스웨덴 국민들이 땅을 치고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버스는 이미 떠나버린 것이다.
한국은 지금 대선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이제 겨우 6개월 남겨 놓고 여당은 집단 탈당이라는 해체 수순을 밟고 있다. 진보 진영은 사분 오열되고 있다. 대통합의 비전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게다가 한 번의 실수가 향후 5년간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에 대한 관심들은 별로 없어 보인다.
스웨덴이 오늘날 세계적인 사회보장제도의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평등을 최고의 가치로 삼았던 좌파의 장기 집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920년부터 2006년까지 거의 한 세기에 달하는 기간 동안 단 두번의 실각을 제외하고는 좌파의 집권이 이어졌기에 정책의 일관성을 지닐 수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1932년부터 1976년까지 거의 반세기를 좌파가 독주하면서 사민주의의 뿌리를 깊게 내릴 수 있었다. 그런 스웨덴도 단 한 번의 정권 교체로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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