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차원에서 인권을 침해하거나, 환경에 지대한 피해를 주거나 혹은 부패한 경영을 일삼는 기업들을 투자 대상에서 제외시킨 이 조치를 두고 '왜'란 의문이 든 사람들도 적지 않았을 터이다.
노르웨이 정부는 왜 돈도 안되는 '사회 책임 투자'의 원칙을 굳이 고수하려 하는 것일까?
북한 공무원 교육에 4억5000만원 쓴 스웨덴 정부
지난 해 이맘 때 쯤, 스웨덴 국영 방송 <SVT(Sveriges Television)> 9시 뉴스에 국제원조부 장관 커린 옘틴의 인터뷰가 나온 적이 있다.
당시 스웨덴은 북한의 경제 관련 고위 공무원 및 중앙은행 핵심 요인 20 여명을 초청, 국제 경제 시스템 및 재정 관리 모던 테크놀로지, 법률 등을 주제로 7주간의 교육을 실시했다. 스웨덴 국제발전협력기구(SIDA) 주관으로 시행된 이 행사에 소요된 예산은 320만 크로나로 우리 돈 약 4억 5000만원에 해당하는 액수였다.
이에 야당이었던 우파가 정부 기관인 SIDA의 이 같은 업무 계획과 집행을 놓고 국민의 혈세를 들여 독재국가를 도와준다며 비판을 가해오자, 스웨덴 정부의 입장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방송을 통해 해명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었다.
옘틴 장관은 당시 시행된 교육은 북한의 입장에서 보자면 자국 경제 진작이 목적이었으며, 스웨덴의 입장에서 보자면 폐쇄된 북한을 개방으로 이끌기 위함이 그 취지라고 말했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볼 때 스웨덴을 위시한 서구의 개방된 국가들의 경제 시스템을 보여줌으로써 국제 사회에서의 고립을 막고, 북한의 민주화와 경제 안정을 도모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북한과 소통할 수 있는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 보겠다는 의지도 내보였다.
만일 이 작은 쟁점이 한국 언론에 보도됐다면 이 또한 많은 사람들의 의문을 사지 않았을까? '스웨덴이 직접적으로 득될 것도 없는데…' 혹은 '야당의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하는.
세계 최고 공적 개발원조 자랑하는 스웨덴과 노르웨이
이처럼 스웨덴와 노르웨는 역시 자국의 이득과는 상관없이 매년 예산의 상당부분을 국제 사회를 위해 할애하고 있다.
두 나라 모두 GNI(국민총소득) 대비 ODA(공적개발원조)가 1%를 넘어선 세계 최고수준이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바다. 스웨덴 정부가 2006년도에 ODA 부문에 지출한 예산은 약 40억 달러로 GDI(국민총소득)의1.03%에 달했다. 2007년도에도 비슷한 수준을 유지한다고 한다.
우파가 집권하고 있음에도 국제 사회에서의 역할에는 큰 변함이 없다.
여기에다 대면 한국의 성적은 초라하기 그지 없다. 한국의 GNI 대비 ODA 비율은 0.096%로 유엔에서 권고한 0.7%에 한참 못 미칠 뿐 아니라, OECD 평균인 0.36%의 37분의 1에 불과하다.
지난 해 한국의 GDP(국가 총생산) 수준이 OECD 국가 중 9위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게다가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ODA의 수원국으로 그 혜택을 톡톡히 받았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이는 매우 부끄러운 수준이 아닐 수 없다.
ODA의 조직적인 운용으로 효과극대화
스웨덴을 위시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ODA 비율만 높은 것이 아니라 그 정책과 전략 또한 분명하다.
스웨덴은 국제적인 원조 활동을 위해 외무부 소속으로 원조 장관이 따로 배치돼 있다. 또한 외무부 산하에 SIDA(국제 발전 협력 기구) 라는 조직을 두고 ODA 및 유사 원조 프로그램을 관장하게 하고 있다. ODA의 55%를 집행하는 SIDA에서는 매년 50여 개 국에 6000여 건의 원조 프로그램을 행사하고 있다.
SIDA 스스로 규정한 이 조직의 역할은 수원 대상 및 내용의 분석, 수원국과의 대화, 그리고 재정 지원이라는 세 가지다.
이를 위해 SIDA는 원조가 시급한 50여개 나라에 지역 사무소를 두고 있는가 하면, 170여명의 직원을 수원 대상국 주재 스웨덴 대사관에 파견하고 있다. 이들은 주재국에 스웨덴의 국제 원조 프로그램을 홍보하기도 하고, 수원국의 상황 및 정보를 SIDA에 알려주기도 한다. 더불어 지원 프로그램 실시 이후에 모니터링을 담당하고 있어 평가에도 참여하고 있다.
SIDA는 또한 원활한 정보 교환 및 합리적인 원조 활동을 위하여 국내 13개 단체와 협력하고 있다. 국제 협력 NGO 단체를 비롯해 사무직 및 공무원 노조, 팔메 센터 등이 이에 속한다. 특히 사무직 및 공무원 노조는 수원국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노동 조합의 설립부터 단체 협약의 체결에 이르기까지 지원과 자문을 아끼지 않는다.
지원 사업 결정 과정은 총 7단계로, 심사 과정을 거쳐 실행 단계까지는 약 10개월이 소요된다. 접수된 원조 신청서가 정부에서 정한 국제 협력 기준을 통과하면 수원 대상국 혹은 기관과의 대화가 첫 수순으로 잡힌다. 이는 2005년 파리 성명에 의거하여 수원국의 상황과 필요에 상응하는 원조를 실행하기 위함이라 할 수 있다.
원조 신청서의 최종 심사가 끝이 나면, 사업 발주는 SIDA 홈페이지를 통하여 전세계 기업들을 대상으로 공지되며, 투명한 공개 입찰을 통하여 수주 기업이 결정된다.
한국이 아직도 수원국의 입장이나 상황을 고려하기보다는 급조된 선심성 원조나 국내 대기업의 해외 사업을 위한 구속성 원조(공여국 기업이 사업을 수주한다는 조건성 원조)를 고집하고 있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국제 원조의 가치관은 사민주의로부터 1960년대 초반부터 적극적인 원조 활동을 벌여온 스웨덴의 이같은 국제협력 정신은 2003년도에 국회에서 발의한 국제 개발을 위한 스웨덴의 정책 (Sweden's Policy for Global development)에 잘 나타나 있다. 인권, 아동 권리, 남녀 평등,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초를 둔 공정하고도 지속적인 개발 협력이 그 첫번째 목적이며, 극빈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원조가 두번째 목표이다. 이는 평등을 최고의 가치관으로 삼는 사회민주주의 정신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체계적인 정책과 가치관의 부재로 인한 일회성 원조나 사후 관리 부실 등의 문제점을 안고 있는 한국의 원조 정책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대국민 홍보에조차 ODA는 원조의 옷을 입은 국익 챙기기란 식의 표현을 쓰는 걸 보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란 생각이 든다. |
함께 사는 세계를 위해, 당당하게 퍼주자
경제적인 혹은 물질적인 원조로 국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국제 분쟁의 한 가운데 서서 강대국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고 중립적인 자세로 갈등을 종식시키거나, 더 큰 분쟁을 막는 것 또한 물질적 원조 못지 않게 오늘의 국제 사회 구성원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다.
제 3세계의 입장을 누구보다 앞장서서 대변했던 울로프 팔메 전 수상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수에즈 운하 사건과 헝가리, 중동 휴전을 위해 헌신했던 더그 함마르쉘드 전 유엔 사무총장은 그 공을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이라크전쟁 직전에 유엔의 무기 사찰단 단장으로 당당히 미국에 전쟁의 부당함을 주장했던 한스 블릭스가 있었으며, 코소보 독립국제위원회가 스웨덴 정부 주관으로 만들어졌다.
이 모두 자국의 이득을 위해서가 아닌 전세계의 평화를 위해서, 함께 하는 사회를 위해서이다.
이처럼 국제 원조에 적극적인 스웨덴 정부와 국민들을 보다가 대북 원조 이야기만 나오면 '퍼주기'란 표현이 난무하는 한국의 현실을 돌아보면 안타깝기가 그지 없다. 국제원조의 차원에서 '퍼주기'를 당당하게 인정하고, 나아가서 '퍼주기'를 국민에게 권장하는 정부를 기대한다면 너무나 낭만적인 몽상이 될까?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개인 혹은 기업에게만 국한되는 도덕률이 아니다. 부모의 모범 없이 아이들에게만 선행을 권하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면, 국가의 모범 없이 개인이나 기업에게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얘기하는 건 허공에 대고 소리치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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