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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개념 없는 레바논보다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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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개념 없는 레바논보다 훨씬 낫다"

[김재명의 월드 포커스] <46> 분단의 한반도를 레바논에 견주면

"당신은 사우스 코리안인가? 노스 코리안인가?" 다른 나라 분쟁지역에 취재를 갈 때마다 "코리아에서 왔다"고 하면 흔히 던지는 질문이다. 그럴 때마다 '사우스 코리안'란 대답 대신 "서울에서 왔다"고 말하곤 했다.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나의 국적이 어딘가를 묻는 것이지만, 굳이 내가 국적(대한민국)보다는 출신도시(서울)로 지역범위를 좁혀 말한 데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다. 지구촌 분쟁지역 사람들에게 우리 한민족이 둘로 쪼개진 분단민족임을 확인시키고 싶지 않은 심정에서였다.

"당신은 수니파인가, 시아파인가"

2004년 봄 이라크에 갔다가 귀에 박히는 말 한 마디를 들었다. 그곳 바그다드대학 역사학 전공 교수 한 사람을 만났을 때, "당신은 수니파인가요, 아니면 시아파인가요"라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즉각 돌아온 대답은 "나는 수니도 아니고 시아도 아니다. 나는 이라크 사람이다"였다. 그의 요점은 "시아-수니를 가리려 하지 말고 통일된 이라크, 단합된 이라크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라크는 지난날 사담 후세인 정권 시절, 다수파인 시아파 이슬람 세력이 수니파 출신의 사담 후세인으로부터 온갖 정치적 탄압을 받았다. 그래서 시아-수니 사이에 갈등과 불신의 골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깊다.

2003년4월 후세인 몰락 뒤 4년이 지나며 내란상황으로까지 치닫는 동안 시아-수니를 가리는 것은 우리 한국에서 영남이냐, 호남이냐, 아니면 충청이냐의 출신지역을 가리는 것 이상으로 민감한 사항이 됐다. 일단 자신이 속한 이슬람 종파 사람이 아니면, 색안경을 쓰고 적대감마저 품고 상대를 경계하는 상황이다.

바그다드대 역사학 교수를 만나 한 수를 배운 뒤로부터 나의 대답도 달라졌다. 이즈음 분쟁지역에 가서 "당신은 사우스 코리안인가? 노스 코리안인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그냥 '코리안'이라고 짧게 대꾸하고 만다. 상대방이 굳이 남북을 따져 나의 국적을 확인하려 든다면, 이렇게 말한다. "생각이 깊은 코리안들은 굳이 남북을 가리지 않는다. 우리 코리안들은 쓰는 말도, 정서도, 핏줄도 하나다. 지금 어쩔 수 없이 남북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곧 통일된 코리아가 될 것이다"

다민족 국가들, 국가통합 난제로 고민

21세기 지구촌 분쟁지역들을 돌아보면, 한반도보다 상황이 어려운 곳들이 한둘 아니다. 중동지역의 팔레스타인, 레바논,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발칸반도의 보스니아, 코소보, 아프리카의 수단과 소말리아 등이 그러하다.

이들 지역들은 언어-혈연-종교-정서가 다른 정치세력들이 한정된 영토와 자원을 둘러싸고 피가 피를 부르는 유혈투쟁들을 벌여 왔고, 그런 탓에 서로에 대한 미움과 불신의 골을 메우기가 쉽지 않은 형편이다. 언제 또 다른 내전이 터질지 모르는 강한 휘발성을 지닌 곳들이다.

발칸반도의 경우 '세계의 화약고'란 달갑잖은 별칭이 말하듯, 20세기 들어와 분쟁이 끊임없이 벌어져온 곳이다. 오죽하면 영어에 'balkanize(분열하다)'는 어휘까지 생겼겠는가. 언어와 종교가 다른 종족(세르비아계, 알바니아계, 크로아티아계, 슬로베니아계)들이 섞여 살면서 인종청소라는 '더러운 전쟁'을 치러 왔다.

사실상의 분단국가, 보스니아

특히 보스니아(정식명칭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1995년 12월 보스니아내전을 끝내는 데이튼 평화협정에 따라 태어난 두 개의 공화국으로 이뤄진 사실상의 분단국가다. 두 개의 공화국이란 △'보스니악'(Bosniak)이라 일컬어지는 보스니아 회교도들과 크로아티아계 가톨릭교도들이 함께 만든 '보스니아-크로아티아연방' 공화국 △동방정교의 분파인 세르비아정교를 믿는 주민들(인구비율 37.1%)로 이뤄진 '스르프스카공화국'이다. 이 두 공화국의 연합이 우리가 흔히 부르는 '보스니아'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발칸반도에 더 이상의 국경선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경제원조라는 당근으로 보스니아를 재건함으로써 이 지역에 평화를 뿌리 내리려 힘써 왔다. 보스니아에 조화로운 다민족사회를 건설한다는 일종의 국제정치적 실험이다. 그러나 400만 인구 가운데 25만-30만 명쯤의 시민들이 인종청소라는 이름으로 죽임을 당하면서 깊어진 갈등의 골을 메우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보스니아 사라예보에서 만났던 미르코 페야노비치 사라예보대 정치학교수(세르비아계)는 국가통합의 어려움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우리 지식인들이 문제다. 말로는 조화로운 다민족사회의 건설을 말하지만,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구체적인 어떤 사안을 높고 토론을 벌일 때면 어느 순간에 국가보다 종족이 앞선다"

친미냐, 친시리아냐
▲ 베이루트 중심가의 레바논 정부군 병사들. 레바논은 18개 공인종교에다 미국, 시리아, 사우디아라비아, 프랑스 등 외세에 끈을 댄 각종 세력집단들 사이의 갈등으로 말미암아 '레바논 민족이라는 개념이 있는가" 의문이 들 정도로 모래알처럼 분열된 사회다ⓒ김재명

최근 레바논 정부군과 팔레스타인 난민촌의 무장세력 사이의 총격전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친 레바논도 국가통합을 둘러싼 고민이 깊다. 레바논은 인구 400만 명도 안 되는 작은 나라다(2006년 현재 378만명 추산). 그런데 이 나라엔 공인된 종파만도 18개에 이른다. 인구의 50%는 이슬람교도, 40%는 기독교도라 하지만, 이슬람교는 수니-시아-두르즈 파로 갈렸고, 기독교는 마론-그리스정교 등으로 나뉘어 서로 반목과 갈등을 빚어 왔다.

레바논은 1975년부터 1990년까지 15년 동안 내전을 벌여 10만 명 넘는 생목숨이 학살당했다. 내전의 피바람이 지나간 뒤 기묘한 권력분점(실질적인 지도자인 총리는 수니파에서, 대통령은 마론파에서, 국회의장은 시아파 지도자에게 할당)이 이뤄져 왔지만, 여러 정파 사이의 이합집산과 반목은 그치지 않는다.

보스니아-레바논보다 단순한 한반도 여건

큰 그림으로 보면, 지금의 레바논은 포우아드 시니오라 총리(수니파)를 정점으로 친미 성향의 정권과 헤즈볼라(시아파)를 중심으로 한 반미전선이 대치전선을 이루고 있다. 레바논의 편가르기는 친미냐 친유럽(특히 프랑스)이냐, 친미냐 반미냐, 친시리아냐 아니냐, 이스라엘과 타협을 할 것이냐 싸울 것이냐 등의 날줄과 씨줄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모습이다.
▲ 누가 패배자인가(who's losing). 레바논 사회의 분열은 공멸을 낳을 것이라 경고하는 대형 포스터.ⓒ김재명

레바논 베이루트 아랍대학(BAU, 알아라비야 대학)의 하산 카티브 교수(정치학)는 레바논 통합의 어려움을 이렇게 설명한다. "레바논의 여러 정파들은 외부세력을 끌어들여 자파의 힘을 키우는 데 이용하려는 데 익숙해 있다. 레바논 상황을 바깥 사회와 고립시켜 생각하기 어렵게 됐다. 미국과 유럽국가들, 그리고 이웃나라인 시리아와 이스라엘은 저마다 레바논을 자국의 이익에 유리한 쪽으로 몰아가려 한다"

앞에서 살펴본 보스니아나 레바논에는 국가통합의 바탕인 민족과 민족주의란 개념이 과연 있는지, 있다면 어떤 것을 가리키는지가 불투명하다. 보스니아나 레바논의 지식인들조차 민족문제에 대해선 모범답안을 제시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한반도 상황은 보스니아나 레바논에 비해 단순하다.

우리는 언어와 피가 하나인 이른바 단일민족이다. 민족분단의 시대를 살아온 지 60년을 넘겼지만, 통일에의 희망을 버리지 않는 데엔 "우리는 단일민족이야"라는 의식이 바탕을 이룬다. 동서냉전의 산물이었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듯이, 비무장지대(DMZ)가 사라질 날도 곧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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