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 방문에 앞서서는 제주 4·3 평화공원을 찾아 "제주도의 아픔을 넘어 대한민국 전체가 기억해야 하는 역사다. 파괴와 폭력의 역사를 넘어 평화의 역사를 써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하다가 눈물을 보였다.
유력 대선 후보가 역사의 아픔이 서린 현장을 찾아 비폭력과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고, 제주해군기지 건설로 고통받고 있는 강정마을을 방문해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위로의 말을 전한 것은 분명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안 후보가 평화공원에서 보인 가슴 뭉클한 눈물이 '악어의 눈물'이 되지 않을까 심히 걱정된다. 4·3의 역사성과 강정마을의 현재성을 넘어 "평화의 역사를 써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다짐은 제주해군기지 문제에 대한 합리적이 해법으로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공허한 정치적 수사로 끝날 것이기 때문이다.
안철수가 원하는 '고급 정보'가 대체 무엇인가?
안철수 후보는 해군기지 문제는 두 가지로 나누어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나는 "과연 대한민국에서 제주도에 해군기지가 필요한가"이고, 또 하나는 "강정을 선정할 때 그 과정상의, 또는 주민 동의 구하는 과정에서 문제는 없었는가"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절차상의 문제는 대통령의 사과가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해군기지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 근거로 아래와 같이 말했다.
"해군기지가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일반 국민들이 판단을 내리기는 어려운, 굉장히 국가 안보상의 정보들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지난 여러 정부에서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제주도에 해군기지가 필요하다는. 그래서 다른 제가 고급 정보를 지금은 접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다들 이념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또 국제 환경도 지난 20년간 굉장히 많이 바뀌었는데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면 제주도에 해군 기지가 있는 것이 국가안보 차원에서 그런 필요하다는 결론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이는 지난 7월에 발간된 <안철수의 생각>에서 밝힌 것과 거의 일치한다. 이러한 생각에 사로잡힌 안철수 후보는 '공사 중단과 재검토'를 요구하는 강정마을 주민들의 호소를 끝내 외면하고 말았다.
▲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가 2일 오후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회관을 찾아 제주해군기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
물론 '대통령의 자격'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국가안보를 튼튼히 하는 것이고 이러한 맥락에서 제주해군기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는 있다. 그렇다면 해군기지가 왜 국가안보에 도움이 되는지 그 근거를 국민에게 상세히 설명하는 것이 '대선 후보의 자격'이다.
그러나 안 후보가 밝힌 유일한 근거는 "제가 고급 정보를 지금은 접할 수 없는 상황"에서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가 해군기지가 필요하다는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면 이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사실관계부터 잘못된 것이다. 제주해군기지 사업이 김영삼 정부 때부터 '검토'된 것은 사실이지만, 사업을 '결정'한 시점은 노무현 정부 때였다. 또한 현재로선 국가안보상의 고급 정보를 접할 위치에 있지 않다면, 대통령에 당선되고 고급 정보를 접한 이후에 해군기지에 대한 입장을 정하겠다고 밝혔어야 했다. 그리고 대통령의 사과가 필요할 정도로 절차상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일단 공사를 중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도 내놓았어야 했다.
안철수 후보의 가장 큰 문제는 안보에 대한 권위주의적 시각이 엿보인다는 점에 있다. 위에서 인용한 안 후보의 발언 속에는 '정부는 안보를 잘 알고 국민은 잘 모른다'는 위험천만한 생각이 깔려 있다.
물론 정부가 국민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곧 국가안보에 이로운 방향으로 정책 결정이 이뤄진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미국의 통킹만 조작 사건과 이라크 침공에서부터 이명박 정부의 부실한 천안함 침몰 조사 등에서도 알 수 있듯이, 때때로 정부는 정권 안보를 위해 정보를 은폐·조작한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가기 마련이다. 정보와 전문성을 이유로 국가안보 문제를 민주주의의 예외로 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민사회의 참여와 민주적 통제를 강화해야 할 까닭이다.
안철수에게 필요한 고급 정보 '네 가지'
안철수 후보가 4·3. 평화공원에서 보인 눈물이 '악어의 눈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국가안보를 비롯한 국익을 위해 제주해군기지 건설이 철회되어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여기에는 정부도 알려주지 않은 '고급 정보'(?)들도 있다. 네 가지만 간략히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제주해군기지는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과 잠수함의 정박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는 주장이 아니라 '팩트'이다.
둘째, 제주해군기지가 건설되면 미군의 이용 여부는 한국의 주권이 아니라 미국의 선택에 달려 있다. 우리로선 자존심 상하는 일일지 모르지만, 이 역시 주장이 아니라 '팩트'이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주한미군 주둔군 지위협정(SOFA)를 개정해 사전승인제를 명시해야 하는데, 이는 한미동맹의 일대 파란을 각오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셋째, 제주해군기지가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체제(MD)의 일환으로 이용될 것이라는 우려가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최근 한미간에는 밀실협의를 통해 오키나와나 괌으로 향하는 탄도미사일 정보를 한국이 미국에게 제공키로 했다. 이 역시 '팩트'이다. 그런데 제주해군기지는 이를 위한 최적의 위치에 건설되고 있다.
넷째, 중국 정부는 공개적으로 제주해군기지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지만, 민간 전문가들은 강한 우려와 불만을 갖고 있다. 한국 해군이 제주해군기지를 건설해 이어도에 대한 초계 활동에 나설 가능성과 이 기지가 미국 주도의 대중국 봉쇄전략의 일환으로 이용될 가능성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만약 미국이 제주해군기지를 이용하면 한중관계는 크게 불안해진다. 미국이 이용하려고 하는데 한국이 못하게 하려고 할 경우에는 한미관계가 어려워진다. 그런데 해군기지 건설을 백지화하면 이러한 우려는 애초부터 할 필요가 없어진다. G2 시대에 화두처럼 회자되고 있고 박근혜-문재인-안철수도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연미화중(聯美和中)의 지혜가 바로 이런 것이다.
이어도 문제도 외교적 해법을 추구해야 한다. 한국과 중국이 서로 관할권을 주장하는 이어도 문제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합의가 존재한다. 하나는 이어도는 섬이 아니라 수중 암초이기 때문에 '영토 분쟁'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협상을 통해 문제를 풀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합의는 차기 정부가 협상을 통해 배타적경제수역(EEZ)를 설정할 수 있는 소중한 토대이다.
결론적으로 제주해군기지는 백지화하는 것이 국가안보를 포함한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 대안으로 서귀포시 화순항과 제주항에 건설·확장될 예정인 해경부두를 해군이 기항지로 사용하는 것도 검토해볼 만하다. 위에서 언급한 전략적 우려는 차단하면서 남방 해역에 대한 안보는 강화하고 막대한 예산을 절감할 수 있으며 강정마을을 제주도의 소프트파워의 중심지로, 제주도를 대한민국의 매력의 발신지로 만들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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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가 <프레시안>에 연재한 글을 엮어 만든 책 <핵의 세계사>가 발간되었습니다. ☞ 책 소개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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