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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십니까? 한 사람의 두 가지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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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십니까? 한 사람의 두 가지 시선"

[전태일통신 64]아직은 만나기 어려운 '사람의 삶'과 '인간의 삶'

한 사람으로 인생을 살아갈 때 사회적 '인간의 삶'과 개인적 '사람의 삶'은 언제나 버거운 무게로 어깨를 짓누른다. 사람으로서의 가치 추구도 중요하지만 사람과 사람 즉, 인간관계로서의 삶도 지나칠 수 없는 문제다. 그 개인이 장애인이라면 더더구나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삶의 무게는 실로 엄청나다.
  
  가끔 궁금해진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각자 느끼는 그 무게를 정확한 수치로 나타낼 순 없는가? 장애인 친구들과 농담처럼 주고받는다.
  
  "장애인의 하루는 아마 비장애인의 사흘에 버금갈 거야."
  "와! 그럼 난 30대니까 벌써 아흔 살이 넘었겠네. 하하."
  
  농담으로 한 말이지만 우스운 얘기는 아니다. 지하철 안에서 뒤틀리는 몸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상대방의 시선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아의 시선은 1급 장애인인 나에게는 늘 만나지지 않는 직선으로 치닫는다.
  
  다양한 인간들을 분류한다는 것이 언어도단이겠지만 장애인을 대하는 비장애인의 모습을 두루뭉술 나눠보면 크게 네 가지다. 높은 호기심으로 상대방 얼굴에 구멍 내는 사람, 옆에 누가 있든지 상관하지 않고 '유체이탈'을 꿈꾸는 사람, 자신밖엔 도와 줄 사람이 없다는 듯 지나친 친절을 베푸는 사람, 새 친구를 대하듯 쑥스러움을 실은 당당함으로 상대해주는 사람.
  
  "어느 부류의 사람이 가장 편한가?" 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본다면 나는 아직은 '유체이탈을 꿈꾸는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다.
  
  내가 다녔던 두 직장이 있다. 하나는 그림을 팔던 곳이었으며, 다른 한 군데는 이불을 팔던 곳이었다. 파는 것은 달라도 몇몇 공통점이 있다. 홈페이지를 관리했었다는 점과 사업이 어려워져 문을 닫았다는 것, 그리고 아직 해결이 안 된 체불임금이 있다는 점이다. 이런 공통점이 있지만 두 직장이 나를 대한 태도엔 차이점이 있었다. 미안하게 됐다며 다달이 얼마씩이라도 보내 준 곳은 지금도 재기를 했을까 하고 걱정이 든다.
  
  그러나 이불을 팔던 다른 한 곳은 노동부에 가서 체불임금 신고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면 받을 수 있다기에…. 넉 달 다니는 동안 임금을 한 달 반은 주더니 사업이 어려워졌다며 며칠 있다 준다, 준다, 차일피일 미루기에 이젠 안 되겠다 싶어 그만두려고 했었다. 그러자 자신의 친척이 운영하는 회사는 사정이 괜찮으니 그쪽 일을 하면 임금을 주겠다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 말만 믿고 4시간이 넘는 출퇴근 시간을 견디며 다녔었다(집은 화곡동이고 회사는 쌍문동이었다).
  
  그렇게 한 달을 다녔는데 하루는 이불가게에 일을 봐 줄 것이 있다며 가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 이불 가게로 갔다. 그리고 밀린 임금 얘기를 꺼냈다. 이불 가게 사장은 문을 닫을 정도로 어려워졌다며 사정을 봐주면 꼭 해결해 줄 테니 기다려달라는 말을 했다. 너무 기가 막혔지만 믿고 싶었다. 어려운 사람을 많이 돕는 사람이라며 방송국에서 취재까지 나온 사람이었다.
  
  이불가게를 그만두고 집에 있으면서 계속 독촉을 했지만 나중에 돌아온 말은 "한 일도 없으면서 너무 뻔뻔하네"였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가게 사정이 어려워졌으니 같이 일한 사람도 임금을 못 받았겠구나 싶어 안부 겸 위로를 받고자 연락을 했더니 자신에겐 나오기 전 밀린 임금 다 주더라는 얘기였다.
  
  이 말에 가슴은 무너져 내렸다. 어찌 세상이 이토록 무서운 곳인가. 노동부에 가서 체불임금 신고를 했지만 이불가게에서 연락이 없다며 관련 서류를 발급 받아 가게 주인이 사는 부천법원으로 가보라는 얘기만 했다. 부천법원으로 가니 등본이 필요하다기에 어렵사리 동사무소에서 등본을 발급받아 부천 법원으로 갔다. 그러나 부천 법원에서는 이불가게가 이사를 했으므로 서울남부지방법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그래서 다시 남부지방법원으로 가서 소액사건으로 신고를 한 뒤 연락을 기다렸다.
  
  그러나 내 손에 받아 든 것은 달랑 '이행권고 결정'이라는 처음 듣는 이름의 서류 한 장뿐이었다. 내용인즉 피고와 연락두절이므로 법원이 원고의 편을 들어줄 테니 나중에 둘이 해결을 보라는 것이었다. 그 다음부턴 머릿속이 하얘졌고 어떤 행동도 취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힘들었다. 장애인의 몸으로 여기저기 혼자 쫓아다니는 것도, 모래를 한가득 삼킨 듯한 마음도,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지옥문 같은 세상도,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거웠다. 다시 시작하자니 그 마음을 또 한 번 맛봐야 한다는 두려움, 원고라는 이름을 지어준 가게 주인을 보고 싶지 않은 마음에 아직도 갈등하고 있다.
  
  그런 일이 있고부터 나 또한 사람들을 대하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게 되었다. 내 자신이 존재하기 싫어 하는 유체이탈을 꿈꾸는 사람이 되어 투명하게 상대방을 대한다.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나보다는 한 사람으로서의 내가 중요하다며 시선을 자꾸만 안으로만 향한다.
  
  하지만 새 친구를 당당히 대하는 직장이 생겨 이제는 '사람의 삶' 시선이 1도가 기울어져 '인간의 삶' 시선과 만나려고 한다.
  
  오늘도 3배의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장애인들에게 1도의 기울기만이라도 생기길 바란다. 그래서 '새 친구를 대하듯 쑥스러움을 실은 당당함으로 상대해주는 사람'이 가장 편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장애인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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