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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배신'에 '반미감정' 느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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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미국의 '배신'에 '반미감정' 느끼나?

한반도 브리핑 <43> "한반도 정세 급물살…둔감하면 쓸려나가"

최근 한반도 정세가 과거와 질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북한의 핵실험과 유엔의 대북제재 통과 때만 해도 북핵문제는 풀기 어려운 난제였고 북미관계는 갈 데까지 간 대결국면이었다. 그러나 2.13합의로 북핵 폐기와 북미관계 개선을 위한 의미 있는 첫걸음이 시작되었고 갈수록 그 보폭이 빨라지고 있다.

핵문제 난항의 여파로 문을 걸어 잠갔던 남북관계 역시 7개월 만에 다시 빗장을 풀고 정상화에 나섰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 미국을 방문해서 한반도 전문가들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고 뮤지컬을 관람하는가 하면 국가원수급 경호라고 불릴 정도의 극진한 대우를 받고 있다.

30일 이내에 개최하기로 되어 있는 5개 워킹그룹 회의 중 북미관계 정상화 실무회의가 가장 속도를 내고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미국이 약속한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 동결계좌 해제도 예정대로 진행되는 양상이다. 2007년의 한반도 정세가 그 어느 때보다 역동적이고 전향적일 것임을 예고케 하는 장면들이다.

근본부터 바뀔 조짐?

이같은 한반도 정세의 급물살과는 달리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이를 실감하지 못하거나 애써 외면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최근에 진행된 정세변화의 속도감이 사태파악마저 못하게 하는 현기증을 불러일으킨 것일까? 2.13합의를 보고도 북미관계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채 한계를 먼저 지적하고 결국 부도나고 말 것이라는 섣부른 예단만 앞세우고 있다.

오히려 북한이 상당히 양보한 남북장관급회담의 결과를 놓고도 남쪽이 얻은 게 별로 없다는 식의 투정만 내세우는 형국이다. 심지어는 쌀·비료 지원문제가 장관급회담에서 '논의'되는 것이 이미 오랫동안 지속된 관례임에도 불구하고 이재정 통일부 장관의 말실수를 트집 잡아 마치 엄청난 이면합의가 있었던 것처럼 침소봉대하는 짓궂음마저 보이고 있다.
▲ 북미 관계정상화 회의를 위해 뉴욕을 찾은 김계관 외무성 부상(왼쪽에서 두번째)이 5일(현지시간) 한미 민간교류단체 코리아소사이어티 비공개 세미나에 참석해 조지 슈왑 전미외교정책협의회(NCAFP) 회장(오른쪽)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북미는 항상 다퉈야 하고 핵문제는 항상 악화되어야만 하는 것이고 오히려 그게 정상인 것으로 인식되는 오래된 습성이 새로운 정세호전을 맞이하는 한반도 상황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핵문제로 남북관계도 꼬여야 하고, 북한이 양보를 해도 남한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다 들어주지 않는 한 여전히 남측이 손해 본 것이고 당한 것이라는 과도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이상 남북관계는 항상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지금의 현실이 이들의 인식과 달리 북미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증진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대결과 갈등의 한반도 질서가 근본에서부터 바뀔 조짐이 있다는 점이다.

北·美 모두 잃을 게 없는 장사

최근 보이는 한반도 정세의 호전에는 무엇보다 북미간 생산적인 협상이 주요 동력이 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이는 곧 북미 양자가 핵문제 해결과 관계개선이라는 큰 틀의 방향에 의견을 같이하고 있고 협상과정 역시 탄력을 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1월의 베를린 북미회담은 지금도 모든 보따리가 풀리지 않았을 정도로 매우 많은 현안들이 심도 있게 논의된 결정적 계기였다. 중국마저 빼고 김계관 부상과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이야기를 매우 진지하게 주고받았다. 지난 2월의 제5차 6자회담 3단계 회의는 이미 베를린 회담에서 북미간에 합의된 내용들을 6개국 대표들이 추인하는 성격에 불과했다.

앞으로도 6자회담은 사실상 북미 양자협상의 결과를 사후적으로 공식 승인하는 모양새가 될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다. 동시 병행하도록 되어 있는 5개 실무회의 역시 가장 민첩하게 움직이는 북미 관계정상화 실무회의가 사실상 주도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같은 북미 양자협상의 생산성은 북한과 미국이 처한 대내외적 필요성과 절박함이 상호 이해관계의 공감대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라크전의 실패와 이란 핵문제 악화 등 중동정세가 갈수록 불안해짐에 따라 부시 미 행정부는 이제 북핵에서라도 대외정책의 실패를 만회해야 하는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되었고 임기 내에 북핵 관리와 한반도 평화체제 증진을 해놓는다면 분명한 정치적 성과라는 인식이다.

북한 역시 핵실험까지 해놓은 마당에 미국이 양자대화에 응하고 대북 상응조치에 진지하게 나선다면 최종의 핵폐기까지는 많은 '살라미'(카드 쪼개기) 단계가 남아 있으므로 지금 당장의 협상 자체를 마다할 리 없을 것이다.

대외정책도 국내정치의 연속이라는 동서고금의 금언을 돌이켜본다면 결국 지금의 북미협상의 진전과 관계 개선의 움직임은 미국이나 북한 모두 정치적 필요성에 충분히 부합할 만한 것이다.

우려하는 것처럼 2.13합의 이행의 과제들이 남아 있긴 하지만 이 역시도 북미가 성공적인 실천을 위해 상호 노력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당장 2.13 이후 구체적인 실천과정이 시작되었고, 그 첫 걸음마는 아직까지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다.

60일 이내에 이행하기로 되어 있는 영변 핵시설의 폐쇄와 봉인에 대해 북한 당국의 의지가 확고하다는 것은 한국과 미국 관리들의 입을 통해 반복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북한은 초기조치 검증 절차를 논의하기 위해 엘바라데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의 방북을 신속하게 요청해놓았다.

김계관 부상의 방미 행보 역시 2.13합의 이행에 중요한 분수령이 되고 있다. 향후 힐 차관보의 방북이 점쳐지고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북핵 해결을 위한 북미간 접촉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고 우호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은 그 누구도 부인하기 힘든 상황인 것이다.

고농축우라늄문제도 북미간 타협점 찾을 듯

물론 2.13합의의 성실한 이행 여부를 판단하기엔 아직도 유의해야 할 대목이 남아 있다. 무엇보다 이번 합의문에 포함된 북한 핵 프로그램의 신고 목록 협의와 완전 신고 과정에서 고농축우라늄(HEU) 문제가 복병으로 돌출할 가능성이 있다.

2002년 북핵위기의 출발점인 탓에 HEU 문제는 북한과 미국 모두 양보하기 힘든 사안이다. 한쪽의 잘못이 입증되는 순간 지금의 북핵위기를 초래했다는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제 역시 북미간 상호 체면이 손상되지 않는 선에서 일정한 타협점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이미 HEU 문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과거보다 후퇴하고 있음은 여기저기서 감지된다. HEU 프로그램의 존재는 인정하되 무기화 정도의 위협적인 내용은 아니라는 접점 마련이 예상되고 있다.

또 하나 IAEA의 사찰요원 방북 이후 북한과 IAEA 사이의 해묵은 감정이 2.13합의 이행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지난 1차 북핵위기 당시 IAEA와 북한은 기술실무적 차원의 쟁점을 놓고 과도한 신경전을 벌인 바 있다. 이번에도 IAEA가 북미간 정치적 협상을 이해하지 못한 채 지나치게 기술적인 문제를 들고 나올 경우 문제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국제원자력기구가 2.13합의 이행에 전향적으로 대응해 주도록 권고하는 북미간 양해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한반도에도 진정한 봄이 올 것인가. 지난 2일 오전 봄비가 내리는 평양시내에서 사람들이 출근하고 있다. ⓒ뉴시스

2.13합의 밖의 문제들, 즉 핵무기와 이미 추출한 플루토늄 및 핵실험장 문제들이 전혀 풀리지 않았다고 개탄(?)하지만 이는 이번 합의가 명백히 9.19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조치'라는 제목으로 명명되었음을 망각한 트집 잡기에 불과하다. 이제 막 결혼 날짜를 잡은 남녀에게 결혼신고를 하지 않았음을 따지는 격이다.

결국 일부의 우려와 불안에도 불구하고 지금 한반도 정세가 북미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체제 진전 및 남북관계 발전의 방향으로 물꼬를 틀고 있음은 부인하기 힘들다. 그리고 이는 지금까지와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정세변화를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부자 몸사리기'가 발등 찍을라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마주앉기조차 싫어했던 부시 행정부가 북의 고위 관료를 미국으로 불러들여 전 세계의 관심을 집중시킨 채 직접 양자회담을 갖고 있다. 잘못된 행동에 대한 보상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과거의 고집과 달리 공식 회담을 통해 북의 요구사항을 진지하게 논의하고 있다. 그야말로 격세지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북미간 고위급의 교차방북이 이루어지고 급기야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부시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만나 한국전 종전선언에 직접 서명하는 극적인 장면이 연출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일부 보수진영과 언론에서는 미국의 태도변화를 현실로서 직시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부시 행정부가 그럴 리 없다는 허탈함을 넘어 양자 협상의 대북기조가 한반도를 위험하게 만들고 미국의 국익마저 해치고 있다는 단호함 속에 이미 현실화된 미국 정책을 반대하는 결연함마저 보이고 있다.

냉전의 색안경 때문에 미국의 정책방향마저 거부하는 묘한 '반미'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남북관계의 복원과 진전에 대해서도 예의 퍼주기 망령에 사로잡혀 관계개선 보다는 현상유지를 바라는 눈치다.

북미관계가 예상보다 빨리 진전될 가능성과 함께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가 급물살을 탈 가능성마저 존재하는 상황에서 한반도 밖의 정세변화에 둔감한 채 우물안 개구리식의 과거타령만 늘어놓고 있다면 정작 중요한 시기에 우리의 국익은 실종되고 급격한 변화의 흐름에서 배제될 것이다.

본질적으로 한반도 질서의 변화가 예고되고 있는데도 정작 한반도의 주체가 되어야 할 우리가 애써 이를 부인하고 과거지향적인 대결논리와 적대의식에만 사로잡혀 있다면 결국은 변화의 방향과 성과를 만들어내는 데서 우리의 발언권과 개입력은 존재하지 못한다.

최근의 정세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우리의 발언권을 확보하면서 보다 적극적인 개입력을 갖기 위해선 남북관계라는 카드를 결코 놓아서는 안 된다. 북미가 한반도 평화체제를 논의하는 것에 대해 우리는 남북관계의 진전을 통해 그 방향과 속도를 우리의 이익에 맞게 요구하고 주도해야 한다.

우리를 빼고 다들 숨가쁘게 움직이고 있는데도 남북관계라는 우리의 주체적 개입력을 스스로 포기하는 처사는 스스로 발등을 찍는 어리석은 태도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일부 정치세력과 언론은 북미관계 급진전에 둔감해 하면서 남북관계 발전에도 반대하는 시대착오적인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오로지 금년 대선 승리에만 집착한 채 실제로 다가오는 국제정세의 변화와 한반도 질서의 지각변동을 애써 무시한다면 결국 미구에 닥쳐올 현실의 파도에 떠밀려 갈지 모른다.

도합 70%에 육박하는 유력 대선 후보 두 사람의 지지율에 빠져 지금의 판이 그대로 유지되기만을 바라는 야당의 '부자 몸조심'식 대응은 급기야 대선정국에 닥쳐올 한반도 정세변화에 우왕좌왕하게 되고 결국은 시대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시대착오적 진영으로 낙인 찍히고 말 것이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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