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30분, 서울역 대합실은 노숙자들의 천국이다. 지옥에 등 대고 누운 자들도 천국의 꿈을 꿀 수 있다. 저들은 모두 어느 별에서 온 것일까. 은하철도의 차표를 잃어버린 은하 여행자들. 매정한 검표원은 여행자들을 이 낮선 행성에 내 던져놓고 떠나버렸다. 열차는 지금쯤 어느 은하계를 달리고 있을까.
이 행성의 역에서도 차표를 가진 자들은 모두 대합실 개찰구를 빠져나가 다른 별로 떠나는 열차에 몸을 싣지만 저들은 끝내 플랫폼의 끝자리로도 진입할 수 없을 것이다. 지구 행성의 대합실 시멘트 바닥에 고단한 몸 누이고 죽음보다 깊은 잠에 떨어진 이들의 생애가 헌 신문지 한 장보다 가볍게 펄럭인다.
이 새벽의 은하 철도역에는 떠나는 열차를 기다리는 승객보다 어디로도 떠날 수 없는 노숙의 여행자 수가 더 많다. 사과 박스를 깔고 자든 맨바닥에 몸 누이고 자든 꿈 깨지 않으려는 몸부림으로 집 없는 이들의 새벽잠은 울컥 서럽다.
늙은 남자 하나는 화장실 입구벽 쪽으로 얼굴 돌리고 잠들어 있다. 배가 볼록한 여인은 불빛 환한 대합실 의자 옆에 누워 가쁜 숨을 몰아쉰다. 여인은 아기의 아비가 누구인지도 모를 것이다. 자신은 유린당했으나 아이만은 끝끝내 지키고 싶은 것이다. 빛의 보호 속에 아기는 무사히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될까.
부산에서 밤 11시 열차를 탔었다. 서울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나는 떠날 시간을 기다린다. 모두가 떠나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면서도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도시. 서울은 마약 판매상이다.
서울역뿐만이 아니라 이 나라 곳곳에 노숙자들이 널려 있다. 어느 시대에나 유민은 있었고 어느 시대에도 압제와 굶주림을 피해 떠났었다. 밥 한 그릇 배불리 먹기 위해 목숨 걸고 길 떠났었다.
오늘 이 거리의 유민들, '노숙자'들은 더 이상 밥에 굶주려 길거리로 나서지 않는다. 밥에 굶주려 길 위에서 목숨 잃지 않는다. 이 시대, 이 나라에서는 밥에 굶주려 죽는 사람보다 욕망에 굶주려 죽는 사람이 더 많다.
한 시대가, 한 사회가 망하는 것은 부의 편중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개인이 망하는 것은 가난 때문이 아니다. 부에 대한 갈망 때문에 망하는 것이다. 부를 독점하는 자들을 영웅시하는 사회. 부에 대한 욕망과 집착을 부추기는 나라가 이들을 병들게 했다. 노숙자가 된 것은 노숙자 자신들이지만 그 책임은 노숙자가 아니라 시대와 나라에 있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집과 가족을 잃고, 마침내 자기 자신마저 잃고 이 대합실에 잠들어 있는 사람들. 시대의 가장 가난한 이방인들. 나라가 이들에게 하는 일은 무엇인가.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는 말을 핑계로 나라는 책임을 회피하고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지만, 나라가 해야 할 유일한 일이 가난으로 고통받는 백성들을 구제하는 일 말고 또 무엇이 있겠는가. 비참한 지경에 빠져 삶의 희망을 잃은 자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바닥에서 일으켜 세우는 일 말고 무엇이 있겠는가. 삶의 희망을 상실한 이들에게 잠깐 밥이나 먹여주고 잠자리나 제공해 주는 일은 해결책이 아니다.
이 나라의 정치, 경제 지도자들, 언론들은 고통 속에서 드물게 빠져 나온 이들을 치켜 세우며 그저 이들의 나태함과 의지 부족을 비난하기만 한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도 고통을 겪고 있는 자들에게 손 내밀지 않고 조롱하는 행위는 사악하다. 고통은 당해 본 자가 아는 것이 아니다. 지나간 고통은 고통이 아니다. 고통은 늘 진행형이다. 지금 고통을 당하고 있는 자만이 고통을 안다.
밤 열차를 탄 것이 오래 되어서 그런 것일까. 새 서울역사가 지어지고 난 뒤 대합실에 노숙자들이 잠을 자는 모습은 처음 본다. 서울역사가 새로 지어 진 뒤에는 노숙자들이 대합실 근처에도 얼씬 못하게 하지 않았던가. 서울역이 노숙자들에게 어찌 이토록 관대해진 것일까.
대합실 중앙에는 KTX 승무원들이 농성 중이다. 노숙자들도 KTX 승무원들의 덕을 보는 것일까. 역무원들은 동료인 승무원들을 놔두고 노숙자들만 내쫓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사람은 약자가 되어 본 다음에야 약자의 고통을 이해하게 된다.
방금 열차에서 내린 사람들 중 일부는 맨바닥에 누워 잠든 노숙자들을 벌레 보듯 움찔 하며 지나치기도 한다. 저들은 누구일까, 나와는 다른 별에서 온 외계인들이 분명할 것이다, 저들이 속한 세계는 내 세계와 다르다 생각하는 것일까. 하지만 저들도 어제까지는 우리와 같은 별에 살았었다.
새벽, 서울역 대합실. 오래 지속될 수 없는 노숙자들의 천국. 마실 물이 있고, 비 가릴 지붕이 있고, 곳곳에 무료 급식소가 있고, 대형 텔레비젼과 등 기대고 앉을 의자가 있다. 그러나 이곳에는 삶이 없다. 삶의 희망은 간 곳 없고 삶에 대한 환멸만 가득하다.
밤새 내리던 비가 그치지 않는다. 역사를 빠져나와 서울역 광장을 걷는다. 옛 서울역사 처마 아래도 노숙자들의 잠자리다. 들이치는 빗물 때문이었겠지. 일찍 잠깬 노숙자들, 두런두런 둘러 앉아 소주를 마신다.
옛서울역사는 문이 꽉 잠겨 있다. 더 이상 역사가 아닌 역 건물은 철도박물관 문패를 달고 역사가 되어버렸다. 산 사람보다 중요한 무엇이 있어서 저 건물은 저렇게 죽은 듯이 굳게 닫혀 있는 것일까.
사람이 사물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것은 이 나라 도처에 흔한 것이니 놀랄 일은 아니다. 다만 놀라운 것은 산 사람을 내쫓은 자리에 사물들의 무덤을 만들어 주는 행정 당국자들의 사고다. 박물관은 왜 꼭 박제화 되어야만 하는가.
옛 서울역사 건물 그 넓은 공간, 유물에게 내줄 자리가 왜 사람에게는 없는 것일까. 저 건물을 사람과 유물이 함께 사용할 수는 없는 것일까. 건물의 일부만 내놓아도 노숙자들의 아주 훌륭한 거처가 되지 않을까. 솔직히 나는 저 옛 서울역사 건물을 확 뜯어고쳐 노숙자들, 부랑자들의 집으로 만들고 싶다.
어느 것이 옳은 일일까. 삶이란, 역사란 옳고 그름과는 무관하게 흘러가는 것인가.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서리가 내리고 눈보라 쳐도 서울역 주변 풍경은 오래오래 변함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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