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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에너지지원 한국에 떠넘기기 '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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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에너지지원 한국에 떠넘기기 '역력'

[기로의 북핵] '실무회의서 논의하자'며 발빼기 시도

미국이 북한의 핵폐기 초기조치에 따른 대북 에너지 지원에서 발을 빼고 그 부담을 한국에 떠넘기려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2005년 9.19공동성명이라는 대타협의 뒷전에서 대북 금융제재를 발동해 성명 이행에 제동을 걸고 결국 북한의 핵실험이라는 극한의 위기상황을 조성하는 데에 일익을 담당했던 나라가 위기 해소 비용은 부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1994년 북한과 미국의 양자합의인 제네바합의에서 약속한 경수로 발전소 건설에 있어서도 한국과 일본에게 건설비 46억 달러의 대부분을 떠넘긴 전력이 있다.

한국은 중유 제공, 미국은 대화만?
▲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오른쪽)과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왼쪽). ⓒ연합뉴스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10일 북한의 주요 핵시설들을 폐쇄·봉인하는 대신 한국은 북한에 중유를 제공하고 미국은 북한과 관계정상화를 위한 대화를 시작한다는 데에 북한과 미국이 의견접근을 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한국의 한 회담 관계자는 "한국이 단독으로 부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원칙만을 밝힐 뿐 달리 부정하지는 않았다.

미국은 이번 6자회담에서 도출될 합의문건에는 '북한의 핵시설 폐쇄에 따라 에너지를 얼마만큼 제공한다'는 식의 문구로 두루뭉술 넘어 간 뒤 관련 실무협의에서 '발빼기 작전'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94년 제네바합의 후 별도의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를 만들어 경수로 건설 분담비를 협상했던 것과 같은 방법이다.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는 11일 오전 "아직 해결되지 않은 쟁점은 워킹그룹(실무회의)에서 논의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면서 "그 이슈는 전문가들에게 맡기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며 (이번 회담에서) 우리는 핵폐기 초기조치 등 '주된 협의'에 집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특히 회담에 정통한 소식통들은 에너지 지원 워킹그룹을 한국이 주도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고 전해, 미국이 한국의 책임을 키우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한국 "5개국, 인색하거나 주저하지 말아야"

에너지 지원의 구체적인 상황은 실무회의로 넘기자는 힐 차관보의 말과 달리 극도로 신중하면서 미국과는 다른 뉘앙스의 발언을 하고 있는 한국 대표단의 태도는 이같은 상황을 은연중에 반영하는 것으로 읽힌다.

한국 측 수석대표인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11일 러시아 수석대표와 오찬협의를 가진 뒤 "결정이 나면 6개 참가국이 부담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전날에도 "북한은 무리한 것을 요구하면 안 되고 다른 5개국 중에는 상응조치를 취하는 데 인색하거나 주저하는 나라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정부 당국자도 10일 저녁 "북한과 합의가 된다 해도 5개국 사이에 합의할 문제가 남는다"며 "한 나라라도 상응조치에 참여하지 않으면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협의는 진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말해 '문제의 나라'가 있음을 내비쳤다.

미국이 발을 빼려는 이유

미국이 에너지 지원 부담을 회피하려고 하는 것은 의회의 승인을 받기 힘들다는 일반적인 이유 외에도 '악행(惡行)에 대한 보상은 없다'는 원칙을 깼다는 비난을 차단키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북한에 줄 에너지는 중유가 가장 현실적이라는 게 참가국들의 중론인 상황에서 미국이 다시 중유 제공에 동참하게 될 경우 2차 핵위기 발발 후인 2002년 12월 중유 지원을 중단하고 4년여의 시간만 허송한 채 '도로 제네바합의'가 됐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제네바합의로 돌아갔다는 말을 듣기 싫어하는 조지 부시 미 행정부의 입장은 이번에 합의가 이뤄지면 '리비아 모델'에 따를 것이며 클린턴 행정부 시절의 제네바합의와 크게 다를 것이라고 주장하는 미 백악관과 국무부 관계자의 말에서도 읽을 수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들이 북한에 제공될 최대의 혜택들은 북한이 사찰을 수용하고 핵시설을 봉인하며 핵무기를 포기하기 시작한 후에야 제공될 것이라는 점에서 제네바합의와는 다르다고 설명했다고 보도했다.

리비아 모델은 핵폐기를 먼저 하고 그 이후 경제지원과 관계정상화를 하는 것으로,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우크라이나 모델과 대비되는 것이다. 제네바합의는 우크라이나 모델에 가까웠다.

일본은 '여전'…러시아는 에너지 지원에 "가장 적극적"

한편 당초 '문제의 나라'로 꼽혔던 일본은 여전히 납치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대북 지원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러시아가 대북 채무 탕감으로 책임을 대신하려 할 것이라는 관측은 빗나간 것으로 보인다.

아소 다로 일본 외상은 11일 아사히TV의 한 프로그램에서 일본은 "현 시점에서" 북한에 에너지 지원으로 "50만t"의 중유를 제공할 의사가 없다고 강조하며 지원을 하더라도 "간접적"으로 할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이날 "일본은 사태의 진전을 목격하여도 꼼짝도 못하는 방관자가 됐다"며 "일본이 각국에 '이색적인 존재'로 비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하지만 6자회담 러시아 수석대표인 알렉산드르 로슈코프 외무차관은 이날 '러시아도 대북 에너지 제공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에너지 문제는 한반도의 어떤 상황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의 하나로서 핵문제 해결을 원한다면 에너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를 생각해야 한다"며 "우리는 그것을 이룰 수 있다면 핵문제 해결을 위한 요구에 적절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답했다.

로슈코프 차관은 이어 "한반도 비핵화가 우리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에 한국과 러시아는 이 목표를 위해 무엇이든 할 용의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천영우 본부장은 "러시아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지대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나라"라며 "러시아가 대북 상응조치로서의 에너지 지원에 가장 적극적이고 가장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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