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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버릴지언정 '민족'을 포기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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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문학'을 버릴지언정 '민족'을 포기할 순 없다"

<기고>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민족'을 떼어선 안 되는 이유

지난 1월 27일 서울 출판문화회관 4층에서 가진 (사)민족문학작가회의 2007년도 정기총회(20차)에서 소위 작가회의에 대한 개명이 보류 혹은 무기한 연기되었다. 당일 집행부의 허술한 진행이 우선 문제의 발단이 됐으나 사실 그것보다는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위상 혹은 정체성을 묻는 뜨거운 논란의 결과, 명칭변경이 뒤로 미뤄진 것이다.

"시대가 변했다. <민족>을 작가회의 정식명칭에서 떼어내자", "안된다. 문학을 포기하더라도 <민족>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공방전 끝에 그 문제는 잠정적으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민족>이란 접두사를 떼느냐 떼지 않느냐는 실로 중차대한 사안이라는 것을 서로들 인식, 이날 총회에 참석한 회원 다수의 의견대로 전국의 1300여 명 회원들의 중지를 모아 이 문제를 풀겠다는 선에서 이날의 회의는 끝을 맺었다.

하지만 이날 이후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물론 경향각지의 언론을 비롯하여 정치·사회·문화계 등 특히 '민족'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각 단체에서는 작가회의의 몸짓놀림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왜냐하면 이것이 민족문학작가회의만의 문제가 아니라 어쩌면 우리 사회 곳곳에 내재되어 있는 혹은 복잡한 스펙트럼으로 비춰지고 있는 각종 문제와도 너무나 깊숙이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으로서 몇 년 전 이 단체의 부이사장(당시 이사장은 평론가 염무웅 선생)을 맡아 일한 필자는 앞으로도 치열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이는 그 충격을 물리칠 수 없어 <프레시안> 네티즌들에게 <봄편지>를 쓰는 기분으로 다음 글을 올려드린다. 1960년대 중엽이던가, 김수영 시인께서 토로한 것처럼 때때로 시인은 말을 할 때도 시를
쓰듯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글을 쓴다는 점을 이해하시길 바란다. <필자>

1. 예언전서(豫言前書)

님아, 잘 있는가요 정든 산 꽃 피는 언덕 너머
그날 멀리 멀리 떠난 님아, 정말로 잘 사는가요
오늘 나는 그대의 살과 영혼 속에 눈동자를 굴리며
모국어로 가가거겨고교구규그기 순으로 노래한다오
지금 우리 사랑 한반도는 봄, 봄이 오고 있는데
아흐, 우리들 가슴은 두 쪽으로 갈라져 빙벽이라오
철조망 속에 꽁꽁 얼어붙은 빙벽, 빙벽의 가슴들...

그래, 에라 무주구천동 청산 가듯이 그대 불러본다오
불어라 봄바람, 더욱 불어라 봄바람 그러이 노래하며
낭만주의 시인 셸리처럼 '예언의 나팔'을 불어버린다오
참았다가 말하고 싶은데, 정말 좀 숨겨두고 싶었는데
예언의 나팔을 이렇게 불게 되었다오 내용이 뭐냐고요?
이불 같이 덮고 자는 30년 아내한테도 하지 않은 말―

그러니까 바로 이거다요 "한반도 통일은 앞으로 10년 안에!"
그럼 어떤 식으로? 그야, 베트남식 통일, 예멘식 통일, 동서독의
통일식도 아닌, 말하자면 오로지 남북한 전체구성원들의 힘으로
통일을 이룬다는 사실을 어젯밤 하느님으로부터 전화 받고 알았다오
하느님뿐이겠어요...인도에서 잠깐 이 땅 삼천리에 놀러온 시다르타
석가모니로부터도 확실하게 들은 것이라오 한반도가 평화통일 된다고!

님아, 그러나 통일은 하늘에서 뚝딱 떨어지는 것이 아니겠지요
우리가, 바로 우리가 서로 헐뜯지 않고 서로의 상처일랑 사랑하고,
또 이런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지요 한반도 남쪽을 형이라 하고
한반도 북쪽을 아우라 한다면...잘 사는 형이, 배부른 형이 배고픈
북쪽 아우 좀 먹여 살려주다가, 말 안 들으면 대화로 꾸짖어주다가,
정 말 안들으면 회초리로 어여쁘게 때려주다가, 다독거린 뒤 서로
얼싸안은 다음 "짜식, 징하게 말 안 듣지만 어쩌겠어, 내 아우인데...
그렇게 따스운 손을 내밀면 그게 통일의 문을 여는 모습이 아닐까요

님아, 솔직히 나 지금 논밭에 갈 시간이라 대충대충 말하겠는데
잘 생각해 보아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통일을 해주겠어요?!
아시아가 아프리카가 아메리카가 유럽대륙이 우리들의 통일을
밀어주겠어요? 그건 코 흘리개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 아닌가요
아무튼 요즘 소비에트연방 해체와 동구 공산권이 무너진 상태에서
민족주의가 엄청난 속도로 재발흥하고 있는데, 그것 때문에 국내는
물론 해외에 나가 있는 700만 동포들은 위기의식도 갖고 있다는데...
일각에서 추방(디아스포라)도 되고 있다는데...아니 글쎄 세계주의다!
세계주의만이 살길이다! 라고만 외치면 다 되는 것이 오늘의
글로벌 세상인가요? 이제는 누구나 다 아는 세계주의의 허상도 모르고
요즘 먹물들이 입에 거품 물고 튀기고 있는데...참 안타까워 죽겠어요.

각설하고, 님아! O, my Korea! O, our forever Hanban-Do!
저기 봄이 오고 있어요 정든 산 꽃 피는 언덕 너머로 봄이
우리들에게 손짓하고 있어요 통일의 그날을 대비하라고,
시간 낭비하지 말고, 한눈 팔지 말고, 미치게 환장하게 돌아가는
남의 나라 시늉하지 말고, 고요히 고요히 통일을 준비하라고!
아이들이 태어나는 소리,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는 소리 들으며
두 손 모아 남남통일 이뤄, 남북통일로 가는 길을 열어야 할 우리!
그리하여 비로소 세계와 함께 둥근 공처럼 높이 떠오를 우리들!
아흐, 그날이 오는데...무슨 뚱딴지같이 아닌 밤중 홍두깨 식으로
"민족주의를 폐기하라!" "민족을 떼고 세계로 나아가자" 소리치니
그 말은 수신제가(집안단속 혹은 집안 평정)도 하지 않는 상황에서
치국평천하(허상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세계주의)와 타협하라는?!

아흐 그러나 정녕 봄은 오고 있소이다
"우리가 정녕 보내지 않았던 그 님"처럼 두 손 벌려 오고 있소이다
아주 차분하게, 서울과 부산 대구와 광주, 충청도와 강원도 두메산골에
더러는 흐르는 눈물로 쓰다듬는 북녘 땅 가난한 아이들의 두 눈동자에도
저러이 봄은 오면서 봄은 달려가면서 부드러이 쓰다듬고 있나이다
봄은 수신제가(修身齊家) 한 다음에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 하라면서
꾸중도 해주면서, 이 강산 처처히 제비꽃, 할미꽃, 씀바귀꽃, 진달래, 철쭉...을
피워올린다오 고향 땅 어머니의 젖가슴처럼 그렇게 넉넉한 품으로 오고 있어요
드디어 드디어 오고야 말 민족이 하나가 되는 그날을 위하여 아흐, 정말이지
우리들 얼굴, 가슴과 다를 바 없는 꽃향기 그득히 준비해 놓으려는 듯...

2. 민족문학을 위한 몇 가지의 사실과 경구(아포리즘)

가, 아직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깃발을 내릴 때가 아니다.

(민족문학을 하기 싫다면 따로 나가서 살림을 차리면 된다. 가령 고전주의가 싫으면 낭만주의로 가든지, 낭만주의가 싫으면 포스트모더니즘으로 가든지 하는 식으로.... 그런데 굳이 집 허물어놓고 다시 새집 짓거나 리모델링 한다는 것은 우습다. 가령 동아일보를 지우고 새동아일보 한다든지, 조선일보를 지우고 새조선일보로, 한겨레를 지우고 새한겨레나 새세계일보로 한다면 그것 또한 가관이 아닐까?)

결론적으로 남북이 대치국면에다, 6자회담이다, 4자회담이다, 북한이 붕괴할 조짐이 있다, 북한핵이 터지면 어떻게 될까 하는 위기에다, 네오저패니즘이다, 네오차이니즘이다...네오슬라브주의다, 각종 형태와 각종 내용을 가진 네오내셔널리즘이다...하는 말들이 떠돌고 또 사실 그런 움직임들이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있는데...'민족' 혹은 '한민족(韓民族)' 문학을 폐기처분하고 세계주의로 나아가자...얼마나 우스운가. 자기집에는 불이 붙었는데 잘 보이지도 않는 남의 집 불 먼저 끄려고 허둥대는.....슬프다!

나, '민족'은 백화점 상품이 아니다. 베스트셀러만을 노리는 그런 소설책도 아니다. 안 팔리면 반품시켜서 작두로 잘라버리는 그런 소설책(상품)이 아니다. '민족'은 육체이며 영혼이다. 그것도 너와 나를 같이 걸어가게 하는 최고의 사랑 그 정점이다.

다, 세계주의 혹은 세계문학 때문에 '민족'문학을 꺼리는 작가는 사실상 알렉산더, 나폴레옹, 징기스칸, 스탈린, 히틀러,히로히또(히로히또 경우는 대동아공영권 운운하며 만주사변 등을 일으켰던 도발행위 음모가 그것), 그리고 20세기 이후 회오리바람처럼 창궐하는 글로벌리즘 또는 신자유주의의 정복이념에 압도되어 그것들에 쩔쩔매는 패배주의 논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라, 나폴레옹이 러시아로 진격할 때 철없는 철학자 헤겔이 말했다. "저 사람이 세계인(der Weltmensch)이다." 그런데 어떠했는가. 나폴레옹의 부하들이 괴테의 침실에 뛰어들어 총창으로 쿡꾹 찔러대지 않았는가.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를 읽어보라. 세계주의를 부르짖은 나폴레옹과 그에게 추파를 던지는 먹물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유럽인들이, 러시아인들이 죽어갔는가를.....

마, 문학은 버릴 수 있어도 민족은 절대로 버려서는 안된다는 각오와 결심이 지금 우리들에게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그렇다. 그것을 빨리 알아차리자.

바, 문학은 즉자적 존재물이 아니라 대자적 존재물이다.

사, 문학은 그 민족의 언어, 피, 사랑, 영혼의 산물이다.

아, 가장 민족적인 것을 지향할 때만 가장 세계적인 문학이 탄생한다.

자, 서구에서는 프랑스대혁명 때 처음으로 민족주의의 개념이 창출된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외세의 간섭(오스트리아 등) 때문이었다. 한반도에서 우리 경우도 그랬다. 일제 강점기 치하에서 그랬다. 솔직히, 지금의 한반도에는 일제 강점기 못지않게 민족적으로 어떤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 남쪽의 경우, 배는 좀 부르다고 하지만.

차, 한국문학의 위기는 분단체제의 지속에서 찢어지고 망가지고 상업화되었다.

카, 한국문학은 다행히 理와 氣, 새로 말하면 두 날개의 펄럭거림 속에서 너와 나, 왼쪽과 오른쪽을 동시에 아우를 수 있는 상호보완, 상호소통, 커뮤니케이션의 운명적 '對自문학'으로 가야 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타, 민족문학이라는 명칭은 사라질 수 있어도 '민족'은 영원하다.

파, 지금 전 세계는 글로벌리즘 속에서 다원주의로 가고 있지만 사실을 들여다보면 민족주의가 재발흥하고 있다. 특히 소비에트연방과 동구공산권의 붕괴 이후 오히려 민족주의가 그 의미의 설득력을 갖는 추세다.

하, 민족이란 말은 어머니란 말의 또 다른 보통명사다.

하2, 민족주의는 약소민족에게는 대응논리이지만 강대국에게는 지배논리다. 예컨대 민족주의는 폴란드 민족에게는 nationalism(민족주의)이지만 히틀러에게는 chauvinism으로 악용되었지 않았던가. 따라서 민족주의의 순결성은 우리 민족에게는 숙명적이고 운명적인 것이 아닌가.

하3, 1950년대는 물론 1960년대 시절에도 문학 앞에 '민족'이란 어휘를 불일 수 없었다. 설명하지 않아도 뭔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4, 한국문학의 특징과 운명은 세계문학이 아니라 민족문학일 때만이 그 존재가치가 있으며 아울러 세계성과 보편성을 획득할 수가 있다.

3. 베트남 작가들(혹은 몇몇 편한 나라의 서양 작가들)이 뭐라고 했다 해서 '민족'을 떼고 무슨 무슨 이름을 가진 작가회의를 만들 수는 없다.

<프레시안>을 들여다봤더니 날짜가 한참 지난 기사이지만(1월24일자) 전홍기혜 기자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민족문학작가회의'가 '작가회의'로 개명?'" 하는 제목이 그것이다. 내용 중 한 대목을 그대로 옮긴 즉 "작가회의에서 이름을 바꾸자는 의견이 처음 제기된 것은 지난 1994년, 단체 내에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이 만들어졌는데, '민족문학'이라는 이름 때문에 베트남 작가들이 극우적 성향의 단체로 오해하는 일이 발생했다. 국제교류가 활발해지면서 국경을 넘어 소통되는 이름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문제 제기는 그때부터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 있어 왔다"라고 기사로 전하고 있다. 이 말은 작가회의 집행부가 스스로 올해 20차 총회에서도 밝힌 바라 새삼스러운 것이 아닌데 그럼 왜 나는 놀라는 것이었을까?

그것은 우리 '젊은 작가들(신체적 혹은 생태학적 숫자상의 나이만을 가지고 사람을, 그것도 시인·소설가들을 젊다, 늙다 구분할 수 있을까)'이 '젊은' 이라는 형용사를 무기로 삼아, 베트남 작가들이 그랬으니까, 또는 서구 작가들이 그랬으니까, 하는 식으로 '민족'문학을 주장하는 작가들을 쉽게 보았다는 데에 이번 총회사건의 발단이 있었다는 것이다. 앞으로 시간을 좀더 내어 여기에 대한 자세한 발언이랄까 의견을 개진하기로 하고, 오늘 한 마디 하겠는데, 오늘의 통일베트남 작가들이 앞서 인용한 '극우 운운' 했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했다면 추측컨대 그들 몇몇 작가들이 베트남 작가 전체를 대표한 것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뜻이지만 몇 가지 말을 하고 싶다. 오늘의 베트남은 '통일베트남'이고 그리고 우리 모두 알다시피 이제는 오직 '밥'만이 우선인 나라이고, 그리고 그리고...그들의 사상 밑바닥에 깔린 DNA에는 이른바 '인터내셔녈 코민테른'이, 알게 모르게 혹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그런 사상의 실루엣이 은연중에 깔려 있다는 사실 혹은 깊은 내막을 우리는 감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난 인도차이나 전쟁을 거치면서 그들의 '영원한 국부(國父)'인 호치민 대통령이 평생에 걸쳐 심어놨던 것이 바로 '베트남 민족주의'가 아니었던가.

그런 저런 사실과 진실들을 염두해두고 그들 몇몇 베트남 작가들의 말을 들었어야 하는데...성급하게 술좌석 같은 데서 들은 이야기를 가지고... 오늘의 한국언론에 '민작'을 때리는 빌미를 주고, 평지풍파와 자중지란을 일으키는 '우(愚)'를 범했으니...하긴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차제에 우리 작가회의가 잘 되기 위한 통과의례라면 혹 모르겠다.

4. 마르크스·엥겔스·레닌의 '국제주의'와 오늘날 '세계주의'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전혀 다른 상황과 의미에서 출발한 두 어휘는 그러나 한 가지에서는 서로 만나는데.....아 그 만남이란?!

'국제주의(제2차 세계대전 중 코민테른이 주도한 사상)'와 '글로벌리즘 혹은 신자유주의(21세기 초부터 발흥)는 전혀 다른 뜻이지만 분명히 한 가지만은 같다. 소위 '世界主義(globalism)'적 발상만은 같다는 것이다. 예컨대 약소 소수민족들이 주창하는 민족주의(nationalism)를 흡수 혹은 거세하여 지구촌 세계를 하나로 재편하겠다는 국제주의 혹은 다국적주의가 바로 세계주의라는 탈을 쓰고 있었다는 것이다. 국제주의? 세계주의? 서로의 역사와 실체는 다르지만 어떤 면에서는 같은 함수로 화학반응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이것에 대하여 우리 작가회의 회원들이 많은 논의와 고민을 거쳐야 할 것이다.

5. '민족'을 버리면 통일도 멀어지고 해외 700만 동포들도 그만큼 힘들어진다.

님아, O, my Korea! O, our forever Hanban-Do!
정든 산 꽃 피는 언덕 너머로 봄이 오고 있는데...
나는 그대가, 그대들이 정신 바짝 차리고 살기를 바란다오
'민족'을 버리면 통일도 멀어지고...아아 우리 새끼들이,
후손들이 언제 어디에서나 위기상황을 만날 수 있고...
하느님, 부처님, 그리고 세상천지 우주만물 신들이여
그날을 위하여 걸어가는 우리들에게 힘을 실어주소서.
나의 예언이 하느님의 예언이었으므로 더욱 힘을 실어주소서.

지금 봄이 오는 들판에 나가서 부지런히 논밭을
쟁기질하고 씨를 뿌려야 하므로 오늘은 이만 씁니다.

2007년 2월 8일
하늘 아래 사는 김준태 합장(合掌)하여 기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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