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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와 아베 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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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근혜와 아베 신조

[창비주간논평]

대선 정국이 점입가경이다. 검증 공방, 역사인식, NLL 북풍에 이어 정수장학회 문제가 불거지더니 이제 친일파까지 화두로 등장했다. 새누리당은 김지태(재산을 강탈당한 부일장학회 설립자)의 친일 경력을 거론하면서 중학교 때 부일장학회 장학금을 받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친일파의 돈을 받았다며 걸고넘어졌고, 언제부터 민주당이 친일 경력자의 재산을 찾아주는 정당이 되었느냐며 비난했다.

이에 대한 여론은 과연 냉소적이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몇해 전 친일재산환수 관련 법안에 조직적으로 반대했던 것을 상기하면 당연한 반응일 터이며,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사 출신으로 혈서까지 쓰며 일제에 충성을 맹세했던 박정희를 생각하면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된 셈이기 때문이다.

'친일' 둘러싼 새누리당의 블랙코미디

자승자박도 불사하는 이런 블랙코미디를 보면 남한사회에서 친일이란 말이 갖는 함의를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한 사회에서 누군가를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는 용어는 다양하게 산재하지만, 남한 현대사에서 친일과 빨갱이는 그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주지하다시피 낙인찍힌 사람이 치러야 할 댓가는 너무나도 달랐다. 빨갱이로 낙인찍힌 사람이 법정 살인으로 내몰리고 그 사돈의 팔촌까지 공적 삶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어야 했던 것과 달리, 친일파라 불린 사람들은 아무런 법적 책임도 지지 않았을뿐더러 기회주의적 처신으로 축적한 부의 은공을 자자손손 누리며 현재까지도 이 땅의 온갖 기득권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친일이란 말을 둘러싸고 사회적인 논란과 갈등이 생길 때마다 사람들 은 역사에 대한 회의와 피로감을 느낄 따름이다. 다시 말해 친일은 사람들로 하여금 남한 정치공동체에 대한 회의감을 증폭시키는 키워드인 셈이다.

하지만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을 이런 반응은 남한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필수적인 역사적 맥락을 은폐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친일이 단순히 민족 정통성의 취약성을 말해주는 용어로 굳어지는 한 현재도 남한사회를 강력하게 규정하고 있는 그 맥락을 인지하고 정치적인 판단의 자원으로 삼기는 요원한 일일 수밖에 없다. 그 맥락이란 식민지배 및 냉전체제의 공모와 연속선상에서 이뤄진 남한사회의 발전 패러다임이다.

한일 현대사의 발전 패러다임

박정희란 이름이 이 패러다임을 상징하는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며, 최근의 친일 논란이 박근혜와 연관되어 있음을 상기할 때 다가올 대선에서의 선택을 위해 이 패러다임을 현재적으로 평가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이는 현재 일본 차기 수상으로 유력시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와 그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께(岸信介)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다가올 대선은 남한의 발전 패러다임뿐 아니라 동아시아 국제질서 개편의 명운까지를 가르는 중차대한 선택이 될 것이다. 이제 그 까닭을 이야기해보자.

▲ 일본 제1 야당 자유민주당의 아베 신조(安倍晉三) 전 총리(가운데)가 26일 도쿄에서 실시한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총재로 당선됐다 ⓒ로이터=뉴시스

친일은 지금까지 민족 정통성 확립이란 문제틀에서 이야기되어왔다. 물론 중요한 일이지만 이 프레임 안에서는 과도한 규범 판단이 작용해 친일파의 내면세계와 그 후대의 영향을 섬세하게 가늠하는 일이 소홀해져왔던 것도 사실이다. 박정희의 경우를 보자. 1945년 전까지 그의 조국은 의심의 여지 없이 '대일본제국'이었다. 이때 박정희에게 대일본제국이란 조선을 지배하는 이민족이라기보다는 귀축(鬼畜) 영미에 맞서 대동아공영권을 구축하려는 위대한 운동체였다. 그가 보기에 고향 조선 땅은 이 위대한 운동체 안에 흡수되어야 했으며, 만주국이란 그 운동의 향방을 가늠하는 거대한 실험실이었다.

이 실험실을 총체적으로 운영했던 자가 바로 기시 노부스께이다. 그는 만주라는 신생국가에서 국가의 계획통제를 주축으로 한 개발 패러다임을 실험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본국 일본의 전시 총동원체제를 관리했던 인물이다.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를 거쳐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재학할 무렵은 기시의 이러한 실험과 집행이 박정희의 조국 일본의 운영원리였던 시절이다. 즉 대동아공영권이란 세계 신질서를 꿈꾸던 박정희에게 기시 노부스께의 실험과 집행은 그 구체적인 구축과 운영 원리였던 셈이다.

박정희의 국정 멘토, 기시 노부스께

패전 후 기시 노부스께는 A급전범으로 기소당했으나 구사일생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아 사형을 면한다. 이후 기시는 정계에 화려하게 부활하여 수상을 역임하면서 만주국과 전시 일본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가주도의 계획통제 경제를 전후 복구의 기틀을 다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는 미국 주도의 동아시아 냉전체제의 교두보 역할을 자임하면서 강력한 국민의 저항을 뚫고 미일 안보조약 개정을 체결한다. 이를 기점으로 전후 일본은 국가주도의 계획통제에 의한 경제개발 및 미국 주도의 방공(防共)체제 수호를 국가 운영의 두 원리로 삼아 고도경제성장을 이루게 된다.

1961년, 군사 쿠데타에 성공한 박정희는 미국 방문에 앞서 예전의 조국 일본에 방문한다. 그때 박정희는 기시를 만나 국가발전에 관한 노하우를 전수받게 되는데, 박정희가 주도한 계획경제와 가공할 만한 방공체제는 기시의 모델에 커다란 힌트를 얻은 것이었다. 그리고 박정희는 기시로부터 전수된 계획경제와 방공이라는 두 바퀴를 굴려나가기 위해 정치부문에서 가공할 만한 권위주의를 작동시켜 피비린내 나는 폭력을 자행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정희의 친일이란 단순히 민족에 대한 반역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는 헐벗은 조선의 현실을 타파하려는 심성을 고스란히 유지했고, 대동아공영권을 지탱했던 계획통제 경제모델을 발판으로 삼았으며, 이 내면과 발전기획을 방공이란 정치적 결정을 통해 집행했던 것이다. 박정희로 상징되는 남한의 친일 문제란 이러한 정치경제체제 형성을 뒷받침하는 세계관 및 심성구조의 문제인 셈이다.

한국과 일본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후 남한에서도 일본에서도 박정희와 기시의 패러다임은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났다. 신자유주의의 흐름 속에서 계획통제 모델은 힘을 잃었고, 방공을 핵으로 하는 냉전체제는 붕괴된 지 오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정희와 기시의 패러다임이 힘을 잃은 이후 동아시아 지역의 정치경제체제는 좀처럼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드라이브로 인한 글로벌한 차원의 경제침체에서 한국과 일본은 맥을 못 추고 있으며, 냉전체제 붕괴 이후에 평화공존보다는 아집으로 가득찬 주권의식 간의 갈등만 증폭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 이런 와중에 등장한 박근혜와 아베 신조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들이 과연 자신들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대체하는 패러다임을 내놓을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한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이들이 이토록 중요한 정치인이 될 수 있었던 까닭이 다름아닌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후광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면, 여전히 남한도 일본도 대동아공영권과 냉전체제에서 비롯된 심성구조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말이다.

이 심성구조가 버티고 있는 한 남한과 일본의 민주화란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과제일 터이며, 동아시아 지역의 평화공존은 요원한 꿈일 수밖에 없다. 남한은 대선까지 두달도 남지 않았고, 일본도 조만간 중의원이 해산되어 정권 선택의 순간을 맞이한다. 두 나라의 선택은 남한에서 친일의 심성구조로 표출되는 낡은 패러다임에 대한 판단을 의미할 수밖에 없다. 과연 켜켜이 쌓여 좀처럼 걷어낼 수 없었던 지긋지긋한 제국-침략-식민-냉전-방공의 패러다임으로부터 탈피를 선언할 수 있을까? 결과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두 나라의 선거가 단기적으로는 각국 정권의 향방을 결정하는 국면임은, 그리고 중장기적으로는 동아시아의 새로운 공존 질서의 전망이 달린 결정적 국면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부디 꼬일대로 꼬인 동아시아 현대사에 새로운 전망이 열리기를 간절히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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