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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한 본고사, 논술에 대한 사회적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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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부활한 본고사, 논술에 대한 사회적 책임

<창비주간논평> 교육제도 고삐 쥔 명문대

2007년 대입 정시가 마무리되고 응시생들은 합격여부 통지를 받기 시작했다. 올해 입시에서는 어느 때보다 논술이 주목 대상이었다. 2008년이 되면 논술이 수능을 제치고 입시의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이미 여러해 전에 고지되었듯이 내년부터 수능은 등급체계가 9단계로 조정되어 실질적인 변별력을 잃게 된다. 수능 1등급에 속하는 학생수만 해도 이른바 SKY대학 입학정원의 배를 훌쩍 넘게 되니 수능이 입시에서 차지는 비중은 대폭 축소되고 그 빈자리를 논술이 채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되짚어보면 이렇게 해서 수능, 그러니까 수학능력시험은 1994년 등장한 이래 2008년 입시에서 처음으로 그 이름에 걸맞은 구실, 즉 입학시험이 아닌 자격시험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는 셈이다. 미소한 차이가 있긴 하지만 수능은 기능적으로 예전의 예비고사의 등가물이 된다. 수능이 1981년 학력고사의 등장과 더불어 폐지된 예비고사의 구실을 하게 된다면, 예비고사의 짝으로서 함께 폐지되었던 본고사 또한 복원될 수밖에 없다. 그 자리는 당연히 논술이 차지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2008년, 본고사 체제가 부활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본고사 부활의 원동력이 교육에서의 '구체제'(비평준화와 대학별 본고사 체제)를 지향하는 세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논술이 본고사로서 등극하는 배경은 이렇다. 학력고사에서 수능으로 전환한 뒤 끊임없는 난이도 조정, 등급 축소라는 정책이 뒤따랐다. 이런 정책경로를 이끈 에너지는 교육에서의 계급격차를 줄이고 사교육 부담을 덜어내려는 대중의 열망이었지만, 구체적 정책방향은 이런 대중의 열망에 중구난방 대응한, 정책적 정교함이라고는 전무했던 교육부로부터 나왔다. 대중의 의지와 정책적 무능의 결합이 낳은 엉뚱한 결과인데, 이런 점에서 '본고사 논술'의 출현은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유사한 면을 가지고 있다.
  
  대학은 무거워진 책임을 감당할 수 있을까
  
  아무튼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대학은 오랫동안 원했던 대학별 본고사를 힘 안 들이고 거저 얻었다. 뭐, 거저 얻었다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거저 얻었기 때문에 대학은 자신이 원하던 것을 얻었다는 자의식이 약하거나 혹은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만큼 논술과 관련해서 사회적으로 책임있는 자세를 보이지도 않고 있는데, 이건 큰 문제다. 왜냐하면 대학이 입시에서 자율권을 가졌다는 것은 곧 대학이 중등교육을 향도하는 권력을 손에 넣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권력을 가진 자가 그 권력에 대한 자의식이 없다는 것은 권력행사의 여파에 대한 고민이 없다는 말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비근한 예로 서울대가 논술강화 방안을 수립하면서 사회에 내놓은 것은 고작 '고전 200선' 목록이다. 그 목록을 훑어보면 대학교수랍시고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 읽지 못한 책이 허다할뿐더러 지금 읽자고 작정하고 찬물로 얼굴 씻고 머리 동여매도 힘겹게 여겨지는 책들이 태반이다. 더구나 목록 말고는 어떤 독서의 길잡이도 제시된 적이 없는데, 이런 인문교양의 확산을 위한 절호의 기회를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버리는 것이 그간 인문학 위기를 운운해 온 교수들의 처신일 수 있을까.
  
  논술 출제에 당면해서 조금 더 고민해서 내놓았다는 서울대 입시관리 관계자의 발언은 고작 논술학원을 다녀봐야 별 소용없도록 문제를 출제하겠다는 실망스러운 이야기였다. 올해 출제된 문제를 보면 논술교육을 대학 공부에 대한 선행학습 정도로 생각해 온 논술학원 교육이 잘 감당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논술학원의 추격능력이 쉽게 무시될 수 없음은 그간의 경험이 잘 보여줄뿐더러 기껏 논술학원에 대해 대결의식을 보이는 것은 서울대가 정작 신경써야 할 요체를 놓치고 있음을 말해준다.
  
  논술교육을 위한 인프라는 구축되어 있는가
  
  본고사가 재래할 수 있던 것은 그것이 논술이라는 형태를 취했기 때문이다. 논술은 적어도 입시경쟁이 무의미하거나 낭비적인 것이 아니라 가치있는 능력의 함양이 될 수 있는 제도로 인식되었다. 그랬기 때문에 어떤 사회집단도 논술을 명시적으로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논술은 사회적 합의를 얻은 본고사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런 합의는 전체 사회성원이 교육에 대한 방향감각을 잃지 않은 덕분에 얻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문제는 논술의 중요성이 증대하는 만큼 논술교육을 위한 인프라 구축이 뒤따라야 한다는 점이다. 인프라 구축은 단지 중등교사들에게 논술연수를 시행하는 수준 이상의 교육개혁을 요구한다. 중등교과과정 전반을 손봐야 하고, 그에 따라 교사양성체제를 개혁해야 하며 교과서를 정비하는 등 업그레이드된 소프트웨어를 공교육 속에 결합해나가야 한다. 여기에 이르면 사범대 개혁 같은 구조개혁 문제가 등장한다. 서울대라면 자신의 손에 쥐어진 커다란 권력이 곧 자신의 구조개혁도 요구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하며, 그럴 때에야 중등교육을 향도할 권력에 더해 그럴 만한 자격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교육개혁의 추진을 주저하지 말아야
  
  입시제도만 만지작거려 온 사회에서 이런 이야기는 공소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입시제도 중에 유별나게 합리적인 제도는 없다. 대학입학 허가라는 희소한 자원의 획득을 어떤 식으로든 점수와 연계하는 한, 진정한 의미에서 합리적 방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학력고사가 수능보다 열등한 것도, 수능이 논술보다 내재적으로 비효율적인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제도가 정당성과 효율성을 가지고 잘 작동할 수 있는 체제가 갖추어져 있느냐이다.
  
  수능의 몰락은 수능의 내재적 특성이 아니라 이런 체제의 불비 때문이었다고 봐야 하며, 논술의 운명 또한 다르지 않을 뿐 아니라 더 위태롭기까지 한 면도 있다. 왜냐하면 학력고사에서 수능을 거쳐 논술에 이르는 과정은 대학입시가 공식적인 중등교과과정과 거리를 점점 더 벌려 온 과정이었고, 그 거리는 논술에서 가장 크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우리 교육이 도달한 자리가 논술이다. 그렇다면 이 제도를 잘 정비해야 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논술과 더불어 교육제도의 고삐를 쥐게 된 명문대의 책임이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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