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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두번째 복직발령서를 들고 고민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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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두번째 복직발령서를 들고 고민한 이유

[전태일통신 58] 거대자본과 상식의 싸움

나의 꼬리표는 '하나은행 2차 해고자'다. 내가 하나은행에 입사한 것은 IMF 이전인 1996년이었다. 그런데 들어가고나서 보니 고용은 안정적이었지만 급여는 적은 반쪽짜리 정규직이었다. 처음 계약할 당시에는 계약기간이 명시된 것이 없었으므로 종신 정규직이었으나 급여의 수준은 하나은행 내부호칭인 종합직 직원들에 비하면 50% 수준이었다. 2001년 승진과 함께 3년 기한의 계약서를 쓰게 되었고, 2004년 만기가 돌아오자 이제는 1년짜리 계약서를 쓰자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를 거부하면서 해고투쟁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2001년 어느 봄날 인사부로부터 전화가 왔다.

"축하드립니다. 차 대리님."

그 전날인가 승진면담을 상무님과 했기에 매우 놀라지는 않았지만 아직 발령을 받은 것도 아닌데 대리라는 호칭을 써주길래 고맙다고 인사까지 하였다. 다음날 인사부로 일찌감치 가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대리 발령장을 내어주면서 한편에 종이 한 장을 내미는데 보니까 3년짜리 계약서였다. 순간적으로 무척 많은 갈등을 하면서도 고작 내가 물어볼 수 있었던 것은 "이게 뭔가요?"였다. "요즘 IMF 이후에 금융권의 추세입니다. 일을 하자는 것이지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닙니다" 하는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나의 기간제 근로의 시작이었다.
▲ 2007년 1월10일 하나은행에 대한 강제집행을 통해 차윤석 씨가 확보한 월급. ⓒ프레시안

그 후 하나은행 어음교환실 책임자로서 그야말로 밤을 낮 삼아 일해 왔고 시간은 흘러 2004년이 되었다. 계약서대로라면 3월이 만기인데 별다른 통보가 없기에 정말 형식적으로 쓴 거구나 하면서 안심하고 있었다.

6월이 되자 인사부가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년 기한의 계약서를 보내왔고 나뿐만이 아니고 여러 명의 직원들 것까지 부서장을 통해서 싸인을 강요하는 사태에 이르게 되었다. 처음에는 다들 안쓰겠다는 분위기였으나 결국 모두 서명하고 나만 혼자 남게 되었다.

1년 계약서에는 도저히 서명할 수가 없었다. 결국 2004년 11월 계약기간 만료로 인한 계약해지 통보를 받아 실질적인 해고를 당하게 되었다. 그후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면서 노동관계법을 익히게 되었고 노동부로부터 부당해고라는 판정을 받아 2006년 6월 첫번째 복직을 하였다.

복직발령서의 내용은 "복직을 명하오니 인사부로 출근하시기 바랍니다"였다. 나는 하나은행이 선의로 보낸 것이라 믿고 인사부로 출근하였다. 출근하고 보니 기가 막힌 결과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사부 담당자는 나에게 과거에 근무하던 어음교환실이 아니라 사무지원부라는 부동산을 관리하는 부서로 가라고 했다. 나는 갈 수 없다고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나왔다. 곧바로 무단결근을 이유로 두 번째 해고를 당하게 되면서 또다시 해고자의 길을 걸어가게 되었다.

물론 그 정도의 투쟁만으로도 이미 승리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다른 부서에 가서 근무하면 어떤가. 그 어렵다는 복직의 산을 넘은 것인데. 그러나 본래 근무하던 곳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보내려는 하나은행의 저의를 나는 알고 있기에 갈 수가 없었다. 10년 가까이 야간근무를 하면서 받지 못한 시간외수당을 주지 않기 위함이고 내가 원직에 복직하게 되면 직원들이 동요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보내려는 것이었다. 이러한 부도덕함에 응해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해고에 대하여는 그동안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신속하게 대응하기로 마음먹고 변호사와 노무사를 모두 선임하면서 법적 대응까지 함께 하기로 마음 먹었다. 하나은행의 부당한 전보에 응하지 않으면서 발생한 해고이기에 부당전보효력부인 가처분신청을 하게 되었고 이에 승소하자 임금을 지급하라는 임금지급 가처분을 연거푸 제소하기에 이르렀다. 두가지 모두 승소한 뒤에도 하나은행은 묵묵부답이었다. 2차 해고에 대한 노동부의 검찰 입건이 임박하자 그제서야 인사부에서 전화가 왔다.

"차 과장님, 고소를 취하해 주시면 복직시켜 드리겠습니다."

나는 먹고 싶은 사탕만 뽑아먹으려 하는 거냐면서 그 자리에서 거절하였다. 일주일 뒤 인사부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차 과장님, 복직하십시오."
"이번에는 무슨 조건입니까."
"아무런 조건 없습니다."

나는 말로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 서면으로 보내라고 하였다. 며칠 뒤 정말로 원직복직발령서가 도착했다.

두 번째 승리였다. 복직발령서를 두 번이나 받아내다니. 거대자본과 맞서서 이런 일을 해낸 사람을 들어본 적이 없다면서 주변인들이 격려와 우려를 모두 보내왔다. 그러나 이번에도 원직복직발령서라고 이름만 조금 구체화 되었을 뿐이지 지난번 복직발령서와 같이 또다시 인사부로 출근하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다시 거절하기 시작했다. 인사부로 갈 이유가 없으며 또한 원직에 복직시켜주겠다면서 아직도 내 자리에는 다른 사람이 앉아 있고 의자 하나에 두 사람이 앉으라는 이야기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하나은행의 비상식적인 태도와 무엇보다도 두 번씩이나 부당한 해고를 하고도 한마디 사과도 하지 않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신용을 생명처럼 여겨야 하는 금융기관이 직원들에게 10년이나 시간외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이를 지적하고 바로잡으려는 직원을 두 차례나 해고하고 그도 모자라 퇴직금도 지급하지 않은 채 사택에서 나가라는 소송을 일삼고 있으니 그야말로 파렴치함이 말로 다할수 없을 지경이었다.

첫 번째 복직이 다가오고 있을 때 내가 직접 모시던 전임 부서장이 한잔하자고 해서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12시가 넘어 술이 만취상태가 되자 그 부서장은 내게 "차과장, 두 배로 줄테니 다른 직원들 일은 모른 척 해주게"라는 제안을 했다. 듣지 말아야 할 말을 들었을 때 물로 귀를 씻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 말이 생각나 나는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다고 하면서 귀를 씻고 왔다.

"지금 하신 말씀은 못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나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도 분명히 하나은행에서 돈을 받는 봉급쟁이라 누가 시켜서 저렇게 말하는 거구나라고 생각하니 서글퍼졌다.
▲ 2006년 11월 한국노총 노동자대회 현장에서의 차윤석 씨. ⓒ프레시안

지금 나는 두 번째 복직발령서와 원직이었던 어음교환실의 부서장이 보낸 출근요청서를 양손에 들고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왠지 허전하다. 그 이유는 어떠한 행위로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사회적 사실로서의 해고에 대한 충분한 사과와 화해가 없었기 때문이다. 노동자와 사용자는 분명히 평등할 것인데 사용자가 보내온 종이 한 장에 내가 즐거워해야 한다니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하나은행에 서면을 보냈다. 주된 내용은 먼저 충분한 사과를 하라는 내용이었고 검찰에 입건되는 것이 두려워 피해만 가려는 복직을 하지 말고 실체적인 복직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그동안 서로간에 있었던 소송 등을 정리할 것을 요구했다. 역시 돌아오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뿐이었다.

나는 그동안 하나은행에 근무하면서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는 부분까지 모두 요구하기로 작정했다. 1년마다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들을 모두 정규직화하고 어음교환실에 그동안 지급되지 않았던 시간외수당을 소멸시효에 상관없이 모두 지급하라는 것이다. 개인이 요구하기에는 무모한 것이 아니냐고 조언하는 분들이 많지만 내가 주장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우리 사회가 사용자의 폭력 앞에 언제나 쓰러져 왔고 노동자의 인권같은 것은 보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1월초에 전태일 열사의 묘소에 민주노동당 동지들과 함께 참배하러 다녀왔다. 누구도 걸어보지 못한 길을 가고 있다는 심정을 담은 종이를 한 장 가져갔다. 이순신장군의 '필사즉생 필생즉사'라고 쓴 종이를 가지고 가서 불을 붙여 날려보냈다.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라는 깊은 뜻을 마음속에 담아왔다.

그리고 며칠 후 얼마전 승소한 임금지급가처분 결정문을 가지고 고양시 법원의 집행관실을 찾아가서 강제집행을 신청했다. 집행관들도 어리둥절한지 과연 거대자본인 은행을 상대로 강제집행이 가능한지 다시 살펴보겠다고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었다. 집행당일인 1월 10일 아침에도 다시한번 만나자고 하길래 그동안 준비했던 법원의 실무지침서 내용 중 집행이 가능하다는 구절을 찾아서 제시하였다. 집행관은 고개를 갸웃갸웃하면서 "그래요. 한번 해봅시다" 라고 짧게 말하면서 오후 2시에 은행 앞에서 만나자고 했다. 약속한 시간이 되자 집행관 3명이 은행으로 왔고 나에게 끝으로 아직도 해고기간 동안의 임금이 지급되지 않았느냐고 재차 확인한 뒤 은행문을 열고 들어갔다.

"법원에서 왔는데요. 지점장님 계십니까?"

집행관의 말에 지금 안 계시니 부지점장님이 2층에서 내려오신다고 했고 잠시 후 부지점장이라는 분이 나타났다. 당연히 당황하는 기색이었고 집행관의 태도에 대해 무례하다고까지 표현을 하는 것이었다. 집행관은 그에 대해 강제집행이라는 것이 이렇습니다. 자꾸 방해하시면 경찰을 부를 수도 있다면서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부지점장은 이곳저곳 본점 쪽에 전화해서 알아보더니 결국 하나은행 변호사가 지급해야 된다고 말하자 순순히 내주었다.

그 와중에도 수표로 준다고 하길래 집행관에게 수표로 받으시더라도 저에게 건네주실 때는 현금으로 바꾸어 달라고 요청했다. 수표는 지급을 정지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었고 준비해갔던 007 가방에 오래간만에 돈냄새가 풍기는 다발을 12개 넣을 수 있었다. 두 번째 해고기간은 6개월이었고 시간외수당은 현재도 다투고 있기에 기본급만 200만 원씩 6개월치 1200만 원을 챙겨왔다. 은행강도도 아니고 백주 대낮에 버젓이 집행관을 대동하고 은행에서 이렇게 강제로 돈다발을 챙겨 가방에 넣고 나온 사람은 아마도 전무하지 않을까.

나가는 길에 하나은행 일산 후곡지점 부지점장이 내게 물었다.

"왜 하필이면 이리로 왔습니까."

나는 길게 이야기할 것은 없다고 생각해서 "나중에 알게 되실 겁니다"하고 나왔다.

사실 하나은행 일산 후곡지점을 내가 선택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1차해고가 부당해고로 판결나고 1차복직을 하면서 그동안의 임금이 지급되었다. 그런데 직원들에게만 낮은 금리로 대출해주던 생활안정자금이라는 것을 나도 받은 바 있었는데 이것을 임의로 인출해 가면서 해고기간 동안에 이자를 내지 못했다면서 원금 2000만 원에 대해서 이자를 무려 500만 원이나 인출해갔던 것이다. 하나은행이 부당해고를 해서 연체하게 된 것인데 이자를 받아가다니 내가 가지고 있는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이자를 인출해 간 지점이 바로 일산 후곡지점이었다. 내가 왜 이곳을 선택했는지를 인사부나 일산 후곡지점에서 이자를 인출한 직원은 충분히 짐작하리라고 생각한다.

어제 은행에 있는 정보통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어음교환실 직원들에게 시간외수당이 지급되었습니다."

그야말로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식이었다. 그동안 해고투쟁을 하면서 시간외수당을 지급하라는 투쟁도 함께 하고 있었는데 나와 함께 근무하던 직원들이 28명이었고 나는 하나은행에게 내 것만 지급할 것이 아니라 다른 직원들의 것도 모두 지급하라고 요구하였다. 내가 계산해 본 결과로는 어음교환실 전체직원들의 시간외수당은 30억 가량이고 하나은행을 따라한 다른 은행들의 어음교환실 직원들의 시간외수당까지 모두 합하면 300억은 충분히 될 것이다. 어음교환실 직원들의 정당한 권리를 사용자들이 얼마나 많이 빼돌리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이미 노동부에서는 공소시효에 따라 6500만 원을 지급하라는 행정지시 공문을 하나은행에 보낸 상태이지만 하나은행은 정부기관조차 무시하고 지급하지 않고 있었다. 내가 강제집행을 하게 된 또 한가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이렇게 법원의 판단과 노동부의 지시조차 무시하고 오로지 근로자를 사업장에서 몰아내려는 모습에 화가 났기 때문이었다.

법 앞에는 누구나 평등하다고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거대자본이 항상 법 위에 군림하려고 한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법인보다는 자연인이 더 소중하다."

나는 비록 2차해고자라는 꼬리표가 붙어다니더라도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길을 묵묵히 걸어갈 뿐이며 우리 사회에 상식이 통하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 필자는 자신의 활동내용을 정리한 글들을 모아 독자적인 홈페이지http://chabrothers.com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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