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팔레스타인과 대추리에서의 '죽음'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팔레스타인과 대추리에서의 '죽음'

팔레스타인과의 대화 <26> 불가능한 곳에서 꾸는 꿈

아다니아, 당신의 '시간'에 대한 글은 마침 울고 싶었던 나에게 뺨을 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잠깐의 눈물바람 뒤에는 영혼이 깃든 오래된 글귀처럼 내 마음을 깊게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잔잔한 글 이면에 숨어 있는 깊은 슬픔이 내 아픔과 뿌리에서 맞닿아 뒤흔들었고 당신은 지혜롭게 그것을 어루만지는 힘이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 사회문제를 기록하는 르포작가들과 수강생들은 조그만 소도시인 평택에 다녀왔습니다. 역 근처에는 다양한 물건들로 가득 찬 통복시장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우리가 만나야 할 사람들인 대추리 마을 어른들을 위해 먹거리를 샀습니다. 김이 확 올라오면서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팥떡을 사고, 부추, 당근, 표고버섯, 양파 등 부침개용 야채를 샀습니다. 텁텁하면서 약간 노란기가 도는 막걸리는 말할 것도 없이 당연히 샀고요. 산 먹거리들을 들고 대추리로 들어가는 16번 버스를 타기 위해 시장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갔습니다. 정류장 의자에는 시골 사람들이 많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 몸 위로 오후의 따뜻한 겨울 햇살이 여물을 되새김하는 소처럼 느리게 내려쬐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바라보이는, 풍요로운 넓은 들판에 작은 언덕처럼 솟아 있는 대추리는 참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다니아, 나는 그곳에서 당신의 나라처럼 고통을 당하는 작은 팔레스타인을 만났습니다.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마을 곳곳을 둘러본 나는 이곳이 언론에 보도된 것보다 더 혹독하게 외롭고, 더 심하게 파괴된 곳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마을의 파괴된 여러 모습들이 끊임없이 잔인하게 나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이사 간 집들을 정부에서 다 부숴버려 남은 사람들에게 이곳은 '너희들이 살 곳이 아니라 떠나야 할 곳'이라고 윽박지르며 빨리 떠날 것을 강요하고 있었습니다. 파괴되지 않은 도두리 2구의 몇몇 집은 세면기가 뜯겨나가고, 창문이 박살나고, 문이 없어 차가운 바람이 거실 안으로 불고 있었습니다. 그 거실에는 미처 가져가지 못한 김치통이 나뒹굴고 아기 옷이 먼지에 쌓인 채 놓여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들어와서 살지 못하게 이사를 가면서 그렇게 자신이 살았던 집들을 다 부수고 나간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나오지 않으면 정부에서 보상금을 줄 수 없다, 했겠지요. 그 부서진 집들을 보면서 남은 사람들은 또 마음이 많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한 때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견디고 마음을 나눴을 화려하게 세워진 예술품들도 일부는 방치되어 황량하게 남아있었습니다. 벽 곳곳에는 수많은 예술가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떠나고 순정한 몇 분만 남아서 보일러도 들어오지 않은 차가운 방에 전기장판 하나로 버티며 견디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가슴에 남았던 것은 철조망이었습니다. 아다니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에 9미터 장벽을 세워 아름다운 노을을 빼앗고 장벽 건너편 오렌지 밭에 농사짓지 못하게 했다지요? 이스라엘이 야금야금 당신의 땅을 먹어치우듯 정부는 철조망을 쳐서 농민들의 땅에서 그들을 분리하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바로 마을 코앞까지 철조망을 쳐서 다시는 그들이 자신의 땅에 들어가서 농사짓지 못하게 최후의 선을 그어버렸습니다. 그 철조망은 금세 손가락이 베어질 정도로 칼날처럼 날카로운 군사용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현 정부는 농민들을 상대로 군사작전을 벌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농지를 뒤집어 파서 큰 수로를 만들고 그것도 모자라 그 수로 안에 철조망을 또 하나 넣었습니다. "저 철조망이 내 팔, 다리를 자르는 것 같아." 마을 할머니 한 분이 말을 합니다. 9미터 장벽 자체가 팔레스타인들에게 공포이듯이 철조망도 대추리 마을 사람들에게는 바라만 봐도 끊임없이 가슴을 칼로 그어대는 고통이자 공포였습니다.

대추리를 다녀와서 저는 혼자 있는 시간이 두려웠습니다. 마법사처럼 내 마음 안에서 자꾸 '어떤 말'이 솟아났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시장 길을 무작정 걷고, 전철을 여러 노선 뒤죽박죽 갈아타서 종점과 종점을 왔다갔다 해도, 새로 개업하는 상가 앞에 모여 있는 사람들 틈에 끼여 춤추며 공연하는 젊은 친구들을 바라보고 있어도 내 마음 안에 있는 '말'들은 가라앉지 않고 점점 더 서로 부딪치며 솟구쳤습니다. 청계천 사람들의 삶을 기록할 때 저는 순진했습니다.1) 쫓겨가는 사람들이 하나 둘 생계에서 손을 놓으면서 길거리에서 죽어가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비정규직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할 때도 사람들이 사회적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과도한 노동으로 과로사, 심장마비 또는 병이 들어 죽어갈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대추리에서도 나,는,또,사,람,들,의,죽,음,을,본,것입니다. 이제 내 눈은 사회적 사건 자체를 보기보다는 그 사건으로 파괴되어가는 사람들의 삶을 보게 된 것입니다. 이 사실이 너무 두려워 내 안에서 일어나는 말들을 짓눌러 삭제하고 싶었습니다.

마을 어른 중 한 분이 벽에 붙은 넓은 지도를 가리키며 당신들이 어떻게 이 땅을 만들어 왔는지 이야기 했습니다. 이 넓은 땅들이 예전에는 전부 갯벌이었습니다. 지게에 한 무더기, 한 무더기씩 흙을 져 나르며 갯벌을 메웠다고 했습니다. 어깨가 다 까지고 먹을 것이 없어 수제비 먹어가며 만든 땅이라 했습니다.

"이런 땅을, 동의해 준 적도 없는데 강제로 빼앗아 갔습니다."

법은 마을 사람들의 농지도, 집도 이미 그들의 것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미군기지 도면에는 농민들에게 빼앗은 땅 중에 30여만 평은 골프장으로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목숨보다 중요한 땅이 미군들에게는 오락용으로 사용될 예정인 것입니다.

마을 어른들은 말을 더 잇지 못합니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말하기도, 분노하기도 지쳐 있었습니다. 마을 어른들 얼굴에는 오랫동안 사회적 고통을 겪은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빛이 있었습니다. 마음을 휘어잡아도 생활이 바람처럼 흩어지고, 마음 가득히 금방 터질 것 같은 검은 물소리가 들립니다. 3년 5개월여 동안 '일상이 파괴된 전쟁 같은 상황에서' 그들은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왔고 고통을 당해 왔습니다. 실제로 그 기간 동안 그 마을에서만 21명이나 되는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특히 군인 1만5000명이 동원되어 대추분교가 파괴된 올 5월 행정대집행 때는 충격을 받아 두 달 사이에 7명이 돌아가시기도 했습니다. 평범한 농민들인 그들이 거대한 국가폭력에 맞서 3년5개월 동안이나 견뎌 오고 있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대추리처럼 사회적으로 파괴된 현장에 가게 되면 제 신체시간은 현대적 기호로 가득 찬 대도시의 번화한 공간보다 더 느리고 섬세하게 흘러갑니다. 마치 마이크로 렌즈로 바라본 것처럼 사물이 크게 확대됩니다. 외로운 대추리 사람들의 크게 확대된 몸에서는 자신들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공포가 섬세하고 정밀하게 느껴집니다. 내 몸이 떨립니다.

아다니아, 9미터 장벽 밑에서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들, 옥수수 농장에서 쫓겨난 멕시코 농민들, 전쟁 한가운데 있는 이라크인들, 그리고 대추리 마을 사람들. 희망 갖기 불가능한 듯 보이는 곳에 서면 저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이제까지 인간들은 그런 시간에 어떤 꿈을 꾸어 왔는가, 하고요. 루쉰은 '희망할 것,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도리어 '구원'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성경에서는 불가능한 곳에서는 나난(노래)을 부르라고 했습니다.

아다니아, 당신은 '아잠'의 단편에 나오는 그 노인처럼 '삶을 보다 더 견딜만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인이 시계로 변해 사람들을 깨운다고 했습니다. 나도 당신이 노인을 시계로 바꾸어 꿈을 꾸었듯이 불가능한 곳에서 꿈을 꿔 봅니다. 이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대추리 주민들을 위해 한국정부가 말합니다. "미국 여러분, 당신들의 요구는 실행할 수 없습니다. 대추리사람들의 목소리는 국가안보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정부는 폭력을 사용하여 그들을 굴복시키지 않겠습니다." 그런 멋진 말이 흘러나오기를 바라는데 그게 꿈일까요?

1) '삶이 보이는 창' 르포팀은 르포작업을 통해 '마지막 공간'으로 청계천 사람들의 삶을, '부서진 미래'로 세계화 시대 비정규직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했습니다.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www.palbridge.org)> 기획·번역>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