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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20년…아직 오지 않은 청소년들의 19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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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20년…아직 오지 않은 청소년들의 1987년

[전태일통신 56] "그들은 끊임없이 숨쉬고 저항하며 꿈꾼다"

나이 서른의 중턱에 들어선 나는, 가끔씩 중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린다. 화살처럼 쏜살같이 흘러간 세월을 건너 뛰어 15~20여 년 전의 퍼렇게 싱싱했던 시절을 회상하자면 그러나 그렇게 그립기만 한 것은 아니다.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의 중고등학교 시절은 나와 내 친구들의 생애에서 가장 많이 두들겨 맞던 나날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작고 호리호리한 10대의 몸뚱어리 어디에 때릴 데가 있다고 그렇게 매 타작을 했었는지 선생님들을 붙잡고 물어보고 싶어진다. 체벌도 체벌이지만 모욕적인 말들로 아이들의 영혼은 적잖게 상처 받았다. 그 매를 맞으며 우린 세상의 비밀을 조금은 알았다. 살고 싶으면 복종하라, 그것은 매가 가르쳐준 정언명령이었다.

세월은 흘렀다. 21세기의 청소년은 이제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국가보안법 뺨치게 '금지'의 언어로 가득 차 있는 '청소년보호법'과 각급 학교의 선도·징계 규정들을 살펴보면 우리 사회에는 청소년에 대한 '걱정'과 '염려'로 넘친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다른 쪽으로 눈길을 돌려보면 청소년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이들은 학교와 학원에 24시간, 365일 감금되어 있다시피 하다. 두발규정과 교복 때문에 '대낮'에 시내를 활보할 것 같으면 금세라도 눈에 띈다. 야밤에 돌아다니는 청소년이란 '잠재적 범죄자'로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다. 이런 사실에 미루어볼 때 청소년의 존재감은 규율과 규정 속에서 강하게 느낄 수 있지만 그 존재감은 실재하는 청소년이라기보다는 금지 당하는 주체로서의 청소년일 뿐이다. 사회에 의해 스스로를 부정당하는 존재인 셈이다.

존재하지 않는 존재, 혹은 존재하는 비존재. 그건 한마디로 인간으로 간주되지 않는 인간을 지칭하는 용어에 다름 아니다.
▲ 2005년 5월 7일에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열린 입시경쟁 희생 학생 추모제 행사 장면. ⓒ프레시안

좀 더 쉽게 말해보자. 청소년들에게는 생각과 표현의 자유가 없다. 신문과 책은 공안당국 같은 학교에 의해 검열당하기 일쑤고 단 그것이 '입시'에 도움이 되는 한에서만 용인된다. 청소년들에게는 결사의 자유도 없다. 동아리, 학생회 등도 껍데기뿐이며 스스로 모임을 구성하고 운영해갈 자유와 권리는 각종 생활규정에 의해 부정 당한다.

청소년들에게는 참정권이 없다. 15년 전에 한국 사회에 처음으로 제기되었던 '18세 선거권'은 아직도 요원한 일처럼 보인다. 따라서 한국의 청소년은 선거권이 주어져 있는 외국의 청소년들처럼 교육제도와 교육환경 문제를 제기할 자격이 없다. 다시 말하지만 청소년은 인간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소수자 중의 소수자.

그렇지 않다면 한 달 사이에 10명이 넘는 학생들이 자살을 하는데도 세상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상상해보자. 대학생 10명이 똑같은 이유로 자살을 하거나, 노동자가, 농민이, 교사가, 공무원이 자살을 해도 이렇게 '사건'이 되지 못 할까? 2008년 새 입시안이 발표된 후 2005년 4~5월의 일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청소년들이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연초 쏟아져 나온 신문들을 들쳐보니 한국 사회가 민주화의 도정에 선 지 올해로 20주년이 되었다고 한다. 어떤 이들에게는 그렇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난 인정하고 싶다.

그렇지만 사회적 제 권리가 부정당하는 '압도적 다수의 소수자들'에게 '민주화'는 현실이 아니다. 이를테면 청소년들에게 2007년은 '민주화 20주년'의 해가 아니다. 2006년 초 인터넷을 후끈 달아오르게 만든 '죽음의 트라이앵글' 동영상에 나오는 것처럼 '수능-내신-논술'로 이어지는 입시 체제 하에서 숨도 쉬기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는 1989년생들에게 올해는 여전히 1980년대의 어떤 날들일 뿐이다.

물론 교육현장도 민주화 이후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현대사 교과서를 보니 1960년 4월혁명, 1970년 전태일 열사, 1980년 광주항쟁, 1987년 6월민주항쟁과 7, 8, 9월 노동자대투쟁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소상하게 서술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전 같으면 '듣기 어려웠던 얘기들'이다. 또 전교조도 합법화되었다. 1989년 전교조가 출범했던 당시 청소년들은 연인원 50만여 명이 학교와 거리에서 '전교조 사수'를 외쳤다. 그러나 1500여 명의 선생님들은 교단을 떠나야만 했다. 하지만 이제 전교조는 합법화된 노조로서 조합원 9만여 명에 이른다. 이런 하나하나를 꼽을 필요도 없이 사실 20년이란 시간은 뭐가 변해도 변해야 했을 시간이 맞다.
▲ 2006년 9월 16일에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학생 인권과 자치 실현을 위한 학생인권법 국회통과를 염원하는 촛불문화제'행사 장면. 오병헌 학생이 연설하고 있는 가운데 촛불을 들고 참석한 100여 명의 학생들이 경청하고 있다. ⓒ프레시안

그렇지만 어떤 한 사회가, 예컨대 교육현장이 변했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누구의 눈으로 보아야 정확한 척도가 될 수 있을까? 난 그것이 청소년의 눈으로 볼 때만이 변화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전태일의 죽음이, 광주항쟁이, 6월민주항쟁이 5지선다형의 문제 속에서 혹은 '평생의 운명을 가르는' 대입 수능시험 문제의 제재일 때, 그 배움과 앎이란 미적분이나 방정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몽둥이가 교실에서 춤을 추고 아이들의 허벅지가 까맣게 멍들 때 얼마 만큼 변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2006년 한 해 동안,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1987년'을 일구기 위해 부지런히 뛰었다. 서울 양동중학교, 수원 청명고등학교 등의 학교에서 두발자유를 외치는 '사건'들이 빈발했고 해직된 동일여고 교사들을 위해 촛불을 든 청소년들도 있었다. 서울 동성고등학교에서는 '빼앗긴 인권을 돌려주십시오'라는 피켓을 들고 오병헌 학생이 1인 시위를 벌이다가 징계를 당하기도 했다. 5월 14일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는 '청소년 인권 행동의 날' 행사가 열렸고 여름방학 때는 '파란만장, 청소년인권 전국행진' 행사가 8월 14일부터 18일까지 서울→인천→대전→전주→울산→대구(총 6개 도시)를 순회하며 전개되기도 했다. 9월 16일에는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학생 인권과 자치 실현을 위한 학생인권법 국회통과를 염원하는 촛불문화제'가 열려 100여 명의 청소년들이 촛불을 들고 참석했다. 또 11월 3일 학생의 날 행사에 모인 청소년들은 전국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담은 스티커를 붙인 '학생인권 탱탱볼'을 만들어 명동성당에서부터 교육부까지 행진을 전개했다.

민주화 20년의 역사는 밑줄 치고 외워야 할 것이 아니라 기꺼이 그렇게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청소년들은 어디에선가 끊임없이 숨 쉬고 저항하고 노래하며 꿈을 꾼다. 이 사회는 그것을 늘 부정하고 금지하거나 못 본 체 하지만 그렇다고 이와 같은 저항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끝내 그네들의 1987년을 맞이하고야 말 것이다.

어떤 이들에게 1987년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그들의 6월 29일에 우리는 어디에 서 있어야 할까? 아니면 그네들과 함께 이를테면 서울 명동성당에서 혹은 남대문, 종로에서, 부산 서면에서, 광주 금남로에서 어깨를 곁고 함께 맞이해야 할까? TV를 지켜보면서 그들의 6월 29일을 남 일처럼 맞이해야 할까? 그건 사람마다 다르겠지. 그러나 어찌 됐든 2006년 한 해를 1987년으로 일구기 위해 부지런히 뛴 청소년들의 용기에, 실천에, 그 시간들에 갈채를 보낸다. 전해지는 울림에 응답하는 것이 우리가 1987년을 바르게 기억하는 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양돌규 : 1973년 서울 생. 성공회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민주주의 이행기 고등학생운동의 전개과정과 성격에 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에서 민주노총 10년사를 정리하는 프로젝트에 결합하여 활동 중이며 1987년 노동역사관 사업단 http://remember1987.net에서 1987년 7, 8, 9월 노동자대투쟁 DB구축 사업에 함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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