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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엔 '마음의 부자'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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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새해엔 '마음의 부자'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01/01]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개정판 낸 홍세화씨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 홍세화씨는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라는 책을 통해 톨레랑스라는 프랑스 말을 처음 한국사회에 알렸습니다. 그는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남을 배척하고, 내몰고 마는 우리사회를 향해 톨레랑스, 즉 관용의 정신을 외쳤고, 톨레랑스는 사회적 유행어가 됐는데요, 지난 연말... 홍세화씨는 이 책의 개정판을 냈습니다. 문장의 표현도 시대에 맞게 손질했고, 톨레랑스에 대해 깊어진 생각을 새로 추가했다고 하는데요, 지난 10여 년간 세상이 바뀌었지만, 불평등과 억압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고 홍세화씨.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언론인 홍세화씨를 초대해서 과연 지난 10여 년간 한국사회에는 관용의 정신이 어느 정도 성장했는지 한국에서 보낸 지난 5년간의 삶은 어떠했는지, 2007년 새해설계의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인지... 얘기나눠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언론인 홍세화씨입니다. 언론인 홍세화씨는 1947년 서울 출생으로, 1972년 대학교 재학시 민주수호선언문 사건으로 제적당한 뒤, 77년부터 79년까지 민주투위, 남민전 활동에 가담했습니다. 1979년 3월 무역회사 직원으로 해외지사 근무차 유럽으로 갔다가 '남민전 사건'으로 귀국하지 못하고 빠리에 정착했습니다. 82년 이후 관광안내, 택시운전 등 여러 직업에 종사하면서 망명생활을 했으며, 2002년 한겨레신문 기획위원을 맡으며 귀국했습니다. 현재는 학벌없는 사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빨간 신호등> 등이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박인규 : 2007년 새해가 밝았는데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홍세화 : 우선 부자는 좀 안 돼도 좋겠고, 마음의 부자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박인규 : '부자 되세요'라는 문구를 별로 안 좋아하시는 모양이군요. 2007년이 환갑 되시는 나이세요. 요즘은 사실 환갑은 청춘이라고도 하는데

홍세화 : 세월이 참 빨리 갔어요.

박인규 : 60을 맞으시는 감회가 다르실 것 같아요.

홍세화 : 그렇죠. 생물학적 나이는 많은데 아직 정신연령은 소년이고. 워낙 밖에 오래 살아선지 적응하기도 좀 어렵고, 하기 적응하고 싶지도 않지만.

박인규 :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라는 책이 1995년도에 나와서 굉장히 많은 화제를 모았고, 지금까지 60쇄가 나왔다고 해요. 60쇄면 몇십만부가 나간 겁니까?

홍세화 : 그렇습니다. 한 40만부 가까이 나갔을 거예요.

박인규 : 이런 류의 책으로는 굉장히 많이 나간 거죠?

홍세화 : 그렇겠죠.

박인규 : 이번에 개정판을 내셨다구요.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습니까?
▲ ⓒkbs 1라디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홍세화 : 작년 11월에 냈습니다. 우선 사진을 계속 얹고 입히다 보니까 사진이 너무 흐려지고 해서 다시 사진을 찍어 올려야 됐는데 그 결에 내용이 불확실한 걸 좀 고치고 톨레랑스에 대해서 조금 더 그동안의 생각을.. 잘못된 건 아닙니다만 좀 더 충실하게 하고 싶어서 그런 부분들이 좀 달라졌죠.

박인규 : 95년도에 톨레랑스를 처음 소개하면서 다르다는 것은 틀린 게 아니다. 다르다는 걸 서로 인정하고 공존과 대화, 토론을 해보자고 말씀하셨어요. 그게 상당한 공감을 불러일으킨 건 사실이거든요. 이번에 책을 고치시면서 톨레랑스 부분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셨을 테고, 또 10년 동안 과연 본인이 주장했던 톨레랑스라는 게 우리 사회에 영향을 줬을까.. 이런 생각도 하셨을 것 같아요.

홍세화 : 기대는 하는데 톨레랑스라는 게 흔히 사전에서는 관용이라고 표현하는데 저는 용인, 더 나아가서는 화의부동. 즉 동화시키지 않으면서 평화롭다는 뜻으로 볼 수 있는데요, 그것이 결국은 이성, 성찰이성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단시간에 효과를 본다.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는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이건 이성의 성숙문제와 관련되기 때문에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죠.

박인규 : 그냥 우리 서로 화해합시다. 용인합시다 정도로는 안 되고 사회가 성숙해야 되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홍세화 : 성찰이성이 성숙해야 되는 것이고, 그것은 끊임없는 학습과정과 교육이 있지 않고는 그냥 주장만 한다고 해서 이뤄지는 건 아니라는 거죠.

박인규 : 그렇게 봤을 때, 지난해뿐 아니라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가 양극화라고 해서 빈부격차 분 아니라 의견이나 태도에서도 그런 부분이 많은데, 작년 한해만 놓고 보면 어땠습니까?

홍세화 : 작년 한해 뿐 아니라 그 전도 마찬가집니다만, 특히 최근 들어서는 어떤 변화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좌절과 절망으로 넘어가면서 더욱 실의에 빠진 형편으로 장래에 대한 전망이 어두워지면서 사람들이 좀 더 악착스러워진 게 아니냐. 나쁘게 얘기하면, 또는 좀 더 영악해진.. 지극히 실리주의적인 쪽으로 흘러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그런 점에서는 톨레랑스라는 측면에서 보면 더 어려운 환경으로 가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죠.

박인규 : 톨레랑스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오히려 그 수준이 더 떨어졌다..

홍세화 : 환경 자체는 안 좋아졌다는 거죠. 왜냐하면 톨레랑스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배려, 관심과 연결되는 부분인데 결국 자기의 실리라는 점에 대해서만 빠져 있을 때 과연 타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부드러워지거나 여유를 갖기는 대단히 어렵지 않겠습니까?

박인규 :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라는 것이 톨레랑스의 정신이다. 작년 한해만 놓고 보면 예를 들면 부동산값이 엄청나게 뛰어올랐고, 비정규직법이 통과되면서 비정규직들의 고민이 더 많아지고 힘들어졌고. 또 한미FTA문제까지 있어서 굉장히 시끄러웠거든요. 홍세화씨는 FTA와 관련해서 1인시위도 하셨지만.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라는 측면에서 어떤 문제가 가장 우리 사회와 사람들을 악착스럽게 만들고 있는지...

홍세화 : 사회구성원들을 지배하는 건 불안이라고 생각해요. 장래에 대한 불안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을 지배하고 있다는 거죠. 그것에 반응하는 방식인데요, 그것에 스스로 얽매이게 되고 타자와의 관계에서 굉장히 영악해지고. 사적 관계에서는 굉장히 영악한데 공적 관계나 사회를 바라보는 눈은 아주 어설픈, 이런 데서 정치적 국민으로서, 시민의식을 가진 시민으로서의 성숙은 대단히 어려운 지경에 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박인규 : 자신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극악스럽게 활동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돌볼 여유는 없는...

홍세화 : 그렇죠. 사회에 대한 인식이라든지, 우리가 같이 살아가야 되는 사회가 어떤 사회가 될 때에 나의 삶도 거기에 따라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런 것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죠. 그래서 자기 혼자서 독주하려고 하는. 그런데 그게 실제로 되지도 않거든요. 결국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경쟁의 모습인데 결국 모두 패배하는 결과를 빚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죠.

박인규 : 다른 사람, 특히 소수자에 대한 배려를 얘기할 때 교육이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래서 홍세화씨도 교육에 대해 관심이 많으신 것 같은데 우리의 교육은 사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라기보다는 1등하기 위한 교육이잖아요.

홍세화 : 그렇습니다. 심각하죠. 어려서부터 가치관이나 의식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우리 사회는 어렸을 때부터 경쟁의식을.. 연대의식이나 배려보다는 남을 따돌리고 경쟁에서 이겨야 되는 대상으로.. 그렇게 여겨지게 만들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서 과연 어떻게 우리가 더불어 사는 사회라든지, 또는 공동체라든지 이런 걸 그냥 구호만 외칠 게 아니라 내실이 있어야 되는데 내실로서 가장 중요한 게 바로 타자와의 관계. 여기서 톨레랑스가 가장 중요하게 담겨야 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라는 거죠.

박인규 : 언젠가 홍세화씨가 쓰신 칼럼 중에서 교육인적자원부에 대해 굉장한 반감이랄까, 사람을 목표가 아니라 자원으로 보는 것이 굉장히 문제가 많다고 하셨습니다.

홍세화 : 그렇습니다. 그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칸트의 정언명령에도 있는 말이지만 인간은 목적이지 수단이 아니다. 즉 사람은 위하는 존재지 이용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유명한 명제가 있지 않습니까? 경제나 그런 부처에서는 그런 이름을 쓸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교육을 말하는 부처에서는 그렇게 말하는 것은 철학 자체가 그야말로 신자유주의를 그대로 맹종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게 아니냐. 또 실제로 교육인적자원부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인적자원개발까지 있거든요. 원래는 HRD아닙니까? 그래서 인적자원개발인데 너무 길어서 인적자원에서 끝냈는지 모르지만 그 말 자체가 원래는 미국의 기업경영용어입니다. 이런 것을 어떻게 교육부에다가 붙일 수 있었는지, 결국 신자유주의가 그만큼 맹위를 떨치고 관철되고 있다는 걸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적어도 교육이라는 건 사회 구성원들과 우리 아이들을 목적으로 바라보는 시선과 철학이 바탕이 돼야 하지 않겠나 이런 생각이죠.

박인규 : 홍세화씨는 학벌없는 사회라는 단체의 공동대표를 맡고 계신데, 그것 역시 사람을 수단으로 보고 학력이 대물림되는 사회를 막자는 얘깁니까?

홍세화 : 그렇죠. 그런 철학이 담긴 건 물론이고 현실적으로 대학이 서열화 돼 있는 구조로 인해서 한편으로는 소위 상위권 대학 출신들이 별로 능력도 없이 특권을 누리고 있는 현실하고... 흔히 말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는 거죠. 그런가 하면 다수의 사회구성원들에게는 일찍부터 어떤 열패감을 갖게 하는, 그래서 자기성숙의 모색을 하지 안하게 되는, 이런 아주 큰 걸림돌로 바라보는 거죠. 이것이 바로 한국사회의 불평등과 그것을 그대로 온존시키는 아주 강력한 기제로 바라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박인규 : 한 명의 승리자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9명의 패배자를 만들어내는 사회. 학벌없는 사회라는 단체에서는 학벌과 학력사회를 지양하기 위해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십니까?

홍세화 : 우선 연구활동도 하고, 주로 인문학을 공부하고 사회과학을 공부하신 분들이 주로 참여하고 있는데요, 왜 우리가 학벌을 없애야 되는가에 대한 내용을 충실히 하기 위해서 정책개발이나 연구작업도 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왜 우리가 학벌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되느냐에 대한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한 접촉도 나름대로 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지난해에는 또 아이들 살리기 운동본부 활동도 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건 어떤 단체입니까?

홍세화 : 결국 우리가 보는 것은 우리 아이들을 어렸을 때부터 억압하고 있다는 거죠. 이미 2003년 유엔아동권리위원회에서도 이미 지적한 바 있지만 한국은 아동교육과 입시교육으로 아동과 청소년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게 대단히 중요한 문제인데, 결국 뭐냐 하면 인권의식을 함양시켜야 되는.... 톨레랑스라든지 타자에 대한 배려라든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문제를 미리 교육과정에서 해야 되고, 그래서 인권의식을 함양시켜야 할 교육과정이 그 자체로 인권침해라는 거죠. 그러니까 아이들이 그야말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이렇게 억압당하는 상황이 내면화 되고. 그러면 아이들이 타자의 인권을 침해해도 인식조차 못한다는 거죠. 이미 내면화 돼 있기 때문에. 이것이 우리 사회에 그만큼 각박한.. 서로 상호관계를 배려하지 못하게 나아간다고 보고. 우선 우리 아이들 너무 불쌍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아이들을 정말 살려내야겠다, 결국 그건 어디서 비롯되는 것이겠는가. 바로 대학의 서열화 구조. 한 번 대학에 들어가면 그것으로 일생을 거의 세습과 같은, 신분제와 같은.. 그런 구조에서 벗어나야 된다고 보는 겁니다.

박인규 : 입시교육으로 청소년의 인권까지 침해하는 모순을 없애기 위해서는 대학서열화가 없어져야 된다.

홍세화 : 궁극적으로 저는 그렇다고 봅니다. 그것과 동시에 대학서열화 때문에 한편 굳어져 있는 게 있는데 바로 사회 안전망 문제죠. 사회구성원들이 모두 어떤 허상의 인식을 갖고 있느냐면 지금 내가 못 살지만 내 자식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그야말로 상위권 대학에 가면 의사 변호사도 된다는 허상의 인식을 통해서 지금 이런 사회적 불평등이나 모순을 참고 있다는 겁니다. 그게 결국은 대학의 서열화 된 구조에 의해서, 개천에서 용 날 수 있다는 허상의 기대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참으면서 오늘의 사회 안전망에 대한 문제를 제기 못하고 있는 부분이 맞물려 있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도 사회구성원들이 같이 우리 아이들에게 내 자식만의 계층상승을 기대할 것이 아니라 민중의 생존권 차원에서 같이 제기되는 문제들은 같이 해결하고 같이 넘어가야 되는데, 그러고 나서 기본적인 요건들은 같이 해결하고 나서 경쟁해야 되는데 기본적인 문제부터 다 경쟁을 통해 해결해야 되고 그걸 통해 해소할 수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에, 이럴 만큼 아주 치열한 상황으로 몰려가고 있다고 보는 겁니다.

박인규 : 상당 부분 공감이 가면서도, 현실적으로 대학 서열화를 없애는 방법으로 국공립대를 평준화시키자는 주장을 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현실적으로 가능할까요?

홍세화 : 그게 한 사람이 꿈꾸면 꿈에 지나지 않지만 여럿이 같이 꾸는 꿈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거죠. 그냥 그게 되겠느냐는 식으로 하면 항상 계속 안 되죠. 그렇지만 우선 우리 아이들의 현실, 지금 초등학생만 해도 2만명 가까이 외국에 나가야 되는 현실들, 그리고 중고등학생들이 아이들의 삶 자체를 빼앗긴 삶의 모습. 그것이 과연 우리에게 뭘 주고 있느냐, 과연 경쟁력이라도 주고 있느냐. 그것도 아니라는 거죠. 왜냐하면 한국사회의 구성원들은 일생에 걸쳐서 두 번 밖에 긴장하지 않는데, 대학입시 때 한 번, 취직하기 위해서 한 번 긴장하는 것 말고는 자기성숙의 모색이 없는데 어떻게 경쟁력이라는 것이, 특히 앞으로 지식기반으로 창조성이 요구되는 사회에서 단 두 번만 긴장하는 사회구성원들이 그렇게 구조화 돼 있는 데서 어떻게 경쟁력이 나올 수 있겠느냐. 전 그런 점에서 억압은 억압대로 하고 희생은 희생대로 되고. 피해는 피해대로 보면서 얻는 건 없는. 흔히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얘기하지만 저는 한국사회에서 학벌을 통한 오블리주는 있는가라는 문제에서부터, 제가 볼때 참 무식하거든요.

박인규 : 사실 그 경쟁력에 대한 질문이 하고 싶었어요. 아까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말씀하셨고..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한국사회가 먹고 살기 위해서는 경쟁력을 키워야 되고, 우수한 인재를 키울 수밖에 없으니까 좋은 학교 가야 되지 않느냐고 말하는데, 사실은 우리 교육이 경쟁력도 키워 주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어요.

홍세화 : 그렇습니다. 바로 한국 대학의 경쟁력이란 국내 경쟁력입니다.

박인규 : 국내에서만 통하는..

홍세화 : 그렇죠. 현실을 직시해야지요. 지금 이른바 잘 나가는 대학의 교수들이 그 대학 출신입니까? 아니잖아요. 그 대학도 나왔지만 거의 다 미국에서 공부를 해야만 되는 구조 아닙니까. 대학의 경쟁력은 학문의 경쟁력이죠. 그런 축면에서 봐도 전혀 경쟁력도 갖고 있지 못하고, 그건 국제적으로도 우리가 알고 있는 바 아닙니까. 이른바 관악산에 있는 대학이 분단 이후 60년 가까이 한국 땅에서 가장 머리 좋다는 아이들을 다 수천 명씩 끌어 모아서 반세기 이상 동안을 지내 왔는데 세계적인 시각으로 볼 때 학문 경쟁력은 뒤떨어지는 게 사실 아니겠습니까?

박인규 : 딱부러진 해결책은 없겠지만, 그렇다면 진정한 경쟁력도 키우고 인성도 함양하는 교육의 원칙이나 방향은 어떤 거라고 생각하세요?

홍세화 : 결국 사회구성원들이 대학이 어디냐가 아니라 자기성숙의 모색을 통한 끊임없는 긴장과 그런 노력의 결과가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는 거죠. 말씀드린 바와 같이 한국사람들이 단 두 번 긴장하는 것은 그 두 번 긴장하는 것으로 인정받게 돼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죠. 대학입시에 목을 매고, 취직임용하기 위해서 긴장하는 것 말고는 긴장하지 않는 것. 그것이 결국 경쟁력도 나타나지 않게끔 만드는 건데, 끊임없이 자기성숙의 모색을 통해서 그 결과가 사회에서 인정받게 되는 구조로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박인규 : 약간 화제를 다른 것으로 돌려서, 홍세화씨는 사실 프랑스 파리에서 외국인노동자로 생활하셨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외국인노동자가 엄청나게 들어와 있고, 결혼해서 살고 있는 동남아 여성들도 많은데.. 우리 사회에서 외국인들, 사실 외국인이지만 우리 사회에 같이 있는 이런 분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는 나아지고 있다고 보십니까?

홍세화 : 아주 조금씩, 그래도 시민사회단체 운동을 하시는 분들의 힘에 의해서 아주 조금은 나아지고 있다고 봅니다만, 전체적으로 볼때는 역시 왜곡된 시각과 잘못된 철학이 지배적이라는 생각을 하죠. 우선 저는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지만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은 바라보는 시각, 한국에 와 있는 동남아 출신 여성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지극히 경제동물적이라는 거죠.

박인규 : 그것도 말하자면 사람을 수단으로 본다..

홍세화 : 그렇죠. 수단으로 볼뿐만 아니라 경제적 관점에서만 보기 때문에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관심은 전혀 배제돼 있다는 겁니다. 코시안 아이들의 경우도 그렇구요.

박인규 : 코시안이라면 동남아 어머니와 한국 아버지 사이에서 낳은 아이..

홍세화 : 네. 코리아와 아시안을 합쳐서 그렇게 얘기하죠. 그 말도 그리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렇게 얘기하고 있고. 그 어머니들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전혀 없는. 이미 시골에 주로 살지 않습니까. 그 지역 면 단위 학교, 초등학교에서는 이미 코시안 아이들이 한 10%를 차지하는. 초등학교 입학아동의 10명 중 한 명은 그런 아이들이 오고 있는 현실인데 그 아이들이 어떤 정체성의 문제를 갖고 있는지, 이런 것들에 대한 준비는 전혀 없이 그런 게 이뤄져 왔다든지. 또 이주노동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죠. 완전히 경제적 관점에서만 바라봤지 그들은 문화적으로나 사회적 관점에서 바라봤는가에 대해서는 아주 부정적이죠.

박인규 : 같은 외국인이라고 하더라도, 특정한 누구 이름을 거론할 수 없겠지만 유명한 미식축구스타나 혼혈이지만 유명 연예인에 대해서는 굉장히 높게 보거든요. 인종주의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떻습니까?

홍세화 : 그게 저는 두 가지가 같이 결합돼 있다고 보죠. 우리가 흔히 순혈주의니 이런 얘기를 하지만 그게 굉장히 모순적이라는 거죠. 한편으로 미국을 비롯한 백인들에 대해서는 우리 편이라는 생각이 있고. 거기다가 또 잘 사는 사람.. 이런 게 결합돼 있어서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소위 잘 산다는 것, 편하다는 것이 착한 것이고 옳은 것이고. 이런 것과 연결돼서 그 두 개가 결합됨으로써.. 제 1세계, 백인들에게는 받는 것도 없이 굉장히 모셔요. 그런데 제 3세계 사람들은 내 편이란 생각도 없고, 특히 잘 못 사는 곳 출신이라는 면에서 그들은 주는 것 없이 깔보죠. 이런 이중성이 있어 보입니다.

박인규 : 지금까지 교육문제라든가 비정규직문제라든가..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을 많이 지적했는데, 그래도 우리사회가 희망을 가질 수 있다면, 말하자면 나아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그런 건 혹시 보이지 않으시나요?

홍세화 : 글쎄요. 요즘, 특히 젊은 세대를 보면 참 부정적이에요 솔직히. 사회에 대한 인식이 너무 없어요. 제가 프랑스에 있었기 때문에, 특히 그곳 청소년들과 한국 청소년들을 그냥 아주 쉽게 비교하면 프랑스, 유럽 아이들은 사적 관계나 인간관계는 굉장히 소박하고 사회에 대해서는 굉장히 예리한 나름대로의 비판적 안목을 갖고 있다면 우리 청소년들은 정반대에요. 사적 관계에 대해서는 굉장히 영리하고 영악한데 사회에 대해서는 너무 무지해요. 아무 것도 몰라요. 이것이 저한테는 장래를 참 어둡게 바라보게 하는 요인이죠.

박인규 : 희망을 찾으려고 했더니 쉽지가 않군요.

홍세화 : 물론 그렇다고 해서 희망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는 것이고.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하죠. 이미 지금 경제에서도 그런 얘기를 많이 하는데 사회적으로 볼 때도, 가치관 등을 봐도 이미 바닥을 친 거 아니냐. 그것이 곧 희망이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도..

박인규 : 바닥을 쳤으니까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기대를 가져봐야겠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언론인 홍세화씨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는 개인적인 질문도 드려볼까 합니다. 30대 초반에 외국에 나가셔서 50대 중반에 한국에 돌아오셨습니다. 이십몇년을 외국에 사시다가 한국에서 5년을 사셨는데 살아 보니까 어떻습니까?

홍세화 : 제가 들어올 때 적응은 되도록 안 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죠. 그것도 좀 어려운 것 같긴 해요. 그리고 제가 귀국하면서 희망이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출퇴근을 하는 것.

박인규 : 정시에 출퇴근하는 직장이 있다는 것.

홍세화 : 네. 그 다음에 좀 모순되지만 한국땅을 마냥 걸어보고 싶다는 것이었는데 어쨌든 출퇴근하는 건 한겨레신문에서 성취했습니다. 그런데 걸어다니고 싶다는 건, 사람의 길이 자동차길에 다 밀려나서 도대체 걸을 수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일찍 포기했죠. 그래서 제가 항상 그런 말을 하죠. 사람의 길이 자동차길에 밀려나다 보니까 사람들이 사람의 길을 찾지 않는구나.

박인규 : 20여년 만에 돌아오셨을 때 한국이 굉장히 낯설지 않으시던가요?
▲ ⓒkbs 1라디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홍세화 : 낯설다고 한다면 역시 20년 동안 한국사회에서 차곡차곡 축적된 물신주의적 가치관이 제일 낯설었습니다. 처음 말씀하신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저한테는 굉장히 충격적이었거든요. 또,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줍니다. 이런 광고카피라든지. 이런 게 굉장히 충격적이었죠. 그 자체로도 충격적이었지만 그런 광고카피가 어떻게 우리 아이들의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비판적 안목을 보여줘야 될, 충분히 그런 문제제기가 있어야 된다고 보거든요. 교육자라든지 방송노조 같은 데서도 그런 문제제기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자라든지 종교인이라든지. 그런데 그런 문제제기도 별로 보이지 않는 것도 또한 충격이었고. 이미 그런 것이 내면화 됐다는 거죠.

박인규 : 혹시 다시 그냥 프랑스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드십니까?

홍세화 : 그런데 그건 또 다른 문제죠. 왜냐하면 사회구성원 문제.. 제가 국민이나 이런 표현보다는 사회구성원이라는 표현을 좋아하는데 저의 소속사회는 한국사회기 때문에 아무리 이십 몇 년을 살았어도 결국 중요한 사회화 과정인 교육과정은 한국에서 받았기 때문에 제 소속사회는 한국사회고. 사회적 동물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프랑스에서는 물론 관조하면서 잔잔한 호숫가에 사는 느낌으로는 살 수 있겠죠. 마음 편하게. 그런데 실제로 의미있는 삶이랄까, 그런 건 거기서 가능하지 않다고 봅니다.

박인규 : 뿌리는 어차피 한국이기 때문에. 한국에 오신 이후 언론인으로 활동하셨습니다. 4년간은 칼럼니스트, 작년 1년 동안은 시민편집인으로서 한겨레신문을 객관적 입장에서 비판도 하셨는데, 언론의 역할 같은 것도 말씀을 해주셨어요. 물신주의에 대한 비판 등... 한겨레를 포함해서 우리나라 언론들을 보시면서 만족하십니까?

홍세화 : 전혀 그렇지 못하죠. 저는 한국의 특히 신문시장의 경우는 그야말로 몰상식함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특히 종이신문의 경우. 흔히 신문을 사회의 거울이라고 표현한다면 한국사회가 참 몰상식한 측면이 강한 부분이 있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한국의 신문시장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시장이 왜곡돼 있는 것도 그렇고 신문의 내용면으로 봐도 그렇고.

박인규 : 몰상식하다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뜻입니까?

홍세화 : 상식차원이 아니다. 이른바 신문을 흔히 공기라고 하지 않습니까. 공적 그릇이다. 공익성과 공공성을 담아야 하는 것인데 일부.. 주류신문들은 그 공기인 신문을 사적 이익을 창출하고 강화시키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무기로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몰상식한 거죠.

박인규 :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개인뿐 아니라 언론조차도 전체보다는 자기 자신의 이익에 너무 몰두하는...

홍세화 : 그렇죠. 집단의 이익. 그런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공공성을 담보해야 하는 신문도 그런 무기로, 홍보물로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참 몰상식한 거죠.

박인규 : 그렇지만 한겨레신문 같은 경우는 그런 주류언론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스스로 자임하고 나왔단 말이죠. 그런데 홍세화 위원께서 실제로 쓰신 걸 보면 내부비판자랄까, 그런 역할을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홍세화 : 제가 한겨레 구성원한테는 조금 미안한 부분이 있어요. 그렇지만 흔히 말하는 주례사 비평은 제 성격상으로도 못하고. 물론 한국사회 전체로 보면 한겨레가 지금 하고 있는 나름의 긍정적인 면이 당연히 있지요. 그런데 또 제게 주어진 임무가 그런 역할이기 때문에 악역을 맡은 것이었죠.

박인규 : 한 5년동안 언론에 몸담으시면서, 방송이든 주류 언론이든... 적어도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이렇게 나가 줬으면 좋겠다. 어떤 게 있을까요?

홍세화 : 글쎄요. 신문에 대해서 그것이 제자리를 잡아갈 것이냐에 대해서는 크게 기대를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독자들에게 좀 더 상식적인 신문으로 힘을 실어줬으면 좋겠다는 측면에 기대와 희망을 갖고 있는 거구요. 방송에 대해서는 정말 하고 싶은 얘기가 많습니다. 지금 이런 인터뷰라든지, 이런 것이 결국 방송의 공공성과 바로 연결되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한국의 공중파 방송은 원죄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건 뭐냐, 특히 텔레비전 방송의 경우 심각한 원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것은 곧 한국사회 구성원들을 드라마 중독증에 걸리게 했다는 것. 이 점은 정말 분명하게 제대로 인식해야 되고. 그래서 그야말로 좋은 프로그램들이 나오지만 그것이 결국 드라마 중독증에 걸리게 했기 때문에 전부 밀려나 버리는.. 그래서 결국은 좋은 프로그램들을 봐야 할 사람들은 안 보고, 알고 보면 한미FTA 이런 것만 보더라도 안 봐도 될 사람들만 보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는가. 그래서 이 문제는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결국 보도국이 제 역할을 해야 되는데, 저는 보도국이 기계적 중립주의에 빠져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죠.

박인규 : 하긴 실제로 방송일 하시는 PD분인가 그런 말씀을 하시던데, 우리나라 공중파 방송이 세계에서 가장 재미있는 방송이라고 하라구요.

홍세화 : 재미있다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죠.

박인규 : 시민편집인 역할은 작년으로 그만 두셨죠?

홍세화 : 예.

박인규 : 한겨레신문도 듣기로는 정년퇴직을 하셨다던데 앞으로 활동은 어떻게 하십니까?

홍세화 : 아직은 제가 출퇴근이 희망이었던 사람이어서 5년만 출퇴근하고 정년이라고 하면 저도 좀 섭섭하고. 아직 생물학적 나이와 다른 부분도 있고. 그래서 일단 한겨레에 계속 비정규직으로 출근하기로 돼 있습니다.

박인규 : 올해 연세가 환갑이시지만 아직 마음은 소년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올해부터 혹시 언론인, 지식인으로서 이런 일을 해봐야겠다는 계획이 있다면 마무리 말씀으로 해주시죠.

홍세화 : 지금까지 해온 것들의 연장이죠. 금년 2월경에는 그동안 썼던 것들을 모으고 새로 쓴 글들.. 결국 사회구성원과의 만남이고. 우리 사회를 조금은 더 정의롭고 상식적이고 덜 불평등한, 고통이 줄어드는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모색. 그것이 단숨에 효과를 얻는 건 아니겠구요, 긴 안목으로 해나가는 하루하루의 과정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박인규 : 흔히들 지식은 그 사회의 양심이라고 하는데, 물론 당장 이뤄지는 건 아니겠지만 우리 사회가 좀 더 관용과 화해가 넘치는 사회가 되도록 앞으로도 계속 많은 활동 부탁드리겠습니다.

홍세화 : 고맙습니다.

박인규 : 말씀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언론인 홍세화씨와 함께했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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