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패션의 중심도시인 프랑스 파리.. 파리에서 열리는 수많은 패션쇼 중에서 프레타포르테 컬렉션은 가장 품격있고 화려한 패션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지난 2월 26일에 열렸던 프레타포르테 컬렉션에서는 '달빛 그림자'라는 테마 아래 한글이 새겨진 51벌의 옷이 선보여졌습니다. 낯선 한글무늬가 새겨진 옷에 대해 세계 디자이너들은 큰 관심을 보였는데요
한글의 아름다움을 세계 패션계에 소개한 주인공은 바로 디자이너 이상봉씨입니다. 그는 외래어 홍수 속에 묻혀가는 한글을 패션에 접목시키면서 한글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렸는데요,.
연말을 맞아 2006년 문화 예술계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하고 있는 세 분을 초대하고 있는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2006 문화예술계 인물토크 3인 3색>
오늘은 그 마지막 시간으로 한글과 패션을 접목시킨 디자이너 이상봉씨를 초대해서,
한글을 의상 디자인에 접목시킨 계기는 무엇인지 한글 디자인에 대한 세계 패션계의 평가는 어떠한지, 그리고 그가 추구하는 패션 디자인의 세계는 무엇인지 얘기나눠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디자이너 이상봉씨입니다.
이상봉 디자이너는 서울예술대학 방송연예학과와 국제패션디자인연구원을 졸업하고 83년 중앙디자인콘테스트에 입상하면서 디자이너로 데뷔했습니다. 중앙디자이너그룹 회장, 한국패션협회 이사, 웰컴투코리아시민협의회 홍보위원 등을 지냈으며 1999년 서울패션인상, 올해의 디자이너상을 수상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박인규 : 이상봉 디자이너가 연말이라 워낙 바쁘셔서 역삼동에 있는 디자이너 사무실로 왔습니다. 지금 응접실에 와 있는데 새소리도 들리고 분위기가 아주 좋습니다. 올해는 상당히 풍성한 수확을 거두신 한해인 것 같아요. 세계 패션계에 한글의 아름다움도 알렸고 한글디자인을 통해서 환경재단에서 올 한해 세상을 밝게 만든 인물로도 선정됐는데, 한해를 보내시는 소감이 어떠신가요?
이상봉 : 제 능력에 비해서 분에 넘치는 사랑을 많이 받은 해였던 것 같아요. 소재가 결국 우리가 쓰고 입고 하는, 우리와 항상 같이 생활하는 한글이었기 때문에 제가 그런 상을 받을 자격이 있나... 아니면 그런 사랑을 받을 재목이 되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해 본 한해였어요. 제가 더 열심히 하려는 것으로 느끼고, 내가 여기서 안주하면 안 되고 더 열심히 뛰어서 우리 한글, 아니면 우리 문화를 어떻게 소개하고 어떻게 내가 알려야 되는가에 대해서 더 깊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과분하다는 말씀을 하시지만 일단 본인의 활동에 대해서 만족하시는 거죠?
이상봉 : 저는 실은 많은 분들이 도와주신 거였어요. 디자이너한테 계속적인 반복은 어떻게 보면 가장 피해야 될 부분이거든요. 하나의 쇼가 끝나면 그건 빨리 잊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집착해야 되는데, 한글을 딱 하고 나서 벗어나려고 하는데 주위에서 많은 분들이... 어떻게 보면 반강요에 의해서 했는데 결과적으로 좋은 결과를 냈고, 그래서 저를 채찍질하고 저를 그렇게 하게 만들었던 많은 분들한테 이제는 고마움을 더 표시해야 될 것 같습니다
박인규 : 그래도 주역은 이상봉 디자이너였기 때문에 너무 겸손하지 않게 말씀하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제가 앞서 소개하면서 한글을 소재로 한 의상이 지난 2월 프랑스 파리 프레타포르테에서 선보였다고 말했는데 그때 주제가 '달빛 그림자'더라구요. 제가 알기로는 세종대왕이 만드신 월인천강지곡의 월인인것 같은데 맞습니까?
이상봉 : 그런 뜻도 있었지만 실은 약간 새로운 각도로 한글을 소개하고 싶었어요. 실은 초청장... 인비테이션에도 한글을 과감히 넣어 봤어요. 그들이 이해하든 못하든 간에 오기 같은 것 있잖아요. 제가 맨 처음 파리에 가서 훈민정음을 작년에 먼저 소개했을 때는 그들이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내놓고, 이게 한글이다 문자라는 얘기를 못 했는데 이번에는 콜렉션을 하기 한 달 전에 전시회를 했습니다. 거기서는 바이어를 통해서 오더를 받고 먼저 선보이거든요. 그때 선보였을 때 그들이 놀라는 거예요. 한글이 있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 너희에게도 문자가 있었어? 저와 5년 동안 같이 스탭을 했던 사람들조차.. 실은 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이 있는 것도 모르는 분이 많습니다. 우리는 그렇게까지일까 하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많구요.
박인규 :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라고 하는데 문화적으로는 알려지지 않았군요..
이상봉 : 제가 볼 때는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올림픽에 대해서는 많이 모르고 유럽 같은 경우는 월드컵을 통해서 아시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도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아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한민국이 어디 있는지 크게 관심도 없고, 그러니 한글은 더하겠죠. 한글, 이랬더니 그들이 문자가 있는 것에 대해 놀라면서 다시 보더라구요. 아, 문화국이구나. 그리고 이게 뭐야? 그래서 한글이라고 하면 이게 무슨 뜻이고 언제 만들어졌는지,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와 시를 얘기하게 되고... 이러면서 제가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왜 이제야, 많은 사람들이 당연히 알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모른 것에 대한 충격과, 내가 파리에 가서 이제까지 뭘 했지? 내가 같이 일하는 스탭까지 이걸 모른다면 나는 뭐지? 이런..
박인규 : 말하자면 디자이너라기보다는 문화홍보대사 같은 역할을 하신 셈인데, 국내에서 패션에 약간 문외한인 분들은 프레타포르테 컬렉션이 어느 정도 위치인지 모르니까 약간 설명을 해주시죠.
이상봉 : 지금 보통 패션을 배우는 사람이나 일반 사람들도 세계 4대 컬렉션은 알고 있습니다. 파리, 밀라노, 런던, 뉴욕, 이렇게 네 개의 컬렉션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핵이 파리라고 하죠. 얼마 전.... 한 5년 전에는 잠깐 한 10년 가까이 밀라노 컬렉션에 주도권이 넘어간 적도 있었다고 하는데, 다시 파리의 창조적인 정신이... 밀라노는 약간 기성복적인 게 강했고, 그래서 파리가 다시 중심으로 돌아와서 세계 패션을 움직이는 하나의 핵이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세계 패션이 파리컬렉션에 의해서 유행이 만들어지고 전파되고, 이런 세계의 중심적인 패션쇼죠.
박인규 : 올해 한글디자인이 들어간 의상을 본격적으로 선보이셨지만 작년에 훈민정음을 소개하셨다면서요, 제일 궁금한 건 어떻게 한글을 의상디자인에 응용해 보자는 생각을 하셨는지...
이상봉 : 제가 가끔씩 우리나라 문화와 접목하는 패션을 발표했었거든요. 몇 년 전에는 샤머니즘이라는, 우리나라의 무속적인 패션을 갖고 한 번 소개한 적이 있었거든요. 루브르에서 굿도 하면서 컬렉션을 했는데 그때는 문화적인 충격만 던져줬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그들에게 직접 입혀지거나 바이어들이 구매를 하는 것까지는 연결이 안 됐거든요. 그런데 이번 같은 경우 한불120주년이니까 뭔가 한국문화를 접목하는데 뭐가 가장 이상적일까,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가 뭘까 고민했는데 우연찮게 떠오른 게, 한글이면 어떨까 하면서 장사익 선생님이나 임옥상 선생님이 저한테 글을 써주시는 분들이었어요.
박인규 : 장사익 선생님이라면 노래하시는...
이상봉 : 예. 편지를 직접 자필로 써주시는 분들이라 그게 별안간 생각났어요. 그래서 그 분들의 편지를 다시 꺼내 보면서 이런 글씨를 패션에 접목해 볼까? 그러면서 처음에는 대대적으로 프린트까지 전체적으로 옷에 할 생각이 아니었고 살짝 멋스럽게만 보이자, 아니면 안감에 살짝 보이자. 한국의 문화를 좀 소개하는 측면이었는데 외국 친구들이 보고는 괜찮다, 상당히 모던하고 새롭다. 그래서 실은 한국에서는 여기 내부적으로도 저희 디자이너들이 다 반대했었거든요. 그래서 맨 처음 제가 청바지에 한글을 해보고 티셔츠에 한글을 써봤더니 따라하더라구요 우리 디자이너들도. 또 외국 친구들도 괜찮다고 자꾸 용기를 주고 해서 그럼 이걸 슬쩍 맛만 보이는 게 아니라 대대적으로 알려보자. 이건 어차피 파리에서 내가 내 돈 주고 쇼를 하는 거고, 또 어느 정도는 바이어들이 내가 요구하는 것에 따라와 주는 정도 됐으니까 내가 어떤 옷을 하든 이들이 따라와 줄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도 좀 있었죠.
박인규 : 장사익 선생은 소리꾼이고 임옥상 선생은 미술을 하시는 분인데 그분들의 글씨체가 나름대로 개성이 있나보죠?
이상봉 : 처음 받았을 때는 그냥 직접 글을 써서 주신 것에 대해 감동만 했는데, 막상 꺼내 놓고 보니까... 또 그분들한테 1년 전에 이걸 파리에서 옷으로 표현하고 싶다고 했을 때 흔쾌히 승낙해 주시면서 또 많은 글을 써주셨어요. 딱 보고는 계속 연구를 하게 되는데 장사익 선생 같은 경우는 약간 물과 같다. 물처럼 흘러가는 부드러움이 있어요. 뭐든지 포용할 수 있는. 그리고 임옥상 선생님 같은 경우는 에너지를 느껴서 불과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어떤 강력한 에너지. 내가 파리에 가서 왜 이 고생을 하지? 나의 에너지를 보여줘야 돼. 그런 힘을 느꼈고. 그래서 그 두 분의 대비되는 것을 처음에 썼습니다. 그러면서 10월에 쇼를 할 때는 조금 더 우리나라의 서예가, 일반적인 다른 예술을 하시는 분보다 글을 평생 직업으로 하시는 분들, 서예가와 접목해 봐야겠다고 해서 국당 조성주 선생님과 작업하게 됐구요.
박인규 : 약간 다른 얘기지만 저는 신문기자 출신이라 활자체에 관심이 많은데, 제가 알기론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 글자는 알파벳과 달라서 새로운 서체를 만들기가 어렵다. 기껏해야 고딕 명조다. 최근에는 신영복 선생님체도 나오고 많이 나오고 있긴 한데, 말하자면 새로운 활자체, 글자체를 만들 수 있다는 게 상당히 놀랍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상봉 : 작은 소견이지만 실은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이 없거나, 우리 것을 약간 천시하는 풍토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파리쇼를 하고 와서 패션쇼를 안 하고 전시를 했던 이유 중 하나도, 한국에서 이걸 받아들이는 게 달랐다는 겁니다. 외국인들이 받아들이는 것과 한국인들이 받아들이는 게 너무 달랐고, 또 파리에 살고 계시는 분들은 너무 감동을 받는 겁니다. 한국인들에게는 잊혀져 버리는데 외국에 살고 계신 한국인들은 많이 느끼셨던 거죠. 한국에 대해서 그분들은 외국인들과 대화를 해봤고 느껴 봤는데, 한국에 계신 분들이 의외로 덤덤하고 의외로 한글에 대해서 자부심이 없었던 것 같았어요.
박인규 : 말하자면 한글의 아름다움을 외국인의 눈을 통해서 다시 발견한 셈이네요.
이상봉 : 실은 파리에서 전시할 때, 전날 밤을 새는데 프랑스 문화원에 한국 분이 계세요. 그분과 전시회장 앞에 있으면서 왜 이런 전시가 파리에서 먼저 선보이지? 왜 한국에서 이런 게 먼저 없었지? 상당히 우리가 흥분되면서도 어떻게 보면 답답한 감이 있었어요. 왜 우리나라에서는 한글을 패션화시키지 못했을까? 이렇게 좋고 아름다운 게 많은데... 외국 디자이너들도 많이 했는데 왜 우리는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 그러면서 상당히, 그분과 같이 이게 한국에서 어떻게든 빨리 바람이 나서 한글이 우리에게 새롭게 다가왔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박인규 : 일단 한글의 아름다움을 의상을 통해서 전 세계에 알리셨고 최근에는 모 회사의 휴대폰에도 한글이 들어갔고, 앞으로 한글을 다지인의 소재로 활용할 수 있는 분야는 굉장히 많을 것 같아요. 혹시 다른 계획이 있으십니까?
이상봉 : 특별한 계획은 없지만, 지금 휴대폰에 접목되고... 실은 제가 한글로 패션쇼를 하고 왔을 때 연락은 상당히 많이 받았어요. 어느 분들은 아파트 외관에 한글을 하면 너무 아름답겠다. 또 다양하게 많은 전화를 받고 흥분했었죠. 그래, 한글이 우리에게 새롭게 다가오는구나. 그리고 이 한글을 통해서 많은 서예 하시는 분들, 아니면 한글의 아름다움을 갖고 노력하시는 분들에게 새로운 돌파구를 던져줬다는 얘기를 했을 때, 우리가 이때까지 잊고 있었던 것. 실은 이런 것도 있었어요. 제가 갔다 와서 오기가 생겨서 라벨... 상표를 이상봉을 영문으로 해서 수출했는데 이제는 한글로 한 번 해볼까 해서 라벨 하시는 분을 오시라고 했어요. 몇 천개 상표가 있습니다. 그 샘플을 다 보여주시는데 한글은 한두 개 밖에 못 봤습니다. 몇 천 개 상표 중에서 시장에서 하는 것, 아니면 속옷 천원, 이천원짜리에도 영문이었어요. 거기서 충격을 받고 제가, 좋아 라벨을 이상봉 영문의 두 배를 쓸거야. 그래서 두 배를 바꿨던. 이건 오기로 자꾸 발전하는 거죠.
박인규 : 말씀 듣고 보니까 노다지라고 합니까? 한글의 무한한 가능성을 캐신 것 같아요. 앞으로도 많은 응용이 있을 것으로 기대를 하겠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한글을 디자인화해서 세계 패션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디자이너 이상봉씨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는 개인적 질문과 함께 한국 패션계의 현황에 관한 질문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대학을 예술대학을 나오셨으니까 어려서부터 끼는 있으셨던 것 같고, 그런데 방송연예과를 나오셔서 국제패션디자인학원을 나오셨어요. 구체적인 분야를 바꾸신 것 같은데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마음먹으신 계기가 있습니까?
이상봉 : 저는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디자이너라는 직업 자체를 갖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단지 그 대학에 들어갔던 건 제가 생각하고 있는 걸 한 번 현해 보자. 나의 내면적인 걸 끄집어내보자는 생각 때문에 글을 좀 쓰고 싶어서 들어갔어요.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서 느꼈던 것은 연극적인 것, 자기 내면의 세계를 몸짓으로 표현한다는 것에 너무 충격받아서 거기에 매료됐었습니다.
박인규 : 글보다는 몸짓이 더 강렬하다.
이상봉 : 예. 그래서 그게 제 평생 가야 될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떤 계기로... 제가 살아가야 되는 것 때문에. 우연찮게 신문광고를 보다가 이런 직업이 있었구나, 디자이너보다는 그때는 수선집 같은 걸 해보면 어떨까. 생계적인 측면에 접근하면서 실은 디자이너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박인규 : 그 당시면 2,30년 전이었는데 남자가 바느질하고 옷 만드는 것을 터부시했을 땐데..
이상봉 : 숨겼죠. 어머니한테도 숨겼었고, 그래서 1년 정도 기본기를 배우고, 1년 정도는 연구원이 생겼습니다. 최경자 선생님이라는 분, 우리나라 패션계의 대모이신데 그분이 연구원을 만드셔서 그때 내가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공부를 다시 했었습니다.
박인규 : 이상봉 디자이너는 어떻게 보면 토종이세요. 대개 디자인 하시는 분들은 미국이나 유럽, 하다 못해 일본이라도 갔다 오셔서 활동하시는데 국내에서 주로 배우셔서 국제무대로 나가셨습니다. 최근 우리가 한류라고 해서 한국문화가 동남아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위세를 떨친다고 하는데, 실제로 세계 패션의 중심이라는 파리에서 한국의 패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굉장히 나름대로 자리를 굳힌 건지 아니면 이제부터 알려지고 있는 건지,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상봉 : 다른 도시는 잘 모르겠구요, 하지만 바이어들에게 듣긴 하죠. 중동 바이어들에게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조금씩 알려주고 있고, 우리나라 기업에 의해서 많이 알려지고 있습니다. 러시아 바이어들한테도 듣고. 프랑스 같은 경우도 조금씩 영화 같은 게 알려지고 있고, 그래서 한국영화에 대해서 잠깐 얘기할 수도 있고. 그런데 동남아시아에서 느끼는 한류, 일본에서 느끼는 몇 천 명이 한국에 왔다, 일본에 우리 스타가 갔을 때 공항이 미어터졌다... 이런 경우는 아직까지 유럽에서는 남의 나라 얘기죠. 프랑스에서 한국은 아직까지 패션에서는 솔직히 미미한 존재구요 저도 신인에 불과합니다.
박인규 : 말하자면 이제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보면 될까요?
이상봉 : 그렇죠. 이제 이상봉이라는 디자이너가 파리에서 컬렉션을 하고 나름대로 팔린다더라. 거기서 교민들도 그런 말씀을 하세요. 이상봉이 옷이 파리에서 아니면 유럽 어디, 아니면 세계 각국에 팔린다더라 하는 얘기들을 많이 하세요. 그런 거지, 제가 아직 세계적인 디자이너는 아니죠. 제 꿈은 그런 토대를 만들어 가는, 한국의 디자이너가... 어차피 패션 하면 세계 산업에 너무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우리가 패션 하면 단지 옷이라고 생각하는데 옷 위에 화장품 있죠, 우리나라 백화점 1층을 보면 한 층이 다 화장품이지 않습니까? 악세서리 도 있고, 거기에는 인테리어 소품, 가구까지 지금 패션의 영역에 들어가고 있구요. 그리고 광고 분야 하는 사람들은 같이 패션전시회도 오고 패션의 경향을 파악하거든요. 패션이 그 나라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너무나 큰데 우리는 단지 옷이라는 관점에서 다루니까 패션이 더 발전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파리에서 빨리 우리나라 패션이 하나의.... 일본, 그 다음 한국이 빨리 이어지고 중국이 너무 쫓아오고 있기 때문에 빨리 정착하지 못하면 정말 한국은 샌드위치가 된다고 할까요? 일본과 중국이 좀 더 커지면 샌드위치가 되는 거죠. 그래서 참 위기감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박인규 : 저희가 올해 문화예술계에서 활동을 두드러지게 하시는 분 세 분을 모셨는데 점프를 만드신 김경훈씨, 2007년도 올해의 작가로 뽑히신 정연두씨, 이 두 분은 다 30대입니다. 이상봉 디자이너가 그분들보다는 연세가 많으신데, 요즘은 논리의 시대가 아니라 상상력과 감성의 시대라고 말하는데 특히 한국인들이 그런 부분에 강점, 재능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런 한국인의 예술적 상상력이랄까 감성을 산업 내지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키우기 위해서, 우리 사회가 그런 재능있는 사람들을 제대로 키워주기 위해서 지원이랄까요? 그런 게 필요한 게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이상봉 : 좀 다방면에 용기를 줄 수 있는.. 특히 일본의 디자이너들이 성공하기까지는 기업의 후원들이 많았는데, 제가 가끔 아쉬운 것은 우리나라 기업들이 해외에서만 단지 지금 일하고 있는 사람들한테 기회를 가끔 주는 걸 봤어요. 그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한국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박인규 : 말씀하신 건 해외에서 이미 이름이 나있는 사람...
이상봉 : 이름이 나 있거나 단지 해외에서 작업하고 있는 사람들에 한해서 기회를 가끔 주는 걸 봤을 때 한국의 토종디자이너로서 한국에서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활동하는 사람들한테도 작은 기회를 줬을 때, 정말 여기서도 열심히 하는 풍토가 생기지 않을까. 단지 외국에서 꼭 역행했을 때, 한글도 똑같은 경우죠. 이걸 과연 한국에서 했다면 과연 이런 정도의 파장이 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굳이 꼭 외국에서만 이름을 알리는 게 아니라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주고 또 그들에게도 기회를 줬을 때 한국의 문화가 세계에서 더 굳건하고 강해진다는 거죠.
박인규 : 일단 한글을 패션디자인의 소재로 활용하셔서 뭔가 커다란 관심을 불러일으켰는데 말씀 듣고 보니까 옷뿐만 아니라 휴대폰, 액세서리 등 많은데... 앞으로 굉장히 하실 일이 많으실 것 같아요. 새해부터는 어떤 활동계획을 갖고 계신지 마지막으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상봉 : 1월에 제가 파리에서 전시가 있고, 2월에는 또 컬렉션.. 벌써 날짜가 다 잡혀 있거든요, 2월 25일에 파리컬렉션. 그리고 상하이에서 3월 26일에 초대쇼가 있구요. 그래서 스케줄이 많이 잡혀 있는데, 제가 실은 예년에 비해서 일에 몰두할 수 없고 시간에 집중할 수 없어서 상당히 조바심을 내고 있어요. 그래서, 아.. 이러면 안 되겠다. 이제는 한글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를 더 강하게 만들고 내가 더 열심히 해야 되겠다는 반성을 실은 최근에는 많이 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던데 우리가 갖고 있는 아름다움도 몰랐던 게 많은 것 같아요. 한글도 그 중 하나인 것 같은데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계속 개발해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상봉 : 능력이 되는 한 열심히 해서, 저 자신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제 후배, 아니면 밑에 많은 분들한테 희망이 됐으면 하고, 그런 것들이 저를 통해서 더 크게 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박인규 : 기대해 보겠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2006 문화예술계 인물토크 3인3색. 오늘은 그 마지막 시간으로, 한글을 디자인화해 세계 패션계에서 화제를 모았던 지다이너 이상봉씨와 함께했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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